정당방위가 마침내 정당해진 세상

사법시험을 준비하면서 형법을 공부할 때 가장 기본인 내용 중 하나가 형사적으로 의율할 수 있는 행위의 구성요건해당성, 위법성 조각, 책임 조각의 문제입니다. 이 중 정당방위, 긴급피난, 정당행위 등 위법성 조각 항목에서 흥미로운 내용들이 많습니다. 제가 대학원에서 인공지능 관련 논문을 쓸 때 법철학과 관련해 고민했던 트롤리 딜레마도 위법성 조각 관련 내용이라 조금은 철학적인 이론적인 바탕이 필요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런 위법성 조각 사유 중 대표적인 것이 정당방위입니다. 형법 제21조가 규정하고 있는 정당방위는 ‘현재의 부당한 침해로부터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法益)을 방위하기 위하여 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벌하지 아니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 법원이 이 정당방위를 너무 소극적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20대에 처음 형법을 공부하면서 이해할 수 없었던 판결 중 하나가 정당방위의 요건을 과도하게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는 판례의 태도였습니다. 한창 혈기가 왕성했던 시기라 더욱 그랬는지 모르지만 상대방이 먼저 폭행을 하는데도 이를 피하거나 소극적으로 막기만 해야지 정당방위를 인정하고, 조금이라도 상대방에게 유형력을 행사하는 기미만 보이면 일단 쌍방폭행으로 처벌하는 것이 부당하게 느껴졌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피해자인 제3자를 돕기 위해 나서는 경우도 정당방위가 인정되지 않기도 해서 더욱 그랬습니다.

이와 관련해 특히 이상했던 판례가 있었습니다. 이번에 재심결과 대법원 파기 환송을 거쳐 부산지법에서 무죄가 인정된 강간을 피하고자 강간범의 혀를 깨물었다가 유죄가 인정된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제가 판결문을 읽었을 때 이미 40년이 넘었던 사건이니 벌써 우리 사회 법현실과 많이 차이가 나는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 판결이 바뀌는데 다시 20년이 걸렸습니다. 그 60년이 넘는 오랜 시간 자신의 성명까지 알려졌던 피해자의 억울함이 과연 이 재심 판결 하나로 풀어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재심 판결을 기사로 접하면서 잘못된 판결이라 마침내 바로잡혔다는 것을 확인하는 기쁜 순간이면서 동시에 법조계에 있는 사람으로서 하나의 사건이 갖는 무게감을 다시 한번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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