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선거 투표지 부족과 참정권 침해

지난 주는 한 주 내내 제 딸이 많이 아파서 정신 없이 시간이 흘렀습니다. 저도 어렸을 적 열이 나면 40도 가까이 오른 일이 많아 제 부모님이 고생을 하셨는데, 어린 딸을 키우다 보니 체온이 39도를 넘으면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참 쉽지 않습니다.

이제 두 돌이 지난 지가 한참 되니 자의식이 강해져서 그런지 점점 자기 주관이 강해지고, 일명 ‘시러’병에 걸렸습니다. 저나 아내나 늦은 나이에 결혼해서 육아를 하고 있는데도 청개구리처럼 뭐든지 싫다고 하는 딸을 달래가며 키우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손녀라 그런지 제가 어렸을 때 저에게 하셨던 것보다 훨씬 너그러우신 것을 보면서 저도 나이가 더 들면 그렇게 될 수 있을까 하는 반성도 하게 됩니다.

며칠 전 지방 선거가 있었습니다. 다행히 딸이 약간 컨디션이 좋아져서 아내와 함께 딸을 데리고 나가 번갈아가며 투표를 했습니다. 분수에서 솟아 오르는 물에 깔깔 웃어 대고, 비눗방울 놀이를 하며 놀던 딸도 언젠가는 저희 부부처럼 투표장에 들어가게 될 겁니다. 저와 저의 부모님이 서로 생각이 달라 다른 후보자들에게 투표를 하듯 제 딸도 자신의 기준에 따라 자신이 선택한 후보자를 고르게 될 겁니다. 그것이 사상의 자유시장에 기초한 집권 세력의 변경 가능성을 전제로 하는 우리 민주주의의 기본원리일 것입니다.

그런데 저녁에 개표 뉴스를 보다가 일부 투표소에서 투표 용지가 부족해 유권자들이 투표를 제때 하지 못하거나, 일부는 투표를 포기하고 돌아가는 상황이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순간적으로 예전에 소쿠리에 투표 용지를 보관하는 황당한 업무 행태로 물의를 일으킨 선거관리위원회가 이번에는 더 큰 사고를 쳤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습니다.

이런 선거관리위원회의 부실한 선거관리는 우리 사회에서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선거에 먹칠을 하는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문제를 최소화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응 매뉴얼이나 행정 처리가 있었는지 의심이 간다는 것입니다. 공정한 선거관리는 선거관리위원회의 존재 목적이자, 우리 민주주의의 초석으로 이런 부실한 선거관리로 사회 일각의 근거가 부족한 부정선거 주장을 더 양산하게 될 것이란 점에서 더욱 우려됩니다.

현 시점에서 문제되는 선거관리위원회의 부실선거라는 사실과 기존의 부정선거 주장은 구분되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참정권의 중대한 침해를 받게 된 유권자들이 존재한다면 재선거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기존 법원의 입장은 주로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쳐야 비로소 선거가 무효가 되어 재선거를 해야 한다는 입장인데, 이런 확고한 판례 때문에 개인 입장에서는 국민이 국가의 주인인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참정권이 제한적으로만 보장된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적 고려도 필요합니다.

우리 헌법은 국가에게 개인이 가지는 기본적 인권을 보장할 의무를 지우고 있습니다. 국가 전체 입장에서 선거를 다시 할 경우 발생할 혼란과 비용을 개인의 참정권 침해와 비례적으로 고려해야 하겠지만, 만일 투표 마감 이후 출구조사 결과를 알게 된 후 투표를 하였거나, 투표지가 부족해 투표를 포기하는 등 참정권 행사에 침해를 받은 유권자가 있는 투표소나 개인이 식별 가능하다면 해당하는 지역이나 개인에 대해서는 재선거도 필요하지 않은가 생각이 됩니다.

다만, 그런 문제가 생기지 않은 지역에는 이미 투표를 한 유권자들이 행사한 투표를 무효로 하고 다시 재선거를 할 근거가 부족하지 않을까 합니다. 적법하고 정당하게 투표를 마친 유권자들의 표를 무효로 할 근거가 없는 데다가 이미 6월 3일에 투표를 했던 유권자가 재선거를 하게 될 경우 투표를 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면 이는 오히려 더 많은 유권자들의 참정권을 침해하는 결과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사태에 대한 우리 사회의 최종 합의가 무엇이 되든지 앞으로 선거관리위원회는 고강도 개혁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사법부에 대해서 법관의 독립성이 강조되는 것이 재판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이 있는 것처럼 선거관리위원회의 독립성이 보장되는 것은 공정한 선거가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 독립성의 보장 목적이 무너지기 시작해 달성하기 어렵다면 더 이상 기존의 제도가 유지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혼란이 더 커지기 전에 정치권과 사회 전체가 제도 보완을 위한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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