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친구와 태국 여행

제가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한 후 한동안 바쁘게 지내다가 변호사들에게 비수기라는 약간 한가한 동절기가 되자 잠시 바람을 쐬러 해외로 나가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저처럼 여행을 좋아하는 대학 친구에게 해외 여행을 가자고 제안하면서 당시 사정을 고려해 시간이나 비용이 많이 들지는 않는 동남아시아를 가게 되었습니다. 제 대학 친구는 군대를 제대한 후 함께 국내 여행을 했던 친구인데, 마침 이 친구도 회계사로 회계법인에 있다가 사내 회계직원으로 이직한 후 전보다 여유가 좀 있어서 같이 떠날 수 있었습니다.

먼저 태국에 가서는 배낭여행객이라면 반드시 들러야 하는 방콕 카오산 로드를 들러 약간 거리가 있는 아유타야라는 시암왕국의 이전 수도를 다녀오는 것이 전체적인 계획이었습니다. 저나 제 친구나 역사나 건축물에 관심이 좀 있는 편이었고, 또 이제는 대학생이 아니니 너무 빡빡하게 다니기보다는 쉬엄쉬엄 맛있는 것들도 먹으면서 여유를 즐기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태국 수완나폼 공항에서 차를 타고 호텔 앞에 도착해보니 빨간 셔츠 시위대가 대로에 텐트까지 치고 도심을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출발하기 전에 약간 걱정은 되었는데, 막상 제가 도착하기 전 날에는 폭발물 사건까지 있었다고 하니 긴장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호텔은 중심대로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곳이라 다행이란 생각으로 체크인을 하고 짐을 풀어 놓은 후 친구와 함께 주변 마트에 장을 보러 갔습니다.

저는 동남아시아에서 나는 열대 과일 중에서 망고스틴을 아주 좋아해서, 동남아시아에 여행을 가면 꼭 사먹고는 합니다. 망고스틴은 제철이 있어서 어떤 때는 열심히 찾아다녀도 전혀 먹지 못한 적도 종종 있어서 일단 마트에 가자마자 망고스틴을 찾아봤는데, 아쉽게도 망고스틴은 없고 망고나 다른 열대 과일들만 있었습니다. 아쉬운 대로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큰 망고들을 골라 담은 후 가만히 보니 말린 두리안을 파는 것이었습니다. 두리안은 냄새가 심해서 고급 호텔에서는 생두리안을 반입하지 못하도록 하기도 하는데 말린 두리안은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써 있어서 한번 사봤습니다.

그 외에도 이것저것 먹을 것들을 사가지고 호텔로 돌아와서는 친구와 맥주를 한잔 하면서 사온 말린 두리안을 먹었는데, 예상보다도 맛이 좋고 냄새도 안 나서 대만족이었습니다. 친구와 다음날 카오산 로드 여행 일정을 정하다가 잠이 들었는데, 비행기를 타고 가는 시간이 힘들었는지, 맥주 탓인지 푹 잠을 잘 잤습니다. 다음날 친구는 자신이 전에 배를 타고 카오산 로드를 가봤다고 앞장을 서서 카오산 로드를 구석구석 돌아다니기에 저는 천천히 따라만 다니면서 길거리에서 파는 수박주스와 팟타이를 사먹기도 하고, 발마사지도 받으면서 여유를 즐겼습니다. 저녁에는 방콕에서 유명한 루프탑 바에 가서 칵테일을 마시면서 서늘해진 바람을 즐기다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그 다음날은 드디어 처음 가보는 아유타야로 가는 날이어서 부지런히 일어나 준비를 해서 아유타야에 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2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였는데, 막상 도착해보니 예상보다 햇빛이 강하고 습도가 높아서 고생 좀 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표를 사서 사원 안으로 들어가니 저 멀리 아주 큰 탑이 보였습니다. 계단이 가파르기도 하고 날이 좀 덥기도 해서 약간 망설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탑을 올라가기 시작했는데, 다소 힘들었지만 위에서 본 주변 모습은 올라갈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게 했습니다.

탑을 내려와서 사원 주변을 돌다보니 부서진 탑들과 열대기후의 나무들이 어우러져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냈습니다. 사원 옆으로 가니 아유타야 관광 안내 자료에 나와 있는 큰 와불이 보였는데, 우리의 다소 후덕한 모습이 아닌 동남아시아 특유의 날씬한 모습이었습니다. 동남아시아의 불상을 보면 더운 기후 때문인지, 아니면 개인적 수행을 강조하는 소승불교의 영향인지 날씬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바짝 마르기까지 한 모습에서 우리가 보아왔던 불상과는 이질적인 느낌을 받고는 합니다.

일부는 무너진 탑이나 사원 건물을 보고 있자니, 그 옛날 온전했을 때 웅장했을 모습이 연상되고, 그런 모습이 여전히 보존되어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에 전쟁이 끼치는 해악이 크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특히 같은 불교를 믿으면서도 전쟁 중 침입해 불상의 머리를 모두 잘라버린 버마군의 잔재에서 전쟁의 잔혹함이란 종교로도 극복하기 어려운 것인지 되묻고 싶었습니다. 다만, 그렇게 잘린 불두 중 하나를 나무가 감싸 안은 광경은 신기한 모습이었고, 그 옆에서 평온하게 여유를 즐기는 강아지 한 마리가 왠지 모르게 부럽기도 했습니다.

날이 좀 더워져서 그늘진 사원 유적을 찾아 나섰습니다. 응달진 곳에 앉아 땀을 식히며 친구와 사는 얘기도 나누다 보니 시간이 흘러갔는데, 제대하고 친구와 여름 여행을 갔었던 추억이 생각나 한참을 옛날 얘기를 하며 떠들어댔습니다. 더위가 좀 가시자 다시 일어나 천천히 유적지를 걷다보니 곳곳에 특이한 문양이나 장식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건물의 전체적인 구조를 보는 것도 좋아하지만, 세밀한 장식에도 관심이 많아서 여기저기 눈길이 가는 곳이 많았습니다.

천천히 둘러보다보니 어느 새 아유타야를 떠나야 할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방콕으로 돌아가 친구와 함께 야시장에서 맛있는 야식거리도 사먹고, 더위 속에서 걷느라 지친 몸을 마사지로 풀고 숙소에서 편안한 휴식을 취했습니다. 저는 태국에 가면 헬스랜드라는 프랜차이즈 마사지샵을 종종 가곤 하는데 가격도 적당하면서 실내 인테리어나 마사지사의 기술도 수준급이라 갈 때마다 만족스러웠습니다.

다음날에는 방콕 중심가인 수쿰빗에서 쇼핑을 좀 한 후 귀국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오랫만에 대학 친구와 함께 한 여행으로 쌓여 있던 스트레스가 많이 풀린 느낌이었습니다. 이제 그 친구는 결혼해서 애까지 키우느라 바쁘지만, 대학시절 함께 했던 국내여행 뿐만 아니라 태국여행도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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