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방변호사회 중국소위원회 박승찬 교수님 강의

며칠 전에는 서울지방변호사회 중국소위원회 회의가 있었습니다. 저는 올해부터 2년 동안 중국소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데, 아마 다른 위원분들이 제가 이전 위원회 4년 동안 간사를 맡았던 것 때문에 회무에 대해 더 잘 안다고 생각해서 저를 선출해주신 것 같습니다. 이번 임기에는 예전 중국소위원회 위원분들 중 대다수가 교체된 탓에 업무의 연속성을 위해 제가 위원장을 맡은 부분도 있습니다.

예전 중국소위원회 시절에는 비록 일본소위원회보다는 못하지만 나머지 여러 소위원회들보다는 더욱 활발하게 사업도 하고, 인적 친밀감도 깊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임기는 시작부터 코로나가 심각한 상황이어서 제대로 된 오프라인 회의도 어렵고, 회의가 끝난 후 함께 식사를 하면서 서로의 속마음을 털어놓는 시간도 갖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인지 회의 시간에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거나, 활발한 토론이 좀 부족한 느낌이었습니다.

이런 분위기를 깨기 위해 저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기만을 기다렸는데, 마침 이번 회의 전에 이른바 ‘위드 코로나’ 정책이 시행되면서 다행히 이번 회의는 오프라인으로 진행한 후 위원분들과 식사도 함께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회의 안건을 논의하기 전에 중국경영연구소의 소장을 맡고 계신 용인대 중국어과 박승찬 교수님을 모시고 현재 이슈인 미중패권전쟁과 관련한 강의를 듣게 되었습니다.

제가 박승찬 교수님을 처음 뵌 것은 고등학교 친구가 정기적으로 진행되는 중국 관련 강의가 있으니 한번 참석해보지 않겠냐고 해서 강의에 갔을 때였습니다. 알고보니 박승찬 교수님은 제 친구가 칭화대에서 유학할 때 대학원 지도교수셨는데,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계속 인연이 이어졌던 것이었습니다. 그때 인사를 드린 후 제가 서울회에서 중국 관련 업무를 진행하는데 도움을 받기도 하고, 중국대사관 행사에 참가했다가 우연히 마주쳐 안부를 묻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종종 연락이 됐는데, 이번에 제가 중국소위 위원장을 맡으면서 박승찬 교수님께 중국 관련 규제와 국제정세에 대한 강의를 부탁드린 것이었습니다. 박승찬 교수님은 예상대로 강의를 충실하게 준비해주셨고, 마침 중국 상해에 계셨던지라 비록 줌을 통한 온라인 강의였지만 중국 현지의 분위기도 포함해 흥미진진한 강의를 진행하셨습니다. 평소 중국 관련 책도 쓰시고, TV에도 자주 출연하셔서 인터뷰나 강연를 하신 내공 덕인지 위원분들이 모두 빠져드는 강의가 되었습니다.

강의 내용은 현 시진핑 주석의 3기 연임, 미중패권전쟁의 연혁과 구도, 향후 미래 전망이었는데, 미국과 중국이라는 G2 사이에 끼어 있는 우리 입장에서 생각할 거리를 참 많이 던져주셨던 것 같습니다. 시대적 전환기인 현재 우리 앞에는 비단 법적인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정치, 경제적으로 많은 위기와 기회가 놓여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시점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인지 고민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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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의 관점에서 바라본 이주민의 권리’ 공동학술대회

지난 주말에는 대한변협 난민이주외국인특별위원회, 법원 국제인권법연구회 및 이주인권사례연구모임이 공동으로 이주민의 권리와 관련한 학술대회를 개최했습니다. 이번 공동학술대회의 준비 업무를 담당한 것은 아니었지만, 제가 대한변협 난민이주외국인특위에서 부위원장을 맡고 있어 이주구금과 절차적 권리의 보장이란 주제로 열린 1세션의 사회를 보게 되었습니다.

세션 1에서 발표를 맡으셨던 최계영 교수님과는 이미 구면이었습니다. 몇년 전 난민법 개정 방향 관련 심포지엄에서 제가 사회를 맡았을 때 토론자로 참석하신 적이 있었는데, 나중에 대학원에서 학위 논문을 쓸 당시 제 논문 주제에 대해 흥미가 있다고 하셔서 제 학위 논문을 드리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난민이주외국인특위에서 하는 다른 난민 소송 지원 사업 관련하여 연락을 드린 적도 있어서 학술대회 관련 내용도 더 편하게 의견을 교환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발표에서는 최근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화성 외국인보호소의 이른바 ‘새우꺾기’ 가혹행위 관련 시사적인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발표자나 토론자들이 모두 열정적으로 임해주셨고, 다른 참여자 중에서도 외국인 보호소의 보호장비 사용이나, 보호의 기준에 대한 질문이 나오는 등 열띤 토론이 이루어졌습니다. 오후에도 다른 주제들로 발표와 토론이 이어졌는데, 저는 다른 일정이 있어 계속 참여하지는 못 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이주외국인은 아직까지도 소수지만 점점 그 수가 늘고 있습니다. 이제 전체 인구의 5%를 넘어섰고, 앞으로도 계속 증가할 것으로 보여 그 법적 지위와 관련한 제도 및 정책에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도 현재 외국에 나가면 이주민이고, 우리 조상들 역시 이주민이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다른 사람의 권리를 지켜주는 것이 바로 우리의 권리를 지키는 길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는 학술대회였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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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뉴질랜드 가족여행 4

테 아나우에서 송어 얼굴도 보지 못하고 철수한 다음날 원래 우리 가족은 뉴질랜드 남섬 여행의 백미인 밀포드 사운드로 출발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 식사 준비를 하려고 할때 여행 첫날밤 창문을 제대로 닫지 못하고 잠이 드는 바람에 감기 기운이 있으셨던 아버지가 결국 앓아 눕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일단 아버지의 건강 상태를 보니 장시간 이동은 어려워 보였고, 하는 수 없이 테 아나우에서 하루 더 머물기로 했습니다.

아버지의 몸상태가 좋지 않아서 병원에 가자고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고 아버지가 극구 거부를 하시는 바람에 일단 캠핑장에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습니다. 계속 캠퍼밴에 있는 것은 별로 회복에 좋지 않을 것 같아 캠핑장에 있는 시설물들을 살펴보니 마침 노천 온천이 있었습니다. 야외에 작은 오두막 같은 곳이 있고, 그 안에 마련되어 있는 뜨거운 물이 담긴 통 속에 가족 4명이 들어가 땀을 흘리니 감기 기운이 좀 사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통을 나와 야외 샤워장에서 샤워까지 하고 나니 마치 바닷가로 휴가를 온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몸을 말린 후 조카와 커다란 체스판으로 체스게임을 하기도 했습니다.

아버지도 약간 회복되신 듯 해서 저와 매형은 캠핑장에서 멀리 가지는 못하고, 주변의 호숫가와 상점들을 돌아보면서 며칠 동안 계속 운전을 해서 달려오느라 쌓였던 피로를 어느 정도 풀 기회를 가졌습니다. 맑은 호숫가를 여유있게 걸으면서 매형과 그동안 못했던 얘기를 많이 나눌 수 있었던 것도 좋은 추억이 되었습니다.

테 아나우에서의 둘째날도 그렇게 흘러가고, 저녁에는 근처 식당에서 식사를 한 후 다음날 일찍 밀포드 사운드로 출발하기 위해 서둘러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서둘러 침대에서 일어나려는 저에게 먼저 일어난 매형이 조용히 말을 했습니다. 지금 밖에 폭우가 쏟아지고 있다고… 그때 든 생각은 사실 ‘완전 망했다’였습니다. 원래 테 아나우에서 밀포드 사운드까지 가는 길은 자연 경관이 좋기로 유명한 뉴질랜드에서도 손꼽히는 아름다운 드라이브길이어서 잔뜩 기대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더구나 비가 많이 오면 밀포드 사운드에서 유람선이 운항을 하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캠퍼밴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니 비바람이 몰아치며 말 그대로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비가 퍼붓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 광경을 보고 망연자실해 있는데 매형이 오늘 일정을 어떻게 할지 의논을 하자고 했습니다.

저는 생각을 해본 후 여기까지 와서 밀포드 사운드를 안 갈 수는 없고, 일단 밀포드 사운드로 가는 사이 비가 그칠 수도 있으니 원래 일정대로 가자고 했습니다. 매형은 비가 많이 오긴 하지만 조심해서 운전하면 문제는 없을 것 같다면서 그렇다면 일단 밀포드 사운드로 가자고 했습니다. 그렇게 결정을 한 후 아침을 간단히 먹은 우리 가족은 멋진 풍경은 고사하고, 쏟아지는 비로 인해 속도를 줄여가며 천천히 밀포드 사운드로 출발했습니다. 밀포드 사운드로 가는 길은 좁은 산속의 꼬불꼬불한 도로였는데, 원래 예상했던 1시간보다 더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또, 비가 너무 많이 내려 창문으로도 그 유명한 멋진 풍경을 보기 힘들 지경이었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꾸역꾸역 비를 뚫고 사고 없이 밀포드 사운드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막상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제가 차에서 내려 유람선 티켓을 구입하려고 하니, 티켓을 파는 직원은 비가 많이 와서 유람선이 뜰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데 티켓을 구입할 거냐고 물었습니다. 하늘을 보니, 비가 계속 내리고는 있는데, 빗줄기가 점점 가늘어지고 있어 좀 기다리면 운항을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단 차로 돌아와 어떻게 할지 의논을 한 결과, 간단히 점심식사를 한 후 상황을 본 후 유람선을 타기로 했습니다. 우리 가족들은 비바람을 뚫고 오느라 다들 떨고 있었기 때문에 식당에서 따뜻한 음료와 샌드위치를 산 후 나눠먹으면서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식사를 마칠 즈음 서서히 하늘 한쪽이 밝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가족들은 유람선을 탈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를 갖고, 샌드플라이 퇴치제를 뿌리는 것도 잊어버리고 서둘러 유람선을 타기 위해 선착장으로 줄달음질치기 시작했습니다. 선착장이 생각보다 멀어서 간신히 시간에 맞춰 여객터미널에 도착하니 유람선에 탑승하기 위한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습니다. 줄을 서면서도 진짜 탈 수 있는지 걱정이 됐지만, 그래도 참고 기다리고 있자니 드디어 탑승 안내 방송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유람선에 타자 마침내 유람선이 피오르드를 향해 출발~~

막상 유람선에 타고 보니 구름은 가득했지만 이제는 비가 별로 내리지 않았습니다. 저 멀리 산 위에 걸쳐 있는 것이 안개인지, 구름인지 구분하기 어려웠지만 비가 많이 온 탓인지 절벽에는 새로 생긴 폭포들도 많았습니다. 마침내 여행의 최종 목적지인 밀포드 사운드의 유람선에 탔다는 생각에 제 얼굴에도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유람선이 피오르드를 헤치고 폭포와 멋진 풍경들을 지나가다보니 어느 새 비는 그치고, 하늘을 맑게 개기 시작했습니다. 맑은 하늘 아래 쏟아진 비로 인해 일시적으로 생긴 폭포들이 절벽을 따라 물을 떨어뜨리는 것을 보고 있으니 밀포드 사운드까지 오는 길에 졸였던 마음이 다소 안정되는 느낌이었습니다.

밀포드 사운드는 바다와 접해 있는 피오르드로 물개들과 돌고래를 볼 수 있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물개는 보통 동물원이나 수족관에서만 봤는데 바위 위에서 쉬고 있는 물개들을 보니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물개들은 유람선에 탄 사람들이 지켜보는 것에 익숙해진 듯, 널찍한 바위 위에서 편안하게 몸을 말리고 있었습니다.

우리를 개의치 않고 쉬고 있는 물개들을 뒤로 하고 유람선은 다시 또다른 폭포로 다가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구름 사이로 푸른 하늘이 모습을 드러내어 하늘과 녹색의 피오르드 절벽, 떨어지는 하얀 물방물이 한눈에 들어오는 절경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예전에 노르웨이에서 피오르드들을 보기는 했지만, 이렇게 절벽에서 폭포수가 떨어지는 모습은 기억 속 피오르드의 모습과는 다른 압도적인 기분이 들게 했습니다.

밀포드 사운드는 돌고래로도 유명한데, 유람선을 타고 돌아보는 동안 돌고래가 나타나지 않아 좀 실망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런 저의 마음을 알았는지 방향을 돌려 돌아오는 길에 유람선 뱃머리 앞 물속에 무언가 작은 그림자 같은 것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니 갑자기 위로 펄쩍 뛰어올랐습니다. 마침내 등장한 돌고래 3마리가 유람선을 따라 헤엄을 치기 시작했는데, 그 속도가 엄청나게 빨랐습니다.

바다에서 신나게 헤엄치는 돌고래를 본 것도 신났지만, 이렇게 우리가 탄 배를 따라오는 것을 보니 함께 논다는 느낌이 들어 더 신기했습니다. 유람선은 이제 처음 출발한 선착장을 향해 빠르게 나아갔습니다. 처음 출발할 때와 달리 파랗게 개인 하늘에 산등성이를 감싸며 넘어가는 하얀 구름, 교과서에서 배웠던 저 멀리 보이는 U자형 협곡까지… 비록 가는 길에는 별별 어려움들이 많았지만, 밀포드 사운드는 꼭 한번 가볼 만한 멋진 곳이었습니다.

밀포드 사운드에서 다시 테 아나우로 돌아오는 길에는 이미 비가 그쳐 가는 길에 보지 못해 아쉬웠던 멋진 경치를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하늘이 맑아지니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고, 운전 역시 더 편해졌습니다. 원래 계획보다 하루가 늦어져 비록 비행기 시간에 맞춰 크라이스트 처치로 돌아가는 길을 재촉해야 하긴 했지만, 소형버스 크기인 캠퍼밴을 운전해보는 좀 특별한 경험이 있었던 여행이었습니다. 다만 시간이 모자라 세계 최초로 번지점프를 시작했던 다리에서 번지점프를 해보지 못한 것은 아직도 아쉽습니다.

여행 막바지에 와인잔 하나가 깨져 새로 구입해서 보충해둬야 하는 줄 알고 여러 마트를 뒤졌는데도 찾을 수 없어 반납할 때 사실대로 말했더니 직원은 보험이 있다고 신경도 쓰지 않은 일, 매형이 마지막에 크라이스트 처치 주유소에서 연료를 채워넣어 반납하려고 좌회전을 하다가 역주행하는 반대차선으로 들어섰다가 기절할 뻔한 일 등 이런저런 사건 사고가 계속된 여행답게 마지막까지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추억거리가 계속 쌓여 갔습니다. 다행히 큰 사고는 없이 캠퍼밴을 반납하면서 뉴질랜드 남섬을 종회무진 달렸던 캠퍼밴과 사진 한장을 남기고 귀국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우리 가족에게는 많은 추억거리들로 가득한 평생 잊지 못할 여행이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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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 출석한 인공지능> 책 출간 기념 강연

지난 8월에 <법정에 출석한 인공지능>이란 제목의 책을 한 권 출간했는데, 며칠 전 책 출간 기념으로 강연을 했습니다. 책을 읽었던 독자나, 아직 책을 읽지 않은 청중들에게 책 내용을 1시간 정도로 간략시 설명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또한 온라인으로 강연을 하다보니 청중들의 반응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다른 오프라인 강의를 했을 때보다 어려운 점이었습니다.

출판사 담당자가 이전에 자신들이 출판하는 도서의 독자가 주로 20, 30대의 여성들이라고 설명했었는데, 이번에 강연에 참가 신청한 사람들도 대다수가 여성들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미리 PPT로 강연자료까지 만들었는데 신청자가 없으면 어떻게 하나 약간 걱정도 됐습니다. 더구나 온라인이라 신청자가 별로 없을 줄 알았는데, 한차례 연기를 한 끝에 시작된 강연에 그래도 신청자들이 좀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예정된 강연은 1시간 정도였는데, 준비한 내용을 다 말하고 나니 1시간이 약간 지나 있었습니다. 질문 시간이 되어 혹시 청중들에게 제 강연 내용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거나, 청중들이 지루했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청중들이 강연 내용에 대해 여러가지 질문들을 하는 것을 보니 다행히 내용을 잘 이해한 것 같아 뿌듯했습니다.

학교나 회사, 공공기관에서 법적 주제로 강의를 한 적은 많이 있는데, 제가 쓴 책으로 강연을 한 것은 처음이라 솔직히 약간 긴장이 되기도 했었습니다. 미리 책을 읽고 온 청중들의 경우 현장에서 처음 내용을 들은 경우와 달리 보다 깊이 있는 질문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학위를 받은 논문의 내용을 기초로 실무적인 내용과 다른 사례들을 보완해 집필한 책이었기 때문에 이런 내용에 관심을 갖고 강연에 참여할 정도면 저보다도 더 실력이 있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질의응답 시간에 강연 내용이 재미있었다는 반응도 있었고, 책에서 설명한 법적 책임을 인공지능 로봇에게 부담하게 하는 법이나 제도가 실무에서도 실제 적용되고 있냐는 질문도 있었습니다. 제가 이 책을 쓴 것은 아직 그런 논의가 실무적으로 이루어질만큼 인공지능 로봇 기술이 발달한 것은 아니지만, 기술의 발달 속도는 법제도의 변화 속도보다 훨씬 빠르기 때문에 미리 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는 것을 설명하고 강연을 마무리했습니다. 만일 오프라인 강의였으면 강연을 들은 청중들에게 책에 서명도 해줄 수 있었을텐데 그런 부분이 좀 아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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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서로 다른 가치를 갖는가?

코로나가 휩쓰는 시대, 외부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이 줄다 보니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전보다 늘었습니다. 그렇게 집에 머물면서 넷플릭스 등 OTT를 통해 영화나 드라마 등 프로그램들을 많이 보게 되었는데, 최근 본 ‘다운사이징’이란 영화의 한 장면이 저에게 고민거리를 안겨주었습니다.

영화 ‘다운사이징’은 세포 축소기술을 통해 살아있는 생명체의 질량과 크기를 축소하는 것인데, 영화적 설정이긴 하지만 그런 축소에도 불구하고 세포의 조직이나 전체 세포가 구성하는 개체의 연속성은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쉽게 말하면 인간을 그대로 크기만 작게 줄일 수 있다는 겁니다.

이 기술을 개발한 과학자는 지구의 자원을 마구 소비하고 있는 인간으로 인해 지구에 한계점이 오고 있고, 이를 막기 위해서는 인간의 크기를 줄여 인간이 소비하는 자원을 줄여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현실적인 실현 가능성을 떠나 기후 위기를 직접 겪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그 취지는 백번 옳다고 보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제게 가장 큰 인상을 남긴 장면은 다운사이징을 하기로 결심한 주인공의 결정을 축하하는 술자리에서 벌어졌습니다. 주인공 부부가 친구 부부와 술집에서 술 한잔을 하면서 다운사이징을 하기로 결정한 계기나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데 옆자리에서 혼자 술을 마시던 사람 취색 한 명이 시비를 걸면서 질문을 합니다.

다운사이징을 한 사람들에게도 보통 사람과 똑같은 선거권을 주는 것이 맞냐는 것입니다. 소득세 등 세금도 내지 않고, 소비도 거의 하지 않아 경제에 도움을 주는 것도 아니니 일반인의 1/8의 권리만 갖는 것이 옳지 않냐는 주장입니다. 물론 주인공 부부의 친구가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을 제지하지만 그 취객의 주장은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입니다.

그런 주장의 전체적인 취지는 사람은 사회에 기여한 만큼 권리를 갖는 것이 옳다는 것인데, 생각해보면 그런 주장은 아주 오래된 것입니다. 재산을 가진 사람만 선거권을 가지는 것이 맞다, 남성만이 직업을 가질 수 있다, 더 나아가 양반과 평민만 재산을 가질 수 있다 등 인간의 가치가 모두 같은가 하는 오랜 논쟁의 연장선상에 있는 생각입니다.

최근 외국인에 대해서도 비슷한 주장들이 나옵니다. 대한민국 사회에 기여를 하지 않은 외국인들에게는 사회보장제도의 혜택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입니다. 세금이나 사회보험료를 제대로 내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런 주장들은 잘못된 사실관계에 근거한 경우도 많고, 국가정책적으로 부당한 경우도 있지만, 그 주장의 뿌리는 이처럼 긴 역사적 기원을 공유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아갈 미래가 이렇게 단순하게 인간의 가치를 현재의 경제적 능력으로 재는 구분과 차별의 조각난 공동체라면 좀 서글퍼집니다. “한 국가의 위대함과 도덕적 진보는 해당 국가의 동물이 받는 대우로 가늠할 수 있다.”고 했던 간디의 말이 머릿속에서 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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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뉴질랜드 가족여행 3

캠핑 첫날의 교훈으로 서둘러 도착한 뉴질랜드 퀸즈타운의 홀리데이 파크는 캠퍼밴에 전기와 수도를 공급받을 수 있고, 별도로 마련된 편의시설로 깨끗한 화장실과 주방까지도 이용할 수 있는 멋진 캠핑장이었습니다. 물론, 가격이 좀 비싸긴 했지만 아버지가 몸이 안 좋으셔서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할 수 있는 시설이 좋은 곳을 고른 것이라 만족스러웠습니다.

뉴질랜드에서의 두번째 밤을 보낸 캠핑장

루지를 타러 나가기 전에 미리 전기선과 수도호스를 연결해 충전도 하고 물탱크도 완전히 채워뒀던지라 저녁식사를 마친 후 정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는 이제 어제보다 몸이 좀 회복되셨는지 설거지는 자신이 하시겠다면서 설거지 거리들을 가지고 제 조카와 함께 캠핑장에 있는 시설로 가셨습니다. 저와 매형은 식탁을 정리하고, 잘 준비를 위해 침대를 꺼내면서 침구 정리를 하고 있었는데, 한 20분 정도 기다려도 아버지가 오시지 않아 제가 주방이 있는 건물로 갔더니 아버지가 여전히 설거지를 하지 못하고 한쪽에 앉아 계셨습니다. 알고보니 일본에서 온 듯한 다른 팀이 설거지를 30분 가까이 하고 있어서 자리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살펴보니 아무래도 시간이 더 걸릴 것 같아서, 아버지께 그냥 캠퍼밴에서 하자고 말하고 돌아왔습니다. 아버지는 식기들을 챙겨들고 돌아와 캠퍼밴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원래 설거지를 잘 하지 않으셨는데, 연세가 드시고 어머니와 시골로 내려가 정착해 사시면서 적응을 위해 설거지를 하시게 됐습니다. 집안 청소를 할 때도 깔끔하게 하는 것을 좋아하셨는데, 설거지도 깨끗하게, 식기에 고춧가로 하나 없이 깔끔하게 하시곤 합니다. 설거지 거리가 많지는 않았지만 아버지는 오랜시간 공들여 설거지를 마치셨습니다.

아버지의 설거지가 끝나자 다들 양치질과 간단한 세면을 한 후 잠자리에 들려고 불을 끄려는 찰나, 제 눈에 화장실 문 앞에 물기가 좀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저는 누군가 세면을 하다가 물이 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화장지를 뜯어 물기를 닦은 후 화장실 변기에 버릴 생각으로 화장실 문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이럴 수가!!! 화장실 안에 오수가 가득 차서 찰랑찰랑~~거리면서 화장실 밖으로 조금씩 넘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화들짝 놀란 저는 매형에게 가서 큰일 났다면서 화장실에 오수가 넘친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저와 매형은 약간 짐작이 가는 바가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설거지를 하시면서 물을 많이 쓰셨는데, 원래는 싱크대의 물이 바로 바로 배출되어야 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이상하게 꿀럭꿀럭 하는 소리가 나면서 물이 빠져나가길래 저도, 매형도 이상하다는 생각에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었기 때문입니다. 알고 보니 그 소리는 싱크대를 통해 배출된 오수가 오수탱크 용량을 넘어 화장실 바닥의 배출구를 통해 다시 나오다보니 공기가 통하는 소리였던 것입니다. 높이로 봤을 때 싱크대보다 화장실 바닥이 낮으니 압력으로 인해 화장실 바닥을 통해 오수가 넘쳤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원래는 깨끗한 물탱크와 오수 탱크의 용량이 같은데, 우리가 캠핑장에 주차를 해놓은 후 물탱크를 가득 채워놨더니 오수탱크의 용량을 초과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를 어쩐다… 일단 진정하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시간이 갈수록 싱크대의 오수는 압력 때문에 화장실 바닥을 통해 점점 더 배출될 것이 확실하고, 그런 상태로 캠퍼밴을 이동시켜 오수 배출구를 통해 오수를 버리자니 화장실 안에서 출렁거리던 오수가 밖으로 마구 넘칠 것 같았습니다. 결국 생각해낸 방법은 화장실 변기에 넘친 오수를 퍼서 부은 후 변기를 통해 버려지는 오수를 모아두는 통을 끌고가 오수를 버린 후 더 이상 화장실 바닥으로 오수가 배출되지 않으면 캠퍼밴을 이동시켜 오수 배출구로 오수를 배출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다행히 화장실에 물을 뜰만한 바가지 같은 것이 하나 비치되어 있어서 부지런히 오수를 퍼서 변기에 붓기 시작했습니다. 변기에 오수를 붓다 보니 생각보다 변기에서 배출되는 오수를 담는 통은 빨리 찼습니다. 결국, 물을 퍼서 변기에 붓고, 그 오수가 담긴 통을 끌고 오수를 버리는 장소에 가서 버리고, 다시 돌아와 변기에 붓고, 끌고갔다가 오고… 이걸 한 5번은 한 끝에 더 이상 화장실 바닥으로 오수가 배출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별이 쏟아져 내리는 뉴질랜드 퀸즈타운에서 달밤의 체조를 2시간 가까이 한 끝에 간신히 골치 아픈 상황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한밤 중에 캠핑장에서 이게 뭐하는 것인지…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또다른 한편 잊지 못할 우스운 추억거리도 하나 생긴 것 같습니다. ㅎㅎ

달밤의 체조를 하면서 오갔던 오수 처리장 입구

다음날 아침에 일어났더니 전날 밤 체조 덕분인지 몸이 좀 쑤셨는데, 아버지는 전날 밤 자신 때문에 저와 매형이 고생을 했다고 생각해서인지 평소같지 않게 눈치를 좀 보시는 것 같았습니다. 일단 아침식사를 하고, 아버지가 쉬실 수 있게 캠퍼밴 뒤쪽에 있는 침대를 펴놓고 누워서 가실 수 있게 조치를 한 후 전날 받은 캐리어에 있는 감기약을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이제 괜찮다면서 한사코 약을 안 드시려고 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그냥 출발을 했는데, 저도 좀 피곤하기는 했나 봅니다. 매형이 운전을 하다가 제가 교대를 했을 때 찍어준 사진을 나중에 보니 얼굴이 좀 탄데다가 초췌하기까지 했습니다.

그 다음 목적지는 테 아나우였는데, 테아나우는 뉴질랜드 남섬의 하이라이트인 밀포드 사운드로 가는 관문이었습니다. 테 아나우 자체도 호반의 도시여서 무지개 송어낚시로도 유명했기에 우리 가족은 송어를 많이 잡아 송어구이 요리를 해먹자는 생각에 들떠 있었습니다. 테 아나우에도 일찍 도착해서 얼른 호수를 바라보는 위치에 있어 경치가 좋은 테 아나우 홀리데이 파크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짐을 간단히 정리한 후에는 근처 상점에 가서 송어 낚시를 하기 위한 낚시대를 빌리고, 찌도 구입했습니다. 특히 뉴질랜드에서는 낚시를 하기 위해서는 등록도 해야 하기 때문에 낚시대를 빌려주는 상점에서 4명 모두 송어 낚시 등록증도 발부받았습니다. 송어 낚시를 할 생각에 다들 우리 가족들은 모두 신이 나서 차를 몰고 송어가 가장 잘 잡힌다는 강으로 이동했습니다. 낚시대를 챙겨 다들 강에 던지면서 어리숙한 송어가 초보 낚시꾼들의 찌를 물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4명의 어설픈 낚시꾼들이 낚시대를 드리운지도 1시간, 2시간… 시간은 잘도 흘러갔지만 역시 뉴질랜드 송어들은 생각보다 영리했습니다. 저는 주로 강바닥의 이끼를 낚아 올리거나, 어떤 때는 무언가 묵직한 것이 끌려오길래 잔뜩 기대를 하고 당겼더니 누구 것인지 알 수 없는 신발이 떡!!하니 올라오곤 했습니다. 아버지는 제 조카에게 낚시 던지는 방법을 알려주시고는 좀 피곤하셨는지 일찌감치 낚시는 접고 그늘에 앉아서 강바람을 쐬고 계셨습니다. 저와 매형, 조카는 그래도 송어 얼굴이라도 보겠다는 생각에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낚시줄을 던졌지만 결국 뉴질랜드 송어는 마트 생선코너에서나 볼 수 있었습니다.

산천어 축제에서 산천어를 잡는 것과는 역시 천지 차이였던 것 같습니다. 날이 어두워졌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낚시도구를 정리해서 다시 차를 끌고 캠핑장으로 철수했습니다. 낚시대는 빌렸던 곳에 반납하고, 주변 음식점, 상점들과 공원도 둘러봤는데, 조용하고 한적한 곳이라 마음에 들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이후 다시 캠핑장으로 돌아가 간단히 저녁식사를 한 후 다들 깊은 잠에 들었습니다. 연일 계속된 이동과 오후에 했던 낚시로 인해 모두 피곤했나 봅니다. 그렇게 뉴질랜드에서의 하루가 또 지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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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을 맞아 한 무연고 사망 장례 관련 인터뷰와 가족의 의미

얼마 전에는 추석 연휴였습니다. 코로나로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는 어려웠지만 다들 가족이나 친구들과 작고 소중한 추억들을 하나씩 남겼을 것입니다. 저는 추석 바로 직전에 전화를 한 통 받았습니다. KBS 기자로부터 온 전화였는데 추석을 맞아 무연고사망과 관련한 기사를 준비 중인데 인터뷰를 할 수 있겠냐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오랫동안 함께 해오고 있는 무연고 사망자에 대한 장례를 지원하는 나눔과나눔이라는 곳이 있는데 몇년 전 그 단체와 함께 무연고 사망자에 대한 법제를 주제로 국제 심포지엄을 준비해 발표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자료를 보고 연락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실무적인 내용은 나눔과나눔의 팀장님이 더 잘 아실 것이라고 했더니, 이미 팀장님과도 인터뷰 약속을 잡았고, 제게는 법제도 관련 내용을 물어보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조율한 인터뷰 일정에 맞춰 사무실에 갔더니 기자와 TV 카메라기자 등 관계자가 회의실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잠시 얘기를 한 후 회의실보다는 제 방에서 인터뷰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촬영장소를 제 방으로 바꿔 3, 4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을 했습니다. 그 후 기자는 20일에 방송을 할 것이라고 말한 후 태풍이 오고 있는 제주도로 다시 출장을 가야 한다며 서둘러 출발했습니다.

저는 추석 전날 부모님댁에 내려가서 부모님과 함께 오랜만에 9시 뉴스를 봤습니다. 인터뷰를 하면 보통 그렇지만 이런저런 질문을 많이 하지만 실제 나오는 것은 아주 짧은 내용입니다. 최근 사회의 변화에 따른 제도의 변화가 어떻게 발을 맞춰 가야 할 것인지 고민이 필요해 보입니다. 이번 추석만이라도 무연고로 세상을 떠나신 분들이 별로 없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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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뉴질랜드 가족여행 2

여행 첫날밤을 보내기로 했던 테카포 호수는 잔잔한 물결이 치는 조용한 곳이었는데, 그 호숫가에는 홀리데이 파크라는 캠퍼밴을 주차할 수 있는 야영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원래는 크라이스트 처치에서 일찍 출발해 야영장에 주차를 한 후 호숫가를 돌아볼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예기치 않게 위탁수하물이 제때 도착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해서 예상보다 출발시간이 늦어지는 바람에 우리 가족이 홀리데이 파크 야영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모든 야영장이 캠퍼밴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우리는 할 수 없이 차를 끌고 구글지도를 보면서 약간 거리가 떨어져 있는 다른 캠핑장으로 이동했습니다. 테카포 호수 옆에 있는 알렉산드리나라는 작은 호수 옆이었는데, 테카포 호수 야영장과 달리 물과 전기를 끌어다 쓸 수는 없는 곳이었지만 저는 일단 차를 주차할 수 있다는 점에 안도했습니다. 우리 가족들은 해가 져서 어둑어둑해졌지만 출발하기 전 사뒀던 육류와 채소, 와인으로 늦은 만찬을 즐겼습니다. 그런데 차 안에 있는 주방에서 고기를 굽다보니 차 안에 연기가 뿌옇게 차서 환기를 하는데 고생을 좀 했습니다. 창문을 열어놓았더니 시간이 좀 흐르자 다행히 연기가 빠져나갔습니다. 처음 캠핑카를 이용하다보니 아무래도 시행착오들이 많이 있을 수 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얼른 식사를 한 후 다들 지쳤는지 침대를 펴놓고 깊이 잠이 들었습니다. 저는 새벽에 좀 춥길래 잠시 일어나서 옆으로 젖혀뒀던 이불을 다시 덮고 잤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생각도 하지 못했던 걱정거리가 하나 생겼습니다. 환기를 한다고 열어두었던 창문을 닫는 것을 깜빡했는데 열어뒀던 그 창문 맞은편에서 주무셨던 아버지가 밤새 호수에서 불어온 찬 바람을 맞고 감기 기운이 드셨던 것입니다. 자꾸 기침을 하시면서도 일정에 차질에 생기는 것이 걱정되셨는지 아버지는 따뜻하게 있으면 괜찮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일단 차량 뒤쪽에 침대를 편 후 이불을 덮고 쉬시게 한 후 아침을 준비했습니다. 토스트로 아침은 간단히 먹고 테카포 호수에 가서 경치를 즐길 계획이었기에 서둘러 출발 준비를 마치고 다시 테카포 호수로 갔습니다.

경치가 좋기로 유명한 테카포 호수는 선한 목자의 교회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일품인데 뉴질랜드 남섬에서 가장 높은 마운트 쿡도 보입니다. 19세기 유명한 쿡선장을 딴 이름을 가진 마운트 쿡은 무려 높이가 3,724m에 이르는데, 높이가 있어서 그런지 산 윗부분은 만년설이 쌓여 있었습니다. 선한 목자의 교회는 돌로 지은 매우 작은 건물인데, 그 안으로 들어서면 호수쪽으로 난 창문으로 바람이 불어 들어왔는데, 그 바람을 맞고 있자니 가슴이 시원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남섬에 가면 한번은 꼭 가봐야 할 곳 중 하나라 생각이 됩니다. 세면도구가 전날 실종된 위탁수화물 가방에 들어 있어서 제대로 씻지도 못했더니 상태는 폐인 모드였지만 그래도 경치는 끝내줬습니다.

호수와 마운트 쿡 산의 경치를 즐기다가 다시 다음 목적지인 퀸즈타운을 향해 길을 떠났습니다. 차를 타고 가다보니 테카포 호수에서는 구름에 가려서 완전하게 보이지 않던 쿡산이 제대로 보이길래 그냥 가기 아쉬워 사진을 몇 장 더 찍었습니다. 역시 새하얀 만년설로 뒤덮인 산은 언제 보아도 언제 보아도 멋진 모습입니다.

다시 차를 타고 가는데 첫날부터 차를 운전했던 매형이 장시간 운전을 해서 피로해보였습니다. 원래 여행 계획을 짤 때 저보다는 운전이 익숙한 매형이 운전을 더 많이 하기로 했었지만 그래도 이제는 제가 교대해서 차를 몰아 보기로 했습니다. 매형에게 어느 정도 가서 교대하자고 말을 했는데 착한 매형은 별로 힘들지 않다면서 계속 운전하길래 제가 저 앞 표지판 근처에서 세운 후 교대하자고 재촉을 했습니다. 그랬는데 제가 너무 급하게 세우자고 한 것인지, 차가 무거워서 밀린 것인지 길 옆에 차를 대다가 그만 길가에 있는 나무와 차량의 왼쪽 사이드미러가 부딪히고 말았습니다. 내려서 확인해보니 왼쪽 귀 아랫부분이 박살이 나 있었고, 다른 부분도 흠집이 나 있었습니다. ㅜㅜ

그래도 다행이었던 것이 캠퍼밴을 렌트할 때 보험의 보장 범위를 넓게 설정해뒀는데 계약할 때는 비용이 좀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사람 마음이 간사한 것인지 막상 사고가 나고 나니 더 많은 비용을 내고 보험을 들어두길 참으로 잘했다는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ㅎㅎ 렌트했던 차량이 벤츠라서 보험으로 처리가 되지 않으면 수리비를 많이 내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당황하는 매형에게는 보험으로 처리가 될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고, 일단 사진을 찍어 사고를 정리한 후 다시 출발했습니다.

매형과 교대해서 막상 캠퍼밴을 운전해보니 일단 차폭이 넓고, 앞뒤 길이도 일반 승용차보다 훨씬 길기 때문에 처음에는 생각보다 까다로웠습니다. 더구나 뉴질랜드는 고속도로도 왕복 2차선으로 되어 있는데, 일반 승용차는 제한속도가 시속 100km이지만 우리 가족이 탄 캠퍼밴은 크기가 커서 제한속도가 시속 90km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꾸 뒤에서 승용차들이 빨리 가라고 바짝 붙어 오기도 해서 가끔 옆에 있는 이면도로로 피해 가면서 주행을 하다보니 신경이 더 쓰였습니다. 더구나 우리나라 도로와 차량과 달리 뉴질랜드는 영국처럼 왼쪽으로 달리다보니 우회전을 할 때 특히 더 헷갈렸습니다. 이런 이유로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에 갔더니 우리는 왼쪽으로 달린다는 포스터까지 붙어 있었습니다. ㅎㅎ

우회전을 할 때 더 크게 돌아야 하는데 우리나라 도로에 익숙하다보니 작게 우회전을 해서 상대 차선으로 들어서는 역주행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저도 고속도로에서 한번 사고를 쳤는데, 크롬웰이라는 작은 도시에 들러 식사를 하고 가려고 우회전을 하다가 상대방 차선으로 들어서 버린 것이었습니다. 다행히 포스터까지 붙일 정도로 관광객들이 사고를 많이 쳐서 그런지 상대방 차선에 있는 차들이 양보를 해주면서 걱정하지 말고 천천히 가라는 말까지 해줬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나지막한 경계석을 과감하게 넘어서 원래 차선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휴…

크롬웰에서 식사를 하고, 마트에도 들렀다가 공원에서 좀 쉬었다 가기로 했습니다. 장시간 차를 타고 가느라 다들 좀 지쳐 있었기 때문에 좀 걸으면서 운동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감기 기운이 있으신 아버지가 좀 걱정이 되어서 감기약을 사서 먹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여쭤봤더니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그때 약을 사서 드시게 했어야 하는데… 아버지의 고집에 저와 매형의 낙관이 나중에는 더 큰 대가를 치르게 했습니다.

식사도 하고 운동도 해서 다시 어느 정도 기운을 차린 우리는 다시 퀸즈타운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퀸즈타운으로 가면서 저는 또 열심히 뉴질랜드 항공사와 연락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가족의 실종된 수화물 3개가 퀸즈타운 공항으로 오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항공사에서는 운항 일정 때문에 오후 늦게나 수화물이 도착할 것이라고 해서 일단 캠퍼밴을 캠핑장에 주차한 후 공항에 가서 짐을 찾기로 했습니다. 이튿날은 아침부터 서둘러서 출발한 덕분인지, 우리가 원하던 크릭사이드 홀리데이 파크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고, 전기와 물을 보충한 후 아버지와 조카가 식사 준비를 하는 동안 저와 매형이 공항에서 짐을 찾아왔습니다.

퀸즈타운 공항에서 마침내 여행 캐리어 3개를 받고 나니, 마치 잃어버린 강아지들을 찾은 것처럼 기뻤습니다. 며칠 동안 옷도 갈아 입지 못 하고, 양치질과 세면도 제대로 하지 못 한 상태로 지냈더니 여행 가방에 있는 세면도구들을 가지고 캠핑장에 있는 샤워실에서 뜨거운 물로 샤워하고 나오면서 날아갈 듯 상쾌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옷도 갈아 입고, 다양한 레포츠로 유명한 퀸즈타운에 왔으니 외출을 하기로 했습니다. 일단 조카가 좋아할 것 같은 루지를 타기로 했는데, 케이블카를 타고 루지 출발점인 스카이라인을 향해 가면서 조카와 사진을 찍었는데, 3일 동안 수염도 제대로 깎지 못했더니 얼굴은 엉망이었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았습니다.

케이블카가 도착해서 호수쪽 풍경을 봤더니 뒤로 펼쳐지는 경치가 전해 들었던 것처럼 엄청났습니다. 푸른 호수와 거친 산맥, 하얀 구름이 떠있는 하늘… 고생해서 여기까지 온 보람이 있었습니다.

이제 루지를 탈 시간입니다. 루지는 저를 포함해 우리 가족들도 처음 타보는 것이었는데, 다운힐 MTB 같은 느낌이어서 나름 스릴도 있고 재밌는 경험이었습니다. 경치도 즐기고 루지를 타면서 즐거운 시간도 보낸 후에 다시 캠핑장으로 돌아와서 어제와 비교해서는 매우 평화로운 저녁식사를 즐겼습니다. 그렇게 이튿날은 하루가 잘 마무리되어 가는가 싶었는데… 운명의 여신은 우리 가족의 여행 이틀째를 그렇게 쉽게 마무리할 마음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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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첫 책 출간, <법정에 출석한 인공지능>

얼마 전 제가 집필한 책이 한 권 출간되었습니다. 작년에 석사 학위를 받았던 논문인 “인공지능 로봇의 법적 지위”를 읽은 출판사 직원이 작년 말에 제게 연락을 해왔습니다. 저에게 연락을 했던 출판사 에디터는 제 논문을 재밌게 읽었는데 논문의 내용이 마치 SF소설 같은 느낌도 들었다면서 제게 논문의 내용을 바탕으로 대중이 보다 접근하게 쉽게 책을 한번 내볼 생각이 있냐는 제안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전화를 받았을 때 저는 한창 진행 중이었던 프로젝트 자문과 다른 재판 일정들이 너무 많은 상황이어서 당장은 시간이 없고 나중에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 다시 연락하겠다고 정중하게 거절을 했습니다. 몇 개월이 지난 후 프로젝트가 어느 정도 마무리된 후 저는 출판사 에디터에게 연락을 해서 본격적으로 출판 계획에 대해 들은 후 출판계약을 하게 됐습니다.

처음 책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사실 기존에 작성했던 논문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니 큰 힘은 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출판사 에디터도 분명 그렇게 얘기한 것 같은데… 막상 책을 쓰다보니 실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제가 쓴 논문의 내용 자체가 좀 어렵다보니 이런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다듬는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또, 함께 책을 만들기로 했던 출판사 에디터들이 자꾸 변경되는 바람에 에디터들과 책 내용이나 방향에 대해서도 여러 차례 변경을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책을 독자들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쓸 수 있었다는 생각도 들고, 같은 팀으로 작업을 하면서 배울 수 있는 것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약 3, 4달에 걸쳐 쓴 책이 출판되어 나온 날은 마치 나만의 예술 작품을 하나 만든 느낌이었습니다. 저작권 관련 소송을 대리한 적은 있어도 실제 책의 저자가 된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책을 쓰면서 사례를 들어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애를 썼는데 책을 읽은 주변 지인들의 독서 후기를 들어보면 어느 정도는 성공한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책의 제목을 어떤 것으로 할 것인지도 에디터와 함께 참 고민을 많이 했는데, 인공지능이 보다 주체적인 행위를 한다는 의미에서 법정에 출석한다는 단어를 선택했습니다.

제 생애 첫 저서

책을 출간하고 주변의 아는 사람들에게 제가 책을 집필했다는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시내 여러 서점이나 온라인에서 판매가 되고 있는데, 얼마나 판매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제가 쓴 책이 세상에 나왔다는 것은 제가 이 세상에 뭔가 남기고 간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 책의 내용에 대해 인터뷰도 한번 했는데 책의 전체적인 내용을 얼마나 잘 요약해 담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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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뉴질랜드 가족여행 1

뉴질랜드… 영화 반지의 제왕 촬영지로도 유명한 나라입니다. 고등학교 시절 중간고사를 얼마 안 남겨놓은 주말에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가 교실로 참고서를 찾으러 왔다가 구석 한 책상 위에 우연히 반지전쟁 번역본이 놓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매력적인 제목이라 책을 집어들어 읽기 시작했는데 결국 시험기간 동안 반지전쟁 전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말았습니다. 중간고사 성적은 기억하고 싶지 않습니다. ㅎㅎ

저는 반지전쟁의 원래 제목이 반지의 제왕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그 전편인 호빗을 찾아 헤매다가 완역이 되지 않은 호빗이 아동용 도서로 번역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 오크를 귀신으로, 드워프를 난쟁이로 번역한 어린이용 호빗을 대형 서점에서 찾아내 몇시간 동안 서서 다 읽어 버렸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좀 웃기기도 하지만 저는 아마 그때 톨킨의 팬이 된 것 같습니다. 대학에 가서는 톨킨이 남긴 반지의 제왕, 호빗 이전의 역사를 다룬 다른 원고들을 편집한 실마릴리온을 읽고, 반지의 제왕, 호빗을 영어 원서로 다시 읽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톨킨의 작품에 빠져 있었던 제가 영화로 나온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놓칠 수는 없었고, 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뉴질랜드를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제 희망을 알았는지, 어느 날 누나가 이번 겨울에 남자들만 뉴질랜드 캠퍼밴 여행을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말을 던졌습니다. 저와 아버지, 매형과 남자 조카 4명이 뉴질랜드를 캠핑카를 끌로 여행하는 코스였습니다. 다양한 형태의 여행을 경험해봤던 저였지만 캠퍼밴으로 여행을 하는 것은 처음이고, 평소 운전을 즐기는 편이 아니라 소형 버스 크기의 캠퍼밴을 운전할 수 있을지 다소 걱정도 되었습니다. 그래도 남자 가족들만 모여 여행을 한다는 것이 나름 좋은 추억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여행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계기로 떠나게 된 뉴질랜드는 저와 여행을 함께 한 다른 가족들에게 예상치 못한 수많은 난관과 에피소드를 선사하게 됩니다.

그 시작은 출발하는 인천공항에서부터였습니다. 뉴질랜드는 직항이 별로 없고 항공권 가격도 비싸서 뉴질랜드 도착 시간과 한국 입국시간이 가장 적절한 것을 찾아 헤맸습니다. 그러다보니 가장 좋은 항공권이 중국 광저우를 거쳐 뉴질랜드에 입국하고, 귀국할때는 경유하지 않고 바로 입국하는 항공권이었습니다. 출발은 수요일 오전 8시 30분 비행기라 공항에 별로 탑승객들이 없을거라는 생각에 2시간 반 전인 6시에 도착을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공항에 도착해보니 이렇게 사람이 많을 수 있나 싶을 정도로 공항이 미어터질 지경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당시는 제2터미널이 완공 직전이라 더욱 사람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예약한 항공사가 대한항공과 공동운항편으로 운행되고 있어서 대한항공에서 탑승 수속을 하려고 했는데 대한항공 데스크 앞 대기줄은 이미 전체 섹터를 두번이나 빙 돌아서 감고 있을 정도였습니다. 대기줄에 일단 서있다가 상황을 보니 아무래도 이렇게 그냥 있다가는 제때 탑승수속을 마치고 타기가 힘들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셀프로 간단하게 탑승수속을 하는 곳으로 가서 줄을 섰다가 항공권을 받으려고 하니, 해당 기기로는 직항편만 가능하고 경유하는 항공편은 처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 사이에 대기줄은 더 길어져 있었고… 6시 40분 정도 된 상황에서 다시 대기줄에 서서 속만 태우면서 하염없이 줄이 줄어들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가까스로 대한항공 데스크를 휘감았던 줄이 한바퀴로 줄어들었을때 쯤 갑자기 저쪽에서 대한항공 직원 한명이 단체 여행객이 있냐고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얼른 우리 가족이 4명인데… 셀프 탑승 수속을 하려다 안되고, 출발시간이 얼마 안 남았는데 어쩌구 저쩌구 하소연을 했더니 다행히 일단 단체 여행객 탑승 코너로 가자고 했습니다. 비행기를 놓칠까봐 걱정이 산더미였던 저는 다른 가족들에게 어서 따라오라고 말하면서 직원을 따라 단체 여행객 데스크로 갔습니다. 안내 직원에게 여권과 항공권 예약 출력물을 보여준 후 광저우로 가는 항공권과 광저우에서 뉴질랜드 오클랜드로 가는 항공권까지 잘 받았습니다. 이제 비행기를 놓치지 않을 것 같다는 안도감에 위탁수화물을 올리려고 하는데, 갑자기 컨베이어 벨트가 멈췄습니다.

갑자기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직원이 전화를 해보더니 수화물이 너무 많아서 수화물을 싣는 운반 시스템이멈췄다고 설명해줬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보고 잠시 기다리라고 하는데 이미 시간은 9시가 넘은 상황이었습니다. 탑승객이 많아 탑승권을 받는데 이렇게 오래 걸리면 보안검색에도 당연히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기에 저와 가족들은 점점 더 초초해졌습니다. 그래도 천만 다행으로 10분 정도 지나니 다시 수화물 운반 장치가 돌아가기 시작했는데, 저는 시간이 촉박할 거 같아 직원에게 이제 보안검색을 받으러 가도 늦지 않겠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저희 아버지가 연세가 좀 있으셔서 패스트트랙 대상자이니 가족 모두 패스트 트랙으로 진행하면 된다면서 카드를 하나 줬습니다.

우리 가족은 비행기를 놓치면 안된다는 생각에 서둘러 탑승 게이트로 이동했습니다. 막판에 서둘러서 다행히 게이트가 닫히기 직전 비행기를 탈 수 있었습니다. 비행기가 광저우 공항에 도착한 후 환승구역에서 대기하다가 다시 비행기를 타고 뉴질랜드 오클랜드로 출발했습니다. 유럽에 가는 것 못지 않은 장거리, 장시간 비행이었지만 저는 그래도 뉴질랜드의 대자연을 즐기고 싸고 맛있는 고기들과 와인을 먹을 생각에 한껏 들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오클랜드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또 다른 문제가 저희 가족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리 가족의 목적지는 오클랜드가 있는 뉴질랜드 북섬이 아니라 뉴질랜드 남섬이었습니다. 그래서 오클랜드에서 다시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남섬의 크라이스트 처치 공항으로 가야 하는데, 국내선 항공기의 예약 시간이 도착시간으로부터 1시간 후였습니다. 일반적으로 맡긴 수화물을 찾아 세관을 지나 입국을 하려면 약간 시간이 걸리고, 다시 국내선 항공권을 발권받아 항공기에 탑승하려면 또 시간이 걸립니다. 그래서 저는 비행기에서 내리기 전부터 가족들에게 서둘러서 국내선 터미널로 가야 된다고 신신당부를 했고, 우리 가족은 최대한 빨리 항공기에서 내렸습니다. 그렇게 서둘러 비행기에서 내린 후 위탁수화물을 찾는 곳에 1등으로 도착해 수화물이 나오길 기다렸는데 무슨 일인지 우리 가족의 수화물이 통 나오지를 않는 것이었습니다. 빨리 짐을 찾아 국내선 터미널로 가야 하는데 다른 탑승객들은 다들 짐을 찾아 나가는데 우리 짐은 30분이 지나도록 나오질 않고…

안절부절 못하면서 조금 더 기다리니 위탁 수화물 4개 중 1개가 나왔는데, 다른 짐들은 어딨는지 알 수도 없었습니다. 이미 비행기에서는 모든 짐을 내린 상황이고… 결국 수화물 처리 부서를 찾아가 수화물이 나오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어떻게 된 것인지 알아봐 달라고 했습니다. 담당 직원은 여기저기 전화를 해보더니 우리 가족이 맡긴 수화물이 다른 비행기에 실려서 지금 뉴질랜드로 오고 있는데, 내일이나 도착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국내선 비행기 뿐만 아니라 크라이스트 처치에서 캠퍼밴 예약도 이미 되어 있는 상황이라 지체할 수가 없었던 우리 가족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에 빠졌습니다. 내일까지 오클랜드에서 기다릴 수는 없는 상황이라 수화물을 우리 일정을 고려해 퀸즈타운 공항으로 보내달라고 얘기한 후 국내선을 타고 크라이스트 처치 공항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예약했던 국내선 항공기는 이미 출발한지 오래였습니다. 국내선 터미널에 도착해 사정을 얘기하니 다행히 자신들의 책임으로 수화물이 제때 도착하지 않았으니 무료로 다음 비행기의 항공권을 발권해주겠다고 했습니다. 참 다행이네~~ 저는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안심한 우리 가족은 샌드위치와 음료수를 먹으며 다음 비행기 시간까지 기다렸습니다.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오클랜드 공항에 도착한 후 캠퍼밴을 예약한 현지 여행사로 이동했습니다. 여행사 주차장에서 예약한 6인용 캠퍼밴을 둘러봤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더 커서 운전하기에 좀 부담이 될 것 같았습니다. 사고에 대비해 보험상품을 충분하게 가입해둔 것이 위안이 됐습니다. 그래도 자동차 안에서 식탁과 침대도 조립해 사용할 수 있고, 화장실과 조리용 인덕션까지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신나기도 했습니다.

출발하기 전에 일단 대형마트에 가서 식재료와 필요한 생필품들을 모두 사서 출발하기로 했습니다. 마트에 갔더니 기대했던대로 국내보다 육류가 저렴해서 양고기와 쇠고기, 닭고기 등 다양한 종류의 육류와 뉴질랜드에서 많이 먹는 다소 생소한 채소, 과자 등 간식과 음료 등 일주일치 식재료를 이것저것 잔뜩 샀습니다. 뉴질랜드가 우리나라보다 국민소득이 높은 편인데도 마트에서 판매하는 상품들의 가격은 오히려 우리나라보다 저렴해보였습니다. 든든하게 장을 본 후 크라이스트처치를 출발해 첫날 숙박 예정지인 테카포 호수를 향해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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