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와 위로의 오키나와 여행 2

오키나와에 도착하면 누구나 한번씩 가본다는 곳이 만좌모와 아메리칸 빌리지입니다. 만좌모는 해식 절벽에 면해 있는 넓은 들판인데, 절벽을 옆에서 잘 보면 코끼리 얼굴 모양이어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많이 찾는 곳입니다. 사실 처음 만좌모에 갔을 때는 이게 왜 유명한 관광지인가 싶을 정도로 별 것이 없다는 느낌이었는데, 주기적으로 파도가 와서 부딪치는 절벽을 내려다보고 있자니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지기도 했습니다. 투명하고 예쁜 바닷물색을 보고 기분이 좋아져서 누나와 같이 사진도 한 장 찍었습니다.

만좌모를 둘러본 후 다음으로 아메리칸 빌리지를 찾았습니다. 아메리칸 빌리지는 오키나와의 아픈 역사가 숨어 있는 곳이기도 한데,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후 일본에 주둔하게 된 미군 중 상당수가 오키나와에 머물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일본군은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미군의 진군을 막아 일본 본토를 지키기 위해 오키나와인들을 희생양으로 삼았는데, 여기에다 일본 본토와 떨어진 오키나와에 미군기지 상당수를 배치하기까지 했으니 일본 본토 국민들의 불만은 줄였을지 모르지만, 원래 일본과 다른 국가였던 류쿠 왕국의 역사를 가진 오키나와인들은 이러한 차별대우에 더욱 분노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찾은 아메리칸 빌리지는 아직 오전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만좌모를 둘러보고 오느라 다소 배가 고팠던 누나와 저는 아메리칸 빌리지의 맛집인 철판 스테이크집을 찾아갔습니다. 평소에는 사람들이 많아 대기줄이 길다고 했는데, 다행히 우리가 찾아갔을 때에는 별로 손님이 많지 않아 금방 자리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자리에 앉자 요리사가 채소와 고기를 철판 위에 놓고 기름을 부으면서 불쇼를 보여줬는데, 불 속에서도 넙적한 칼로 고기와 채소를 뒤집고 자르면서 먹음직스런 요리를 만들어냈습니다. 배가 고픈 우리는 구워진 요리를 얼른 먹었는데, 뜨거운 불로 빨리 익혀서 그런지 겉은 바싹 익었는데, 고기 속은 육즙이 충분히 남아 있어 맛이 꽤 괜찮았습니다.

식사를 마친 후 누나와 아메리칸 빌리지를 돌아다니며 구경을 했는데, 아기자기한 예쁜 공예품을 파는 곳도 있었고, 다양한 종류의 사케와 뱀술 등 제가 좋아하는 주류들을 잔뜩 갖추고 일본 전통의 느낌을 물씬 풍기는 상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아메리칸 빌리지를 한번 둘러본 후 우리는 아이스크림이 유명한 가게에 들러 콘 아이스크림을 각자 하나씩 사먹었습니다. 생각해보니 누나와 함께 길거리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걸어다녔던 것이 언제인가 싶을 정도로 오랜만이라 누나와 자랐던 어릴 적 추억이 많이 떠올라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나누게 되었습니다.

오후를 보낸 아메리칸 빌리지를 떠나 슬슬 해가 질 듯 해서 일몰을 보기 위해 바닷가로 향했습니다. 제가 머물던 숙소는 호텔체인에 속해 있어 오키나와에 같은 다른 숙소의 편의시설들도 함께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몰 명소로 유명한 해변가를 끼고 있는 다른 숙소로 이동을 했는데, 그 해변은 호텔 이용객만 이용할 수 있어서 한적하게 해가 지는 멋진 광경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해가 져서 어스름해지자 저와 누나는 오늘은 숙소 밖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습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보니 숙소 앞에 있는 마을에 손님이 붐비는 식당이 있어서 그 곳에서 저녁식사를 하기로 하고 숙소에 주차를 한 후 걸어나왔습니다. 누나와 함께 한적한 도로 옆 인도를 걸어나오면서 옛날에 제가 잘못했던 것들에 대해 사과도 하고, 어렸을 때 함께 봤던 만화영화 주제가와 어릴 적 유행했던 가요들을 함께 불렀는데, 누나와 마음이 통하는 느낌이 들어서 후련하기도 하고 행복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가려고 했던 식당에 도착했는데 그 곳은 음식도 괜찮았지만, 알고보니 앞에 설치된 무대에서 오키나와의 전통 노래와 춤 공연을 보면서 식사를 할 수 있는 독특한 곳이었습니다. 벽에 전시된 악기들과 사진들을 보니 식당 사장님 가족들은 전통 공연으로 우리 식의 무형 문화재 지정 같은 것은 받은 것 같았습니다. 맛있는 오키나와 전통 음식과 술에 뜻밖에 전통 공연까지 본 후 누나와 저는 더 기분이 좋아져서 숙소로 돌아와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나누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여행 마지막날이었던 다음날에는 짐을 챙겨 체크아웃을 한 후 오키나와에 있는 여러 성들을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키나와 중부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가츠렌 성부터 찾아갔는데, 우리가 생각한 정도로 큰 규모는 아니었지만 돌을 정교하게 쌓아서 유려한 곡선의 성벽을 만들어낸 것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첫 눈에는 그리 크지 않아 보였는데 막상 걸어올라가다보니 기온이 높아서 그런지 생각보다 땀이 나기도 했습니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땀을 식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잘 보지 못했던 성벽 한쪽 구석에 핀 붉은 꽃도 다소 차가운 회색벽과 대조되어 눈길을 끌었습니다. 성 가장 위로 올라가보니 주변 경치가 쫙 펼처져 있는 것이 시원해서 좋았습니다.

가츠렌 성 다음에는 과거 류쿠 왕국의 도성이었던 슈리성을 찾았습니다. 슈리성은 처마가 치솟고, 벽과 기둥, 기와가 모두 핏빛처럼 붉은 색으로 칠해져 있어서 인상적이었는데, 막상 안으로 들어가니 아기자기하고 예쁜 실내 인테리어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특히 일본식 정원이 곳곳에 있었는데, 차경이나 자연스러운 맛이 강한 우리 조경과 다르게 인위적인 느낌이 강하긴 하지만 절제된 매력이 있어서 그것 역시 또다른 아름다움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슈리성을 다 둘러본 후 더위를 이겨내기 위해 누나와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먹은 후 나하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누나와 공항 면세점에서 이것저것 마음에 드는 것들을 골라 샀는데, 누나가 갑자기 제게 “이렇게 마음 편하게 사고 싶은 것을 마음껏 산 것이 참 오랜만이라 고맙다.”는 말을 하면서 눈물을 찔끔 흘리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누나가 그동안 조카를 키우면서 매형과 참 알뜰하게 살았구나 하는 생각과 누나와 이번 여행을 온 것을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나와 함께 비행기를 타고 귀국한 후 인천공항에서 헤어지는데, 누나의 그렇게 밝은 얼굴을 참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아서 저도 기분이 참 좋아졌습니다. 계속 손을 흔들고 있는 누나를 뒤로 하고 집으로 가는 버스에서 저는 앞으로도 이런 기회를 또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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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관동대학교 2021 실험실 창업 FESTA

12월 중순에는 강릉에 있는 가톨릭관동대학교의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가톨릭관동대학교에서는 교육부에서 지원을 받아 학교 소속 교수님들과 대학원생들의 실험실 창업을 장려하고 있습니다. 각 학과의 특색을 살린 아이디어를 상품화까지 해서 시장성 있는 기업을 만드는 것이 이러한 실험실 창업의 목표입니다.

가톨릭관동대학교에 근무하고 있는 선배가 계신데, 제가 인공지능 로봇 관련 주제로 논문을 쓰고, 이와 관련해서 기업들과 공공기관에 자문을 해주는 것을 알고 행사에 참석해서 상담과 기업 경영과 관련한 내용을 설명해줬으면 좋겠다는 요청을 했습니다. 마침 제가 하고 있는 자문 프로젝트의 사업기간이 지난 후에 행사가 계획되어 있어 좀 여유가 있겠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행사인지 궁금하기도 해서 얼른 참석하겠다는 답장을 보냈습니다. 행사 며칠 전에는 행사 진행과 관련한 구체적인 일정이 적힌 안내문을 받았습니다.

원래는 잠실에서 행사장인 강릉 탑스텐 호텔로 왕복하는 버스가 마련되어 있었지만, 저는 다른 일정도 있어서 직접 차를 몰고 행사장으로 출발했습니다. 행사장에 도착해보니 제가 좀 서두른 편이었습니다. 다른 관계자들이 아직 참석하지 않아서 먼저 자가검진 키트로 코로나검사를 한 후 배정된 방에 짐을 풀었습니다. 아래에서 올려다 봤을 때는 바다를 면한 높은 언덕 위에 위치한 호텔이 웅장한 느낌이었는데, 호텔에서 내려다 본 바다에는 강한 바람이 몰고온 파도가 호쾌하게 밀려오고 있었습니다.

간단히 짐을 정리하고 행사장에 내려가니 참가자들끼리 서로 인사를 하는 시간이 있었고, 저녁식사를 하면서 자신이 하는 업무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다른 참가자들과 저녁식사 후 간단히 맥주를 마시고 있는데, 제가 자문을 하고 있는 자율주행자동차 법제화 프로젝트팀에서 급한 요청이 와서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프로젝트 관련해서 요청받은 사항이 많다보니 새벽까지 자료를 정리해서 보낸 후에야 잠이 들었습니다.

전날 새벽에야 잠이 들었기 때문에 다음날 조식은 간단히 먹고 행사장으로 갔습니다. 9개 정도의 팀이 흥미로운 발표를 했는데, 그 중 당장 사업화가 가능해보이는 아이템도 있어서 관심을 끌었습니다. 오전 일정이 예정보다 약간 일찍 끝나서 점심 식사를 한 후 시간이 좀 남았습니다. 저는 바람이 많이 불기는 했지만 호텔 밖으로 나와서 파도가 방파제를 향해 몰려가는 모습을 구경했습니다. 오랜만에 시원한 겨울바다를 보고 있자니 업무 스트레스가 쌓여 있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것 같았습니다.

오후에는 발표를 한 각 팀들이 법률, 회계, 특허, 재무, 무역 등 다양한 부문의 전문가들과 상담을 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특히 제가 관심을 가졌던 팀의 교수님도 상담을 요청하셔서 향후 사업화를 하는 경우 필요한 법률이나 경영 관련한 조언을 해줬습니다. 제 학부 전공이 경영이었기 때문에 기업에 자문을 할 때는 법적 측면만이 아니라 경영 측면에서 문제되는 이슈들도 고려해서 자문을 하기 때문입니다. 상담이 모두 끝난 후 향후 제가 속한 법인과 가톨릭관동대학교가 MOU를 체결해 법률자문을 하자는 계획을 공유했고, 다른 일정이 있던 저는 다른 참석자들과 헤어져 차를 몰고 행사장을 출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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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모람 주최 “법정에 출석한 인공지능” 강연

얼마 전에는 제가 출간한 책인 “법정에 출석한 인공지능”의 내용을 바탕으로 온라인 강연을 했습니다. 이전에 제 책을 출간한 출판사 주최로 강연을 한 적이 있는데, 온라인 독서 모임이라고 볼 수 있는 ‘세모람’이라는 곳에서 이메일로 연락이 와서 강연을 한번 부탁받았습니다. 저도 제 책에 대해 더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흔쾌히 강연을 수락하게 되었습니다.

세모람은 신간 저자들이 가능한 일자를 정해 강연 일정을 잡으면 해당 서적을 읽고자 하는 독자들이 먼저 책을 읽고 강연에 참석하도록 하고 있었습니다. 저자는 강연 자료를 준비해 15분에서 30분 정도 자신의 책과 관련한 미니강연을 했는데, 강연이 끝나고 강연에 참석한 독자들과 내용에 대한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습니다. 세모람에서는 강연 일정 등록 이후 강연이 끝날 때까지 여러 채널을 통해 홍보도 해줬습니다.

강연 이후에는 강연 내용을 영상으로 촬영해 해당 영상을 온라인에서 시청할 수 있도록 업로드하기도 했습니다. 여러모로 손이 많이 가고, 시간도 많이 소요되는 작업일텐데 이런 일들을 무료로 진행하고 있다니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로서도 제가 쓴 학위논문을 바탕으로 책을 출판하고, 책 내용을 온라인으로 강연해서 그런 강연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가는 경험까지 했으니 인공지능 로봇이란 주제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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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와 위로의 오키나와 여행 1

제게는 누나가 1명 있습니다. 4살 정도 나이 차이가 있는데 어렸을 때는 제가 잘 따라다니면서 고무줄 놀이도 같이 하고, 누나가 친구 집에 가면 저도 잘 쫓아다녔다고 합니다. 제가 점점 나이가 들면서 누나에게 지기 싫어하는 마음이 생겨 수시로 투닥거리기도 했는데, 누나가 대학교에 입학하고, 제가 고등학교에 다닐 즈음부터는 누나와 침대에 누워 밤새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는 친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친해진 것은 서로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서이고, 제가 중학교에 다니던 사춘기 시절에는 누나와 끝없이 다투곤 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제가 중2이고, 누나가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 저와 누나가 동남아시아 여행을 함께 갔을 때였습니다. 원래 그 여행은 아버지가 회사에서 해외여행 부부동반권을 받으신 것인데, 부모님은 모두 동남아시아에 다녀오셨었기 때문에 누나와 제가 대신 가게 된 것이었습니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도 샌다고 생각이 많은 사춘기였던 저는 여행 내내 누나와 끊임없이 신경전을 벌이면서 다투었고, 누나는 그렇지 않아도 낯선 외국에서 저와 다른 여행객들의 눈치까지 보느라 참 고생이 많았습니다.

나이가 더 들어 생각해보니 그때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과, 누나에게 참 미안하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조카가 사춘기를 맞으면서 저희 누나는 저를 닮은 제 조카와 다시 부딪히기 시작했고, 너무나 스트레스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 누나를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든 저는 누나에게 예전에 함께 여행을 갔을 때 저 때문에 고생했던 것에 대해 사과도 하고, 누나의 답답한 마음도 풀어줄 겸 오키나와 여행을 제안했습니다. 물론 여행준비와 경비는 모두 제가 마련하는 조건이었습니다.

누나는 처음에는 말썽꾸러기 아들을 두고 며칠 동안 해외여행을 가는 것을 별로 내켜하지 않았지만, 마침내 한번 바람을 쐬고 오면 가슴에 맺힌 것이 훨씬 풀릴 것이라는 제 말에 넘어갔습니다. 그렇게 저와 누나의 화해를 위한 여행이자, 지친 누나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한 오키나와 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오키나와는 19세기 일본 본토로 병합되었는데, 이전에는 류쿠 왕국이란 독립국의 지위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오키나와는 고유의 언어와 문화를 갖고 있어 독특한 분위기가 있고, 온천도 있어서 겨울철에 건강을 돌보기 위한 여행을 위해서도 좋은 곳이었습니다. 제가 누나에게 제안한 힐링여행을 위해서도 최적의 장소였습니다. 사실 일본에는 군 제대 후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갈 때 잠시 경유했었는데, 이후 사법시험에 합격해서 다시 가려고 생각하던 중에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해서 방사능 우려 때문에 일본에 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오키나와는 거리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 방사능 영향이 별로 없는 것 같아 여행을 가기로 한 겁니다.

출국하는 날은 평창 올림픽을 며칠 남기지 않은 날이어서 인천국제공항에는 해외에서 찾아오는 여행객들과 선수들을 반기는 평창 올림픽 마스코트 수호랑과 반다비가 홍보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평소 귀여운 마스코트를 좋아했기 때문에 얼른 수호랑 옆에 가서 포즈를 취한 후 함께 사진 한 장을 남겼습니다. 인천공항 제2터미널은 처음 이용해봤는데, 새로 개장해서 그런지 시설도 깨끗하고 이용객도 적은 편이어서 쾌적한 느낌이었습니다. 곳곳에 휴식공간과 편의시설들이 갖추어져 있는 것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수속을 거쳐 비행기를 타고 드디어 오키나와에 도착했습니다. 저와 누나는 오키나와 나하 공항에서 내려 바로 예약해뒀던 렌트카 업체로 갔습니다. 그 곳에는 제가 예약한 토요타 하이브리드카인 아쿠아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프리우스의 소형 모델이라고 보면 되는데, 처음 하이브리드를 타보니 생각했던 것보다도 연비가 엄청 좋고, 소음도 매우 작아서 깜짝 놀랐습니다. 특히 배터리에 충전된 전기로 주행하는 동안에는 마치 놀이공원에서 범퍼카를 타는 것 같이 소음과 진동이 없는 부드러운 정숙성이 좋았습니다.

차를 몰고 도착한 숙소는 아타 테라스 클럽 타워즈라는 곳이었는데, 오키나와에서는 유명한 테라스 호텔 중 하나로 골프장에 붙어 있는 리조트였습니다. 부에나 테라스 리조트가 더 규모가 크긴 하지만 아타 테라스가 조용하면서 시설도 깔끔하다고 해서 저는 이 곳을 택했습니다. 아타 테라스 클럽 숙박객은 부에나 테라스 리조트도 이용할 수 있어서 나중에 사우나를 하러 가봤더니 역시 숙박객이 적어 한적한 아타 테라스가 저와 누나의 취향에는 맞았습니다.

도착한 첫 날은 체크인이 좀 늦어서 숙소에 있는 식당에서 식사를 한 후 일찍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는 누나와 느긋하게 일어나서 조식을 먹었는데, 서양식과 일본 전통식 중 서양식 메뉴를 먼저 먹어 봤습니다. 서양식 조식은 사방이 트여 있는 리셉션 하우스 1층에서 먹었는데, 겨울철인데도 바람이 별로 차지 않고 선선해서 역시 남쪽 섬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식사를 하고 옆에 있는 풀장과 바다를 보며 사진을 찍고 있는데, 지켜보던 종업원이 저와 누나의 사진을 한장 찍어주겠다고 하여 호텔 풀장과 바다를 배경으로 누나와 사진도 한장 남겼습니다.

식사를 한 후 우리는 차를 몰아 추라우미 수족관을 찾았습니다. 추라우미 수족관은 일본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데, 한때 아시아에서 가장 컸다고 써있는 안내문을 보니 우리와 비슷한 면이 느껴져서 살짝 웃음이 나기도 했습니다. 저는 추라우미 수족관의 마스코트가 고래상어이기도 하고, 특히 고래상어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고 하여 흥미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본 수족관에 들어가기 전에 옆에 있는 작은 수족관에서는 듀공과 매너티도 볼 수 있었습니다. 옛 사람들이 인어로 착각했다는 듀공은 알고 있었지만, 매너티라는 듀공의 사촌 같은 아이들도 함께 있어 신기했습니다. 그 옆에서는 바다거북 산란장도 있었는데, 바다거북이 모래밭에서 산란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다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습니다.

이어서 들어간 대형 수족관에서는 가오리와 열대어들, 그리고 음악과 함께 등장한 고래상어 등 오랫만에 다양한 수중생물들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귀상어도 보였는데 머리가 망치처럼 생긴 것이 신기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관람객들의 시선을 확 끌어당긴 것은 고래상어였습니다. 몸집 자체가 다른 물고기들에 비해 압도적인데다가 유영하는 모습이 힘차면서도 여유가 있어서, 보고 있으면 묘하게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었습니다. 더구나 고래상어를 가만히 보고 있자니 고래상어 배에 빨판상어가 붙어 다니는 것도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추라우미 수족관을 둘러본 후에는 더 북쪽으로 이동해서 벚꽃이 예쁘게 핀다는 공원을 찾아갔습니다. 오키나와가 남쪽이라고 해도 아직 벚꽃이 많이 필 계절은 아니라서 일단 벚꽃을 볼 수 있다는 곳을 찾아간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실망스럽게도 벚꽃으로 유명하다는 공원에는 벚꽃이 많이 피지는 않았고, 한쪽 구석에서 벚꽃 사탕만 팔고 있었습니다. ㅎㅎ 그래도 공원에 몇몇 나무들에는 예쁜 벚꽃 몽우리들이 달려 있고, 여기저기 의자도 많이 있어서 우리는 주차를 한 후 공원을 걷다가 벤치에 앉아서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나눌 수 있었습니다.

아직은 좀 쌀쌀한 날씨였는지, 공원에서 얘기를 하다 피곤해진 우리는 숙소로 돌아와 라운지에서 티타임을 즐겼습니다. 티타임에는 차와 간단한 와인 등 주류, 케익이나 치즈 등이 제공되었는데, 누나와 유쾌하게 술잔을 기울이면서 해가 지는 것을 보고 있으니 누나도 저도 쌓였던 스트레스가 많이 풀리는 것 같았습니다. 술을 한잔 하고 나니 급 피로가 몰려와서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각자 욕조에서 피로를 풀고 잠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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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방변호사회 중국소위원회 박승찬 교수님 강의

며칠 전에는 서울지방변호사회 중국소위원회 회의가 있었습니다. 저는 올해부터 2년 동안 중국소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데, 아마 다른 위원분들이 제가 이전 위원회 4년 동안 간사를 맡았던 것 때문에 회무에 대해 더 잘 안다고 생각해서 저를 선출해주신 것 같습니다. 이번 임기에는 예전 중국소위원회 위원분들 중 대다수가 교체된 탓에 업무의 연속성을 위해 제가 위원장을 맡은 부분도 있습니다.

예전 중국소위원회 시절에는 비록 일본소위원회보다는 못하지만 나머지 여러 소위원회들보다는 더욱 활발하게 사업도 하고, 인적 친밀감도 깊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임기는 시작부터 코로나가 심각한 상황이어서 제대로 된 오프라인 회의도 어렵고, 회의가 끝난 후 함께 식사를 하면서 서로의 속마음을 털어놓는 시간도 갖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인지 회의 시간에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거나, 활발한 토론이 좀 부족한 느낌이었습니다.

이런 분위기를 깨기 위해 저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기만을 기다렸는데, 마침 이번 회의 전에 이른바 ‘위드 코로나’ 정책이 시행되면서 다행히 이번 회의는 오프라인으로 진행한 후 위원분들과 식사도 함께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회의 안건을 논의하기 전에 중국경영연구소의 소장을 맡고 계신 용인대 중국어과 박승찬 교수님을 모시고 현재 이슈인 미중패권전쟁과 관련한 강의를 듣게 되었습니다.

제가 박승찬 교수님을 처음 뵌 것은 고등학교 친구가 정기적으로 진행되는 중국 관련 강의가 있으니 한번 참석해보지 않겠냐고 해서 강의에 갔을 때였습니다. 알고보니 박승찬 교수님은 제 친구가 칭화대에서 유학할 때 대학원 지도교수셨는데,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계속 인연이 이어졌던 것이었습니다. 그때 인사를 드린 후 제가 서울회에서 중국 관련 업무를 진행하는데 도움을 받기도 하고, 중국대사관 행사에 참가했다가 우연히 마주쳐 안부를 묻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종종 연락이 됐는데, 이번에 제가 중국소위 위원장을 맡으면서 박승찬 교수님께 중국 관련 규제와 국제정세에 대한 강의를 부탁드린 것이었습니다. 박승찬 교수님은 예상대로 강의를 충실하게 준비해주셨고, 마침 중국 상해에 계셨던지라 비록 줌을 통한 온라인 강의였지만 중국 현지의 분위기도 포함해 흥미진진한 강의를 진행하셨습니다. 평소 중국 관련 책도 쓰시고, TV에도 자주 출연하셔서 인터뷰나 강연를 하신 내공 덕인지 위원분들이 모두 빠져드는 강의가 되었습니다.

강의 내용은 현 시진핑 주석의 3기 연임, 미중패권전쟁의 연혁과 구도, 향후 미래 전망이었는데, 미국과 중국이라는 G2 사이에 끼어 있는 우리 입장에서 생각할 거리를 참 많이 던져주셨던 것 같습니다. 시대적 전환기인 현재 우리 앞에는 비단 법적인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정치, 경제적으로 많은 위기와 기회가 놓여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시점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인지 고민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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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의 관점에서 바라본 이주민의 권리’ 공동학술대회

지난 주말에는 대한변협 난민이주외국인특별위원회, 법원 국제인권법연구회 및 이주인권사례연구모임이 공동으로 이주민의 권리와 관련한 학술대회를 개최했습니다. 이번 공동학술대회의 준비 업무를 담당한 것은 아니었지만, 제가 대한변협 난민이주외국인특위에서 부위원장을 맡고 있어 이주구금과 절차적 권리의 보장이란 주제로 열린 1세션의 사회를 보게 되었습니다.

세션 1에서 발표를 맡으셨던 최계영 교수님과는 이미 구면이었습니다. 몇년 전 난민법 개정 방향 관련 심포지엄에서 제가 사회를 맡았을 때 토론자로 참석하신 적이 있었는데, 나중에 대학원에서 학위 논문을 쓸 당시 제 논문 주제에 대해 흥미가 있다고 하셔서 제 학위 논문을 드리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난민이주외국인특위에서 하는 다른 난민 소송 지원 사업 관련하여 연락을 드린 적도 있어서 학술대회 관련 내용도 더 편하게 의견을 교환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발표에서는 최근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화성 외국인보호소의 이른바 ‘새우꺾기’ 가혹행위 관련 시사적인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발표자나 토론자들이 모두 열정적으로 임해주셨고, 다른 참여자 중에서도 외국인 보호소의 보호장비 사용이나, 보호의 기준에 대한 질문이 나오는 등 열띤 토론이 이루어졌습니다. 오후에도 다른 주제들로 발표와 토론이 이어졌는데, 저는 다른 일정이 있어 계속 참여하지는 못 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이주외국인은 아직까지도 소수지만 점점 그 수가 늘고 있습니다. 이제 전체 인구의 5%를 넘어섰고, 앞으로도 계속 증가할 것으로 보여 그 법적 지위와 관련한 제도 및 정책에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도 현재 외국에 나가면 이주민이고, 우리 조상들 역시 이주민이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다른 사람의 권리를 지켜주는 것이 바로 우리의 권리를 지키는 길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는 학술대회였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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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뉴질랜드 가족여행 4

테 아나우에서 송어 얼굴도 보지 못하고 철수한 다음날 원래 우리 가족은 뉴질랜드 남섬 여행의 백미인 밀포드 사운드로 출발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 식사 준비를 하려고 할때 여행 첫날밤 창문을 제대로 닫지 못하고 잠이 드는 바람에 감기 기운이 있으셨던 아버지가 결국 앓아 눕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일단 아버지의 건강 상태를 보니 장시간 이동은 어려워 보였고, 하는 수 없이 테 아나우에서 하루 더 머물기로 했습니다.

아버지의 몸상태가 좋지 않아서 병원에 가자고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고 아버지가 극구 거부를 하시는 바람에 일단 캠핑장에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습니다. 계속 캠퍼밴에 있는 것은 별로 회복에 좋지 않을 것 같아 캠핑장에 있는 시설물들을 살펴보니 마침 노천 온천이 있었습니다. 야외에 작은 오두막 같은 곳이 있고, 그 안에 마련되어 있는 뜨거운 물이 담긴 통 속에 가족 4명이 들어가 땀을 흘리니 감기 기운이 좀 사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통을 나와 야외 샤워장에서 샤워까지 하고 나니 마치 바닷가로 휴가를 온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몸을 말린 후 조카와 커다란 체스판으로 체스게임을 하기도 했습니다.

아버지도 약간 회복되신 듯 해서 저와 매형은 캠핑장에서 멀리 가지는 못하고, 주변의 호숫가와 상점들을 돌아보면서 며칠 동안 계속 운전을 해서 달려오느라 쌓였던 피로를 어느 정도 풀 기회를 가졌습니다. 맑은 호숫가를 여유있게 걸으면서 매형과 그동안 못했던 얘기를 많이 나눌 수 있었던 것도 좋은 추억이 되었습니다.

테 아나우에서의 둘째날도 그렇게 흘러가고, 저녁에는 근처 식당에서 식사를 한 후 다음날 일찍 밀포드 사운드로 출발하기 위해 서둘러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서둘러 침대에서 일어나려는 저에게 먼저 일어난 매형이 조용히 말을 했습니다. 지금 밖에 폭우가 쏟아지고 있다고… 그때 든 생각은 사실 ‘완전 망했다’였습니다. 원래 테 아나우에서 밀포드 사운드까지 가는 길은 자연 경관이 좋기로 유명한 뉴질랜드에서도 손꼽히는 아름다운 드라이브길이어서 잔뜩 기대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더구나 비가 많이 오면 밀포드 사운드에서 유람선이 운항을 하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캠퍼밴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니 비바람이 몰아치며 말 그대로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비가 퍼붓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 광경을 보고 망연자실해 있는데 매형이 오늘 일정을 어떻게 할지 의논을 하자고 했습니다.

저는 생각을 해본 후 여기까지 와서 밀포드 사운드를 안 갈 수는 없고, 일단 밀포드 사운드로 가는 사이 비가 그칠 수도 있으니 원래 일정대로 가자고 했습니다. 매형은 비가 많이 오긴 하지만 조심해서 운전하면 문제는 없을 것 같다면서 그렇다면 일단 밀포드 사운드로 가자고 했습니다. 그렇게 결정을 한 후 아침을 간단히 먹은 우리 가족은 멋진 풍경은 고사하고, 쏟아지는 비로 인해 속도를 줄여가며 천천히 밀포드 사운드로 출발했습니다. 밀포드 사운드로 가는 길은 좁은 산속의 꼬불꼬불한 도로였는데, 원래 예상했던 1시간보다 더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또, 비가 너무 많이 내려 창문으로도 그 유명한 멋진 풍경을 보기 힘들 지경이었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꾸역꾸역 비를 뚫고 사고 없이 밀포드 사운드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막상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제가 차에서 내려 유람선 티켓을 구입하려고 하니, 티켓을 파는 직원은 비가 많이 와서 유람선이 뜰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데 티켓을 구입할 거냐고 물었습니다. 하늘을 보니, 비가 계속 내리고는 있는데, 빗줄기가 점점 가늘어지고 있어 좀 기다리면 운항을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단 차로 돌아와 어떻게 할지 의논을 한 결과, 간단히 점심식사를 한 후 상황을 본 후 유람선을 타기로 했습니다. 우리 가족들은 비바람을 뚫고 오느라 다들 떨고 있었기 때문에 식당에서 따뜻한 음료와 샌드위치를 산 후 나눠먹으면서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식사를 마칠 즈음 서서히 하늘 한쪽이 밝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가족들은 유람선을 탈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를 갖고, 샌드플라이 퇴치제를 뿌리는 것도 잊어버리고 서둘러 유람선을 타기 위해 선착장으로 줄달음질치기 시작했습니다. 선착장이 생각보다 멀어서 간신히 시간에 맞춰 여객터미널에 도착하니 유람선에 탑승하기 위한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습니다. 줄을 서면서도 진짜 탈 수 있는지 걱정이 됐지만, 그래도 참고 기다리고 있자니 드디어 탑승 안내 방송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유람선에 타자 마침내 유람선이 피오르드를 향해 출발~~

막상 유람선에 타고 보니 구름은 가득했지만 이제는 비가 별로 내리지 않았습니다. 저 멀리 산 위에 걸쳐 있는 것이 안개인지, 구름인지 구분하기 어려웠지만 비가 많이 온 탓인지 절벽에는 새로 생긴 폭포들도 많았습니다. 마침내 여행의 최종 목적지인 밀포드 사운드의 유람선에 탔다는 생각에 제 얼굴에도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유람선이 피오르드를 헤치고 폭포와 멋진 풍경들을 지나가다보니 어느 새 비는 그치고, 하늘을 맑게 개기 시작했습니다. 맑은 하늘 아래 쏟아진 비로 인해 일시적으로 생긴 폭포들이 절벽을 따라 물을 떨어뜨리는 것을 보고 있으니 밀포드 사운드까지 오는 길에 졸였던 마음이 다소 안정되는 느낌이었습니다.

밀포드 사운드는 바다와 접해 있는 피오르드로 물개들과 돌고래를 볼 수 있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물개는 보통 동물원이나 수족관에서만 봤는데 바위 위에서 쉬고 있는 물개들을 보니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물개들은 유람선에 탄 사람들이 지켜보는 것에 익숙해진 듯, 널찍한 바위 위에서 편안하게 몸을 말리고 있었습니다.

우리를 개의치 않고 쉬고 있는 물개들을 뒤로 하고 유람선은 다시 또다른 폭포로 다가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구름 사이로 푸른 하늘이 모습을 드러내어 하늘과 녹색의 피오르드 절벽, 떨어지는 하얀 물방물이 한눈에 들어오는 절경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예전에 노르웨이에서 피오르드들을 보기는 했지만, 이렇게 절벽에서 폭포수가 떨어지는 모습은 기억 속 피오르드의 모습과는 다른 압도적인 기분이 들게 했습니다.

밀포드 사운드는 돌고래로도 유명한데, 유람선을 타고 돌아보는 동안 돌고래가 나타나지 않아 좀 실망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런 저의 마음을 알았는지 방향을 돌려 돌아오는 길에 유람선 뱃머리 앞 물속에 무언가 작은 그림자 같은 것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니 갑자기 위로 펄쩍 뛰어올랐습니다. 마침내 등장한 돌고래 3마리가 유람선을 따라 헤엄을 치기 시작했는데, 그 속도가 엄청나게 빨랐습니다.

바다에서 신나게 헤엄치는 돌고래를 본 것도 신났지만, 이렇게 우리가 탄 배를 따라오는 것을 보니 함께 논다는 느낌이 들어 더 신기했습니다. 유람선은 이제 처음 출발한 선착장을 향해 빠르게 나아갔습니다. 처음 출발할 때와 달리 파랗게 개인 하늘에 산등성이를 감싸며 넘어가는 하얀 구름, 교과서에서 배웠던 저 멀리 보이는 U자형 협곡까지… 비록 가는 길에는 별별 어려움들이 많았지만, 밀포드 사운드는 꼭 한번 가볼 만한 멋진 곳이었습니다.

밀포드 사운드에서 다시 테 아나우로 돌아오는 길에는 이미 비가 그쳐 가는 길에 보지 못해 아쉬웠던 멋진 경치를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하늘이 맑아지니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고, 운전 역시 더 편해졌습니다. 원래 계획보다 하루가 늦어져 비록 비행기 시간에 맞춰 크라이스트 처치로 돌아가는 길을 재촉해야 하긴 했지만, 소형버스 크기인 캠퍼밴을 운전해보는 좀 특별한 경험이 있었던 여행이었습니다. 다만 시간이 모자라 세계 최초로 번지점프를 시작했던 다리에서 번지점프를 해보지 못한 것은 아직도 아쉽습니다.

여행 막바지에 와인잔 하나가 깨져 새로 구입해서 보충해둬야 하는 줄 알고 여러 마트를 뒤졌는데도 찾을 수 없어 반납할 때 사실대로 말했더니 직원은 보험이 있다고 신경도 쓰지 않은 일, 매형이 마지막에 크라이스트 처치 주유소에서 연료를 채워넣어 반납하려고 좌회전을 하다가 역주행하는 반대차선으로 들어섰다가 기절할 뻔한 일 등 이런저런 사건 사고가 계속된 여행답게 마지막까지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추억거리가 계속 쌓여 갔습니다. 다행히 큰 사고는 없이 캠퍼밴을 반납하면서 뉴질랜드 남섬을 종회무진 달렸던 캠퍼밴과 사진 한장을 남기고 귀국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우리 가족에게는 많은 추억거리들로 가득한 평생 잊지 못할 여행이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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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 출석한 인공지능> 책 출간 기념 강연

지난 8월에 <법정에 출석한 인공지능>이란 제목의 책을 한 권 출간했는데, 며칠 전 책 출간 기념으로 강연을 했습니다. 책을 읽었던 독자나, 아직 책을 읽지 않은 청중들에게 책 내용을 1시간 정도로 간략시 설명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또한 온라인으로 강연을 하다보니 청중들의 반응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다른 오프라인 강의를 했을 때보다 어려운 점이었습니다.

출판사 담당자가 이전에 자신들이 출판하는 도서의 독자가 주로 20, 30대의 여성들이라고 설명했었는데, 이번에 강연에 참가 신청한 사람들도 대다수가 여성들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미리 PPT로 강연자료까지 만들었는데 신청자가 없으면 어떻게 하나 약간 걱정도 됐습니다. 더구나 온라인이라 신청자가 별로 없을 줄 알았는데, 한차례 연기를 한 끝에 시작된 강연에 그래도 신청자들이 좀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예정된 강연은 1시간 정도였는데, 준비한 내용을 다 말하고 나니 1시간이 약간 지나 있었습니다. 질문 시간이 되어 혹시 청중들에게 제 강연 내용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거나, 청중들이 지루했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청중들이 강연 내용에 대해 여러가지 질문들을 하는 것을 보니 다행히 내용을 잘 이해한 것 같아 뿌듯했습니다.

학교나 회사, 공공기관에서 법적 주제로 강의를 한 적은 많이 있는데, 제가 쓴 책으로 강연을 한 것은 처음이라 솔직히 약간 긴장이 되기도 했었습니다. 미리 책을 읽고 온 청중들의 경우 현장에서 처음 내용을 들은 경우와 달리 보다 깊이 있는 질문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학위를 받은 논문의 내용을 기초로 실무적인 내용과 다른 사례들을 보완해 집필한 책이었기 때문에 이런 내용에 관심을 갖고 강연에 참여할 정도면 저보다도 더 실력이 있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질의응답 시간에 강연 내용이 재미있었다는 반응도 있었고, 책에서 설명한 법적 책임을 인공지능 로봇에게 부담하게 하는 법이나 제도가 실무에서도 실제 적용되고 있냐는 질문도 있었습니다. 제가 이 책을 쓴 것은 아직 그런 논의가 실무적으로 이루어질만큼 인공지능 로봇 기술이 발달한 것은 아니지만, 기술의 발달 속도는 법제도의 변화 속도보다 훨씬 빠르기 때문에 미리 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는 것을 설명하고 강연을 마무리했습니다. 만일 오프라인 강의였으면 강연을 들은 청중들에게 책에 서명도 해줄 수 있었을텐데 그런 부분이 좀 아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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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서로 다른 가치를 갖는가?

코로나가 휩쓰는 시대, 외부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이 줄다 보니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전보다 늘었습니다. 그렇게 집에 머물면서 넷플릭스 등 OTT를 통해 영화나 드라마 등 프로그램들을 많이 보게 되었는데, 최근 본 ‘다운사이징’이란 영화의 한 장면이 저에게 고민거리를 안겨주었습니다.

영화 ‘다운사이징’은 세포 축소기술을 통해 살아있는 생명체의 질량과 크기를 축소하는 것인데, 영화적 설정이긴 하지만 그런 축소에도 불구하고 세포의 조직이나 전체 세포가 구성하는 개체의 연속성은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쉽게 말하면 인간을 그대로 크기만 작게 줄일 수 있다는 겁니다.

이 기술을 개발한 과학자는 지구의 자원을 마구 소비하고 있는 인간으로 인해 지구에 한계점이 오고 있고, 이를 막기 위해서는 인간의 크기를 줄여 인간이 소비하는 자원을 줄여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현실적인 실현 가능성을 떠나 기후 위기를 직접 겪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그 취지는 백번 옳다고 보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제게 가장 큰 인상을 남긴 장면은 다운사이징을 하기로 결심한 주인공의 결정을 축하하는 술자리에서 벌어졌습니다. 주인공 부부가 친구 부부와 술집에서 술 한잔을 하면서 다운사이징을 하기로 결정한 계기나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데 옆자리에서 혼자 술을 마시던 사람 취색 한 명이 시비를 걸면서 질문을 합니다.

다운사이징을 한 사람들에게도 보통 사람과 똑같은 선거권을 주는 것이 맞냐는 것입니다. 소득세 등 세금도 내지 않고, 소비도 거의 하지 않아 경제에 도움을 주는 것도 아니니 일반인의 1/8의 권리만 갖는 것이 옳지 않냐는 주장입니다. 물론 주인공 부부의 친구가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을 제지하지만 그 취객의 주장은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입니다.

그런 주장의 전체적인 취지는 사람은 사회에 기여한 만큼 권리를 갖는 것이 옳다는 것인데, 생각해보면 그런 주장은 아주 오래된 것입니다. 재산을 가진 사람만 선거권을 가지는 것이 맞다, 남성만이 직업을 가질 수 있다, 더 나아가 양반과 평민만 재산을 가질 수 있다 등 인간의 가치가 모두 같은가 하는 오랜 논쟁의 연장선상에 있는 생각입니다.

최근 외국인에 대해서도 비슷한 주장들이 나옵니다. 대한민국 사회에 기여를 하지 않은 외국인들에게는 사회보장제도의 혜택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입니다. 세금이나 사회보험료를 제대로 내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런 주장들은 잘못된 사실관계에 근거한 경우도 많고, 국가정책적으로 부당한 경우도 있지만, 그 주장의 뿌리는 이처럼 긴 역사적 기원을 공유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아갈 미래가 이렇게 단순하게 인간의 가치를 현재의 경제적 능력으로 재는 구분과 차별의 조각난 공동체라면 좀 서글퍼집니다. “한 국가의 위대함과 도덕적 진보는 해당 국가의 동물이 받는 대우로 가늠할 수 있다.”고 했던 간디의 말이 머릿속에서 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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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뉴질랜드 가족여행 3

캠핑 첫날의 교훈으로 서둘러 도착한 뉴질랜드 퀸즈타운의 홀리데이 파크는 캠퍼밴에 전기와 수도를 공급받을 수 있고, 별도로 마련된 편의시설로 깨끗한 화장실과 주방까지도 이용할 수 있는 멋진 캠핑장이었습니다. 물론, 가격이 좀 비싸긴 했지만 아버지가 몸이 안 좋으셔서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할 수 있는 시설이 좋은 곳을 고른 것이라 만족스러웠습니다.

뉴질랜드에서의 두번째 밤을 보낸 캠핑장

루지를 타러 나가기 전에 미리 전기선과 수도호스를 연결해 충전도 하고 물탱크도 완전히 채워뒀던지라 저녁식사를 마친 후 정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는 이제 어제보다 몸이 좀 회복되셨는지 설거지는 자신이 하시겠다면서 설거지 거리들을 가지고 제 조카와 함께 캠핑장에 있는 시설로 가셨습니다. 저와 매형은 식탁을 정리하고, 잘 준비를 위해 침대를 꺼내면서 침구 정리를 하고 있었는데, 한 20분 정도 기다려도 아버지가 오시지 않아 제가 주방이 있는 건물로 갔더니 아버지가 여전히 설거지를 하지 못하고 한쪽에 앉아 계셨습니다. 알고보니 일본에서 온 듯한 다른 팀이 설거지를 30분 가까이 하고 있어서 자리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살펴보니 아무래도 시간이 더 걸릴 것 같아서, 아버지께 그냥 캠퍼밴에서 하자고 말하고 돌아왔습니다. 아버지는 식기들을 챙겨들고 돌아와 캠퍼밴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원래 설거지를 잘 하지 않으셨는데, 연세가 드시고 어머니와 시골로 내려가 정착해 사시면서 적응을 위해 설거지를 하시게 됐습니다. 집안 청소를 할 때도 깔끔하게 하는 것을 좋아하셨는데, 설거지도 깨끗하게, 식기에 고춧가로 하나 없이 깔끔하게 하시곤 합니다. 설거지 거리가 많지는 않았지만 아버지는 오랜시간 공들여 설거지를 마치셨습니다.

아버지의 설거지가 끝나자 다들 양치질과 간단한 세면을 한 후 잠자리에 들려고 불을 끄려는 찰나, 제 눈에 화장실 문 앞에 물기가 좀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저는 누군가 세면을 하다가 물이 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화장지를 뜯어 물기를 닦은 후 화장실 변기에 버릴 생각으로 화장실 문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이럴 수가!!! 화장실 안에 오수가 가득 차서 찰랑찰랑~~거리면서 화장실 밖으로 조금씩 넘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화들짝 놀란 저는 매형에게 가서 큰일 났다면서 화장실에 오수가 넘친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저와 매형은 약간 짐작이 가는 바가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설거지를 하시면서 물을 많이 쓰셨는데, 원래는 싱크대의 물이 바로 바로 배출되어야 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이상하게 꿀럭꿀럭 하는 소리가 나면서 물이 빠져나가길래 저도, 매형도 이상하다는 생각에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었기 때문입니다. 알고 보니 그 소리는 싱크대를 통해 배출된 오수가 오수탱크 용량을 넘어 화장실 바닥의 배출구를 통해 다시 나오다보니 공기가 통하는 소리였던 것입니다. 높이로 봤을 때 싱크대보다 화장실 바닥이 낮으니 압력으로 인해 화장실 바닥을 통해 오수가 넘쳤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원래는 깨끗한 물탱크와 오수 탱크의 용량이 같은데, 우리가 캠핑장에 주차를 해놓은 후 물탱크를 가득 채워놨더니 오수탱크의 용량을 초과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를 어쩐다… 일단 진정하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시간이 갈수록 싱크대의 오수는 압력 때문에 화장실 바닥을 통해 점점 더 배출될 것이 확실하고, 그런 상태로 캠퍼밴을 이동시켜 오수 배출구를 통해 오수를 버리자니 화장실 안에서 출렁거리던 오수가 밖으로 마구 넘칠 것 같았습니다. 결국 생각해낸 방법은 화장실 변기에 넘친 오수를 퍼서 부은 후 변기를 통해 버려지는 오수를 모아두는 통을 끌고가 오수를 버린 후 더 이상 화장실 바닥으로 오수가 배출되지 않으면 캠퍼밴을 이동시켜 오수 배출구로 오수를 배출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다행히 화장실에 물을 뜰만한 바가지 같은 것이 하나 비치되어 있어서 부지런히 오수를 퍼서 변기에 붓기 시작했습니다. 변기에 오수를 붓다 보니 생각보다 변기에서 배출되는 오수를 담는 통은 빨리 찼습니다. 결국, 물을 퍼서 변기에 붓고, 그 오수가 담긴 통을 끌고 오수를 버리는 장소에 가서 버리고, 다시 돌아와 변기에 붓고, 끌고갔다가 오고… 이걸 한 5번은 한 끝에 더 이상 화장실 바닥으로 오수가 배출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별이 쏟아져 내리는 뉴질랜드 퀸즈타운에서 달밤의 체조를 2시간 가까이 한 끝에 간신히 골치 아픈 상황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한밤 중에 캠핑장에서 이게 뭐하는 것인지…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또다른 한편 잊지 못할 우스운 추억거리도 하나 생긴 것 같습니다. ㅎㅎ

달밤의 체조를 하면서 오갔던 오수 처리장 입구

다음날 아침에 일어났더니 전날 밤 체조 덕분인지 몸이 좀 쑤셨는데, 아버지는 전날 밤 자신 때문에 저와 매형이 고생을 했다고 생각해서인지 평소같지 않게 눈치를 좀 보시는 것 같았습니다. 일단 아침식사를 하고, 아버지가 쉬실 수 있게 캠퍼밴 뒤쪽에 있는 침대를 펴놓고 누워서 가실 수 있게 조치를 한 후 전날 받은 캐리어에 있는 감기약을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이제 괜찮다면서 한사코 약을 안 드시려고 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그냥 출발을 했는데, 저도 좀 피곤하기는 했나 봅니다. 매형이 운전을 하다가 제가 교대를 했을 때 찍어준 사진을 나중에 보니 얼굴이 좀 탄데다가 초췌하기까지 했습니다.

그 다음 목적지는 테 아나우였는데, 테아나우는 뉴질랜드 남섬의 하이라이트인 밀포드 사운드로 가는 관문이었습니다. 테 아나우 자체도 호반의 도시여서 무지개 송어낚시로도 유명했기에 우리 가족은 송어를 많이 잡아 송어구이 요리를 해먹자는 생각에 들떠 있었습니다. 테 아나우에도 일찍 도착해서 얼른 호수를 바라보는 위치에 있어 경치가 좋은 테 아나우 홀리데이 파크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짐을 간단히 정리한 후에는 근처 상점에 가서 송어 낚시를 하기 위한 낚시대를 빌리고, 찌도 구입했습니다. 특히 뉴질랜드에서는 낚시를 하기 위해서는 등록도 해야 하기 때문에 낚시대를 빌려주는 상점에서 4명 모두 송어 낚시 등록증도 발부받았습니다. 송어 낚시를 할 생각에 다들 우리 가족들은 모두 신이 나서 차를 몰고 송어가 가장 잘 잡힌다는 강으로 이동했습니다. 낚시대를 챙겨 다들 강에 던지면서 어리숙한 송어가 초보 낚시꾼들의 찌를 물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4명의 어설픈 낚시꾼들이 낚시대를 드리운지도 1시간, 2시간… 시간은 잘도 흘러갔지만 역시 뉴질랜드 송어들은 생각보다 영리했습니다. 저는 주로 강바닥의 이끼를 낚아 올리거나, 어떤 때는 무언가 묵직한 것이 끌려오길래 잔뜩 기대를 하고 당겼더니 누구 것인지 알 수 없는 신발이 떡!!하니 올라오곤 했습니다. 아버지는 제 조카에게 낚시 던지는 방법을 알려주시고는 좀 피곤하셨는지 일찌감치 낚시는 접고 그늘에 앉아서 강바람을 쐬고 계셨습니다. 저와 매형, 조카는 그래도 송어 얼굴이라도 보겠다는 생각에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낚시줄을 던졌지만 결국 뉴질랜드 송어는 마트 생선코너에서나 볼 수 있었습니다.

산천어 축제에서 산천어를 잡는 것과는 역시 천지 차이였던 것 같습니다. 날이 어두워졌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낚시도구를 정리해서 다시 차를 끌고 캠핑장으로 철수했습니다. 낚시대는 빌렸던 곳에 반납하고, 주변 음식점, 상점들과 공원도 둘러봤는데, 조용하고 한적한 곳이라 마음에 들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이후 다시 캠핑장으로 돌아가 간단히 저녁식사를 한 후 다들 깊은 잠에 들었습니다. 연일 계속된 이동과 오후에 했던 낚시로 인해 모두 피곤했나 봅니다. 그렇게 뉴질랜드에서의 하루가 또 지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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