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법인과 국내법인의 합작회사 설립 자문

몇해 전 사법연수원 동기의 오빠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자신이 대표인 법인이 유럽의 법인과 조인트벤처로 한국법인을 설립하고 싶은데 도움을 받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연수원 동기는 사내변호사로 일하고 있어서 적극적으로 나서기 힘들다기에 저를 소개받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의뢰인이 함께 합작회사를 설립하려고 한 유럽의 S법인은 역사가 오래된 최고급 남성 맞춤복 기업이었습니다. 유럽을 기반으로 한 회사답게 본사는 벨기에, 공장은 영국, 디자인 연구소는 이탈리아에 있고, 경영진도 출신국가가 이탈리아, 독일 등 다양했습니다.

일단 쌍방의 이해당사자가 있는 설립계약이어서 정확히 누구를 대상으로 하여 어느 범위까지 자문을 할 것인지에 대해 확정을 했고, 그 부분이 정해진 후에는 LOI(거래의향서) 작성부터 자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한국 법인 대표님과 의논을 한 후 그 결과를 정리해서 전달하도록 했지만, 급한 경우에는 벨기에 본사의 재무이사와 직접 이메일을 통해 계약내용을 확정하기도 했습니다.

업무를 진행하면서 벨기에 상법 등 현지 관련법령도 함께 확인했는데, 우리 법령과 법적 의미를 다르게 규정하거나 상관습이 다른 경우도 있어서 특히 그런 부분에 있어서 상대법인을 이해시키는데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는 회사를 설립하는 경우 주식회사가 보다 일반적인데 벨기에에서는 오히려 유한회사가 일반적이어서 원하는 회사의 형태에서 서로 의견 일치가 어려웠습니다.

LOI가 마무리된 후 예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려서 본 계약 체결을 할 시점이 되었는데, 상대방이 기존에 체결된 LOI를 그대로 본 계약 내용으로 하자고 하여 다시 협상이 시작되었습니다. 기존 LOI 중 일부 내용은 다소 불완전하거나, 불공정한 내용이 있어서 본 계약시 논의하기로 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전체 LOI 중 일부 내용을 보완하기로 하면서 모든 설립 관련 자문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이후 설립된 S한국법인은 실제 점포를 개설하기까지 인테리어 공사와 관련해 지속적으로 문제가 발생하면서 벨기에 법인과 다시 협상을 하면서 많은 시간이 소요되긴 했지만, 다행히 잘 수습을 하여 점포를 개설하고 역동적으로 국내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저도 현재도 S한국법인 대표가 된 대표님과 계속 교류하면서 간단한 법률 상담을 하기도 하고, 멋진 인테리어를 갖춘 점포에서 대표님과 함께 지인들을 초대해 와인을 마시면서 교류회를 갖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우리도 기성복이 아닌 남성 맞춤 정장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보이니 이미 세계적인 명성을 갖춘 본사처럼 한국법인도 계속 성장하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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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변호사협회 난민법률지원변호사단

제가 이주민과 난민에 대해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14년 대한변호사협회의 난민구금 TF에 참여하게 되면서였습니다. 당시 난민을 비롯해 외국인들이 구금되어 있는 외국인보호시설의 실태에 대해 조사하고, 문제점들이 있으면 개선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기구였습니다.

당시 외국인들이 구금되어 있는(출입국관리법은 보호라고 규정하지만, 실질은 구금과 다를 바 없는) 외국인 보호시설을 조사하면서 알게 된 난민과 외국인들의 국내 체류 상황을 확인하고, 개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이후 결성된 대한변호사협회의 난민법률지원변호사단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난민법률지원변호사단 단장으로는 드물게 대형 법무법인 바른 대표변호사를 맡고 계셨던 정인진 변호사님이 취임하셨습니다. 사실 당시 많은 난민법률지원변호사단 위원들은 단장님은 이름만 걸어놓으실 것이라 생각했는데, 바쁘신 중에도 의외로 활발하게 법률지원단을 이끄셨고, 덕분에 피난처, 난센 등과 함께 난민들의 난민지위를 인정받기 위한 소송을 진행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그렇게 3년여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지원단의 위원들이 다수의 난민사건들을 담당해 소정의 성과를 내던 중 대한변호사협회의 방침이 변경되면서 결국 난민법률지원변호사단은 해산하게 되었습니다.

향후 이런 형태의 법률지원변호사단이 다시 결성되어 진정으로 박해를 피해 찾아온 난민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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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천구청 법률상담

저는 매월 첫번째, 세번째 월요일 오전에 금천구청에 가서 금천구민들을 상대로 법률상담을 합니다.

제가 금천구청에서 법률상담을 하게 된 것은 저의 어린 시절 중 가장 긴 시간을 과거 구로구였던 현재 금천구 시흥동에서 보냈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의 많은 추억들이 시흥동 무지개아파트, 럭키유치원, 문백초등학교, 안천중학교에 남아 있기에 제가 성장했던 지역사회를 위해 뭔가 기여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2013년부터 시작한 법률상담이 햇수로는 7년 정도 되었는데, 처음에는 법률상담을 하는 변호사가 2명밖에 없어서 고생을 좀 했습니다. 제가 법률상담을 시작하고 얼마 후 구청에서 홍보를 했더니 처음에는 7, 8명 내외였던 상담자가 많을 때는 15명씩 몰려오는 날들이 계속 되었습니다.

원래 금천구청 법률상담은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로 정해져있는데, 너무 상담 신청자가 많아서 때로는 점심시간에도 끝내지 못하고 1시까지 하는 경우까지 생겼습니다. 2시간 동안 15명을 상담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제가 상담시간을 오전 9시부터 시작해서 12시에 끝내는 것으로 조정하고서야 간신히 상담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2, 3년 정도 지나 금천구에 개업을 한 다른 변호사들이 추가적으로 법률상담을 맡게 되면서 다시 상담인원이 기존의 7명 정도 수준으로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상담을 받고자 하는 분들도 오랜 시간 기다려야 하는 불편을 덜게 되었고, 저도 상담하는 도중 밖에서 초조하게 저를 쳐다보고 계시는 상담자들의 눈초리를 덜 받게 되어서 마음이 좀 놓이게 됐습니다.

원래 저의 목표는 제가 시흥동에서 살았던 최소 10년 정도는 금천구청에서 상담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햇수로 7년 상담을 해왔고, 상담을 한 분들은 대략 1,500명 정도는 되는 것 같은데 주기적으로 상담을 받는 경우 가장 좋은 점은 기존의 진행상황을 상담하는 변호사가 안다는 것일 겁니다. 그래서 같은 분이 3, 4번씩 진행상황에 따라 상담을 하러 오기도 합니다.

구청에서 상담을 하시는 분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분들이나 간단한 사건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시청이나 구청, 법률구조공단의 무료 상담을 이용하시는 것이 때로는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저도 제 사무실로 상담을 받으러 오는 분들에게는 제 시간과 노동에 대한 대가로서 당연히 상담료를 받지만, 구청에서 하는 상담의 경우는 봉사의 의미로 하고 있습니다.

저와의 상담을 통해 조금이라도 마음의 짐을 덜어낼 수 있는 분들이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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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마음을 행복하게 한다.

서구 클래식 음반들

서구 클래식 음악은 어릴 적 어머니가 들려주셨던 이후 잘 듣지 않았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락음악과 헤비메탈을 들으면서 답답한 마음을 풀었고, 대학교에 입학해서는 오히려 풍물패에 들어가 우리 전통 음악인 풍물을 연주했습니다. 제가 다시 다시 서구 클래식 음악을 듣게 된 것은 사법시험을 준비할 때 계속 시험에 불합격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시험으로 스트레스가 쌓일 때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 마음이 안정되어서였습니다.

그렇게 시험 기간이 늘어나는 만큼 클래식 음악을 듣는 시간도 늘어났고, 클래식 음악을 어느 정도 듣다 보니 다양한 작곡가의 여러 장르 곡들에 관심이 생겨 관련 도서도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결국 중고로 스피커, 앰프 및 CD플레이어까지 사서 음악을 듣게 되었고, 클래식 음반을 400장 가까이 수집하게 되었습니다.

사법시험 합격 후에는 전처럼 자주 듣지 않았는데, 요새 다시 음반에 손길이 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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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한 방울의 달콤함

다양한 와인과 와인 소모품들

군대를 제대하고 3일 만에 비행기를 타고 떠난 유럽에서 만난 와인은 저에게 많은 것을 알려준 존재입니다.

그 전까지는 그냥 술은 술인 줄만 알던 저에게 술에 단지 알콜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사람의 노력과 자연의 손길이 합쳐지면 그 곳에 삶이 있기도 하고, 새로운 세상이 있기도 하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변호사가 된 후 소믈리에 자격증도 취득했지만, 역시 와인은 식품이라 너무 무겁고, 어렵게 다가갈 것이 아니라 일단 많이 마셔보는 것이 최고입니다.

단, 자기 주량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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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여행의 동반자들

여행가방들과 여행용품들

가장 왼쪽의 등산배낭은 지금보다 더 젊었을 때 짊어지고 국내외를 누비던 시절에 함께 했습니다.

이베이를 통해 캐나다에서 중고품으로 구매했는데, 신품같이 깨끗해서 좋았고, 일단 배낭을 짋어지면 무게가 별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몸에 밀착이 되어서 감탄했습니다.

최근 해외여행에 가지고 다니는 가운데 여행용 캐리어는 등산배낭을 메고 다니다보니 무리가 되어서 이제는 짐을 끌고 다녀야 되나 보다 하는 생각으로 구입했습니다.

짧은 여행시 가지고 가는 오른쪽 작은 배낭은 사법시험 준비하던 시절 책가방이었는데 이제는 짧은 여행의 동반자로 쓰고 있습니다. 튼튼하고 가벼워서 때때로 등산을 할 때도 잘 이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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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마차 식칼과 살인 미수

사법연수원생들은 보통 연수원 2년차에 검찰, 법원 및 법무법인 등에 실무수습을 위해 시보를 나가는데, 제가 서울의 한 법원에 시보를 할 당시 국선변호인으로 변호를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제가 변호인으로는 처음 맡은 사건이어서 더욱 기억이 나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사건 당시 제가 맡았던 사건의 피고인은 포장마차를 운영하면서 조리를 하던 중 술에 취한 손님이 시비를 걸자 귀가하라고 3, 4차례 계속 돌려보냈는데도 손님이 포장마차 밖에서 계속 행패를 부리자 이를 말리려고 포장마차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피고인이 포장마차에서 나올 때 조리 중이라 무의식 중에 식칼을 들고 나왔는데, 손님을 돌려보내고 돌아서서 포장마차로 돌아오던 중 손님이 오히려 피고인을 쫓아와 폭행을 당하게 됐습니다. 이에 피고인은 손님을 제지하려고 부둥켜 안는 과정에서 손님이 식칼에 복부를 찔리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피고인으로서는 매우 억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경찰은 피고인을 살인미수로 체포하고, 검사는 중상해로 기소한 후 살인의 고의까지 주장한 사건인데, 당시 사법연수생인 제게 매우 중요한 사건이 맡겨진 것이었습니다. 저는 살인미수로 긴급체포되어 구속된 피고인을 접견하고, 당시 상황에 대해 사실관계를 다시 확인했습니다. 피고인의 상황 설명을 듣고보니 피의자 신문조서 및 참고인 진술조서 내용이 서로 모순되고, 피고인이 왼손잡이여서 검사가 주장하는 공소사실과 같이 피해자의 상처부위를 찌를 수 없다는 판단을 하고 그렇게 변론을 했습니다.

다행히 제 변론이 받아들여져 피고인의 살인의 고의까지는 인정되지 않고, 피고인은 다행히 집행유예를 받아 석방되었습니다. 석방 이후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웠던 피고인이 고맙다면서 자신의 여자친구와 같이 식사를 하자고 찾아왔는데, 함께 식사를 한 후 명품 넥타이를 선물이라며 내게 건네주었습니다.

저는 고맙지만 국선변호인이라 추가적인 금전이나 금품은 받을 수 없다면서 선물은 거절하고, 앞으로 두 분이 혼인을 하신다니 축하의 의미로 내가 식사를 사겠다고 했습니다. 미안해서 계속 그럴 수는 없다고 하던 피고인이 고맙다면서 나중에 자신의 포장마차에 찾아오면 안주를 잘 대접하겠다고 해서 그러자고 했었습니다. 저는 이후 피고인이 운영하는 포장마차가 있었던 곳 주변을 지나가면 그 약속이 생각나 한번씩 찾아보곤 했는데 이상하게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로부터 2년 정도 지난 어느 날 피고인의 여자친구로부터 갑자기 전화가 왔습니다. 내용은 피고인이 죽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제가 깜짝 놀라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제가 국선변호를 맡았던 1심 이후 항소심에서는 판단이 달라져 실형을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피고인은 교도소에서 사건 당시 다쳤던 다리의 증상이 악화되고, 출소 후에도 몸이 불편해 병원 치료를 받다가 사망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여자친구와 혼인도 하지 못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전화를 끊고 한동안 멍하니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우리들의 인생도 이렇게 허무하게 끝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에 비통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고단한 삶을 살아왔던 피고인이 하늘에서라도 아무런 걱정없이 안식을 얻었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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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일상을 벗어난 자유의 공기

우리 가족들은 여행을 좋아하는 편이라 저도 어렸을 때부터 국내외를 많이 다녔습니다.

여행을 하면 견문이 넓어지기도 하고, 여행을 하면서 일상에서 받는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 곳에서는 제가 성년이 된 이후 여행을 한 곳들에 대한 기억들을 기록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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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에 대한 호기심

변호사는 전통적으로 사법작용이라는 법의 해석 및 판단과 관련된 영역에서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이런 역할을 하면서 스스로 해석의 기준이 되는 법규범에 의문이 생기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때 개별 사안이나, 법정책적 측면에서 입법의 영역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거나, 학문적인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 생기게 되므로, 이와 관련된 내용을 적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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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일들

변호사가 의뢰인과 만나서 가장 먼저 하는 것은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기 위해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상담입니다. 그 이후에야 어떻게 발생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법리적으로 해법을 고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변호사들은 공공기관에서 위촉을 받아 공적 업무를 함께 수행하기도 합니다. 언론에서 보도하는 조사위원이나 감사위원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때때로 법원이나 행정부처에서 법원의 판결이 아닌 대안적 절차(ADR)인 조정절차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데 조정위원으로서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는 변호사 협회에서 위원으로 업무를 맡기도 하고, 다양한 곳에서 강의를 하기도 합니다.

이 곳에서는 그런 업무와 관련된 내용을 적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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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철, 변호사로 의미를 남기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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