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한다는 것

지난 달에는 제 평생의 반려자와 앞으로 삶을 함께 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예전부터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평생 함께 하고 싶어지면 결혼을 하겠다고 주변에 말을 하고는 했는데, 오랜 시간 기다려서 그런 사람을 만난 덕분인 것 같습니다.

아내를 만나게 된 것도 협회의 동호회에서 만난 변호사님이 소개를 해주신 것이고, 사실 그 변호사님도 제 아내를 직접 아시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을 통해 제게 소개해주신 것이니 인연이란 것이 신기하기도 합니다.

제가 부모님과 떨어져 혼자 산지가 거의 18년 정도 되었는데, 이 정도 시간을 홀로 지내다보니 제 시간과 공간을 제가 오롯이 책임지면서, 동시에 제가 자유롭게 사용할 수도 있었습니다. 이제 아내와 저의 시공간을 같이 사용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에 부딪히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혼은 이런 어려움 ‘때문에’ 혼자의 삶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함께 하는 삶을 택하는 것인 것 같습니다. 서로에게 적응해가는 시간 동안 서로 부딪히기도 하고, 감싸주기도 하겠지만 그렇게 서로에 대해 더 잘 알아가는 연습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이 세상을 떠나는 날, 아내와 함께여서 행복했다는 말을 남길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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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평화로운 정적이 흐르는 곳 3

평소 한국에서나 여행을 가서나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비몽사몽인 제게 새벽에 일찍 일어나 일출을 본다는 것은 나름 큰 결심을 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아침마다 침대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운 저라도 오랫동안 가고 싶었던 곳이자, 환상적인 일출 명소인 앙코르와트에서 해가 뜨는 것을 볼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습니다.

관광객들이 많이 모여들면 좋은 자리를 놓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서둘러 기사를 불러 앙코르와트로 출발했습니다. 앙코르와트 입구에 내렸더니 아직 새벽이라 깜깜하기에 휴대폰 라이트를 켜고걸어가는데, 저와 같은 관광객들이 많은지 마치 반딧불처럼 여기 저기서 하얀 빛이 비치는 것을 보고 사람들 생각은 다 비슷하구나 하고 혼자 웃기기도 했습니다. 앙코르와트 입구를 지나면 작은 연못이 있는데, 그 수면에 3개의 탑이 비쳐 가장 아름답다는 일출 명당 앞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처음에는 자리를 잡고 있던 사람들이 많지 않았지만 점점 일출을 보려는 관광객들이 늘어나더니 제 앞의 틈을 비집고 들어와 자리를 차지하려는 사람들까지 나타나서, 은근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는데, 갑자기 저 멀리에서 희미한 빛이 비치기 시작했습니다. 해가 뜨기 시작하자, 이제 옆 사람은 잠시 잊고 점점 커지면서 눈부시게 빛나는 해와 데칼코마니처럼 연못에 비친 탑의 모습을 보면서 정신없이 사진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해가 구름 뒤로 숨고, 세상 전체가 밝아진 후 저도 자리를 정리하고 본격적으로 앙코르와트 내부를 꼼꼼히 구경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원 내부 1층 회랑에는 제가 좋아하는 인도의 2대 힌두 서사시 ‘마하바라타’와 ‘라마야나’에 관한 부조들이 빽빽하게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조각된 이야기에는 신들과 악마인 아수라, 천상의 무희들인 압사라 뿐만 아니라 영웅들과 왕들까지 등장해 다양하고 화려했습니다. 오늘은 빨리 가자고 눈치를 주는 가이드도 없어서 조각들을 하나씩 여유있게 감상하면서 사진으로도 많이 남길 수 있었습니다.

1층 회랑의 조각들을 살펴본 후에는 사원의 담 안쪽의 넓은 공간으로 나갔습니다. 조각들로 가득한 회랑을 계속 돌다가 널찍한 마당으로 나오니 분위기도 밝고, 가슴도 탁 트이는 것 같았습니다. 안에 있을 때는 잘 알지 못했는데, 밖에서 바라보니 사원의 회랑과 벽 사이로 스며드는 빛이 사원의 분위기를 더욱 신비롭게 만든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다시 사원의 중심부를 향해 가는 통로의 벽에도 조각들과 신상들이 빽빽하게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중앙에 있는 탑은 주위를 둘러싼 여러 가파른 계단 형태 중 실제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만을 통해 올라갈 수 있는데, 철제 계단으로 보다 오르기 쉽게 만들었음에도 경사가 급한 편이었습니다. 그래도 높은 곳은 아무래도 멀리까지 보여 경치가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다른 관광객들과 함께 줄줄이 비엔나처럼 줄을 서서 난간에 매달리다시피 하면서 중앙탑을 향해 올라갔습니다.

중앙탑에 오르느라 힘이 들었는지, 오전 8시가 되기도 전인 이른 아침인데도 얼굴에 땀이 났습니다. 탑 상층부에 올라서 돌아보니 여기에도 이곳저곳 아름다운 조각들이 많았는데, 우리나라에서 자주 보는 불상의 광배를 나가 형상으로 만든 것이나 천수관음처럼 여러 손이 조각된 신상이 특이해보였습니다. 사람들 틈새를 헤치고 사람들이 몰려 있는 창문쪽으로 갔더니 역시나 높은 곳이라 그런지 사원 밖 저 멀리 숲까지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명당이었습니다.

중앙탑에서 경치를 즐기면서 살살 부는 바람에 땀을 식히고 나니, 새벽부터 일찍 일어나서 그런지 졸음이 솔솔 몰려 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볼 것들은 어느 정도 봤다는 생각에 숙소로 돌아가 잠을 보충하고, 느지막이 점심 이후에 일어나 호텔 수영장 한 켠에서 가져간 책을 읽었습니다. 책은 한동안 베스트셀러였던 호모 사피엔스였는데, 두어 시간 책을 읽다가 햇살이 다시 강해지길래 다시 방에 돌아가 책을 놓아둔 후 짐을 챙겨들고 마사지를 받으러 갔습니다.

저는 동남아시아 여행을 가면 마사지를 자주 받는데, 이번에는 많이 걷기도 해서 마사지를 제대로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발마사지 레슨을 받고, 강습이 끝난 후에는 마사지를 받는 프로그램이 있는 곳을 찾아냈습니다. 마사지 레슨을 받는 곳은 처음 가봐서 여러 상품 중 마음에 드는 발 마사지 프로그램을 고른 후 1시간 정도 1:1 레슨을 받았는데, 강사와 서로 마사지를 해주는 방식이었습니다. 레슨 프로그램에는 마사지 교본까지 포함되어 있어 그 교본을 보면서 나중에도 연습을 할 수 있었습니다.

마사지 레슨이 끝난 후에는 커피 껍질을 이용한 아로마 전신 마사지를 받았는데, 커피 껍질을 넣은 오일은 온 몸에 바르고 그 위를 비닐로 감싸는 것이었습니다. 다양한 방식의 마사지를 많이 받아봤지만 마치 소세지 빵처럼 몸을 돌돌 감싸는 방식의 마사지는 처음이라 좀 답답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새벽부터 돌아다녀서 노곤했는지 어느 순간 잠이 들었습니다. 한참 잘 자고 있는데, 시간이 다 됐는지 마사지사가 저를 깨워서 레슨 때 받은 교본과 제 나머지 짐을 챙겨들도 다시 숙소로 향했습니다.

마사지를 받고 숙소에 와서는 푹 휴식을 취했는데, 이렇게 관광을 하고 휴식도 취하고 나니 학위 논문을 쓸 준비가 된 것 같아 알 수 없는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기분이 좋아진 저는 앙코르와트에서의 마지막 저녁을 주변 맛집에 가서 캄보디아 맥주와 캄보디아 전통 음식으로 기념했습니다. 다음 날 숙소를 나오는데 갑자기 호텔 지배인이 카드 한 장을 건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나름 여행을 많이 했지만 이렇게 정성들여 카드를 직접 써서 주는 곳은 본 적이 없어 신기하면서도 은근히 기쁘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 카드를 보면서 많이 상업화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순박한 캄보디아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을 하면서 귀국 비행기를 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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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 출석한 인공지능” 서평 국회방송 보도

얼마 전에는 국회방송에서 제가 작년에 출간한 책에 대한 서평을 보도했습니다. 국회 뉴스에서는 정기적으로 서평을 내고는 하는데 2월 정도에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의 최준선 교수님이 제 책에 대해 서평을 기고하셨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최교수님을 잘 알지 못하는데 제 책을 읽으시고 서평까지 내주셔서 참 감사했습니다.

국회뉴스에 최준선 교수님의 서평이 실린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국회방송에서도 제 책에 대한 서평이 보도되었습니다. 아마도 제 책의 주제가 최근 사회적으로 관심을 받고 있는 인공지능과 관련한 내용이라 계속 보도가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 책이 이렇게 관심을 받는 것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기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내용은 아닐까 걱정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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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평화로운 정적이 흐르는 곳 2

점심을 먹고 잠시 그늘에서 더위를 식힌 후 수심이 별로 깊어 보이지 않은 저수지를 건너는 것으로 투어의 후반부가 시작됐습니다. 저수지 위에 널판지가 깔린 길을 걷다보면 섬이 하나 나오는데, 이 곳이 프라삿 닉 포안이라는 사원이었습니다. 좀 특이하게 이 사원은 작은 섬 위에 있는데,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부처가 열반에 이른 것을 기리는 뜻으로 세워져서 4개의 연못에 둘러싸인 중앙에 있는 1개의 연못은 히말라야에 있는 세계의 중심에 있는 연못을 본따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가이드는 이 사원에는 코끼리, 사자, 말, 사람의 모습을 한 4개의 분수가 있는데, 이 분수에서 성수가 나와 병을 고쳐준다고 하여 순례자들이 찾는다고 설명을 하기도 했습니다.

다시 저수지 위를 걸어 돌아나와 다음 사원으로 이동했는데, 이번에는 제가 좋아하는 정교한 조각상이 많은 곳이었습니다. 다양한 표정과 동작을 한 많은 조각상들이 화려한 의상을 입고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기에 저는 각각의 조각들을 사진 촬영하느라 다시 빨리 오라는 가이드의 재촉도 못본 척 해야 했습니다.

정교한 조각상들을 많이 본 후에는 다시 이스트 메본 사원으로 향했는데, 원래는 저수지 위에 있었지만 지금은 물이 모두 말라버려 덩그러니 놓여 있는 모습이긴 했지만, 사원을 향해 올라가는 길에 서있는 늠름하고 힘이 넘치는 사자상과 두툼하고 긴 코를 늘어뜨린 코끼리상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사원 위로 올라가니 여러 개의 탑이 있었는데, 탑에 사용된 석재가 다른 사원들보다 더 매끄럽게 다듬어져 있어 마치 대리석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런 좋은 재질 위에 새겨진 정교한 조각들은 계속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게 했고, 벽 기둥 사이로 스며드는 빛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한참 넋을 잃고 보고 있었습니다.

예상보다 다소 일찍 투어가 끝나 마지막 목적지인 일몰 명소인 프놈 바켕으로 향했습니다. 다른 곳들을 더 구경할 수 있는데 너무 일찍 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다소의 아쉬움도 있었지만, 해가 지는 것을 구경하기 위해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룬다는 가이드북이나 인터넷 글들을 읽은 탓에 미리 가서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프놈 바켕 사원은 해가 쨍쨍한데 그늘은 별로 없어서인지 사람들이 별로 없었고, 저는 사원 이 곳, 저 곳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다가 일본 커플이 자리를 펴고 일몰 구경 준비를 하는 것을 보고서 슬슬 일몰을 보기 좋은 위치에 앉아 있었습니다.

햇빛이 강한 탓에 계속 앉아만 있기는 좀 힘들었지만, 그래도 다시 모자를 꺼내 쓰고는 가져간 책을 읽으며 해가 지기를 기다렸습니다. 슬슬 해가 약해지면서 다른 관광객들도 슬금슬금 제 옆자리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는데, 일찍 와서 자리를 잡은 덕분인지 가장 앞쪽에서 해가 지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지평선 아래로 산산히 흩어지며 내려앉는 해를 보면서, 우리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고 마음을 썼던 부질없는 일들에 대해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도 되었습니다. 장엄한 기분이 들기도 하고, 뭔가 슬픈 느낌이 들기도 하는 황혼을 뒤로 하고, 제 가이드를 찾아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땡볕에 돌아다녀서인지 방에 들어가 샤워를 하니 온 몸이 노곤했습니다. 저는 구글맵을 검색해 숙소 주변에 있는 추천 식당에 가서 배부르게 식사를 한 후 다음날 새벽 앙코르와트 일출을 보기 위해 서둘러 숙소로 돌아와 잠을 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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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변호사협회 재개발, 재건축 전문분야 등록

지난 달에는 대한변호사협회에서 시행하고 있는 전문분야 등록제도를 통해 재개발, 재건축를 전문분야로 등록했습니다. 전에는 특정 분야를 전문으로 등록한다는 것에 제 자신이 과연 그 정도 실력과 자격이 있는지 스스로 확신이 들지 않기도 했고, 저는 다양한 법률 분야에 관심이 많은데 전문분야 등록을 하면 제3자가 보기에는 그 분야만 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어 등록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제가 재개발, 재건축 관련 분야의 업무를 담당한지도 7, 8년 가량 되었고, 이 분야와 관련된 여러 소송과 법률 자문, 서울시 등 지자체의 조합 실태점검 등 감사 업무를 해서인지 좀 자신이 생긴 것 같아 전문분야 등록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 잘 모르는 분들이 가끔 변호사인 제 전문분야를 묻고는 하시는데, 그때 답변을 하기도 용이할 것 같아 등록을 하게 되었습니다.

전문분야 등록을 하기 위해서는 협회에서 정한 관련 분야 교육도 받고, 기존 수행했던 소송과 자문들에 대한 자료들도 신청서에 첨부해 제출해야 합니다. 그래서 관련 자료들을 정리한 후 온라인으로 재개발, 재건축 관련 강의 프로그램을 찾아 듣다보니 제가 잘 알지 못했던 내용도 더 공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역시 세상에는 고수들이 많다는 점을 다시 한번 느끼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신청서 제출 후 한 달 정도 지난 후 마침내 협회에서 심사가 끝났고, 협회 게시판에서 전문분야 등록이 되었다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얼마 후 도착한 전문분야 등록증서는 다른 위촉장들이나 표창장들과 달리 사방이 금박으로 장식되어 있어 좀 부답스럽기는 했지만, 전문성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고 생각하니 은근히 기분이 좋기도 했습니다. 앞으로도 재개발, 재건축 관련 소송이나 자문을 수행하면서 더욱 정진해 의뢰인들의 권리와 이익을 잘 지키고, 잘못된 조합운영에 대해서는 개선을 시키는 계기를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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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행정심판위원회 위원 임기 만료와 짧은 소회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2년 간의 행정심판위원회에서의 위촉 기간이 지났습니다. 약 2달 정도에 한번의 회의였지만, 사건의 주심과 부심으로서 사실관계를 확정하고 법리적 판단을 해서 결정문 초안을 작성하는 것이 생각보다 많은 고민이 되고, 까다롭다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회의 때마다 많게는 7, 8개, 적게는 3, 4개의 주심, 부심 사건을 준비하고, 간이한 일반 사건 10개 정도를 일주일 정도의 기간 동안 정리하는 것이 그리 간단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특히 기존에 진행되고 있는 송무 사건이나 자문 사건을 무리없이 진행하면서, 추가로 행정심판위원회 사건들까지 진행하는 것은 제게는 주말에 추가적인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으면 쉽지 않은 일이기도 했습니다. 어떤 위원분들은 이런 행정심판위원 임기를 4년, 6년까지도 하시기도 하는데, 남들이 별로 알아주지 않는데도 묵묵히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고 있는 그 노력과 헌신에 놀라기도 했습니다.

행정심판위원회 위원을 하면서 느낀 것이 여러 가지 있지만, 역시 행정사건은 근거 법령이나 법리가 복잡할 뿐 아니라 행정재량의 영역이 커서 해결이 쉽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국민들과 행정청의 처분에 대한 내용이 대부분이라 하나의 사건에 대한 결정이 미치는 파급력이 일반 민사 사건이나 형사 사건보다 크기도 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행정심판위원회 위원들도 아무래도 심판청구에 대해 보수적으로 판단하게 되어 인용 결정을 내리는데 부담을 내리는 것 같습니다. 행정심판위원회의 인용 결정에는 행정청이 다시 행정소송으로 다투지 못하게 되어 있다는 점 역시 이런 판단 경향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돌아보면, 비록 행정심판위원회가 행정청에 속해 있기는 하지만 그 설립 취지 자체가 국민의 권리 구제를 위한 것이므로 행정청의 입장보다는 심판을 청구한 국민의 구제에 더욱 중점을 두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제가 위원회에서 여러 위원들과 의견을 교환하거나 사건에 대해 의결을 하다보면 자꾸 벽에 부딪히는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런 아쉬움이 남는 부분에 대해서는 계속 위원으로 결정을 하시는 분들이나 새로 위원으로 위촉되시는 분들은 이런 부분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는데 더욱 귀를 기울여 주셨으면 합니다. 앞으로 행정심판위원회 운영은 행정청에 대한 견제와 국민의 권리 및 이익 구제라는 설립 목적에 천착해 보다 많은 국민들이 정당하게 권리 구제를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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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주행자동차 상용화 촉진 및 지원에 관한 법령 개정 프로젝트 자문

작년 하반기에는 자동차가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자율협력주행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자율주행자동차 사용화 촉진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약칭 ‘자율주행자동차법’의 개정과 그 하위 시행령, 시행규칙의 개정을 위한 프로젝트 자문에 집중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2020년 자율주행자동차법이 제정됐는데, 기존 내용에 자율협력주행과 관련한 보안성을 갖춘 인증관리체계를 추가해 실질적인 자율주행이 가능할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을 하는 작업이었습니다.

자율협력주행은 현재 자율주행을 표방하는 자동차들이 자체적인 센서에만 의존해 주행을 하고 있다는 한계를 넘어, 도로를 운행하는 다른 자동차들이나 도로변에 있는 설치된 시설이 수집한 주행에 필요한 정보들까지 실시간으로 공유하면서 주행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V2X라고 간단히 부를 수 있는 이 시스템을 통해 V2V인 다른 자동차들의 예상 주행 경로, V2I인 노면 상태나 노면의 장애물을 실시간으로 파악해 보다 안전하고, 진정한 의미의 자율주행이 가능하게 할 수 있습니다.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제가 법적 자문을 했던 O정 OOMG만이 아니라 OO전자인증, OO SDS, 한국OOOO공단, 국토교통부의 많은 담당자들과 전체 사업계획의 방향과 실무적인 내용을 함께 고민하고 준비했습니다. 특히 사업 계획이나 실무를 고려해 법적인 자문을 하면서, 원래 제가 알고 있었던 인공지능 관련 법적 내용이나 일반적인 법 지식 외에도 법률이나 시행령, 시행규칙, 고시 등 국회나 행정부 입법의 실무적 절차나 구체적인 개정안 작성과 관련해 많은 것을 더욱 깊이 있게 아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특히 이런 큰 규모의 프로젝트를 하게 되면 다른 조직에 속한 많은 인원들이 협업을 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좋은 시너지 효과가 발생하기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송무 사건에서도 많은 변호사들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경우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하는데, 다행히 법률과 시행령, 시행규칙이 기한 내 개정되어 올해 초 시행되게 되었습니다.

이번 프로젝트를 하면서 변호사들이 일반적으로 알지 못하는 인공지능(AI)이나 인증 관련 실무적인 내용과 법령 제정 과정을 많이 알게 됐다는 점도 좋았고, 앞으로 진정한 의미의 자율주행자동차가 상용화되었을 때 그 자율주행차를 타면서 그 운행에 제가 일조를 했다는 보람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프로젝트 일정이 빠듯해 개인적으로 어려운 점들도 있었지만, 저에겐 업무능력이나 인간관계 등 여러모로 남은 것이 많은 프로젝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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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평화로운 정적이 흐르는 곳 1

어렸을 적 과학잡지에서 보았던 앙코르와트의 모습은 마치 영화 인디아나 존스에 나오는 탐험의 대상처럼 느껴졌습니다. 이후 해외여행이 자유로워지면서 주변에서 하나 둘 앙코르와트를 방문한 사람이 생겼고, 크메르루즈의 악명으로 더 유명해진 크메르 제국이 남긴 영광의 상징인 앙코르와트에 가보고 싶다는 저의 바램은 점점 더 커져갔습니다. 본격적인 학위 논문 작성과 심사을 앞두고 얼마쯤 푹 쉬면서 심신의 휴식이 필요했던 저는 훌쩍 캄보디아로 떠나기로 했습니다.

예전에 친한 친구가 앙코르와트가 있는 시엠립을 다녀오는데 태국에서 버스를 타고 8시간인가 걸려서 고생을 많이 했다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제 시엠립 옆에는 공항이 따로 하나 있을 정도가 되었으니 상전벽해라 할만 합니다. 저는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 몸과 마음을 편히 쉴 곳을 찾았는데, 너무 크고 화려한 호텔이 아닌 조용하고 안락한 Butterfly Pea라는 이름의 부티크 호텔이었습니다. 동남아시아에 많이 피는 보라빛깔의 꽃 이름인데, 보라색을 좋아하는 제 마음에도 쏙 들었습니다.

시엠립 공항을 나와 택시를 타고 숙소에 도착하니 웰컴 드링크 한잔을 주고, 체크인 후 방으로 안내를 받았습니다. 방에는 몇가지 과일이 든 바구니가 하나 있었는데, 사실 제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과일들도 있어서 숙소를 떠날 때까지 그대로 둔 과일도 있습니다. 짐을 푼 후 리셉션에서 다음날 투어를 예약한 저는 간단히 식사를 한 후 밤거리를 구경하러 나갔습니다. 제가 머문 숙소는 도시를 관통하는 강변에 위치해 있었는데, 조금만 걸어가면 번화한 중심거리가 나와 쇼핑을 하거나 식사를 하기에도 좋았습니다. 다만, 호텔을 나갈 때마다 길가 한쪽에 서있는 직업 여성들이 자꾸 “오빠 멋있어요~”라고 하면서 다가오는 것이 좀 부담스럽기는 했습니다. ㅎㅎ

첫날 푹 잠을 잔 저는 다음날 일찍 앙코르와트 투어를 하기 위해 가이드와 함께 일찍 길을 나섰습니다. 보통 앙코르와트 투어는 그랜드 투어, 스몰 투어로 나뉘는데 저는 그랜드 투어를 선택해서 많은 곳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처음 앙코르톰으로 들어가는 길에 있는 있는 데바과 아수라들이 나가를 당기면서 ‘우유의 바다’ 장면을 연출하고 있는데, 그 모습에서 진지한 사원의 느낌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앙코르와트와 앙코르톰, 바이욘 사원 등 건물에는 사방에 제가 좋아하는 조각들이 전체적으로 새겨져 있어 그 조각들을 감상하는데 시간이 많이 소요됐습니다. 그래서 자꾸 가이드가 다른 곳에 가자면서 끌고 가는 것이 좀 아쉽게도 느껴졌습니다. 가이드 투어를 하는 경우 더 시간을 두고 감상하지 못해서 아쉽기는 했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더 좋은 곳들이 있으니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앙코르톰을 지나 관세음보살상이나 자야바르만 7세의 얼굴이라고도 알려진 평화로운 얼굴 조각이 있는 바이욘 사원에 도착했습니다. 바이욘 사원과 다른 장소에서 가이드가 자신만의 기술로 찍어준 사진을 보면 가이드 투어도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도 됩니다.

바이욘 사원은 아름다운 조각상들로 유명한데 특히 햇빛이 비치는 가운데 드러나는 음영의 대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또 사원 앞에 있는 와불은 노란 장삼 한장만을 걸쳤는데 무언가 쓸쓸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바이욘 사원의 문을 보면 마찬가지로 석재를 사용해 끼워맞춘 잉카문명의 문이 연상되기도 했습니다. 사원 내부는 바깥보다 좀 조용한 편이었고 다산을 상징하는 남근석과 조용히 명상을 하고 있는 듯한 불상이 있는데, 가만히 보고 있으면 고요하면서도 알 수 없는 울림이 전달되는 것 같았습니다.

제 안내를 맡았던 가이드는 일종의 트릭 사진 같은 것에 관심이 많았는지, 아이폰의 파노라마 기능을 이용해 신기한 사진들을 더 많이 남겨주었습니다.

바이욘 사원 벽에는 아름답게 부조된 조각들이 많아서 계속 넋을 잃고 조각상들을 보다가 가이드를 놓치기도 했습니다.

바이욘 사원을 둘러본 후에는 큰 불상이 보관되어 있는 전각을 지나 무지개 다리를 통해 바푸온 사원으로 갔습니다. 원래는 시바신을 모시는 사원이었는데, 이후 불교 사원으로 바뀌면서 탑의 일부가 훼손되기도 했습니다. 바푸온 사원에서는 특히 통로 위 천장을 아치 모양으로 만들었는데, 햇빛이 스며드는 벽 기둥 사이로 보이는 완벽한 아치가 특히나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치 유럽 고딕양식처럼 대칭의 둥근 아치와 빛을 이용한 아름다움이 비슷한 느낌이었습니다.

다만, 가이드로부터 사원에 대한 설명을 듣다가 보니, 처음에는 사원의 가장 꼭대기에 시바신을 상징하는 남근상을 세워두었었다고 하는데 힌두교의 시바신은 브라흐마신처럼 창조의 신이 아닌 파괴의 신인데 시바신의 상징이 다산과 창조를 의미하는 남근상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기는 했습니다. 소멸이 있어야 새로운 생성이 가능하기 때문이라는 의미인지…

바푸온 사원의 정상까지 올라가 주변을 내려다보니 정글이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피부에 와닿을 정도로 주변에 나무들이 무성했습니다. 다시 넓은 길가로 나와서 보니 코끼리 테라스와 문둥왕 테라스가 보였는데, 테라스들에도 섬세한 부조가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문둥왕이란 이름은 테라스 위에 있는 좌상이 이끼 때문에 얼룩덜룩하게 보여 나병으로 죽은 야소바르만 1세를 연상해서 지어진 것이라는데, 알고 보니 좌상에 새겨진 15세기의 글을 보면 좌상은 죽음의 신인 야마(Yama)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미 문둥왕 테라스로 널리 알려져서 그 후로도 계속 문둥왕 테라스라고 불린다니 역시 이름은 한번 정해지면 바꾸기가 힘들긴 한가 봅니다.

크메르 제국의 왕들이 연회와 행진을 즐겼다는 테라스를 지나다 보니 어떻게 사원 건축이 이뤄졌는지 알 수 있는 벽의 구조가 노출된 것이 보였습니다. 동남아시아에 많은 라테라이트라는 흙이 햇볕을 받고 건조해지면 붉은 색의 매우 단단한 재질이 되는데, 이 흙으로 벽돌을 만든 후 그 위에 화려하게 장식으로 조각된 부드러운 사암을 붙이는 식이라는 겁니다. 다른 사원에서는 사암과 테라코타가 확연히 구분되지 않았는데, 테라스를 보고 있자니 밝은 빛 속에서 마치 화이트 초코 케이크 한 쪽이 흘러내려 안의 빵이 보이는 것 같은 장면이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널찍한 길을 따라 가루다상이 있는 앙코르 톰의 문을 지나서 다시 프레아 칸이라는 사원에 도착했습니다. 프레아 칸은 원래 불교 사원이었지만, 일부는 힌두교에서 유지의 신으로 불리는 비슈누에게, 또 다른 부분은 파괴의 신인 시바에게 바쳐진 특이한 곳입니다. 우리나라 사찰의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삼성각에서 산신이나 북두칠성, 용왕을 기리고 있는 것과 비슷해보였는데, 불교의 포용력이 보편적으로 컸던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프레아 칸은 관광객들이 많이 오지 않는지 조용한 편이었습니다. 특히 사원 천장 가까이에 난 창을 통해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데 그 빛을 받아 탑인 스투파가 빛나고 있어 신비로움을 더해 줬습니다. 다른 사원과 다른 건물들도 눈에 띄었는데, 장경각은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프레아 칸 사원에는 건물에 뿌리박고 하늘을 향해 곧게 서있는 나무가 인상적인데, 제가 찍은 사진들만 봐도 이제는 관광객들에게 사원보다 나무가 더 눈길을 끄는 것도 같습니다.

아침부터 바쁘게 돌아다녔더니 배도 고프고, 점점 더워지는 것도 같은 차에, 마침 가이드가 점심식사를 하고 가자고 해서 오전 투어는 이렇게 마무리를 하고 배를 채운 후 다시 오후 투어를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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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의 굴레를 쓴 남북경협 사업가

지난 달 말에는 3년 반 가까이 진행되었던 형사사건의 선고가 있었습니다. 전형적인 국가보안법 사건과 달리 검사의 주장처럼 인공지능을 활용한 시각 인식 프로그램 개발 및 유통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중국에 있는 사업가와 주고받은 개발자금과 프로그램을 국가보안법상 금품수수와 자진지원이라고 기소한 사건이었고, 문재인 정부에서 기소된 1호 국가보안법 사건이라는 의미도 있었습니다. 이 사건과 관련해서는 이미 여러 언론사의 기사가 보도된 적이 있습니다.

피고인은 중국 현지 사업가와 동업으로 시각 인식 프로그램을 개발했는데, 중국 사업가의 산하에 북한의 프로그램 개발팀이 있어 문제가 된 사건입니다. 재판부가 판단한 것처럼 이러한 프로그램 개발과 그 유통 과정에서 여러 문제가 있다는 것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이 사건 판결에서는 법리나 기술적 측면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이 있고, 그 중 가장 문제가 있는 부분들은 아래와 같은 내용들입니다.

먼저, 피고인의 사업을 남북교류협력법의 대상이 아니라고 보면서 피고인이 프로그램 개발을 한 것이 남북교류협력의 목적이 아니라 피고인의 경제적 이익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든 것입니다. 재판부의 논리대로라면 향후 남북교류협력법에 따라 이루어질 수 있는 남한의 경제 사업은 경제적 이익을 취하지 않는 자선사업만 해야 한다는 것인지 의아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해석론이라면 앞으로 남북관계가 다시 완화되더라도 누구도 남북교류협력사업을 할 엄두를 낼 수 없어 오히려 남북교류협력법의 제정 취지를 훼손하는 것이라 볼 수밖에 없습니다.

다음으로 피고인은 자신의 사업 파트너인 중국 현지 사업가와 10년 넘게 수많은 이메일과 메시지를 주고받았는데, 그 대화 내용을 살펴보면 피고인의 프로그램 개발사업이 어떤 목적으로 어떤 조직과 업무지시 체계를 갖고 있는지 명확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수백쪽에 달하는 전체 대화 내용 중 문맥과 전후 사정을 무시한 채 오로지 한두번 언급된 단어만으로 사실관계를 단정하고, 그 외 수십 차례에 달하는 다른 증거들은 외면했으니 증거를 취사선택하는데 오류를 범해 사실관계를 잘못 확정한 것이라 볼 수밖에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재판부는 기술적 부분에 있어서 검찰이 제시한 수사기관과 협력기관들의 보고서만을 믿었을 뿐, 코딩이나 프로그램 개발에 있어 일반적인 상식으로 통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막연하게 믿을 수 없다며 배척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가 판결의 근거로 든 보고서의 내용들은 이미 재판 과정에서 그 기술적 내용에 문제가 있다는 증언과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서류 등으로 반박이 된 것임에도 이러한 기술적 내용들에 대해 편향된 의도를 갖고 작성된 보고서의 내용만을 믿고 내린 잘못된 판단이라 보입니다.

최종적으로 피고인 2명 중 1명이 무죄 판결을 받긴 했지만, 1심 진행 중 보석으로 풀려나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었던 피고인이 1심 선고와 함께 법정구속이 되어 선고를 듣고 있던 제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국가보안법 사건의 경우 법원이 ‘유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판단한다는 씁쓸한 농담을 하기도 하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는 미리 결론을 정해 놓고 그에 맞는 증거들만을 택해 판결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까지 들어 더욱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구속된 피고인이 가족들과 변호인단에 보낸 편지를 읽다보니 국가보안법이 옥죄고 있는 우리의 삶을 더욱 절절히 느끼게 됩니다. 항소심에서는 보다 냉정하게 증거를 검토해 사실관계를 확정하고, 법리를 적용할 수 있는 재판부를 만나길 기대해봅니다. 만일 이러한 판결과 법 해석이 굳어진다면 향후 남북간 긴장이 완화된 후 경제협력사업을 추진하려고 하는 누구도 국가보안법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게 될 것이고, 이는 남북관계의 발전에 큰 장애물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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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연수라 쓰고 극기훈련이라 읽다.

고독사하신 분들의 장례를 지원하는 나눔과나눔이라는 단체가 있습니다. 현재는 법인이 되어 제가 이사직을 맡고 있기도 한데, 몇년 전에는 그냥 공익단체로 종종 법률자문을 해주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눔과나눔의 사무국장님이 함께 고독사 관련 보고서를 작성하는 프로젝트를 함께 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하셔서 프로젝트 준비를 위해 일본으로 연수를 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전체 프로젝트에서 고독사한 분들이 생전에 자신의 사망 이후 법률관계를 미리 결정할 수 있는 사후자기결정권에 관한 내용을 정리하기로 했습니다.

연수는 원래 알고 있던 사무국장님만이 아니라 다른 분들까지 함께 준비를 해서 일본으로 가게 되었는데, 일본에서 오랫동안 유학을 했던 교수님이 주로 일정을 계획했는데, 일본에 지인들도 많고 여러 곳에 미리 약속을 잡아서 무리없이 계획대로 일정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프로룸젝트의 주제는 “내 맘대로 장례, 내 뜻대로 장례”로 정했습니다.

처음 목적지인 오사카 가마카사키는 일본의 고도성장기에 지방에서 올라와 정착했던 노동자들이 많이 거주하던 곳인데 그 중 재일동포도 많았습니다. 우리 연수팀의 첫 숙소는 코코로룸이란 곳이었는데, 인테리어나 식사 메뉴가 독특한 곳이었습니다. 숙소 주변에는 가마카사키에 거주하는 주민들을 위한 곳들이 많이 있었는데, 노숙인들이나 실업자들을 위한 시설들도 있었습니다. 근처에는 오래된 유곽도 있었는데, 저녁이 되니 독특한 색의 조명을 비추고 여성 한 명이 앉아서 영업을 하는 것이 특이한 느낌이었습니다. 해방 이후 재일동포들이 많이 정착한 곳이기 해서 가슴 한켠이 아프기도 했습니다.

주변을 둘러본 후에는 고양이 신사에 들러 운세를 점치기도 하고, 도톤보리에서 구경을 하다가 오사카에서 유명한 오코노미야키 맛집에서 식사도 했습니다. 길을 걷다 보니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서 광고판 사진을 찍고 있는 곳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글리코맨이라는 글리코 제과회사의 유명한 광고판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저게 무슨 대단한 거라고 그렇게 사람들이 몰려드나 싶었는데, 일본을 넘어 세계적인 명물이라고 합니다.

다음날부터는 본격적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는데, 노숙인 쉼터 센터장, 오랫동안 고독사 장례를 지내왔던 스님, 실업자 지원단체 NPO 대표을 비롯해 우리 숙소인 코코로룸 이사장까지 많은 분들을 만났습니다. 저녁에는 술을 즐기시는 교수님 덕분에 가마카사키 거리의 여러 술집을 순례하면서 주민들과 어울리기도 했습니다.

그 다음날에는 일본의 고도로 유명한 교토로 갔습니다. 교토의 오래된 절인 청수사에 가는 길에는 마침 일본의 명절이었는지 전통복장인 유카타를 입은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녔습니다. 청수사는 층층이 높은 목조건물이었는데, 공중에 매달려 있는 바람개비와 소원을 비는 종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청수사를 방문한 날은 너무 날이 뜨거워서 사실 많이 돌아다니지 못하고, 햇빛을 피해 그늘을 찾아다니면서 길거리의 상점들에서 기념품을 사기도 했는데 곳곳에 예쁜 사찰들이 있어서 이리저리 살펴보느라 바빴습니다.

청수사를 떠나 일본에서 만난 재일동포 중 한 분이 운영하는 곳에서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저녁식사를 하면서 얘기를 나눠보니 재일동포였던 그 분의 사촌오빠가 한국에서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국가보안법으로 인해 오랫동안 감옥에 수감됐었던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대학교로 와서 유학 중 공작의 희생물이 되어 옥고를 치렀다가 수십년 후 재심재판에서 마침내 무죄를 선고받기는 했지만, 40년 가까운 시절 그 가족들이 겪었던 고통이란 짐작하기도 어려울 겁니다.

오사카로 돌아와 휴식을 취한 후 아침에 다시 임의후견과 장례 지원을 하는 단체가 있는 나고야로 출발했습니다. 나고야 성 근처에 있는 기즈나노회는 후견계약을 맺고, 피후견인의 재산과 신변관리를 해주는 단체인데 사망 후 법률관계도 관리해주는 곳이었습니다. 단체를 방문해 법률관계를 담당하는 변호사와 미팅을 했는데 덕분에 우리와 다른 일본의 법률 실무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미팅 후에는 나고야에서 유명한 미소라멘집에서 식사를 한 후 이제 다시 도쿄로 이동했습니다.

도쿄로 이동한 날 저녁은 신쥬쿠에서 초밥을 먹고, 야경을 본 후 다소 이색적인 게이바에 갔습니다. 일본에서는 일반인들도 게이바에서 술을 마시는 것이 하나의 이색적인 문화라는데 지하에 있는 게이바에 가보니 실제로 남녀 연인들이 함께 놀러와서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게이바의 바텐더는 쇼맨쉽이 좋았는데, 손님들과 대화를 하면서도 우리에게 계속 진로를 팔면서 매상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막상 게이바에 가니 원래 예상했던 것과 달리 가장 힘들었던 것이 게이바가 지하에 있는데, 사방에서 담배를 피어대는 통에 완전히 두더지굴이 따로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예쁘게 생긴 냅킨 하나를 기념품으로 챙긴 후 적당한 시간에 숙소로 향했습니다.

전날 밤 마신 소주로 인한 숙취를 이겨내고 다음날에는 리스 시스템을 방문했습니다. 리스 시스템의 대표님은 일제시대 대구에서 태어나 해방 이후 일본으로 건너갔는데, 사업으로 돈을 번 후 후견과 장례 관련 단체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엇습니다. 우리 프로젝트 주제와 매우 비슷해서 연구 보고서를 작성하는데만이 아니라 나눔과나눔의 미래 비전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리스 시스템을 나와서 평화 영원이라는 공동묘지를 방문했는데, 태평양 전쟁 당시 방공호에 숨어 있다가 폭격으로 사망한 아이들을 위한 나비 추모공원도 함께 있었습니다.

이후에도 사회복지사 출신인 동경가정대학 교수님을 만나 일본의 생활보호법과 묘지 매장에 관한 법률 등에 대해 들었는데, 우리의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의 모태라 그런지 내용이 매우 유사했습니다. 법률사무소에 들러서는 일본의 성년 후견제도와 임의 후견제도에 대해 일본 변호사님으로부터 어떻게 제도가 운영되는지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프로젝트 관련 업무가 어느 정도 정리된 후 우리 연수팀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요코하마로 바다를 보러 갔습니다.

요코하마에서 예쁜 벽돌로 만든 쇼핑몰을 둘러본 후 도쿄로 복귀해 야키니쿠로 일본에서의 마지막 저녁 만찬을 즐겼습니다. 생각해보면 일본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곳을 방문하면서 느꼈던 것들이 많았습니다. 연수팀 중 일부와 먼저 귀국하면서 마지막으로 신사의 앞을 지나가는데 생각보다 두껍고 큰 목재로 만든 신사의 문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일본의 여러 곳을 다니면서 느낀 것처럼 일본의 정치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신사 문의 나무처럼 일본의 곳곳을 받치고 있는 시민들의 힘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다음에 일본을 방문했을 때는 더 다양한 면을 많이 즐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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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철, 변호사로 의미를 남기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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