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 릴레이트 난민 교육 강의

지난 달에는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운영하는 공익법인인 동천에서 해마다 운영하는 릴레이트 교육이 있었습니다. 예전에 동천에 근무하셨던 양동수 변호사님 때부터 시작된 난민 지원 활동가와 변호사들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인데 이후에도 꾸준히 이어져 왔습니다. 동천에서 단독으로 진행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한변호사협회와 공동으로 하는 경우도 있는데, 저도 이전에는 난민사건의 국내피신과 관련한 내용의 강의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난민 사건과 관련된 내용을 교육한 것은 아니고, 제가 단장을 맡고 있는 대한변호사협회 산하 난민법률지원변호사단의 활동을 설명하면서 향후 제3기 변호사단 모집에 대한 홍보를 겸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전체 강의 순서 중 마지막 차례로 미리 준비한 내용의 강의를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수강생들이 자리를 뜨지 않고 계속 강의를 듣고 있었습니다. 저도 강의가 마지막으로 달려가면 피곤하기도 해서 얼른 귀가하고 싶어지는데, 다들 잘 견디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놀랐던 것은 강의가 끝난 이후 여러 수강생들이 강의 내용 관련 질문을 하고, 다음 변호사단에 지원하고 싶어했다는 것입니다.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난민에 대한 관심이 늘어서인지 이제 곧 변호사 실무를 시작하려는 수강생들의 적극적인 모습이 기뻤습니다. 앞으로 보다 많은 활동가들과 변호사들이 절박한 처지의 난민들을 조력하는데 힘을 보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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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공개청구 사건의 특성과 승소 판결

최근 올해 4월경 맡았던 정보공개청구 사건의 선고가 있었습니다. 결과는 예상했던 것처럼 승소 판결이었는데, 행정 사건치고는 다른 사건들보다 쟁점이 복잡하지 않아서 인지 빨리 결론이 난 것 같습니다. 공공기관을 상대로 하는 사건이다 보니 아무래도 행정청인 피고 쪽으로 기울어진 행정사건이란 성격도 갖고 있지만, 최근에는 다른 흐름도 보입니다.

정보공개청구는 다른 사건을 하면서 종종 병행해서 진행되는데, 저는 신청인이나 피신청인을 대리해본 적도 있고, 행정심판위원회에서 제3자인 심판자 입장에서도 사건들을 접해본 적이 있어 다양한 생각이 들곤 합니다.

먼저, 이번에 원고를 대리해서 승소했던 사건처럼 공공기관들이 공공정보 공개에 있어 아직도 상당히 폐쇄적이고 방어적이라는 것입니다. 이미 공개된 행정안전부의 정보공개 기준이나 법원의 선례에 비춰 보더라도 이 정도 정보는 당연히 공개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정보도 최대한 그런 정보가 없다거나, 비공개 사유가 있다면서 공개를 꺼리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일부 공개를 하는 경우라도 개인정보 보호를 근거로 공개 범위를 과도하게 좁히기도 합니다. 물론, 과거와 달리 개인정보에 대한 정보주체의 민감도가 시간이 갈수록 커지고 있고, 이로 인해 사후에 공개된 정보의 정보주체가 민원 등 다른 문제를 제기할 소지도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정보공개법의 취지를 고려하면 과도한 공개범위 제한은 비공개나 마찬가지일 수 있습니다.

저도 경우에 따라서는 공공기관의 입장이 이해가 되는 측면도 있습니다. 어떤 사례에서는실제로 정보를 제공받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담당자를 괴롭히는 수단으로 악용될 때도 있고, 법령이나 공개기준 가이드라인이 불분명할 때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를 어떻게 제재하여 불필요한 행정소요를 줄일 것인가 하는 것도 향후 정보공개 제도의 비용과 효과간 균형 측면에서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무조건 공공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정보의 공개를 일단 기피하려는 방향으로만 의사결정을 하는 것은 타당해 보이지 않습니다. 개인정보보호와 그 악용에 대한 제재와 억지 수단과 별개로 정보공개는 국가권력에 대한 국민의 감시 수단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최근 행정심판위원회나 법원에서 공공기관의 정보공개 여부나 범위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에 승소한 사건 역시 원고가 기존에 많은 정보에 대한 공개를 청구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렇게 계속 정보공개를 청구한 원인은 피고인 행정청이 제공한 측면도 있습니다. 1번에 충분히 공개할 수 있는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절차 위반과 공개 범위 제한을 했기 때문입니다. 송달된 판결문을 읽어보면서 피고가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안타까움도 생깁니다. 결과적으로 담당자도 힘들고, 국민의 세금도 낭비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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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 전선 이상 없다

최근 넷플릭스에 새로 올라온 영화 한 편을 봤습니다. 기존에 ‘서부 전선 이상 없다’라는 제목으로 널리 알려진 레마르크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고등학교 시절에 감명 깊게 읽은 책인데, 전쟁의 공포를 상상하는 것과 화면으로 전쟁 장면을 보는 것은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소설을 읽었을 때도 그렇고, 영화도 그렇고, 제목이 가장 인상 깊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상황에서 전선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표현이 아이러니하면서, 한편으로는 전쟁의 잔인함과 비정함을 한 문장으로 보여줘 공포스럽기도 합니다.

소설과 영화의 마지막에 휴전 시점을 15분 남기고 적진으로 돌격을 명령하는 장군이 후방에서 휴전이 시작되는 것을 알리는 시계가 울리는 것을 듣고 혀를 차는 장면과 같은 시각 참호에서 뒤엉켜 삶과 죽음을 가르는 전투를 벌이는 장면이 대비되어 가슴을 찌르는 것 같습니다. 휴전 협정에서 정한 시간이 되자 거짓말처럼 사격 중지를 외치고 다들 각자의 진지로 돌아가는 모습에서 전쟁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 되묻게 됩니다.

며칠 전 이태원에서 많은 인파가 몰려 15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비극이 벌어졌는데, 국민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부처의 장관이 “예년과 비교해서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은 아니”며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던 것”이라고 말해 물의를 빚었습니다.

결정은 어른들이 하고 희생되는 것은 젊은이들이라고 묘사되는 전쟁이 휩쓸었던 100년 전 세상이나 지금이나 우리 인류는 나아진 것이 없는 것인지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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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레의 레퀴엠(Requiem by Gabriel Faure)

레퀴엠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모차르트의 일대기를 그린 ‘아마데우스’라는 영화에서였습니다. 영화 속에서 모차르트의 재능을 시기하는 것으로 그려진 살리에리가 병약해진 모차르트에게 주문한 곡이 바로 장송곡인 레퀴엠입니다. 예술적 상상의 산물이긴 하지만 레퀴엠을 작곡하던 모차르트는 결국 병이 깊어져 작곡하던 장송곡을 끝마치지 못하고 사망하게 되어 자신의 장송곡을 쓴 셈이 되고 말았습니다.

친구였던 쥐스마이어가 마무리를 한 레퀴엠은 모차르트의 사후 널리 연주가 되었고, 베르디, 베를리오즈, 포레 등이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런 모차르트의 작품에 베르디와 포레의 곡을 포함해 3대 레퀴엠으로 불리는데, 이 중 포레의 곡은 다른 곡들이 신의 심판이나 최후의 날과 관련된 무거운 분위기인데 반해 따뜻하고, 평화로운 느낌을 줍니다.

포레는 자신의 레퀴엠이 죽음에 대한 공포를 담고 있지 않다는 비판에 대해 자신은 죽음 이후의 영원한 안식과 평화로운 천국에서의 시간을 표현하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포레가 레퀴엠을 쓰기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곡을 쓰던 중 어머니도 돌아가셔서 부모님의 영면을 기원하며 쓴 작품이라서 다른 레퀴엠과는 다른 분위기인 것도 같습니다.

주말에 이태원에서 많은 사람들이 불의의 사고로 삶을 마감했습니다. 죽음을 앞둔 그들이 느꼈을 공포와 고통이 어떠했을지 상상하기도 어렵습니다. 오늘 오랜만에 포레의 레퀴엠을 꺼내 들으면서 갑작스런 사고로 떠난 이들이 안식을 찾길 빌었습니다. 남은 유족들과 부상자들에게도 많은 국민들의 위로의 마음이 전해지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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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0. 에너지경제신문 칼럼 기고 – 기대와 우려 엇갈리는 테슬라봇

테슬라와 그 설립자인 일론 머스크는 끊임없이 화제를 몰고 다니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테슬라봇’이라 불리는 인공지능 로봇의 프로토타입을 공개하면서 이러한 로봇들을 수백만대 생산해서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실제 실현이 가능할지는 지켜봐야 할 일입니다.

또한, 일론 머스크는 궁극적으로 일반 인공지능(AGI)를 가진 로봇을 만들어 인류의 문명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겠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습니다. 기존에 자신이 인공지능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했던 것을 생각하면 입장이 바뀐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런 위험이 억제된 인공지능 로봇을 개발하겠다는 의지로도 보입니다.

제가 논문과 책을 내기도 했고, 관심을 가지고 있던 분야라서 그런지 테슬라봇이 공개된 후 이 주제로 칼럼을 한번 써야겠다는 결심하게 됐습니다. 칼럼의 분량이 제한되어 모든 내용을 담지는 못했지만, 핵심적인 내용만으로도 일론 머스크와 테슬라가 추구하는 방향성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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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방스에서 인생의 새로운 화살표를 그리다 2

저와 아내는 아를을 벗어나 1시간 정도를 달려 우리에게 아비뇽 유수로 많이 알려져 있는 아비뇽에 도착했습니다. 교황청이 있었던 곳이자, 유서 깊은 구시가지가 남아 있는 아비뇽은 천주교 신자인 아내가 꼭 방문하고 싶어하던 도시였습니다. 저 역시 역사가 오래된 골목길과 문화유적을 좋아하니 서로 의견이 일치했던 셈입니다.

오래된 도시답게 아비뇽은 자동차에 매우 불친절한 편이었습니다. 일단 자동차가 들어갈 수 있는 지역이 제한되어 있고, 골목도 매우 좁아서 까딱하면 차량이 벽에 부딪히기 쉽게 생겼습니다. 골목에 숨어 있는 숙소를 찾는데 고생을 좀 하다가 호텔에 전화를 하니 주인이 직접 나와서 자동차를 다른 곳에 주차해야 한다고 알려줬습니다. 주인의 안내를 받아 골목 한켠에 주차해뒀던 차를 끌고 다시 주차장을 찾아 거리를 빙빙 돌아다니다가 마침내 지하 주차장에 주차할 수 있었습니다.

차를 주차한 후 저와 아내의 캐리어를 끌고 자갈로 포장된 길을 따라 숙소인 La Banasterie에 간신히 도착했습니다. 생각보다 거리가 있어서 이동하다가 제 캐리어 바퀴 하나가 부서지는 불상사가 발생했지만, 그래도 다행히 숙소에는 잘 도착했습니다. 저희가 묵은 호텔은 오래된 주택2채를 연결해 리모델링했는데, 짐을 들고 나르는 계단이 좁은 것을 제외하고는 옛 건물의 느낌을 잘 살리면서도 세련되게 꾸며져 있었습니다. 숙소를 찾고, 3층까지 짐을 옮기느라 다소 지친 저는 방을 배정받자 침대에 대(大)자로 누워 잠시 휴식을 취했습니다. ㅎㅎ

방에서 짐정리를 하고, 기운을 차린 후 호텔 사장님에게 아비뇽에서 방문할 만한 곳들을 문의했더니 교황청과 다리, 미술관들과 좋은 레스토랑들을 소개해줬습니다. 저와 아내는 일정을 확인한 후 첫날에는 아비뇽에서 가장 유명한 교황청부터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들어간 교황청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지만 내부를 둘러보면서 새로운 사실들을 많이 알게 됐습니다. 아비뇽 교황청이 상당히 오랫동안 계속 있었다는 것도 의외였습니다.

아비뇽 교황청이 만들어진 것이 프랑스왕의 영향력 때문이어서 그런지 교황청 안에도 프랑스 왕가와 관련된 상징물이나 조각상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젊은 나이에 요절한 부르봉 왕가의 루이 10세를 기념하는 조각상에서는 왕과 왕비가 중심에 있고, 교황은 그 옆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공간적 배치를 통해 아비뇽에 있었던 교황이 어떤 지위에 있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티칸의 베드로 성당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아비뇽 교황청도 곳곳이 정교한 장식과 웅장한 천장을 통해 교황의 권위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교황청 내부를 모두 돌아보고 나면 보통 그렇듯이 기념품 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른 곳과 달리 이 곳은 교황과 관련된 물건들을 중심으로 판매가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특히 아비뇽에 있던 교황이었던 요한 22세의 여름 별장이 있던 마을에서 재배한 포도로 빚은 와인을 팔고 있었습니다. 교황의 새로운 성이란 의미의 샤토네프 뒤 파프(Chateauneuf du Pape) 와인은 훌륭한 맛으로 유명한데, 특히 이 곳에서는 창고에서 오랜 시간 보관해 먼지가 쌓인 와인을 판매하고 있어서 더욱 기억에 남는 기념품이 되었습니다. 이번 여행의 추억으로 아비뇽 교황청 마그넷도 하나 샀습니다.

교황청을 둘러보고 나니 시간이 금방 가버려 배에서 식사 시간을 알리는 신호가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저희는 미리 예약해뒀던 Avenio라는 레스토랑으로 향했는데 코로나의 여파로 관광객들이 없었던 덕분인지, 이 레스토랑은 미슐랭 원스타 등급인데도 당일 점심에 예약이 가능할 정도였습니다. 이 레스토랑은 전채부터 메인 요리를 거쳐 디저트까지 합리적인 가격에 아름다운 플레이트와 프로방스의 풍성한 맛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아내는 양 어깨살 스테이크와 디저트에 만족했고, 저는 특히 프로방스에서 유명하다는 비둘기 요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아비뇽의 옛 이름이라는 Avenio에서 행복한 저녁을 마치고, 적당히 취한 한국인 부부가 밤거리를 어슬렁거렸습니다. 약간은 쌀쌀한 날씨였지만, 이렇게 여유있게 한적한 유럽의 밤거리를 걸을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았기에 밤하늘 아래 오래된 골목길들을 이리저리 유람했습니다. 자동차로 이동도 했고, 많이 걷기도 한데다 와인까지 한 잔한 터라 숙소에 돌아와서는 아내와 저 모두 푹~~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에는 분위기있는 숙소의 응접실에서 아침식사를 했습니다. 부부가 운영하는 호텔은 구도심에 있어 크지는 않았지만 최근에 리모델링을 했는지 실내 인테리어나 가구들이 모두 세련된 느낌이었습니다.

호텔 사장님이 직접 구운 빵과 차로 아침을 든든히 먹고, 프랑스에서 아주 유명하다는 민요에 나온다는 아비뇽 다리를 보러 갔습니다. 생 베네제교라 불리는 다리는 원래 12세기부터 론강을 건널 수 있는 다리였는데, 이제는 2/3 정도만 남아 있었습니다. 요금을 내면 다리 위로 올라가 구경을 할 수도 있다는데 아침이라 그런지 기온도 낮고, 요금도 생각보다 비싸서 그냥 옆에서 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습니다.

아비뇽 다리까지 본 후 드디어 본격적인 쇼핑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저희 부부가 아비뇽에서 사고 싶었던 것들이 몇 가지 있었는데, 바로 수제 초콜렛과 프랑스 전통 리큐르인 샤르트뢰즈(Chartreuse)였습니다. 아비뇽에는 백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수제 초콜렛 가게가 있어 선물도 하고 몇개 먹어보고 싶었고, 샤르트뢰즈는 연애할 때 바에서 우연히 함께 마시게 됐는데 그 맛이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프랑스에 가면 꼭 사서 마시자고 했었던 술이었습니다.

약간 시간이 일러서 수제 초콜렛 가게가 아직 문을 열지 않았던 탓에 먼저 주류점에 가서 샤르트뢰즈를 사기로 했습니다. 먼저 들렀던 와인 상점에서는 팔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상점을 찾아가다가 우연히 큰 길가에서 주류점을 발견했습니다. 가게에 들어가서 샤르트뢰즈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 술이 있냐고 물었더니 어떤 걸 원하냐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한편으로는 반가우면서도 샤르트뢰즈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기 때문에 뭐라고 대답을 할지 망설이고 있는데 사장님이 카운터 옆에 전시되어 있는 샤르트뢰즈들을 보여줬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자주 보이는 녹색과 노란색 뿐만 아니라 화려하게 디자인된 스페셜 에디션도 있엇습니다. 프랑스 현지에서는 훨씬 저렴했기 때문에 이왕이면 특별한 것을 사자는데 아내와 의견이 일치해서 Cuvee des Meilleurs Ouveriers de France Sommeliers라는 이름의 샤르트뢰즈를 샀습니다. 나중에 집에 와서 마신 이 술은 130종의 약초를 섞어 만든다는 비법 덕분인지 45%라는 알콜도수에도 불구하고 부드러운 목넘김에 다채로운 향과 달콤하면서도 크리미한 맛으로 우리를 사로잡았습니다.

원하던 술을 산 기쁨에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다시 초콜렛 가게로 향했습니다. 개장 시간이 된 초콜렛 가게에서 우리보다 먼저 온 일본 관광객들이 가게 이름이 적힌 쇼핑백을 들고 나오는 것을 본 우리는 서둘러 가게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상점 안에는 작은 크기의 다양한 초콜렛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가격표를 보니 오래된 역사와 명성이 가격에도 포함된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유명한 가게라고 하니 지인들을 위한 선물을 몇 개 구입한 후 우리가 먹을 것들도 골라서 챙겼습니다.

쇼핑에 정신이 팔린 사이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가서 막상 체크아웃을 하려고 하니 시간이 좀 빠듯했습니다. 서둘러 숙소로 돌아가서 새로 사온 물건들을 캐리어에 집어 넣은 후 다시 낑낑대며 짐을 아래층으로 옮겼습니다. 캐리어를 끌고 돌 바닥을 지나 멀리 주차장까지 이동하는 것은 너무 힘들 것 같아 아내가 숙소에서 짐을 지키고 있고, 제가 차를 몰고 숙소 근처로 오기로 했습니다. 저는 차량이 주차되어 있는 주차장으로 가다가 교황청 옆에 있는 아비뇽 대성당을 들렀습니다.

대성당은 전체적으로 화려하지는 않지만 순백의 깔끔한 인상을 주는 성당이었는데, 성당 내부의 기도하는 조각상 및 스테인드 글라스와 대성당 앞에 있는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상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아내가 나중에라도 보고 싶어할 것 같아 아비뇽 대성당 내부를 부지런히 사진 촬영한 후 아내가 오래 기다린다는 생각에 서둘러 주차장으로 갔습니다. 차에 시동을 건 후 골목골목을 돌아 호텔 앞에 세운 후 얼른 짐을 싣고 아내와 함께 다음 여행지인 고흐드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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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보헤미안 카페의 추억

저는 대학 때 풍물패에서 동아리 생활을 했습니다. 그 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그 중에는 교환학생으로 온 나이 많은 누나와 친하게 지냈던 추억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누나는 벨기에로 입양이 됐는데 런던 정경대학을 다니던 중 자신이 태어난 나라가 궁금해 교환학생으로 왔고, 우리나라의 전통 음악을 배우고 싶어 풍물패에 들어왔던 겁니다.

동아리방에서 만난 케이티 누나와 친해진 저는 함께 어울리면서 이야기도 많이 했는데, 저를 양동생이라 부르던 누나가 가끔 학교 근처의 카페에 데리고 갔습니다. 지하에 있는 카페였는데, 카페 이름이 ‘보헤미안’이었습니다. 체코의 한 지방인 보헤미아에 사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보헤미안은 집시처럼 자유로운 생활을 한다는 뜻으로 쓰이는데, 누나는 제게 커피가 맛있는 카페라고 소개했습니다.

커피를 즐기는 손님들 중에는 특히 외국인들이 많았는데, 누나와 평소 친분이 있는 사람들도 여럿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인테리어가 세련된 지하 공간은 진향 커피향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저는 커피를 즐기는 편이 아니지만 당시 아늑했던 카페의 분위기는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이후 누나가 영국으로 돌아간 후에도 몇 번 이메일과 엽서를 주고받았는데, 제가 군에 입대한 후 시간이 흘러 연락이 끊기고 말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제대 후 그 때 갔었던 보헤미안이란 카페를 찾아봤지만 이미 문을 닫았는지 운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오래된 기억 속에서 희미해졌던 보헤미안 카페에 대한 기사를 우연히 최근 보게 됐습니다. 알고 보니 강릉의 커피 붐을 이끌었던 분이 바로 그 보헤미안 카페의 사장님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세상이 참 좁다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듭니다. 케이티 누나도 졸업 후 한국으로 돌아온다고 했는데, 알 수는 없지만 앞으로 만날 날을 기약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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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뢰인의 난민지위 인정

얼마 전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가 한 통 걸려왔습니다. 제가 맡고 있던 난민신청 사건의 딸이었습니다. 난민신청을 한 아버지는 한국어를 잘 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건을 진행하면서 한국어에 익숙한 딸을 통해 통화를 하곤 했는데, 흥분한 목소리로 제게 말했습니다.

“변호사님, 오늘 오전에 아버지가 난민인정증명서를 받았대요.”

이의신청 단계에서 이례적으로 추가 면접을 한 사건이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전화로 실제 난민증명서를 받았다는 말을 들으니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제가 처음 사건을 맡은 후 2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는데 계속 결정이 나지 않아서 당사자도, 저도 모두 힘들었습니다. 이의신청 단계에서 추가 면접을 이후 추가로 자료를 요청받았는데, 이미 오랜 기다림과 절차들에 지친 의뢰인이 더 이상 줄 자료가 없다며 포기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메일과 전화로 계속 설득을 했는데, 다행히 딸이 아버지를 설득하는데 도움을 줬습니다. 어렵사리 딸의 협조로 추가 자료들을 구했고, 자료들을 제때 법무부 조사관에게 제출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제 의뢰인은 4년 가까운 시간이 흘러 길고 쓴 인내의 열매를 맛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현실을 고려하면 난민으로 인정받았더라도 한국에서의 정착이 쉽지만은 않겠지만 전화를 통해 들은 밝은 목소리에는 기쁨과 희망이 가득한 것 같았습니다. 의뢰인과 그 가족들의 행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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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국대기실’ 운영 관련 국회 토론회 발제

저는 지난 주 국회에서 열린 출입국항 출국대기실 운영 관련 토론회에 참석했습니다. 박주민 국회의원, 대한변호사협회, 난민인권네트워크 및 유엔난민기구가 공동으로 주최한 토론회였는데, 기존에 민간에서 운영하던 출국대기실의 운영을 국가가 담당하는 내용의 출입국관리법 개정에 대한 평가와 향후 과제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였습니다.

제가 난민과 이주외국인 관련 업무를 하면서 대한변협에서 관련 위원회 활동을 한 지도 8, 9년 정도 된 것 같은데, 과거 외국인 보호시설 조사를 기획하고 잘 마무리한 경험이 있어 출국대기실에 관한 발제를 맡게 되었습니다. 과거에 문제가 되었던 상황에 대해 간단히 언급을 하고, 최근 출국대기실 운영 주체가 항공사 운영위원회에서 국가로 변경되면서 어떤 점에서 개선이 되었는지 및 미흡한 점은 무엇인지에 대한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출입국관리법 개정 과정에서 법무부도 많은 고민을 한 것 같았고, 출국대기실 관련 법령 개정으로 분명 개선된 부분들이 있지만 아직도 다소 불분명한 부분이나 미흡한 부분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법무부 역시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 추가적인 법령 개정과 실무 지침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나가겠다는 인식을 갖고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한민국의 관문인 공항 등 출입국항에서 외국인들이 가급적 우리나라에 대한 좋은 인상을 갖고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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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방스에서 인생의 새로운 화살표를 그리다 1

2022년 3월은 제 인생의 새로운 막이 열리는 시점이었습니다. 앞으로 평생을 함께 할 동반자가 생긴 때이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인 기준으로는 제 결혼이 늦은 편이라 어떤 사람과 결혼을 할 것인지 가족들이나 주변 사람들이 궁금해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오랜 시간을 찾아헤맨 끝에 다행히 저와 잘 맞는 사람을 만나게 됐습니다.

그렇게 제 주변의 많은 친구들이 가정을 이룬 후 저도 마침내 든든한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게 됐습니다. 여자친구가 아내가 되는 다양한 절차와 노력을 거쳐 결혼식을 앞두게 되었는데, 이후에도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결혼식 3주 전 제가 코로나에 걸려 1주일을 집에서 격리하기도 했고, 결혼식 3일 전에는 오미크론 대확산이 절정에 이르러 하루에 코로나 확진자가 60만명씩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러다 정말 결혼식을 못 하는 건 아닌가… 하고 여자친구와 한 걱정을 했지만 그래도 결혼식은 어찌어찌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결혼을 앞두고 아내와 저는 결혼식보다는 오히려 신혼여행에 더 정성을 쏟았습니다. 사실 신혼여행을 준비하던 초기에는 입국 시 격리가 있던 터라 해외로 신혼여행을 가는 것이 가능할지 고민도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당시 분위기가 입국 시 격리가 해제될 것 같아서 일단 항공기와 숙소는 예약해두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역시나 결혼식을 1주일 앞두고 입국 시 격리가 해제되어 폭등하는 항공권 가격을 보면서 미리 예약해두길 잘했다고 가슴을 쓸어내리고는 훌쩍 비행기를 탈 수 있었습니다.

신혼여행을 어디로 갈 것인지 아내가 아직 여자친구일 때 많은 얘기를 한 끝에 프로방스 지방을 택했습니다. 이탈리아와 접해 있는 프랑스 남동부의 프로방스는 작은 도시와 마을들이 퍼져 있는 곳인데, 오랜 역사만큼이나 옛 모습을 잘 간직한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더구나 아내가 천주교 신자라 아비뇽에 가보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해서 저도 많이 이동하지 않고, 천천히 즐길 수 있는 프로방스에 찬성하게 됐습니다.

예식이 끝난 후 인사도 하고, 뒷정리를 한 후 비행기를 타느라 저녁 9시 좀 넘은 시간에 약간 빠듯하게 인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때문인지 공항에 이용객이나 공항직원들이 거의 없어서 고요할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한적한 공항을 보니 신기하면서도, 항공사나 여행사를 비롯해 그 직원들이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에 안타까운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희는 터키항공을 탔는데 오랜만에 먹는 기내식은 더 맛이 있었고, 피곤해서인지 술 한잔을 마시고 잠이 들었습니다.

이제 나이가 들어서인지 비행시간이 전보다 길게 느껴졌는데, 그래도 중간에 이스탄불에서 경유를 해서 걷기도 하고 라운지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피로를 좀 풀었습니다. 다시 마르세유행 비행기를 타고 총 15시간 이상 걸리는 머나먼 이동을 끝내고 나니 마르세유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저희는 미리 렌트카를 예약해뒀는데, 다행히 렌트카 업체가 공항 바로 앞에 있어서 별 고생하지 않고 차를 빌려 바로 숙소가 있는 아를로 출발할 수 있었습니다.

아를(Arles)은 마르세유에서 1시간여 거리에 있는 작은 마을로, 론강변에 위치해 있습니다. 론강은 주변이 와인산지로도 유명하지만 고흐의 그림 배경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첫번째 머물게 된 아를에서는 매번 식사에 와인을 곁들이고, 고흐가 남긴 유산을 찾아다니게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5시가 조금 안 되어 숙소인 오텔 쥘 세자르에 도착해 짐을 풀고 저녁을 먹으러 호텔을 나서는데, 호텔 앞에 조명이 멋지게 켜져 있었습니다.

예약할 때는 호텔 이름이 무슨 뜻인지 알듯 말듯 했는데, 현지에 와서 직접 스펠링을 보니 율리우스 카이사르 즉, 줄리어스 시저였습니다. 찾아봤더니 이 곳은 17세기에 카르멜회 수녀원이었는데, 최근 리모델링을 거쳐 호텔로 개장한 곳이었고, 호텔 방 내부도 오래된 가구들이 비치되어 있었습니다. 숙소에서 짐정리를 하고 나오느라 약간 시간이 지체되어 6시로 예약한 식당으로 서둘러 갔습니다. 프랑스에서의 첫 식사라 프로방스 가정식을 하는 곳을 골랐는데, 평일이라 그런지 저희가 갔을 때는 손님들도 많지 않고 밝은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프로방스에서 유명한 로제와인과 현지 채소와 치즈 등 유제품으로 만든 메뉴들로 건강식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배불리 식사를 마치고 아내와 함께 프랑스 작은 마을의 조용한 뒷골목을 걷노라니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물론, 비도 오고 여기저기 문을 닫은 상점들이 많았지만 그래도 주변을 둘러보면서 내일 어디에 갈지 살펴보기도 했습니다. 더구나 바깥공기는 시원해서 산책을 하기에는 참 좋았습니다. 산책을 마치고 들어가니 장거리 여행으로 인한 노독이 몰려왔는지 침대에 쓰러져 푹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은 아를 인근에 있는 님(Nimes)에 가기로 했습니다. 님은 로마의 판테온과 더불어 가장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는 메종 카레라는 로마시대 신전과 원형 경기장으로 유명한데, 원형 경기장은 아를에도 있어서 신전을 보러 간 것이었습니다. 아우구스투스의 아들들에게 봉헌된 메종 카레는 서기 4~7년에 건립되었는데, 지금으로부터 2천년 정도 된 건축물입니다. 님은 또 청바지의 원료인 데님(Denim)의 대표적 산지인데 원래 Serge de Nimes에서 유래된 명칭이라는 것입니다.

님에 도착해 신전에 가기 전 아내가 여기에 유명한 제과점이 있다면서 거기에 먼저 들르자고 했습니다. 그 말에 혹해서 Maison Villaret로 갔더니 아내 말대로 우리나라에서는 잘 보지 못한 빵들과 예술작품 같은 초콜렛들이 진열장에 가득 놓여 있었습니다. 날도 춥고 배도 고프던 차라 아침을 따뜻한 차, 초콜렛, 파이로 해결하기로 했습니다.

몸을 따뜻하게 덥힌 후 제과점을 나섰는데, 가까이에서 본 메종 카레는 최근에 새로 보수공사까지 해서 몇년 전에 지었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하얗고 깔끔했습니다. 님에 가게 된 것은 바로 이 로마신전을 구경하기 위해서였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이면 우리가 님에 간 날에 메종 카레에서 프랑스의 역사 드라마를 촬영하고 있어서 입장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메종 카레를 빙 둘러서 본 후 사진을 찍고 다시 아를로 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님과 아를은 차로 약 1시간 정도 걸리는데, 님에서 돌아오는 길에 고흐가 랑글루아교라는 도개교를 그린 장소에 들르기로 했습니다. 원래 있던 도개교는 너무 낡아서 철거하고 새로 설치했다고 하는데, 그래도 고흐 그림에 있는 도개교와 비슷한 모습이었습니다. 도개교보다도 더 마음에 들었던 것은 도개교 인근 강변의 풍경이었는데, 선선하게 부는 바람에 흔들리는 수풀… 참 목가적이고 평화로웠습니다. 아내가 사진도 찍어줘서 잠시 포즈도 취하고, 함께 강변을 잠시 걷다가 차를 몰고 아를 시내에 있는 공동묘지, 알리스캉으로 이동했습니다.

알리스캉(Alyscamps)은 로마시대부터 부유층들이 뭍혔던 공동묘지로, 고흐가 고갱을 초청해 함께 작품을 그렸던 포플러나무와 단풍나무가 길 양편에 우람한 기둥처럼 서있는 곳입니다. 전체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묘지들과 세밀한 조각이 새겨진 묘비들이 줄지어 있는 곳으로 단풍이 드는 가을에 왔으면 더 좋았을 뻔 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떨어지는 낙엽과 처연한 묘지가 서로 잘 어울릴 것 같아서입니다.

묘지를 나와 아를 시청 지하에 있는 터널을 둘러본 후 다시 아를 원형 경기장으로 향했습니다. 아를이 그다지 크지 않은 도시라 시청에서 원형 경기장까지 거리도 걸어서 얼마 안 걸렸는데, 계단을 한참 걸어 원형 경기장 위에 오르니 론강과 아를 시내 전경이 사방으로 훤히 보여 가슴이 시원하게 뻥 뚫리는 느낌이었습니다.

원형 경기장 위에서 부드러운 햇살과 바람을 즐기다 졸음이 몰려오는 듯 해서 몸을 일으켜 다시 계단을 내려왔습니다. 원형 경기장 아래에 기념품 가게에 들렀는데, 마르세유 공항에 내린 후 처음으로 한국인 커플을 보게 됐습니다. 우리 부부가 신혼여행을 갈 당시가 코로나 대확산기라 프랑스에서도 거의 한국인들을 볼 수 없었는데, 아마도 그 한국인들도 신혼여행을 온 것 같았습니다.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녔더니 배도 고프고, 피곤하기도 해서 와인과 안주거리를 사서 숙소에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인근 마트에 갔더니 이럴 수가~~ 프로방스 현지 생산 와인들이 엄청나게 저렴한 가격에 마트 진열대를 가득 메우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프로방스 지방이 분홍빛깔의 로제 와인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로제 와인들을 사기로 했는데, 워낙 종류가 많다보니 어떤 걸 살지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됐습니다. 이렇게 매의 눈으로 와인들을 고르고 있는 제가 신기했는지 아내가 쇼핑하는 제 모습을 찍기도 했습니다. 숙소에 돌아가서는 아내와 마트에에서 사온 와인과 안주들로 포식을 했습니다.

아를에서의 마지막 날은 고흐 미술관, 고흐의 그림 중 노란 테라스로 유명한 카페, 고흐가 머물렀던 정신병원을 감상할 계획이었습니다. 먼저 좁은 골목골목을 차를 몰고 힘들게 고흐 미술관을 찾아갔더니 웬걸~~ 주차장이 없다고 해서 다시 차를 끌고 좀 떨어져 있는 공영주차장에 차를 대야 했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걸어가기에 멀지는 않아 미술관에 갔더니, 고흐 미술관 직원이 설명하길 현재 미술관에는 고흐 작품이 1점만 전시되어 있고 나머지 작품들은 다른 곳에 전시하기 위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허탈해진 우리는 미술관 앞에서 기념 사진만 찍고 인근에 있는 카페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고흐의 그림 ‘아를의 포룸광장의 카페 테라스’로 유명한 카페는 아침이라 아직 영업을 하기 전이었습니다. 원래 그림에 있는 것과 거의 유사하게 다시 리모델링을 한 것이라는데 영업 시작 전이라 아쉽게도 차 한 잔도 마시지 못하고 떠나야 했습니다. 차는 마시지 못하지만 그래도 사진을 한 장 찍어야겠다는 생각에 카페를 배경으로 기념 사진을 한 장 남겼습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고흐가 머물렀던 정신병원인 에스파스 반 고흐(Espace van Gogh)를 찾았는데, 이제는 더 이상 정신병원으로 운영되지 않고 도서관과 전시관으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고흐가 화려한 그림으로 남겼던 정원에는 여전히 온갖 꽃들이 만발해 있어 이 곳을 찾는 방문객들을 기쁘게 해줬습니다. 화려한 색채를 뽐내는 아름다운 꽃들에 취해 있다가 한쪽을 보니 예쁜 기념품들을 파는 곳이 있어 어린왕자를 좋아하는 아내에게는 사막여우 스노우 볼을, 고흐를 좋아하는 어머니를 위해서는 고흐 머그컵을 각각 기념으로 샀습니다.

아를에서 고흐와 관련된 장소들을 어느 정도 둘러본 후 숙소로 돌아가는데, 우리 호텔 앞에 있는 성당이 예사롭지 않게 보였습니다. 성당의 외벽에 장식된 조각을 봐도 상당히 오래된 느낌이 들어 한번 안에 들어가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그랬더니 내부에는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되어 있고, 천장도 웅장하게 솟아 있었습니다.

이 성당은 생트로핌 아를 성당이었는데 특이한 것은 2개의 건물이 결합된 형태인데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양식이 혼합되어 있는 등 오랜 세월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성당의 정문 위에는 최후의 심판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고, 검은색 대리석 기둥 사이에는 성인들이 늘어서 있었습니다. 알고보니 나중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 성당에서 고흐가 해바라기를 그렸다고 하는데,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태양이 쏟아져 들어오는 듯한 강렬함에서 영감을 받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서정적이고 편안했던 아를에서 고흐의 흔적을 따라 다닌 우리는 프로방스와 첫 대면을 기분좋게 시작했습니다. 아를이 과거에는 화려하고 큰 도시였다는 알게 된 후 도시의 흥망성쇠처럼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하는 깨달음도 얻게 되었습니다. 이제 자동차의 시동을 걸고 프로방스에서 유명한 또 다른 도시 아비뇽을 향해 다시 출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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