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 매력이 넘치는 베트남 여행 4

호치민은 베트남전쟁 전후 남베트남의 수도였던 사이공이었기에 대통령궁이 있었습니다. 베트남전쟁 중 미군이 철수한 이후 북베트남군의 탱크가 호치민으로 진격해 점령했던 장소 중 하나가 바로 이 대통령궁이었습니다. 당시 대통령궁에 진입했던 탱크 2대가 대통령궁에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대통령궁 안으로 들어가면 남베트남 당시 대통령의 다양한 일상과 업무 공간을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대통령궁 옥상에는 북베트남군이 진격해오자 당시 남베트남 대통령이 탈출하려고 했던 것인지 헬기도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비록 분단된 국가이기는 했지만 한 국가가 사라지는 장면을 목격한 것 같아 뭔가 쓸쓸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비까지 내린 날이라 더욱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옥상에서 내려다본 대통령궁 앞마당은 주인을 잃은 옛 고궁의 정취마저 느껴졌습니다.

통일궁이라고도 불리는 대통령궁을 나선 후 전쟁박물관을 찾았습니다. 베트남전쟁은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미국과의 전쟁 이전에 이미 베트남을 식민지로 삼았던 일본, 프랑스와 벌인 전쟁부터 시작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희생이 있었고, 미군이 진주한 이후에는 우리나라 군대도 참전한 아픈 과거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전쟁박물관에 가보면 물론 식민지 시대 프랑스, 미국 군대의 잔인한 학살과 만행에 대한 고발 내용도 일부 있습니다. 하지만 미군이 살포한 에이전트 오렌지라 불린 고엽제나 지뢰로 피해를 입은 베트남인들만이 아니라, 군복무 당시 노출된 고엽제로 고통받는 미군이나 심지어 우리나라 군인의 모습이나 증언까지도 기록해놓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는 전쟁이 아닌 평화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물론 일부 선전의 의미도 있겠지만, 이제 베트남은 기존의 증오를 넘어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갈 수 있는 자신감과 힘을 얻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직 분단의 고통이 끝나지 않은 우리의 현실을 생각해보면 오랜 시간 크나큰 아픔을 겪었지만 이제 그것을 극복해낸 베트남이 약간 부럽기도 했습니다. 베트남 사람들 중 상당수는 우리나라가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미국의 용병으로 참전한 것일 뿐이니 이해한다고 말한다는데, 이런 점 때문에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더 커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 날은 그런 복잡미묘한 생각에 잠겨서 조용한 바에 앉아 술을 한잔 했습니다.

베트남 여행의 후반부를 보냈던 호치민에서는 비로 인해 계획했던 일정들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습니다. 호치민 시내 구경을 마친 다음날에는 원숭이들이 주인인 껀저섬 투어를 갔는데,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진입로가 물에 잠긴데다 뻘처럼 변해서 저를 포함한 일행들의 신발을 잡고 놔주지 않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원래 예정되어 있던 일정의 반 이상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 와중에도 원숭이들은 함께 걷던 한 일행의 선글래스를 번개같이 낚아채 간 후 공원 관리인들이 주는 바나나와 교환하는 쇼맨쉽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몇년 만에 다시 찾은 베트남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습니다. 아직 개발도상국의 모습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지만, 나라 전역에서 느껴지는 열정과 역동성이 마치 우리나라의 1990년대, 2000년대 초를 연상하게 했습니다. 이전보다 점점 활기를 잃어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우리나라의 상황과 비교되어 제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여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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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학교 삼성융합의과학원 강의

올해도 인공지능과 관련해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특강을 했습니다. 전에 강의를 했던 대학원 강의실이 위치해 있는 건물이 일원역 옆으로 이전을 한 터라 주차를 삼성병원 내 주차장에 한 후 한참을 걸어 일원역까지 가느라 숨이 가빴습니다. 강의시간에 약간 늦은데다가 마스크까지 써서 더 숨이 찼던 것 같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강의실이 있는 층에 내리니 담당 교수님과 조교가 기다리고 있어서 서둘러 강의실로 향했습니다.

저는 몇년 전부터 성균관대학교 삼성융합의과학원에서 해마다 1번 정도씩 하고 있습니다. 올해 초에도 교수님이 작년에 제가 석사 학위받은 것을 알고 해당 내용으로 강의를 요청했습니다. 저도 마침 석사 학위를 받기도 했으니 학위 논문 관련 내용에 대해 강의를 하고도 싶었기에 흔쾌히 승낙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승낙을 하고 보니 그동안 몇 차례 강의를 하면서 제 논문의 많은 내용을 이미 소개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새로운 내용도 추가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 학위 논문 내용 일부와 최근 많은 관심을 끌고 있는 개인정보보호 문제를 의료 현장의 이슈들과 관련시켜 정리한 후 학생들에게 강의했습니다.

거의 2시간 가까이 쉬는 시간도 없이 강의를 했는데, 다행히 조는 학생들은 별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제 논문 주제와 관련된 내용들을 계속 연구해오다 보니 이제 익숙한 느낌이 드는데 학생들은 그렇지 않은 듯 눈을 반짝이며 꽤 흥미를 갖고 듣는 것이 느껴져 기분이 좋았습니다. 국제거래의 3대 이슈 중에 하나인 개인정보보호 문제는 의료 현장에서도 중요한 화두 중 하나인데 저도 새로운 자료들을 찾으면서 강의 준비를 하다보니 새로 알게 되고 배우는 것이 많았습니다.

강의를 마치고 교수님과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배가 고파서 차에 있던 간식을 꺼내 먹다 생각해보니 제가 대학 학부생이었을때 교수나 강사들이 제 나이보다도 젊은 경우도 많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학생들을 보다 보면 세월이 흘러간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데, 문득 그 세월만큼 제가 성숙해졌는지 돌아보게도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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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공사법 제정과 공간정보 관련 법 개정 프로젝트 자문

작년 하반기부터 참여했던 법제 정비 프로젝트가 얼마 전에 끝났습니다. 처음에는 공공기관의 설립근거가 되는 공사법을 제정하는 것이 프로젝트의 목표였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공사법 제정은 생각보다 빨리 진행이 되어 공사의 사업와 관련된 법령의 개정 작업이 주된 내용이 되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전에 해보지 않았던 작업이라 좀 막막했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어떤 방향으로 작업을 해야 할 것인지 느낌이 왔습니다. 다만, 공사의 사업이 다양하다보니 현업 부서와 계속 소통을 하면서 개정할 법령의 내용들에 대한 의견을 들어야 하는데 보수적인 분위기인 공공기관의 특성 탓인지 유기적인 협력이 좀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사법 영역에서 보통 기존의 법을 해석하는 작업을 주로 하는 법률가로서 입법의 영역인 법률 제정 및 개정 작업을 주도적으로 했다는 점에서 나름 보람도 있고, 배우는 것도 많았습니다. 특히 어떤 절차를 통해 법률과 하위 법규명령이 만들어지는지, 중앙행정부처와 국회는 어떤 식으로 서로 소통하면서 법안 내용을 조율하는지, 국회에서 실무적으로 법안이 처리되는 기준이나 방법은 어떤 것인지 등 다른 곳에서는 배울 수 없었던 현장을 경험할 수 있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또한 지난 프로젝트를 하면서 제가 학위 논문을 받았던 인공지능 로봇을 활용할 수 있는 현장의 지식을 보다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공간정보와 관련해 인공지능을 활용한 디지털 트윈이나 스마트 시티 등 빅데이터 처리와 일상 생활에서의 활용 영역에 대한 강의나 기사, 논문 등 간접 자료가 아니라 현장에서 일하는 실무자들로부터 직접 생생한 내용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지난 프로젝트를 함께 했던 컨설팅 업체는 제가 구성했던 저희 법인 팀의 법률자문에 만족해 자율주행자동차법 관련 프로젝트의 법제 부분 자문도 함께 할 수 있겠냐고 요청해왔습니다. 새로운 프로젝트는 다행히 지난 프로젝트가 어느 정도 마무리된 후 진행되는 것이었고, 자율주행자동차는 제 논문 주제인 인공지능 로봇과 밀접해 컨설팅 업체의 제안을 기쁘게 수용했습니다. 앞으로도 법제 정비 관련 업무를 꾸준히 해서 관련 분야에서 많은 실력과 경험을 쌓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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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계약상 인세 미지급과 저작권, 상표권 위반 사건 승소

얼마 전에는 약 4년에 걸쳐 진행했던 민사사건과 관련 형사사건의 결론이 나왔습니다. 영어교재 출판계약을 맺은 저자와 출판사 간 인세 미지급과 출판계약 해지 후 무단 인쇄로 인한 저작권, 상표권 침해가 핵심이었던 사건입니다. 제가 처음 사건을 의뢰받을 당시 의뢰인이 혼자서 진행했던 고소사건에서 이미 일부 사실관계에 대해 검찰의 혐의없음 불기소처분이 나와 있던 터라 이후 사건 진행에 애를 좀 먹기도 했습니다.

의뢰인과 최초 상담을 할 때는 상대방인 출판사에게 미지급 인세 정도만 청구한 후 합의해서 마무리를 할 생각이었는데, 웬걸 출판사에서 갑자기 제 의뢰인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를 제기해서 상황이 예상했던 것과 다르게 진행됐습니다. 제가 맡았던 공사대금 사건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는데, 자신이 줄 돈이 있는 경우 오히려 채권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면 소송을 지연시키면서 돈도 적게 줄 수 있다는 법적 조언을 해주는 것이 트렌드인지… 이해하긴 어렵습니다. 물론 그런 조언들을 받았더라도 그런 생각은 제가 맡은 사건들에서 모두 잘못된 것이었음이 밝혀지게 됩니다.

제 의뢰인은 출판계약상 출판사로부터 선인세를 받기로 되어 있었는데 출판사는 선인세가 아니라 판매부수에 따라 지급하는 후인세이고, 제 의뢰인이 이후 자신과 계약을 해지하고 다른 출판업자와 개정판을 내는 바람에 손해를 입었다고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이었습니다. 형사고소 사건이 불기소가 되면서 민사소송 역시 시작은 좀 어렵게 진행되었습니다. 특히 출판사측은 자신이 원고이면서도 손해배상 관련 주장이나 입증을 하지 않고 계속 절차를 지연시키기만 했고, 1심 민사재판은 2년 가까이 끌다가 계약상 선인세 지급이 맞고, 계약 해지 역시 정당하지만 미지급 인세나 저작권을 위반해 무단으로 인쇄된 저작물에 대한 부당이득금 지급이나 손해배상은 인정하기 어렵다는 판결 내용 자체로 모순된 판단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이런 결론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저와 의뢰인은 항소를 하면서 사건 진행을 다시 검토해봤습니다.

고민을 한 결과 저는 의뢰인과 상의를 해서 기존 불기소 처분 대상이 아니었던 다른 무단 인쇄 사실들이 있으니 이에 대한 출판사의 저작권과 상표권 위반을 다시 형사고소하기로 하였습니다. 새로운 증거들과 거래 업체의 관련자들 진술서를 수집해서 출판사와 출판사의 실질적 대표에 대한 고소를 진행한 결과 마침내 출판사와 실질적 대표가 기소되어 벌금형과 징역형이 선고되어 확정되었습니다. 오랜 고생 끝에 마침내 법원에서 저의 주장이 인정되자, 저는 얼른 민사 항소심 법원에 형사판결문을 제출했습니다. 제 예상대로 민사 항소심 법원에서는 더 심증 정도가 높은 형사 법원에서 유죄 판결이 확정되자 원심판결을 취소하고, 우리가 주장했던 기존 미지급 인세 뿐 아니라 부당이득금 거의 전액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최초 사건 상담 이후 무려 4년이 넘게 걸린 사건이었고, 1심에서는 사실상 패소한 것과 마찬가지 상황이었는데, 이런 결론을 뒤집고 승소를 하고 보니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승소 후 저를 만나 고맙다고 하는 의뢰인을 보면서 저 역시 마지막까지 저를 믿고 소송을 진행했던 의뢰인에게 고마움을 표시했습니다. 출판사는 항소심에서 패소한 후 상고를 했다가, 얼마 지나 상고를 취하했는데, 이제 남은 쉽지 않은 문제는 판결에 대한 강제집행이라 할 것입니다. 그동안 출판사의 태도에 비춰보면 판결받은 금원을 얼마나 지급받을 수 있을지 알 수는 없지만, 제 의뢰인의 저작물을 유통시켜 돈을 벌고 있으면서도 손해만 났다고 주장하는 뻔뻔함을 강하게 응징했다는 점에서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기분을 느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약간은 보상을 받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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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 매력이 넘치는 베트남 여행 3

베트남 여행을 계획하면서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 과거 안남왕국의 수도였던 ‘후에’와 작은 도시지만 옛 베트남의 정취가 남아 있다는 ‘호이안’이었습니다. 호이안은 전통 상점 등 아기자기한 멋이 있고, 여행 중 한번 정도 참여해보고 싶었던 쿠킹 클래스도 진행되는 곳이어서 더욱 관심이 갔습니다. 다낭을 떠나 호이안으로 가는 길에는이러한 기대 때문인지 더욱 마음이 설레었습니다.

호이안에 도착한 것은 늦은 오후 무렵이었는데, 출발 전 미리 여행기에서 보았던 것처럼 호이안의 호숫가에서 노을이 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넘실거리는 수면에 비치는 아름다운 주황빛에 잠시나마 근심걱정들을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일행들과 각자 시간을 보내다가 정해진 시간에 만나 저녁을 먹기로 했던지라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다가 나중에는 의자에 앉아 노을만 보고 있는데도 괜히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었습니다.

서로 약속한 시간이 되어 일행과 만나 호이안의 유명한 맛집을 찾아갔는데 다행히 생각보다 대기줄이 길지 않아 자리를 잡고 앉을 수 있었습니다. 그 식당에서 유명한 모닝글로리 볶음과 추천 메뉴를 먹어보니 역시 우리 입맛에도 잘 맞았습니다. 이후 일행들과 함께 기념품 상점들을 돌아다니면서 기념품을 몇 가지 산 후 숙소로 돌아갔는데 상점들을 돌아다니며 구경하느라 피곤했는지 깊이 잘 수 있었습니다.

다음날은 먼저 귀국해야 하는 일행들과 이별을 하고, 혼자 호이안 곳곳을 여유있게 돌아다니게 되었습니다. 호이안은 역시 다낭이나 이후 갔던 호치민 같은 대도시에 비해서 옛 정취가 많이 남아 있었는데 특히 곳곳에 조용한 사당이나 사찰 같은 곳이 있어서 구경할 만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처음에 방문했던 곳은 길가 옆에 있는 연못에 연꽃이 예쁘게 피어 있는 곳이었는데 연꽃들을 보다 보니 시간이 금새 흘러갔습니다.

다시 길을 나서 식사를 한 후 골목길을 돌아다니다가 제가 찾았던 한 사당은 사당에 붙어 있는 사진들이나 설명들을 보면 특정한 가문에서 지은 곳처럼 보였는데 조용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특히 가족들의 것으로 보이는 사진들이 제단 위에 걸려 있어서 그곳이 어떤 곳인지 짐작하게 했습니다. 호이안 골목을 걷다보니 LEE Laundry, KANG Restaurant 등 익숙한 우리나라 성이 붙은 가게들이 보였습니다.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이 주둔하던 지역 근처라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가게 주인이 라이따이한들이라면 살아오면서 적국 군인의 자식으로 겪었을 고난이 어땠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 한편이 아려오기도 했습니다.

뒷골목을 이리저리 둘러본 후에는 관광 안내소를 찾아가 쿠킹 클래스 신청을 했습니다. 쿠킹 클래스는 정해진 시간에 신청자들이 모여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시장에서 요리재료를 산 후 자신이 산 요리재료들을 들고 배를 타서 도착한 작은 섬에 마련된 교실 건물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어떤 음식을 만드는 것인지도 몰랐는데 강사가 알려주는대로 따라하다보니 그래도 다행히 못 봐줄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저도 사람이라 그런지 제가 만든 요리여서 왠지 맛도 더 괜찮은 것 같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ㅎㅎ

호이안에서 혼자 여유있는 시간을 보낸 후에는 마지막 여행지인 호치민으로 이동했습니다. 호치민은 과거 베트남 전쟁에 이은 베트남의 통일 이전까지는 사이공으로 알려졌던 도시로 수도인 하노이보다도 더 발전한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경제수도로도 불리는 호치민의 모습은 역시나 오토바이들이 도로를 점령해 활기가 넘치고, 곳곳에 고층 빌딩이 서 있는 발전된 모습이었습니다. 또한 호치민 중심부를 흐르는 강을 따라서는 시민들이 여유있게 낚시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는데 잔디밭에는 낚시꾼들이 잡았는지 메기 같은 모습의 물고기가 놓여 있기도 했습니다.

호치민시에서는 현지인들의 생활을 있는 그대로 보고 싶은 생각에 에어비앤비로 숙소를 예약했는데, 덕분에 집안에 가파른 나선형 계단이 있는 4층 집에 머물게 됐습니다. 각 층의 방이 마치 스킵 플로어 구조처럼 배치되어 있었는데 오래된 집이긴 했지만 주인 아주머니와 친해져서 식사 외에도 옥수수와 다른 간식들도 얻어 먹으면서 편안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숙소에는 연세가 있는 독일인도 한명 장기 투숙 중이었는데, 원래 독일 IT회사에서 근무를 하다가 독일의 경제성장률이 점점 떨어지자 새로운 기회를 찾아 아프리카에 갔다고 합니다. 이후 다시 베트남으로 와서 일을 한다고 해서 현재는 무슨 일을 하냐고 물었더니 케냐에서 베트남으로 원목을 수입하는 무역업을 한다고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보통 베트남이라고 하면 1차 원자재를 수출하는 곳으로 생각했었는데 이제 베트남도 원목을 수입해서 가공해 판매하는 산업으로 확실히 옮겨 갔다는 것을 느끼게 됐습니다. 최근 국내 기업을 비롯한 글로벌 기업들이 베트남에 하이테크 공장을 세워 운영하고 있다는 기사들을 보면서 베트남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체감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또한, 60세가 넘은 나이에 베트남에 와서 새로운 인생의 기회를 찾고 있는 독일인 사업가를 보면서 그 도전정신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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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 재건축 정비조합 실태점검 관련 서울시 표창

오늘은 서울시에서 표창장을 받아왔습니다. 원래는 작년 12월에 받기로 되어 있던 것인데 코로나로 인해 별도의 수여식을 하지 않게 되어서 담당자가 표창장을 보관하고 있다가 오늘 전달받은 것입니다.

제가 서울시에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따라 재개발, 재건축 조합들에 대한 실태점검에 참여한지도 이제 햇수로 7년째가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시에 정비사업구역이 있는 재개발 조합과 재건축 조합들 40여개에 대한 점검을 해왔고, 조합 총회나 대의원회에 공공변호사로 참여한 것도 수십차례에 이르니 서울시 도시정비사업에 대해서는 나름 경험이 있는 편이라 할 것입니다.

최근 주택 매매가와 전세가가 폭등하면서 재개발, 재건축 사업에 대한 국토교통부나 서울시의 태도도 다소 변화가 느껴집니다. 아마도 앞으로 몇년 간 정비사업구역이 더 늘어날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정비사업구역이 증가한다고 조합의 부정이나 비리를 방관하거나 방치할 수는 없는 것이니 실태점검 역시 더 바쁘게 진행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 역시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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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 매력이 넘치는 베트남 여행 2

옛 베트남 왕국의 수도였던 후에 여행을 마친 후 다시 다낭으로 돌아와 뒤늦게 출발한 일행을 만났습니다. 다낭은 과거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이 주둔했던 지역 부근으로 한국군의 휴양지였던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나트랑(나짱)이 미군의 휴양지로 유명했던 것과 대비되는 곳인데, 이러한 역사로 인해 다낭에는 이른바 ‘라이따이한’들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제는 다낭에 한국기업들이나 한국 자본이 많이 진출하여 몰려오는 한국인 관광객들을 상대로 하여 해변에 초고층 호텔과 식당 등 시설이 많이 들어서 있었습니다.

다낭에서의 첫날 아침은 해변을 따라 호텔에서 빌린 자전거를 타면서 주변 지리를 익히는 것으로 시작했는데, 관광객들을 상대로 한 시설들을 짓느라 그런지 여기저기 공사장이 많았습니다. 저와 일행은 자전거를 호텔에 다시 반환한 후 전날 의논한 것처럼 다낭 시내에서 멀지 않은 마블 마운틴으로도 불리는 오행산을 찾았습니다. 오전에 출발해서 그런지 다행히 관광객들이 생각보다 많지는 않았는데, 관람티켓을 사려고 했더니 매표소가 2곳이나 있어서 좀 헷갈렸는데 자세히 보니 입장을 위한 티켓을 파는 곳과 엘리베이터 티켓을 파는 곳이 구분되어 있어서 산에 온 김에 걸어 올라가기로 했습니다. 습도가 높아 약간 땀을 흘리며 오행산을 올라 정상에 서니 다낭 시내와 바다가 한 눈에 보였습니다.

오행산 정상에서 다시 내려가니 사찰이 하나 보였습니다. 사찰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사자 한쌍이 보였는데, 폐유리 타일로 장식이 되어 있어 가우디 작품인 스페인 구엘 공원에서 보았던 조각품들이 연상되었습니다. 옛부터 내려온 사원인지 아니면 최근에 지어진 것인지 확실히는 잘 모르겠지만 디자인이 현대적인 느낌이 들어서 베트남에 이런 곳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했습니다.

인상깊은 사원을 지나 오행산의 유명한 대리석 동굴로 들어갔습니다. 동굴 안에는 관음보살상과 부처상 등 불교 관련 유물들이 많이 있었는데 다채로운 빛의 조명을 받아 더욱 신비로운 분위기를 내고 있었습니다. 천장에서는 빛이 쏟아져 내려오고 있었는데, 어두운 동굴에서 머리 위 구멍을 통해 내리쬐는 빛을 보고 있자니 아마 예전에 불상들을 보러 왔던 신자들은 마치 하늘에서 영험한 기운이 내려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을 거라고 생각되기도 했습니다.

동굴을 나와 아래로 내려와 출구로 나와서 주변을 둘러보다보니 대리석산이라는 명칭에 어울리게 조각상을 만들어 파는 상점이 많이 보였습니다. 사자나 다른 동물 등 멋진 작품들이 보이기에 구경을 좀 하다보니 시간도 흐르고 햇빛이 강해서 덥기도 하여 식당에 들어갔습니다. 동남아시아에 가면 제가 많이 주문하는 음료수는 수박이나 망고로 만든 주스인데 날도 더워서 수박음료를 한잔 마시니 시원한 것이 아주 맛이 좋았습니다. 식사까지 마친 후 숙소로 돌아갔다가 선선해진 저녁에 야시장을 구경한 후 밤 늦게까지 여는 바에서 일행과 함께 칵테일을 마셨습니다.

다음날 아침에는 전날 마신 술 때문에 좀 피곤해서 천천히 일어났는데, 일행과 함께 다낭 근처에 있는 바나힐에 갔습니다. 바나힐은 베트남이 프랑스 식미지였을 당시 프랑스인들의 휴양지 명목으로 고지대에 건설된 리조트인데 최근에 시설들을 다시 리모델링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긴 케이블카를 설치한 곳이기도 합니다. 길이가 길어서 그런지 케이블카를 타고 한참을 올라간 후 주변 경치를 보니 기대했던 것보다 경치도 좋고 리조트의 놀이시설도 재밌는 것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바나힐에서 생전 처음 루지를 신나게 타보고, 기념품 가게에서 기념으로 손톱깎이도 하나 사면서 돌아다니다 보니 배가 좀 고파졌습니다. 그래서 함께 간 일행과 함께 식당에서 감자칩과 닭꼬치를 사먹고 광장 쪽으로 걸어가다보니 시원하게 물이 솟구치는 분수대 옆에서 예전에 스페인 라플라스 거리에서 본 것과 비슷하게 전신에 금분을 칠하고 화려한 복장을 한 채 관광객들과 사진을 찍어주는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관광객에 대한 홍보 차원에서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유럽 분위기가 물씬 나는 바나힐과 어울리는 느낌이었습니다.

베트남에서 예상치 않게 유럽여행을 온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다시 다낭으로 돌아간 우리 일행은 그날 저녁에 각자 오토바이 뒷좌석에 타고 해변으로 가서 비치 파티에 참여했습니다. 듣던 것보다 해변에 관광객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신나는 노랫소리에 맞춰 가볍게 몸을 흔드면서 손에 든 병맥주를 마시다보니 금새 자정이 지났습니다. 밤이 깊어가자 관광객들이 줄어들어서 우리 일행은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는데 너무 늦어서인지 교통편을 구할 수가 없어 좀 헤매다가 다행히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타고 숙소로 돌아와서 침대에 지친 몸을 던졌습니다. 그렇게 다낭에서의 일정은 끝을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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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의 국가배상청구 사건과 이중의 고난

얼마 전 저는 변호사로서 화가 치밀어 오르면서도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한편 부끄럽기도 한 판결을 받았습니다. 처음 의뢰인과 사건에 대해 상담을 했던 것이 2015년이니 무려 5년 이상 진행했던 사건에 대한 판결이었습니다. 간단히 요약하면 제 의뢰인은 외국인인데 술집에서 종업원의 허위 신고로 지구대에 갔다가 경찰관이 수갑을 채우면서 무리하게 팔을 꺾어서 어깨 관절을 수술해야 했기에 국가와 해당 경찰관을 상대로 배상을 청구한 것이었습니다.

1심에서는 신체감정 신청을 하고, 청구취지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2번이나 담당 재판부가 변경되면서 이리저리 사건이 토스되다가 제 의뢰인이 휴대폰으로 경찰관들을 촬영하고, 지구대에서 난동을 부렸다는 이유로 체포와 수갑을 채운 것이 위법하지 않다는 이해하기 어려운 결론이 났습니다. 제 의뢰인이 실제로 난동을 부렸는지는 오로지 제 의뢰인에게 수갑을 채운 경찰관들의 진술에만 의존한 것이었고, 제 의뢰인이 제출한 동영상은 무시되었을 뿐 아니라 경찰관들을 촬영한 것은 국가인권위원회 결정에 따르면 위법한 것이 아니었기에 그러한 판결을 받아들일 수는 없었습니다. 심지어 제 의뢰인이 부상을 입은 후 고통을 호소하면서 도움을 요청하는데도 경찰관들이 제대로 의료조치를 하지 않은 부분은 아예 판결문에 주장에 대한 판단 자체가 없었습니다.

이에 제 의뢰인과 저는 의논을 한 끝에 항소를 하기로 했는데 먼저 인권위원회 결정에 반하는 판결이유에 대해 반박했고, 경찰관들이 제 의뢰인을 체포할 당시 경찰청 내부 규정과 형사소송법, 유엔인권규약을 위반했다는 내용으로 다투기로 했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보다 더 엄밀하게 사실관계를 살펴보았고, 우리가 석명을 요청한 내용에 대해 피고인 대한민국 정부에게 자료 제출을 명하는 등 절차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1심보다 세심하게 사건을 다루었습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항소심 판결 내용은 역시나 1심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즉, 항소심에서 다투었던 많은 주장들과 증거들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판단을 생략한 채 단순히 부실했던 1심 판결을 인용하면서 오히려 국가배상청구가 단순히 법령 위반만이 아니라 보다 넓은 의미의 인권을 위법하게 침해한 경우에도 적용되지만 이 사건에서는 그러한 위법한 공권력 행사가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인권 침해를 언급한 부분은 항소심에서 우리가 제출한 서면과 자료들 때문에 추가한 것으로 보입니다.

막상 이러한 판결문을 받아보니 처음에는 제 안에서 화가 치밀어오르는 것을 참기 어려웠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주장했던 내용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하나씩 판단하지 않고 모호하게 답변을 회피하면서 단지 1심의 부실하고 오류로 점철된 판결을 그대로 인용할 수 있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특히 제 의뢰인도 계속 말했던 것이지만 설령 피의자라 하더라도 지구대에서 무리하게 강제력을 사용해 수갑을 채우는 과정에서 피의자의 관절이 상할 정도로 부상을 입혔을 뿐만 아니라 이후 아무런 의료조치를 하지 않은 것이 어떻게 위법하지 않다는 것인지, 법원이 알고 있는 위법성 개념이 어떤 것인지 법원에게 묻고 싶을 지경이었습니다.

이런 식의 판결문은 마치 난민불인정처분 취소사건에서 많은 주장을 하면서 증거를 제출했는데도 해당 주장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판단하지 않은 채 이미 마음속에 정해놓은 기각이라는 결론에 맞춰 여러 주장과 증거들만으로는 난민지위를 인정하지 않은 처분이 위법하지는 않다며 주장과 증거에 대한 명확한 판단을 회피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판결은 대법원에 상고를 하고자 하는 경우에도 항소심 판결 중 무엇이 잘못된 판단인지 구체적으로 다툴 수 없다는 점에서 문제가 많을 뿐 아니라 판결로만 말한다는 법원이 자신의 일을 제대로 하지 않고 법리적으로 반박받을 수 있는 내용을 아예 판단하지 않고 회피했다는 점에서도 비판받아 마땅한 것입니다.

국가배상청구사건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위법한 공권력행사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솔직히 법리적인 측면만이 아니라 정책적이거나 정치적인 측면까지 고려될 수 있어 인용되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더구나 제 의뢰인은 외국인이기에 대한민국 국민인 경찰관과 대한민국 정부의 잘못을 다투는 성격인 국가배상청구에서 이중의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것은 이미 충분히 각오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런 이유 때문에 처음에 의뢰인이 상담을 하러 왔을때부터 이러한 이중의 어려움이 있다는 점을 설명을 하였고, 실제 사건을 진행하면서도 직간접적으로 이런 무언의 압력을 느낀 바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이러한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이 사건을 계속 진행했던 것은 우리나라에서 15년 가까이 살았던 의뢰인이 경찰관의 위법한 행위로 부상을 입어 오른쪽 어깨에 평생 장애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데도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고 심지어 어깨 수술비까지 자신이 부담해야 한다는 것은 명백히 정의에 반하는 것이고, 제가 생업의 기반으로 삼고 있는 사법시스템의 근간인 법치주의에도 어긋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가 마주한 결론은 제 바람과는 너무나 거리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판결문을 받아들고 자신이 잘못을 한 것도 아닌데 종업원의 허위 신고로 경찰서에 갔다가 어깨에 부상을 입어 남은 삶을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의뢰인이 안타까웠습니다. 또한 이런 판결을 받기 위해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저와 함께 의논하고 증거자료를 준비하며, 서면 내용을 검토했던 의뢰인에게 참으로 부끄러움을 감추기 어려웠습니다.

우리나라에 법치주의가 살아 있기는 하는 것인지, 명색이 법치주의인 이런 사법시스템을 믿고 계속 일을 할 수 있을지 깊은 회의가 드는 것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특히나 항소심 판결문이 우리가 주장했던 경찰관의 위법한 행위들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구체적인 판단을 회피하면서도, 혹시라도 문제가 될까 저어했는지 인정해줄 의사도 없으면서 인권침해에 대해서도 국가배상의 근거가 된다고 추가한 것을 보면서 외국인의 기본권과 인권도 보호 영역으로 하는 우리 헌법에 대한 모욕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결국 의뢰인은 5년 넘는 기간 소송을 했는데도 요지부동인 법원의 태도로 인해 많이 지쳤는지 대법원에 대한 상고하는 것은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판단을 한 법원을 보면서 과연 무엇이 사법부가 지키고자 하는 정의이고, 사법부를 지탱하는 법치주의인지, 그것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 영화 대사에 나오는 것처럼 요즘 세상에 그런 달달한 것이 과연 존재하기는 하는 것인지 이 사건은 깊어가는 밤에 저를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하는 화두를 하나 던져줬습니다. 경찰관이 제 의뢰인의 팔을 꺾자 제 의뢰인이 고통스러워하며 도와달라고 소리를 지르며 호소하는 동영상 속 모습이 앞으로도 쉽게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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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 매력이 넘치는 베트남 여행 1

베트남은 다양한 매력이 숨겨진 여행지인 것 같습니다. 2009년에 가족들과 함께 하롱베이, 하노이여행을 한 적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구경할 것도 많고 음식도 입에 잘 맞아서 여행을 다시 가보고 싶었습니다. 특히 베트남 북부가 아닌 가보지 못한 중부 이남을 가보고 싶었는데 2017년 여름 마침 여유가 있어서 베트남 여행을 계획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일정이 맞는 친구가 없어서 여행카페에서 함께 여행갈 동료들을 찾아 비행기를 타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베트남 중부와 남부를 중심으로 여행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베트남 다낭으로 입국을 하였습니다. 다낭 공항에 도착한 후 바로 예전 베트남 왕국의 왕도였던 후에로 이동하기 위해 현지 여행사로 가서 예약을 했습니다. 예약을 한 후 약간 시간이 남아서 여행사가 있는 골목 한 구석에 천막을 치고 쌀국수를 파는 가게에서 간단히 요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돈으로 700원 정도 하는 쌀국수가 국물이 아주 진하면서 풍미가 있고, 서비스로 함께 준 바게트와도 생각보다 너무 잘 어울리는 것이었습니다.

기분좋게 배를 채운 후 베트남으로 여행 오길 참 잘했다고 혼잣말을 하면서 버스를 탔습니다. 후에에 도착해 예약한 호텔에 짐을 풀자 금새 저녁이 다 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일행과 간단히 저녁을 먹은 후 앞으로 어떻게 여행을 할지 여행가이드북을 읽으면서 계획을 짠 후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은 후에 왕궁과 왕궁 인근의 사원을 둘러보는 계획을 잡았기 때문에 서둘러 호텔을 나섰습니다. 후에 왕궁은 과거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지 중국풍에 베트남 고유 양식이 혼합된 느낌의 건물과 조형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한자가 적힌 문과 솥은 중국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유물들과 똑 닮아 있기도 했습니다. 또 후에 왕궁에는 현재 베트남어와 달리 한자가 많이 적혀 있었는데 마치 우리 조선시대처럼 과거 베트남에서도 지배층은 한자를 주로 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왕궁을 보다 보니 우리나라 창덕궁 후원의 꽃무늬 담장과 유사한 담도 보였습니다. 저는 우리나라 조선왕궁 중에서는 창덕궁 후원이 가장 마음에 드는데, 물론 창덕궁보다는 장식이 좀 더 화려하기는 하지만 비슷한 느낌이라 눈길이 많이 갔습니다. 그뿐 아니라 왕궁의 각 구역들을 잇는 붉은 색 담장도 길게 처져 있어 중국 같은 느낌도 났습니다.

왕궁을 다 둘러본 후에는 왕궁을 나와 부근에 있는 강변의 사원을 찾았습니다. 사원은 강변 높은 언덕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들어가는 길에 지나야 하는 문들도 많았고, 관광객들도 꽤 북적북적하는 정도였습니다. 안으로 들어가서 사원 내부를 둘러보다가 높이 솟은 탑을 보게 되었는데, 중국의 영향을 받았는지 벽돌을 쌓아 만든 육각형의 전탑 형식으로 곳곳에 탑의 각 층별로 지붕과 창문이 있고, 창살에는 만자나 꽃무늬 장식으로 되어 있는 아름다운 형상이었습니다.

사원까지 모두 구경을 마친 후 숙소로 돌아왔는데, 중간중간 비도 오고 많이 걸어다녀서 그런지 피로가 몰려왔습니다. 그래서 더 돌아다니지 않고 쉴 생각으로 숙소 주변 시장에 위치한 미용실에 가서 이발을 했는데, 두피 마사지를 포함해 이발 비용이 우리 돈으로 약 9천원 정도 줬습니다. 해외에서 이발을 하는 것은 처음이라 어떤 스타일로 할 것인지 좀 걱정도 됐는데 기대보다도 더 세련된 스타일로 이발을 한 후 비누 거품을 낸 상태에서 두피 마사지까지 해줘서 기분이 아주 좋아졌습니다.

이발을 한 후에는 시장에서 제가 좋아하는 망고스틴을 사서 호텔로 돌아와 마사지를 예약한 후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일단 먹은 것을 어느 정도 소화시킨 후에는 마사지를 받으러 갔는데 전에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 스웨디시 마사지를 받기로 했습니다. 스웨디시 마사지는 뜨거운 돌을 이용해 온 몸 곳곳에 올려놓아 몸의 근육과 긴장을 풀어주는 방식으로 마사지를 하는 것인데, 사실 누워있는데 뜨거운 돌을 몸에 올리길래 처음에는 좀 뜨거워 놀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뜨겁다고 마사지를 안 받겠다고 치워달라고 하기도 뭐해서 좀 참고 있으니 점점 식어서 그래도 참을 만했는데, 잠시 후 다시 뜨거운 돌로 바꿔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흑흑…

그렇게 마사지를 받으며 2시간 정도 뜨거운 시간을 보낸 후 제 방으로 돌아오니 생각보다 여기저기 뭉쳤던 곳이 많이 풀어진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좀 뜨겁기는 했지만 처음 경험했던 스웨디시 마사지도 다른 마사지들 못지 않게 나름의 효과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호텔방으로 돌아와서 시원한 에어컨을 틀어놓은 후 맥주 한 캔을 마시며 티비를 보다가 어느 순간 푹 숙면을 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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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법률지원변호사단과 난민법 개정안

며칠 전에는 제가 단장을 맡고 있는 난민법률지원변호사단 회의가 있었습니다. 난민법률지원변호사단은 기존에 2014년경 구성되어 2016년 정도까지 활동을 하다가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어 해산한 바 있는데, 당시 변호사단에 참여했던 제 경험을 살려 변호사단 구성을 위해 애를 썼습니다. 다행히 여러 여건이 허락해서 작년 말에 대한변호사협회 산하 단체로 난민법률지원변호사단이 출범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새로 출범한 난민법률지원변호사단은 기존에 난민 관련 사건을 진행하고 있던 단체들 및 변호사들과 협업하여 난민으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은 사건에 대한 지원을 시작했고, 이를 위한 통번역인풀도 구성해 단원들이 직접 사건을 수행하기 시작했습니다. 거의 1년 가까이 변호사단 구성 및 사업 진행을 위한 예산 확보, 목적 사업의 방향을 준비했던 터라 다행히 변호사단 출범 후 무난하게 사업들이 추진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변호사단의 사업을 진행하면서 지난 회의에서는 난민에 대한 법률조력이라는 변호사단의 목적과 가장 밀접한 난민법 개정안에 대한 의견 제시와 관련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법무부에서는 2019년 난민법 개정과 관련해 대한변호사협회에 의견을 요청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 기존 개정안을 일부 수정해서 다시 의견을 요청한 것입니다. 예전에 법무부에 대한변호사협회의 의견을 보낼 당시 제가 관여한 적이 있는데 이번 의견과 관련해서는 단원들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안건으로 올린 것이었습니다.

난민법 개정안에 대해 논의하다보니 난민과 관련해 전문성을 가진 단원들이 있어 다양한 논의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개정안은 많은 조항의 개정 내용을 다루고 있어 각 조항별로 의견이 갈리기도 하고, 법무부의 난민법 개정 이유나 비교법적 논의가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저 역시 난민업무를 담당한 법무부 실무자들을 직접 만나 회의를 한 적도 있어 난민업무와 관련한 여러 가지 고충이나 개정안을 발의한 이유에 대해서도 들은 바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법무부의 난민법 개정안이 나오게 된 취지에는 일부 이해가 가는 부분도 있지만, 그렇다고 법체계나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부분에 대해서 난민들에 대한 법률 조력을 하는 변호사들의 단체인 대한변호사협회가 눈을 감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결국 법무부는 자신들의 일을 하는 것이고, 대한변협이나 변호사들도 자신의 맡은 바 소임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과정에서 경우에 따라서는 상호 협조를 할 수도 있지만, 상호 견제가 필요한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민주주의나 법치주의는 이런 상호 견제와 협력을 통해 더욱 발전하고 완성되어 가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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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철, 변호사로 의미를 남기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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