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맞아 한 무연고 사망 장례 관련 인터뷰와 가족의 의미

얼마 전에는 추석 연휴였습니다. 코로나로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는 어려웠지만 다들 가족이나 친구들과 작고 소중한 추억들을 하나씩 남겼을 것입니다. 저는 추석 바로 직전에 전화를 한 통 받았습니다. KBS 기자로부터 온 전화였는데 추석을 맞아 무연고사망과 관련한 기사를 준비 중인데 인터뷰를 할 수 있겠냐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오랫동안 함께 해오고 있는 무연고 사망자에 대한 장례를 지원하는 나눔과나눔이라는 곳이 있는데 몇년 전 그 단체와 함께 무연고 사망자에 대한 법제를 주제로 국제 심포지엄을 준비해 발표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자료를 보고 연락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실무적인 내용은 나눔과나눔의 팀장님이 더 잘 아실 것이라고 했더니, 이미 팀장님과도 인터뷰 약속을 잡았고, 제게는 법제도 관련 내용을 물어보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조율한 인터뷰 일정에 맞춰 사무실에 갔더니 기자와 TV 카메라기자 등 관계자가 회의실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잠시 얘기를 한 후 회의실보다는 제 방에서 인터뷰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촬영장소를 제 방으로 바꿔 3, 4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을 했습니다. 그 후 기자는 20일에 방송을 할 것이라고 말한 후 태풍이 오고 있는 제주도로 다시 출장을 가야 한다며 서둘러 출발했습니다.

저는 추석 전날 부모님댁에 내려가서 부모님과 함께 오랜만에 9시 뉴스를 봤습니다. 인터뷰를 하면 보통 그렇지만 이런저런 질문을 많이 하지만 실제 나오는 것은 아주 짧은 내용입니다. 최근 사회의 변화에 따른 제도의 변화가 어떻게 발을 맞춰 가야 할 것인지 고민이 필요해 보입니다. 이번 추석만이라도 무연고로 세상을 떠나신 분들이 별로 없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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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뉴질랜드 가족여행 2

여행 첫날밤을 보내기로 했던 테카포 호수는 잔잔한 물결이 치는 조용한 곳이었는데, 그 호숫가에는 홀리데이 파크라는 캠퍼밴을 주차할 수 있는 야영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원래는 크라이스트 처치에서 일찍 출발해 야영장에 주차를 한 후 호숫가를 돌아볼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예기치 않게 위탁수하물이 제때 도착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해서 예상보다 출발시간이 늦어지는 바람에 우리 가족이 홀리데이 파크 야영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모든 야영장이 캠퍼밴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우리는 할 수 없이 차를 끌고 구글지도를 보면서 약간 거리가 떨어져 있는 다른 캠핑장으로 이동했습니다. 테카포 호수 옆에 있는 알렉산드리나라는 작은 호수 옆이었는데, 테카포 호수 야영장과 달리 물과 전기를 끌어다 쓸 수는 없는 곳이었지만 저는 일단 차를 주차할 수 있다는 점에 안도했습니다. 우리 가족들은 해가 져서 어둑어둑해졌지만 출발하기 전 사뒀던 육류와 채소, 와인으로 늦은 만찬을 즐겼습니다. 그런데 차 안에 있는 주방에서 고기를 굽다보니 차 안에 연기가 뿌옇게 차서 환기를 하는데 고생을 좀 했습니다. 창문을 열어놓았더니 시간이 좀 흐르자 다행히 연기가 빠져나갔습니다. 처음 캠핑카를 이용하다보니 아무래도 시행착오들이 많이 있을 수 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얼른 식사를 한 후 다들 지쳤는지 침대를 펴놓고 깊이 잠이 들었습니다. 저는 새벽에 좀 춥길래 잠시 일어나서 옆으로 젖혀뒀던 이불을 다시 덮고 잤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생각도 하지 못했던 걱정거리가 하나 생겼습니다. 환기를 한다고 열어두었던 창문을 닫는 것을 깜빡했는데 열어뒀던 그 창문 맞은편에서 주무셨던 아버지가 밤새 호수에서 불어온 찬 바람을 맞고 감기 기운이 드셨던 것입니다. 자꾸 기침을 하시면서도 일정에 차질에 생기는 것이 걱정되셨는지 아버지는 따뜻하게 있으면 괜찮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일단 차량 뒤쪽에 침대를 편 후 이불을 덮고 쉬시게 한 후 아침을 준비했습니다. 토스트로 아침은 간단히 먹고 테카포 호수에 가서 경치를 즐길 계획이었기에 서둘러 출발 준비를 마치고 다시 테카포 호수로 갔습니다.

경치가 좋기로 유명한 테카포 호수는 선한 목자의 교회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일품인데 뉴질랜드 남섬에서 가장 높은 마운트 쿡도 보입니다. 19세기 유명한 쿡선장을 딴 이름을 가진 마운트 쿡은 무려 높이가 3,724m에 이르는데, 높이가 있어서 그런지 산 윗부분은 만년설이 쌓여 있었습니다. 선한 목자의 교회는 돌로 지은 매우 작은 건물인데, 그 안으로 들어서면 호수쪽으로 난 창문으로 바람이 불어 들어왔는데, 그 바람을 맞고 있자니 가슴이 시원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남섬에 가면 한번은 꼭 가봐야 할 곳 중 하나라 생각이 됩니다. 세면도구가 전날 실종된 위탁수화물 가방에 들어 있어서 제대로 씻지도 못했더니 상태는 폐인 모드였지만 그래도 경치는 끝내줬습니다.

호수와 마운트 쿡 산의 경치를 즐기다가 다시 다음 목적지인 퀸즈타운을 향해 길을 떠났습니다. 차를 타고 가다보니 테카포 호수에서는 구름에 가려서 완전하게 보이지 않던 쿡산이 제대로 보이길래 그냥 가기 아쉬워 사진을 몇 장 더 찍었습니다. 역시 새하얀 만년설로 뒤덮인 산은 언제 보아도 언제 보아도 멋진 모습입니다.

다시 차를 타고 가는데 첫날부터 차를 운전했던 매형이 장시간 운전을 해서 피로해보였습니다. 원래 여행 계획을 짤 때 저보다는 운전이 익숙한 매형이 운전을 더 많이 하기로 했었지만 그래도 이제는 제가 교대해서 차를 몰아 보기로 했습니다. 매형에게 어느 정도 가서 교대하자고 말을 했는데 착한 매형은 별로 힘들지 않다면서 계속 운전하길래 제가 저 앞 표지판 근처에서 세운 후 교대하자고 재촉을 했습니다. 그랬는데 제가 너무 급하게 세우자고 한 것인지, 차가 무거워서 밀린 것인지 길 옆에 차를 대다가 그만 길가에 있는 나무와 차량의 왼쪽 사이드미러가 부딪히고 말았습니다. 내려서 확인해보니 왼쪽 귀 아랫부분이 박살이 나 있었고, 다른 부분도 흠집이 나 있었습니다. ㅜㅜ

그래도 다행이었던 것이 캠퍼밴을 렌트할 때 보험의 보장 범위를 넓게 설정해뒀는데 계약할 때는 비용이 좀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사람 마음이 간사한 것인지 막상 사고가 나고 나니 더 많은 비용을 내고 보험을 들어두길 참으로 잘했다는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ㅎㅎ 렌트했던 차량이 벤츠라서 보험으로 처리가 되지 않으면 수리비를 많이 내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당황하는 매형에게는 보험으로 처리가 될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고, 일단 사진을 찍어 사고를 정리한 후 다시 출발했습니다.

매형과 교대해서 막상 캠퍼밴을 운전해보니 일단 차폭이 넓고, 앞뒤 길이도 일반 승용차보다 훨씬 길기 때문에 처음에는 생각보다 까다로웠습니다. 더구나 뉴질랜드는 고속도로도 왕복 2차선으로 되어 있는데, 일반 승용차는 제한속도가 시속 100km이지만 우리 가족이 탄 캠퍼밴은 크기가 커서 제한속도가 시속 90km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꾸 뒤에서 승용차들이 빨리 가라고 바짝 붙어 오기도 해서 가끔 옆에 있는 이면도로로 피해 가면서 주행을 하다보니 신경이 더 쓰였습니다. 더구나 우리나라 도로와 차량과 달리 뉴질랜드는 영국처럼 왼쪽으로 달리다보니 우회전을 할 때 특히 더 헷갈렸습니다. 이런 이유로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에 갔더니 우리는 왼쪽으로 달린다는 포스터까지 붙어 있었습니다. ㅎㅎ

우회전을 할 때 더 크게 돌아야 하는데 우리나라 도로에 익숙하다보니 작게 우회전을 해서 상대 차선으로 들어서는 역주행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저도 고속도로에서 한번 사고를 쳤는데, 크롬웰이라는 작은 도시에 들러 식사를 하고 가려고 우회전을 하다가 상대방 차선으로 들어서 버린 것이었습니다. 다행히 포스터까지 붙일 정도로 관광객들이 사고를 많이 쳐서 그런지 상대방 차선에 있는 차들이 양보를 해주면서 걱정하지 말고 천천히 가라는 말까지 해줬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나지막한 경계석을 과감하게 넘어서 원래 차선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휴…

크롬웰에서 식사를 하고, 마트에도 들렀다가 공원에서 좀 쉬었다 가기로 했습니다. 장시간 차를 타고 가느라 다들 좀 지쳐 있었기 때문에 좀 걸으면서 운동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감기 기운이 있으신 아버지가 좀 걱정이 되어서 감기약을 사서 먹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여쭤봤더니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그때 약을 사서 드시게 했어야 하는데… 아버지의 고집에 저와 매형의 낙관이 나중에는 더 큰 대가를 치르게 했습니다.

식사도 하고 운동도 해서 다시 어느 정도 기운을 차린 우리는 다시 퀸즈타운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퀸즈타운으로 가면서 저는 또 열심히 뉴질랜드 항공사와 연락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가족의 실종된 수화물 3개가 퀸즈타운 공항으로 오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항공사에서는 운항 일정 때문에 오후 늦게나 수화물이 도착할 것이라고 해서 일단 캠퍼밴을 캠핑장에 주차한 후 공항에 가서 짐을 찾기로 했습니다. 이튿날은 아침부터 서둘러서 출발한 덕분인지, 우리가 원하던 크릭사이드 홀리데이 파크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고, 전기와 물을 보충한 후 아버지와 조카가 식사 준비를 하는 동안 저와 매형이 공항에서 짐을 찾아왔습니다.

퀸즈타운 공항에서 마침내 여행 캐리어 3개를 받고 나니, 마치 잃어버린 강아지들을 찾은 것처럼 기뻤습니다. 며칠 동안 옷도 갈아 입지 못 하고, 양치질과 세면도 제대로 하지 못 한 상태로 지냈더니 여행 가방에 있는 세면도구들을 가지고 캠핑장에 있는 샤워실에서 뜨거운 물로 샤워하고 나오면서 날아갈 듯 상쾌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옷도 갈아 입고, 다양한 레포츠로 유명한 퀸즈타운에 왔으니 외출을 하기로 했습니다. 일단 조카가 좋아할 것 같은 루지를 타기로 했는데, 케이블카를 타고 루지 출발점인 스카이라인을 향해 가면서 조카와 사진을 찍었는데, 3일 동안 수염도 제대로 깎지 못했더니 얼굴은 엉망이었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았습니다.

케이블카가 도착해서 호수쪽 풍경을 봤더니 뒤로 펼쳐지는 경치가 전해 들었던 것처럼 엄청났습니다. 푸른 호수와 거친 산맥, 하얀 구름이 떠있는 하늘… 고생해서 여기까지 온 보람이 있었습니다.

이제 루지를 탈 시간입니다. 루지는 저를 포함해 우리 가족들도 처음 타보는 것이었는데, 다운힐 MTB 같은 느낌이어서 나름 스릴도 있고 재밌는 경험이었습니다. 경치도 즐기고 루지를 타면서 즐거운 시간도 보낸 후에 다시 캠핑장으로 돌아와서 어제와 비교해서는 매우 평화로운 저녁식사를 즐겼습니다. 그렇게 이튿날은 하루가 잘 마무리되어 가는가 싶었는데… 운명의 여신은 우리 가족의 여행 이틀째를 그렇게 쉽게 마무리할 마음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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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첫 책 출간, <법정에 출석한 인공지능>

얼마 전 제가 집필한 책이 한 권 출간되었습니다. 작년에 석사 학위를 받았던 논문인 “인공지능 로봇의 법적 지위”를 읽은 출판사 직원이 작년 말에 제게 연락을 해왔습니다. 저에게 연락을 했던 출판사 에디터는 제 논문을 재밌게 읽었는데 논문의 내용이 마치 SF소설 같은 느낌도 들었다면서 제게 논문의 내용을 바탕으로 대중이 보다 접근하게 쉽게 책을 한번 내볼 생각이 있냐는 제안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전화를 받았을 때 저는 한창 진행 중이었던 프로젝트 자문과 다른 재판 일정들이 너무 많은 상황이어서 당장은 시간이 없고 나중에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 다시 연락하겠다고 정중하게 거절을 했습니다. 몇 개월이 지난 후 프로젝트가 어느 정도 마무리된 후 저는 출판사 에디터에게 연락을 해서 본격적으로 출판 계획에 대해 들은 후 출판계약을 하게 됐습니다.

처음 책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사실 기존에 작성했던 논문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니 큰 힘은 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출판사 에디터도 분명 그렇게 얘기한 것 같은데… 막상 책을 쓰다보니 실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제가 쓴 논문의 내용 자체가 좀 어렵다보니 이런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다듬는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또, 함께 책을 만들기로 했던 출판사 에디터들이 자꾸 변경되는 바람에 에디터들과 책 내용이나 방향에 대해서도 여러 차례 변경을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책을 독자들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쓸 수 있었다는 생각도 들고, 같은 팀으로 작업을 하면서 배울 수 있는 것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약 3, 4달에 걸쳐 쓴 책이 출판되어 나온 날은 마치 나만의 예술 작품을 하나 만든 느낌이었습니다. 저작권 관련 소송을 대리한 적은 있어도 실제 책의 저자가 된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책을 쓰면서 사례를 들어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애를 썼는데 책을 읽은 주변 지인들의 독서 후기를 들어보면 어느 정도는 성공한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책의 제목을 어떤 것으로 할 것인지도 에디터와 함께 참 고민을 많이 했는데, 인공지능이 보다 주체적인 행위를 한다는 의미에서 법정에 출석한다는 단어를 선택했습니다.

제 생애 첫 저서

책을 출간하고 주변의 아는 사람들에게 제가 책을 집필했다는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시내 여러 서점이나 온라인에서 판매가 되고 있는데, 얼마나 판매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제가 쓴 책이 세상에 나왔다는 것은 제가 이 세상에 뭔가 남기고 간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 책의 내용에 대해 인터뷰도 한번 했는데 책의 전체적인 내용을 얼마나 잘 요약해 담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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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뉴질랜드 가족여행 1

뉴질랜드… 영화 반지의 제왕 촬영지로도 유명한 나라입니다. 고등학교 시절 중간고사를 얼마 안 남겨놓은 주말에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가 교실로 참고서를 찾으러 왔다가 구석 한 책상 위에 우연히 반지전쟁 번역본이 놓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매력적인 제목이라 책을 집어들어 읽기 시작했는데 결국 시험기간 동안 반지전쟁 전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말았습니다. 중간고사 성적은 기억하고 싶지 않습니다. ㅎㅎ

저는 반지전쟁의 원래 제목이 반지의 제왕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그 전편인 호빗을 찾아 헤매다가 완역이 되지 않은 호빗이 아동용 도서로 번역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 오크를 귀신으로, 드워프를 난쟁이로 번역한 어린이용 호빗을 대형 서점에서 찾아내 몇시간 동안 서서 다 읽어 버렸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좀 웃기기도 하지만 저는 아마 그때 톨킨의 팬이 된 것 같습니다. 대학에 가서는 톨킨이 남긴 반지의 제왕, 호빗 이전의 역사를 다룬 다른 원고들을 편집한 실마릴리온을 읽고, 반지의 제왕, 호빗을 영어 원서로 다시 읽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톨킨의 작품에 빠져 있었던 제가 영화로 나온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놓칠 수는 없었고, 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뉴질랜드를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제 희망을 알았는지, 어느 날 누나가 이번 겨울에 남자들만 뉴질랜드 캠퍼밴 여행을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말을 던졌습니다. 저와 아버지, 매형과 남자 조카 4명이 뉴질랜드를 캠핑카를 끌로 여행하는 코스였습니다. 다양한 형태의 여행을 경험해봤던 저였지만 캠퍼밴으로 여행을 하는 것은 처음이고, 평소 운전을 즐기는 편이 아니라 소형 버스 크기의 캠퍼밴을 운전할 수 있을지 다소 걱정도 되었습니다. 그래도 남자 가족들만 모여 여행을 한다는 것이 나름 좋은 추억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여행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계기로 떠나게 된 뉴질랜드는 저와 여행을 함께 한 다른 가족들에게 예상치 못한 수많은 난관과 에피소드를 선사하게 됩니다.

그 시작은 출발하는 인천공항에서부터였습니다. 뉴질랜드는 직항이 별로 없고 항공권 가격도 비싸서 뉴질랜드 도착 시간과 한국 입국시간이 가장 적절한 것을 찾아 헤맸습니다. 그러다보니 가장 좋은 항공권이 중국 광저우를 거쳐 뉴질랜드에 입국하고, 귀국할때는 경유하지 않고 바로 입국하는 항공권이었습니다. 출발은 수요일 오전 8시 30분 비행기라 공항에 별로 탑승객들이 없을거라는 생각에 2시간 반 전인 6시에 도착을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공항에 도착해보니 이렇게 사람이 많을 수 있나 싶을 정도로 공항이 미어터질 지경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당시는 제2터미널이 완공 직전이라 더욱 사람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예약한 항공사가 대한항공과 공동운항편으로 운행되고 있어서 대한항공에서 탑승 수속을 하려고 했는데 대한항공 데스크 앞 대기줄은 이미 전체 섹터를 두번이나 빙 돌아서 감고 있을 정도였습니다. 대기줄에 일단 서있다가 상황을 보니 아무래도 이렇게 그냥 있다가는 제때 탑승수속을 마치고 타기가 힘들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셀프로 간단하게 탑승수속을 하는 곳으로 가서 줄을 섰다가 항공권을 받으려고 하니, 해당 기기로는 직항편만 가능하고 경유하는 항공편은 처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 사이에 대기줄은 더 길어져 있었고… 6시 40분 정도 된 상황에서 다시 대기줄에 서서 속만 태우면서 하염없이 줄이 줄어들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가까스로 대한항공 데스크를 휘감았던 줄이 한바퀴로 줄어들었을때 쯤 갑자기 저쪽에서 대한항공 직원 한명이 단체 여행객이 있냐고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얼른 우리 가족이 4명인데… 셀프 탑승 수속을 하려다 안되고, 출발시간이 얼마 안 남았는데 어쩌구 저쩌구 하소연을 했더니 다행히 일단 단체 여행객 탑승 코너로 가자고 했습니다. 비행기를 놓칠까봐 걱정이 산더미였던 저는 다른 가족들에게 어서 따라오라고 말하면서 직원을 따라 단체 여행객 데스크로 갔습니다. 안내 직원에게 여권과 항공권 예약 출력물을 보여준 후 광저우로 가는 항공권과 광저우에서 뉴질랜드 오클랜드로 가는 항공권까지 잘 받았습니다. 이제 비행기를 놓치지 않을 것 같다는 안도감에 위탁수화물을 올리려고 하는데, 갑자기 컨베이어 벨트가 멈췄습니다.

갑자기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직원이 전화를 해보더니 수화물이 너무 많아서 수화물을 싣는 운반 시스템이멈췄다고 설명해줬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보고 잠시 기다리라고 하는데 이미 시간은 9시가 넘은 상황이었습니다. 탑승객이 많아 탑승권을 받는데 이렇게 오래 걸리면 보안검색에도 당연히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기에 저와 가족들은 점점 더 초초해졌습니다. 그래도 천만 다행으로 10분 정도 지나니 다시 수화물 운반 장치가 돌아가기 시작했는데, 저는 시간이 촉박할 거 같아 직원에게 이제 보안검색을 받으러 가도 늦지 않겠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저희 아버지가 연세가 좀 있으셔서 패스트트랙 대상자이니 가족 모두 패스트 트랙으로 진행하면 된다면서 카드를 하나 줬습니다.

우리 가족은 비행기를 놓치면 안된다는 생각에 서둘러 탑승 게이트로 이동했습니다. 막판에 서둘러서 다행히 게이트가 닫히기 직전 비행기를 탈 수 있었습니다. 비행기가 광저우 공항에 도착한 후 환승구역에서 대기하다가 다시 비행기를 타고 뉴질랜드 오클랜드로 출발했습니다. 유럽에 가는 것 못지 않은 장거리, 장시간 비행이었지만 저는 그래도 뉴질랜드의 대자연을 즐기고 싸고 맛있는 고기들과 와인을 먹을 생각에 한껏 들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오클랜드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또 다른 문제가 저희 가족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리 가족의 목적지는 오클랜드가 있는 뉴질랜드 북섬이 아니라 뉴질랜드 남섬이었습니다. 그래서 오클랜드에서 다시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남섬의 크라이스트 처치 공항으로 가야 하는데, 국내선 항공기의 예약 시간이 도착시간으로부터 1시간 후였습니다. 일반적으로 맡긴 수화물을 찾아 세관을 지나 입국을 하려면 약간 시간이 걸리고, 다시 국내선 항공권을 발권받아 항공기에 탑승하려면 또 시간이 걸립니다. 그래서 저는 비행기에서 내리기 전부터 가족들에게 서둘러서 국내선 터미널로 가야 된다고 신신당부를 했고, 우리 가족은 최대한 빨리 항공기에서 내렸습니다. 그렇게 서둘러 비행기에서 내린 후 위탁수화물을 찾는 곳에 1등으로 도착해 수화물이 나오길 기다렸는데 무슨 일인지 우리 가족의 수화물이 통 나오지를 않는 것이었습니다. 빨리 짐을 찾아 국내선 터미널로 가야 하는데 다른 탑승객들은 다들 짐을 찾아 나가는데 우리 짐은 30분이 지나도록 나오질 않고…

안절부절 못하면서 조금 더 기다리니 위탁 수화물 4개 중 1개가 나왔는데, 다른 짐들은 어딨는지 알 수도 없었습니다. 이미 비행기에서는 모든 짐을 내린 상황이고… 결국 수화물 처리 부서를 찾아가 수화물이 나오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어떻게 된 것인지 알아봐 달라고 했습니다. 담당 직원은 여기저기 전화를 해보더니 우리 가족이 맡긴 수화물이 다른 비행기에 실려서 지금 뉴질랜드로 오고 있는데, 내일이나 도착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국내선 비행기 뿐만 아니라 크라이스트 처치에서 캠퍼밴 예약도 이미 되어 있는 상황이라 지체할 수가 없었던 우리 가족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에 빠졌습니다. 내일까지 오클랜드에서 기다릴 수는 없는 상황이라 수화물을 우리 일정을 고려해 퀸즈타운 공항으로 보내달라고 얘기한 후 국내선을 타고 크라이스트 처치 공항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예약했던 국내선 항공기는 이미 출발한지 오래였습니다. 국내선 터미널에 도착해 사정을 얘기하니 다행히 자신들의 책임으로 수화물이 제때 도착하지 않았으니 무료로 다음 비행기의 항공권을 발권해주겠다고 했습니다. 참 다행이네~~ 저는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안심한 우리 가족은 샌드위치와 음료수를 먹으며 다음 비행기 시간까지 기다렸습니다.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오클랜드 공항에 도착한 후 캠퍼밴을 예약한 현지 여행사로 이동했습니다. 여행사 주차장에서 예약한 6인용 캠퍼밴을 둘러봤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더 커서 운전하기에 좀 부담이 될 것 같았습니다. 사고에 대비해 보험상품을 충분하게 가입해둔 것이 위안이 됐습니다. 그래도 자동차 안에서 식탁과 침대도 조립해 사용할 수 있고, 화장실과 조리용 인덕션까지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신나기도 했습니다.

출발하기 전에 일단 대형마트에 가서 식재료와 필요한 생필품들을 모두 사서 출발하기로 했습니다. 마트에 갔더니 기대했던대로 국내보다 육류가 저렴해서 양고기와 쇠고기, 닭고기 등 다양한 종류의 육류와 뉴질랜드에서 많이 먹는 다소 생소한 채소, 과자 등 간식과 음료 등 일주일치 식재료를 이것저것 잔뜩 샀습니다. 뉴질랜드가 우리나라보다 국민소득이 높은 편인데도 마트에서 판매하는 상품들의 가격은 오히려 우리나라보다 저렴해보였습니다. 든든하게 장을 본 후 크라이스트처치를 출발해 첫날 숙박 예정지인 테카포 호수를 향해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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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 매력이 넘치는 베트남 여행 4

호치민은 베트남전쟁 전후 남베트남의 수도였던 사이공이었기에 대통령궁이 있었습니다. 베트남전쟁 중 미군이 철수한 이후 북베트남군의 탱크가 호치민으로 진격해 점령했던 장소 중 하나가 바로 이 대통령궁이었습니다. 당시 대통령궁에 진입했던 탱크 2대가 대통령궁에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대통령궁 안으로 들어가면 남베트남 당시 대통령의 다양한 일상과 업무 공간을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대통령궁 옥상에는 북베트남군이 진격해오자 당시 남베트남 대통령이 탈출하려고 했던 것인지 헬기도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비록 분단된 국가이기는 했지만 한 국가가 사라지는 장면을 목격한 것 같아 뭔가 쓸쓸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비까지 내린 날이라 더욱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옥상에서 내려다본 대통령궁 앞마당은 주인을 잃은 옛 고궁의 정취마저 느껴졌습니다.

통일궁이라고도 불리는 대통령궁을 나선 후 전쟁박물관을 찾았습니다. 베트남전쟁은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미국과의 전쟁 이전에 이미 베트남을 식민지로 삼았던 일본, 프랑스와 벌인 전쟁부터 시작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희생이 있었고, 미군이 진주한 이후에는 우리나라 군대도 참전한 아픈 과거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전쟁박물관에 가보면 물론 식민지 시대 프랑스, 미국 군대의 잔인한 학살과 만행에 대한 고발 내용도 일부 있습니다. 하지만 미군이 살포한 에이전트 오렌지라 불린 고엽제나 지뢰로 피해를 입은 베트남인들만이 아니라, 군복무 당시 노출된 고엽제로 고통받는 미군이나 심지어 우리나라 군인의 모습이나 증언까지도 기록해놓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는 전쟁이 아닌 평화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물론 일부 선전의 의미도 있겠지만, 이제 베트남은 기존의 증오를 넘어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갈 수 있는 자신감과 힘을 얻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직 분단의 고통이 끝나지 않은 우리의 현실을 생각해보면 오랜 시간 크나큰 아픔을 겪었지만 이제 그것을 극복해낸 베트남이 약간 부럽기도 했습니다. 베트남 사람들 중 상당수는 우리나라가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미국의 용병으로 참전한 것일 뿐이니 이해한다고 말한다는데, 이런 점 때문에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더 커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 날은 그런 복잡미묘한 생각에 잠겨서 조용한 바에 앉아 술을 한잔 했습니다.

베트남 여행의 후반부를 보냈던 호치민에서는 비로 인해 계획했던 일정들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습니다. 호치민 시내 구경을 마친 다음날에는 원숭이들이 주인인 껀저섬 투어를 갔는데,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진입로가 물에 잠긴데다 뻘처럼 변해서 저를 포함한 일행들의 신발을 잡고 놔주지 않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원래 예정되어 있던 일정의 반 이상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 와중에도 원숭이들은 함께 걷던 한 일행의 선글래스를 번개같이 낚아채 간 후 공원 관리인들이 주는 바나나와 교환하는 쇼맨쉽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몇년 만에 다시 찾은 베트남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습니다. 아직 개발도상국의 모습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지만, 나라 전역에서 느껴지는 열정과 역동성이 마치 우리나라의 1990년대, 2000년대 초를 연상하게 했습니다. 이전보다 점점 활기를 잃어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우리나라의 상황과 비교되어 제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여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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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학교 삼성융합의과학원 강의

올해도 인공지능과 관련해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특강을 했습니다. 전에 강의를 했던 대학원 강의실이 위치해 있는 건물이 일원역 옆으로 이전을 한 터라 주차를 삼성병원 내 주차장에 한 후 한참을 걸어 일원역까지 가느라 숨이 가빴습니다. 강의시간에 약간 늦은데다가 마스크까지 써서 더 숨이 찼던 것 같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강의실이 있는 층에 내리니 담당 교수님과 조교가 기다리고 있어서 서둘러 강의실로 향했습니다.

저는 몇년 전부터 성균관대학교 삼성융합의과학원에서 해마다 1번 정도씩 하고 있습니다. 올해 초에도 교수님이 작년에 제가 석사 학위받은 것을 알고 해당 내용으로 강의를 요청했습니다. 저도 마침 석사 학위를 받기도 했으니 학위 논문 관련 내용에 대해 강의를 하고도 싶었기에 흔쾌히 승낙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승낙을 하고 보니 그동안 몇 차례 강의를 하면서 제 논문의 많은 내용을 이미 소개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새로운 내용도 추가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 학위 논문 내용 일부와 최근 많은 관심을 끌고 있는 개인정보보호 문제를 의료 현장의 이슈들과 관련시켜 정리한 후 학생들에게 강의했습니다.

거의 2시간 가까이 쉬는 시간도 없이 강의를 했는데, 다행히 조는 학생들은 별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제 논문 주제와 관련된 내용들을 계속 연구해오다 보니 이제 익숙한 느낌이 드는데 학생들은 그렇지 않은 듯 눈을 반짝이며 꽤 흥미를 갖고 듣는 것이 느껴져 기분이 좋았습니다. 국제거래의 3대 이슈 중에 하나인 개인정보보호 문제는 의료 현장에서도 중요한 화두 중 하나인데 저도 새로운 자료들을 찾으면서 강의 준비를 하다보니 새로 알게 되고 배우는 것이 많았습니다.

강의를 마치고 교수님과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배가 고파서 차에 있던 간식을 꺼내 먹다 생각해보니 제가 대학 학부생이었을때 교수나 강사들이 제 나이보다도 젊은 경우도 많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학생들을 보다 보면 세월이 흘러간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데, 문득 그 세월만큼 제가 성숙해졌는지 돌아보게도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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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공사법 제정과 공간정보 관련 법 개정 프로젝트 자문

작년 하반기부터 참여했던 법제 정비 프로젝트가 얼마 전에 끝났습니다. 처음에는 공공기관의 설립근거가 되는 공사법을 제정하는 것이 프로젝트의 목표였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공사법 제정은 생각보다 빨리 진행이 되어 공사의 사업와 관련된 법령의 개정 작업이 주된 내용이 되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전에 해보지 않았던 작업이라 좀 막막했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어떤 방향으로 작업을 해야 할 것인지 느낌이 왔습니다. 다만, 공사의 사업이 다양하다보니 현업 부서와 계속 소통을 하면서 개정할 법령의 내용들에 대한 의견을 들어야 하는데 보수적인 분위기인 공공기관의 특성 탓인지 유기적인 협력이 좀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사법 영역에서 보통 기존의 법을 해석하는 작업을 주로 하는 법률가로서 입법의 영역인 법률 제정 및 개정 작업을 주도적으로 했다는 점에서 나름 보람도 있고, 배우는 것도 많았습니다. 특히 어떤 절차를 통해 법률과 하위 법규명령이 만들어지는지, 중앙행정부처와 국회는 어떤 식으로 서로 소통하면서 법안 내용을 조율하는지, 국회에서 실무적으로 법안이 처리되는 기준이나 방법은 어떤 것인지 등 다른 곳에서는 배울 수 없었던 현장을 경험할 수 있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또한 지난 프로젝트를 하면서 제가 학위 논문을 받았던 인공지능 로봇을 활용할 수 있는 현장의 지식을 보다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공간정보와 관련해 인공지능을 활용한 디지털 트윈이나 스마트 시티 등 빅데이터 처리와 일상 생활에서의 활용 영역에 대한 강의나 기사, 논문 등 간접 자료가 아니라 현장에서 일하는 실무자들로부터 직접 생생한 내용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지난 프로젝트를 함께 했던 컨설팅 업체는 제가 구성했던 저희 법인 팀의 법률자문에 만족해 자율주행자동차법 관련 프로젝트의 법제 부분 자문도 함께 할 수 있겠냐고 요청해왔습니다. 새로운 프로젝트는 다행히 지난 프로젝트가 어느 정도 마무리된 후 진행되는 것이었고, 자율주행자동차는 제 논문 주제인 인공지능 로봇과 밀접해 컨설팅 업체의 제안을 기쁘게 수용했습니다. 앞으로도 법제 정비 관련 업무를 꾸준히 해서 관련 분야에서 많은 실력과 경험을 쌓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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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계약상 인세 미지급과 저작권, 상표권 위반 사건 승소

얼마 전에는 약 4년에 걸쳐 진행했던 민사사건과 관련 형사사건의 결론이 나왔습니다. 영어교재 출판계약을 맺은 저자와 출판사 간 인세 미지급과 출판계약 해지 후 무단 인쇄로 인한 저작권, 상표권 침해가 핵심이었던 사건입니다. 제가 처음 사건을 의뢰받을 당시 의뢰인이 혼자서 진행했던 고소사건에서 이미 일부 사실관계에 대해 검찰의 혐의없음 불기소처분이 나와 있던 터라 이후 사건 진행에 애를 좀 먹기도 했습니다.

의뢰인과 최초 상담을 할 때는 상대방인 출판사에게 미지급 인세 정도만 청구한 후 합의해서 마무리를 할 생각이었는데, 웬걸 출판사에서 갑자기 제 의뢰인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를 제기해서 상황이 예상했던 것과 다르게 진행됐습니다. 제가 맡았던 공사대금 사건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는데, 자신이 줄 돈이 있는 경우 오히려 채권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면 소송을 지연시키면서 돈도 적게 줄 수 있다는 법적 조언을 해주는 것이 트렌드인지… 이해하긴 어렵습니다. 물론 그런 조언들을 받았더라도 그런 생각은 제가 맡은 사건들에서 모두 잘못된 것이었음이 밝혀지게 됩니다.

제 의뢰인은 출판계약상 출판사로부터 선인세를 받기로 되어 있었는데 출판사는 선인세가 아니라 판매부수에 따라 지급하는 후인세이고, 제 의뢰인이 이후 자신과 계약을 해지하고 다른 출판업자와 개정판을 내는 바람에 손해를 입었다고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이었습니다. 형사고소 사건이 불기소가 되면서 민사소송 역시 시작은 좀 어렵게 진행되었습니다. 특히 출판사측은 자신이 원고이면서도 손해배상 관련 주장이나 입증을 하지 않고 계속 절차를 지연시키기만 했고, 1심 민사재판은 2년 가까이 끌다가 계약상 선인세 지급이 맞고, 계약 해지 역시 정당하지만 미지급 인세나 저작권을 위반해 무단으로 인쇄된 저작물에 대한 부당이득금 지급이나 손해배상은 인정하기 어렵다는 판결 내용 자체로 모순된 판단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이런 결론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저와 의뢰인은 항소를 하면서 사건 진행을 다시 검토해봤습니다.

고민을 한 결과 저는 의뢰인과 상의를 해서 기존 불기소 처분 대상이 아니었던 다른 무단 인쇄 사실들이 있으니 이에 대한 출판사의 저작권과 상표권 위반을 다시 형사고소하기로 하였습니다. 새로운 증거들과 거래 업체의 관련자들 진술서를 수집해서 출판사와 출판사의 실질적 대표에 대한 고소를 진행한 결과 마침내 출판사와 실질적 대표가 기소되어 벌금형과 징역형이 선고되어 확정되었습니다. 오랜 고생 끝에 마침내 법원에서 저의 주장이 인정되자, 저는 얼른 민사 항소심 법원에 형사판결문을 제출했습니다. 제 예상대로 민사 항소심 법원에서는 더 심증 정도가 높은 형사 법원에서 유죄 판결이 확정되자 원심판결을 취소하고, 우리가 주장했던 기존 미지급 인세 뿐 아니라 부당이득금 거의 전액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최초 사건 상담 이후 무려 4년이 넘게 걸린 사건이었고, 1심에서는 사실상 패소한 것과 마찬가지 상황이었는데, 이런 결론을 뒤집고 승소를 하고 보니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승소 후 저를 만나 고맙다고 하는 의뢰인을 보면서 저 역시 마지막까지 저를 믿고 소송을 진행했던 의뢰인에게 고마움을 표시했습니다. 출판사는 항소심에서 패소한 후 상고를 했다가, 얼마 지나 상고를 취하했는데, 이제 남은 쉽지 않은 문제는 판결에 대한 강제집행이라 할 것입니다. 그동안 출판사의 태도에 비춰보면 판결받은 금원을 얼마나 지급받을 수 있을지 알 수는 없지만, 제 의뢰인의 저작물을 유통시켜 돈을 벌고 있으면서도 손해만 났다고 주장하는 뻔뻔함을 강하게 응징했다는 점에서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기분을 느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약간은 보상을 받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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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 매력이 넘치는 베트남 여행 3

베트남 여행을 계획하면서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 과거 안남왕국의 수도였던 ‘후에’와 작은 도시지만 옛 베트남의 정취가 남아 있다는 ‘호이안’이었습니다. 호이안은 전통 상점 등 아기자기한 멋이 있고, 여행 중 한번 정도 참여해보고 싶었던 쿠킹 클래스도 진행되는 곳이어서 더욱 관심이 갔습니다. 다낭을 떠나 호이안으로 가는 길에는이러한 기대 때문인지 더욱 마음이 설레었습니다.

호이안에 도착한 것은 늦은 오후 무렵이었는데, 출발 전 미리 여행기에서 보았던 것처럼 호이안의 호숫가에서 노을이 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넘실거리는 수면에 비치는 아름다운 주황빛에 잠시나마 근심걱정들을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일행들과 각자 시간을 보내다가 정해진 시간에 만나 저녁을 먹기로 했던지라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다가 나중에는 의자에 앉아 노을만 보고 있는데도 괜히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었습니다.

서로 약속한 시간이 되어 일행과 만나 호이안의 유명한 맛집을 찾아갔는데 다행히 생각보다 대기줄이 길지 않아 자리를 잡고 앉을 수 있었습니다. 그 식당에서 유명한 모닝글로리 볶음과 추천 메뉴를 먹어보니 역시 우리 입맛에도 잘 맞았습니다. 이후 일행들과 함께 기념품 상점들을 돌아다니면서 기념품을 몇 가지 산 후 숙소로 돌아갔는데 상점들을 돌아다니며 구경하느라 피곤했는지 깊이 잘 수 있었습니다.

다음날은 먼저 귀국해야 하는 일행들과 이별을 하고, 혼자 호이안 곳곳을 여유있게 돌아다니게 되었습니다. 호이안은 역시 다낭이나 이후 갔던 호치민 같은 대도시에 비해서 옛 정취가 많이 남아 있었는데 특히 곳곳에 조용한 사당이나 사찰 같은 곳이 있어서 구경할 만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처음에 방문했던 곳은 길가 옆에 있는 연못에 연꽃이 예쁘게 피어 있는 곳이었는데 연꽃들을 보다 보니 시간이 금새 흘러갔습니다.

다시 길을 나서 식사를 한 후 골목길을 돌아다니다가 제가 찾았던 한 사당은 사당에 붙어 있는 사진들이나 설명들을 보면 특정한 가문에서 지은 곳처럼 보였는데 조용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특히 가족들의 것으로 보이는 사진들이 제단 위에 걸려 있어서 그곳이 어떤 곳인지 짐작하게 했습니다. 호이안 골목을 걷다보니 LEE Laundry, KANG Restaurant 등 익숙한 우리나라 성이 붙은 가게들이 보였습니다.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이 주둔하던 지역 근처라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가게 주인이 라이따이한들이라면 살아오면서 적국 군인의 자식으로 겪었을 고난이 어땠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 한편이 아려오기도 했습니다.

뒷골목을 이리저리 둘러본 후에는 관광 안내소를 찾아가 쿠킹 클래스 신청을 했습니다. 쿠킹 클래스는 정해진 시간에 신청자들이 모여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시장에서 요리재료를 산 후 자신이 산 요리재료들을 들고 배를 타서 도착한 작은 섬에 마련된 교실 건물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어떤 음식을 만드는 것인지도 몰랐는데 강사가 알려주는대로 따라하다보니 그래도 다행히 못 봐줄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저도 사람이라 그런지 제가 만든 요리여서 왠지 맛도 더 괜찮은 것 같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ㅎㅎ

호이안에서 혼자 여유있는 시간을 보낸 후에는 마지막 여행지인 호치민으로 이동했습니다. 호치민은 과거 베트남 전쟁에 이은 베트남의 통일 이전까지는 사이공으로 알려졌던 도시로 수도인 하노이보다도 더 발전한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경제수도로도 불리는 호치민의 모습은 역시나 오토바이들이 도로를 점령해 활기가 넘치고, 곳곳에 고층 빌딩이 서 있는 발전된 모습이었습니다. 또한 호치민 중심부를 흐르는 강을 따라서는 시민들이 여유있게 낚시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는데 잔디밭에는 낚시꾼들이 잡았는지 메기 같은 모습의 물고기가 놓여 있기도 했습니다.

호치민시에서는 현지인들의 생활을 있는 그대로 보고 싶은 생각에 에어비앤비로 숙소를 예약했는데, 덕분에 집안에 가파른 나선형 계단이 있는 4층 집에 머물게 됐습니다. 각 층의 방이 마치 스킵 플로어 구조처럼 배치되어 있었는데 오래된 집이긴 했지만 주인 아주머니와 친해져서 식사 외에도 옥수수와 다른 간식들도 얻어 먹으면서 편안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숙소에는 연세가 있는 독일인도 한명 장기 투숙 중이었는데, 원래 독일 IT회사에서 근무를 하다가 독일의 경제성장률이 점점 떨어지자 새로운 기회를 찾아 아프리카에 갔다고 합니다. 이후 다시 베트남으로 와서 일을 한다고 해서 현재는 무슨 일을 하냐고 물었더니 케냐에서 베트남으로 원목을 수입하는 무역업을 한다고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보통 베트남이라고 하면 1차 원자재를 수출하는 곳으로 생각했었는데 이제 베트남도 원목을 수입해서 가공해 판매하는 산업으로 확실히 옮겨 갔다는 것을 느끼게 됐습니다. 최근 국내 기업을 비롯한 글로벌 기업들이 베트남에 하이테크 공장을 세워 운영하고 있다는 기사들을 보면서 베트남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체감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또한, 60세가 넘은 나이에 베트남에 와서 새로운 인생의 기회를 찾고 있는 독일인 사업가를 보면서 그 도전정신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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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 재건축 정비조합 실태점검 관련 서울시 표창

오늘은 서울시에서 표창장을 받아왔습니다. 원래는 작년 12월에 받기로 되어 있던 것인데 코로나로 인해 별도의 수여식을 하지 않게 되어서 담당자가 표창장을 보관하고 있다가 오늘 전달받은 것입니다.

제가 서울시에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따라 재개발, 재건축 조합들에 대한 실태점검에 참여한지도 이제 햇수로 7년째가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시에 정비사업구역이 있는 재개발 조합과 재건축 조합들 40여개에 대한 점검을 해왔고, 조합 총회나 대의원회에 공공변호사로 참여한 것도 수십차례에 이르니 서울시 도시정비사업에 대해서는 나름 경험이 있는 편이라 할 것입니다.

최근 주택 매매가와 전세가가 폭등하면서 재개발, 재건축 사업에 대한 국토교통부나 서울시의 태도도 다소 변화가 느껴집니다. 아마도 앞으로 몇년 간 정비사업구역이 더 늘어날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정비사업구역이 증가한다고 조합의 부정이나 비리를 방관하거나 방치할 수는 없는 것이니 실태점검 역시 더 바쁘게 진행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 역시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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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철, 변호사로 의미를 남기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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