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과 미식의 대만여행 2

우리 일행은 전날까지 타이베이 시내를 둘러봤으니 이제는 타이베이를 벗어나 타이베이 근교를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당시 타이베이 근교 여행은 예류지질공원, 스펀, 진과스, 지우펀을 묶어 예스진지 투어라고 해서 택시나 개인 투어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대만의 기차를 타보고 싶다는 일행의 의견을 따라 기차로 진과스와 지우펀만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오랜만의 기차여행이고, 더구나 대만에서 기차를 타는 것이니 다소 설레기도 했는데, 막상 기차를 타보니 우리 전철처럼 승객이 양쪽에 앉아 서로 쳐다볼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었습니다. 타이베이에서 지우펀까지는 거리가 상당히 되었는데 일단 자리가 있길래 얼른 앉아 철로 주변 경치를 구경하다보니 어느새 지우펀 근처 역에 도착했습니다.

지우펀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라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배경이 된 곳으로, 좁은 골목 곳곳에 다양한 먹을 거리와 상품들을 파는 재미있는 곳이었습니다. 물론 관광객이 너무 많다보니 좀 답답한 기분도 들고 높은 고지대에 위치해 있어 안개가 끼고 비도 자주 내려서 불편한 면도 있었지만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먹어보지 못한 간식들도 먹고, 기념품도 살 수 있어 좋았습니다. 저와 누나네 가족은 지우펀에서 각자의 띠를 상징하는 자그마한 형광 도자기 인형들을 샀습니다. 저는 앙증맞게 생긴 인형이 마음에 들어 제가 퇴근한 후에도 제 방을 지키라는 의미로 사무실 책상 위에 놓아두었는데 퇴근할 때 불을 끄면 형광빛이 나면서 지금도 제 방을 밝히곤 합니다.

지우펀에서 주변 경치도 둘러보고, 배도 채운 후에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왔다는 골목으로 향했습니다. 역시 유명세를 타서인지 골목길은 지나가기도 어려울 정도로 사람들이 가득했는데, 골목길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다보니 전망도, 분위기도 좋은 전통 카페가 있었습니다. 비가 오다말다 하면서 추위가 느껴졌기 때문에 차를 한잔 마시고 가자고 하여 안개 사이로 바다가 보이는 전망이 좋은 곳에서 따뜻한 차를 한잔 마시니 몸이 좀 풀리면서 피로도 좀 사라졌습니다.

지우펀을 둘러본 후 다시 버스를 타고 진과스로 향했습니다. 진과스는 과거 금광으로 유명했던 곳인데 일본이 광산을 운영했던 시절의 영향이 컸는지 상당수 건물이 일본풍의 건축양식이었습니다. 과거 실제 금광이 운영되던 시절 역사와 금덩어리들이 전시되어 있는 내부를 둘러보고 광산에서 캐낸 광석에서 사금을 채취하는 체험 코스에 참여했습니다. 바닥의 모래를 바구니에 넣고 잘 흔들고 돌려서 사금을 골라내는 것인데 생각보다 재미가 있어 일행들이 모두 집중해서 열심히 금을 찾아냈습니다.

골드러시 못지 않은 열기로 체험을 끝내고 나니 힘이 들었는지 배에서 꼬르륵 거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진과스에 오면 다들 한번씩 먹는다는 광부 도시락을 먹기 위해 식당을 찾아 출발했습니다. 식당에 가니 둥그런 스테인리스통에 든 광부도시락을 팔았는데, 겉은 정성스럽게 포장이 되어 있고 안의 도시락 구성도 고기와 채소가 푸짐하고 맛도 괜찮아서 만족스러웠습니다. 맛있는 도시락과 따뜻한 국수로 식사를 배부르게 하고 나니 계속 걸어다니느라 힘들었던 것도 잊고 얼굴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진과스에서 식사까지 마친 후에는 다시 기차를 타고 타이베이 외곽의 단수이로 향했습니다. 단수이 해안가에 위치한 위성도시로서 일몰로 유명한데 제가 중국어 학습 스터디를 하면서 공부했던 대만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에 나오는 담강고등학교가 위치한 곳이기도 했습니다. 단수이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지고 있었는데,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도 좋았습니다.

단수이는 바닷가답게 해산물 요리로도 유명했기 때문에 현지인들이 즐겨찾는다는 맛집을 찾아가 새우요리 등 저녁식사를 거하게 한 후 타이베이의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하루종일 추운 곳을 걸어다녔더니 호텔방에 들어가자 완전히 지쳐서 간단히 따뜻한 물로 샤워만 한 후 바로 꿀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다음날은 대만여행의 마지막 날이자 수천년 역사를 지닌 중국의 역대급 보물들을 감상한 날이었는데, 바로 고궁박물관을 찾은 것이었습니다. 국공내전에서 패배한 국민당정부가 대만으로 넘어올 당시 대륙의 박물관에서 중국 역사상 중요한 유물들만 엄선해 싣고 왔다고 하는데 그 보물들을 전시해 놓은 곳이 고궁박물관입니다. 베이징 자금성도 중국에서는 고궁이라고 부르는데 아마 자금성에서도 유물들을 가져왔기 때문에 명칭을 그렇게 지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우리나라 관광객들에게도 배추 형태의 옥인 취옥백채와 동파육 모양의 옥인 육형석이 잘 알려져 있는데 그 외에도 상아 투각 조각품이나 청명상하도 등 수십만 점이 넘는 보물들이 가득한 곳으로 작품들이 너무 많아 연 4회 작품들은 전면 교체한다고 합니다. 저는 박물관에서 작품들을 보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데, 워낙 명작들이 많다보니 나중에는 꼼꼼히 보는 것을 포기하고 눈길이 가는 작품들 위주로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했는데도 한 바퀴를 다 돌고 나오니 다리가 아파서 얼른 음식점으로 가서 앉아 식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박물관 옆에 있는 식당이라 그런지 전시품인 육형석을 닮은 동파육이 가장 유명한 메뉴라길래 시켜서 먹었는데 우리가 먹는 삼겹살 부위인 것 같은데 훨씬 부드럽게 조리를 해서 입에 넣으니 녹아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주렸던 배를 달랜 후 하얀 박물관 밖에서 사진을 한장 찍는 것으로 대만 여행을 마무리했습니다. 대만여행은 온천을 비롯해 즐길 거리도 많고, 맛있는 음식도 많은데 물가는 생각보다 낮은 편이라 아주 만족도가 높았습니다. 나중에 부모님을 모시고 다시 한번 가본다면 아주 좋은 선택지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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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운전과 역지사지

저는 원래 출퇴근이나 업무를 보면서 자가용 운전을 별로 하지 않았습니다. 서울 시내 등 가까운 곳은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했고, 천안 정도 이상 거리는 기차를 이용했기 때문에 어떤 해에는 자동차보험을 갱신하면서 기재하도록 되어 있는 연간 주행거리에 600km를 적은 적도 있었습니다. 아마 자동차보험회사에서는 제 연간 주행거리를 보고 잘못 적은 것이거나 뭐 하는 사람인가 하고 궁금해 했을 것도 같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안전을 위해서 대중교통보다는 자가용을 많이 이용하게 된데다가 수원이나 평택, 파주 등 대중교통으로는 자가용 이용시보다 2배 가까이 시간이 소요되는 지역에서 업무가 많아 드디어 연간 주행거리가 7,000km를넘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그 주행거리를 적으면서 이제 나도 자동차를 제대로 모는 사람이구나 하는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으니 역시 사람은 별 것 아닌 것에 기쁨을 느끼기도 하는가 봅니다.

이렇게 자가용 운전을 계속 하다보니 기존에 주로 보행자나 대중교통 승객 입장에서 느꼈던 것들과 다른 것들을 생각하게 되기도 합니다. 제가 버스를 타고 있을 때는 몰랐는데, 버스들이 도로에서 생각보다 거칠게 운행을 한다거나 보행자들이 위험한 차가 접근하는데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등 새로운 것들을 많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보행자였을 때는 차량들이 횡단보도 신호등이 주황색, 파란색 등으로 바뀌었는데도 마구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졌는데, 막상 운전을 해보니 주황색 등에서 갑자기 정지하면 뒤에서 따라오던 후행차가 추돌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상황들을 경험해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자신이 경험하지 못했던 입장에 서보는 것으로 많은 것을 깨닫게 되기도 하는데, 몇년 동안 운전을 하면서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 것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먼저 우리나라에서 판매되는 수입차들은 왜 깜빡이라고도 불리는 방향지시등이 옵션인 것인지 궁금합니다. 많은 수입차들은 차선 변경시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는데 아마도 방향지시등이 기본으로 장착된 것이 아니라 옵션이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가격도 국산차보다 꽤 나가는 것들일텐데, 방향지시등 정도는 옵션을 추가 장착하지 않은 이른바 깡통차에도 기본으로 장착되어 있어야 하지 않나 합니다.

그뿐 아니라 요새 유독 도로에서 더 많이 보이는 오토바이라고 불리는 이륜자동차나 원동기장치 자전거의 경우도 방향지시등이 없어서 많은 경우 비상등을 켜고 달리는 것을 수시로 보게 됩니다. 물론 차량들 사이를 전후좌우로 누비면서 도로를 가로지르거나 역주행도 해야 하니 스스로도 어떤 방향으로 갈지 몰라 방향지시등을 켜기 어려운 것도 이해가 가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방향지시등 장착을 옵션으로 설정하는 것은 문제라고 보입니다.

제가 5, 6년 전 교퉁사고를 당해 운전을 별로 하지 않다가 올해 코로나로 인해 다른 해보다 운전을 많이 하다보니 새롭게 느끼고 배우는 것도 많이 있지만, 도로에서는 모두 안전운전이 코로나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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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급 공사대금 사건과 후련한 승소 판결

며칠 전에는 3년이 넘게 걸린 공사대금사건의 판결 선고가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은 사건이었는데, 다행히 제 의뢰인이 원하던대로 결과가 나왔습니다. 제가 원래 이 사건을 수임했을 때는 미지급 공사대금을 지급받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갑자기 공사대금을 줘야 할 원청회사가 제 의뢰인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한 약간 황당한 사건이었습니다.

원청회사의 주장은 제 의뢰인 회사가 부실공사를 해서 하자가 많이 발생했고, 이러한 하자보수에 많은 비용이 들었기 때문에 하자에 갈음하는 손해를 배상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공사대금 중 상당액을 지급받지 못한 제 의뢰인 회사는 공사대금을 지급받아야 하자보수를 해줄 수 있다는 입장이라 수차례 조정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판결을 받게 된 것이었습니다.

소송의 전개는 일단 원청회사가 제 의뢰인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를 제기했고, 이에 제가 제 의뢰인 회사를 대리해서 하자 내용에 대해 다투면서 지급받지 못한 공사대금을 청구하는 반소를 제기하는 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런데 일반적인 공사대금 소송과 달리 이번 사건은 좀 특이한 점들이 있었습니다.

먼저 소송과정에서 상대방 원청회사는 재판을 계속 끌어야 공사대금을 늦게까지 안 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인지 자신이 원고로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해 놓고도 1년 반 가까이 자신의 손해를 입증하기 위한 증거자료를 제대로 제출하지 않았습니다. 일반적으로 공사를 하게 되면 공사대금의 최소한 3%에서 5% 정도에 해당하는 금액은 하자보수에 소요되기 때문에 저희도 이런 사정을 고려하고 있었는데 상대방 원청회사는 계속 시간을 끌면서 증거자료도 내지 않고, 하자감정도 신청하지 않다가 1년 반 정도 지나 변론 종결을 할 시점이 되어서야 부랴부랴 감정을 신청했던 것입니다.

다소 의아했던 것은 제가 맡고 있는 다른 성격의 사건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즉, 제 의뢰인이 저작물의 인세 일부를 받지 못해 미지급 인세의 지급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려고 준비 중이었는데 갑자기 상대방이 제 의뢰인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하더니 2년 동안 손해를 제대로 입증할 생각도 하지 않고 재판만 계속 끌었던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새 이렇게 채무자가 오히려 소를 제기해놓고 시간을 끄는 것이 유행이라도 하는 것인지 어처구니가 없기도 했습니다.

또한 원청회사에서 하도급을 받아 공사를 하다보면 추가 공사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 경우 원청회사는 추가 공사에 대해서 공사대금을 좀 낮춰서 주려고는 해도 하도급 업체가 추가 공사를 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서는 명백히 기존 계약 범위를 벗어나 공사를 한 것이 맞는데 원청회사는 제 의뢰인 회사에게 그런 추가공사를 하라고 지시한 적이 없다면서 추가공사대금을 지급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재판 진행 과정에서 원도급회사의 진술을 통해 원청회사가 원도급회사로부터 제 의뢰인이 시공한 추가공사에 대한 대금을 추가로 지급받고도 제 의뢰인 회사에게 추가 공사를 지시한 적이 없다고 허위 주장을 했다는 것이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결국 그렇게 진실이 명백히 드러날 것인데도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대놓고 법원을 속이려고 했던 것인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입니다.

마지막으로 원청회사는 재판이 불리해질 것 같자 스스로 하자보수를 했다면서 이런저런 증거들을 냈는데 많은 자료들이 일자나 내용이 모순되거나 관련이 없는 자료로 보이기도 했습니다. 더구나 이렇게 제출한 자료들의 신빙성에 대해 제가 반박을 하자 제대로 답변은 하지 못하면서 새로운 변호사를 추가로 선임해 하자감정을 신청했는데, 그 감정신청 내용 역시 믿기가 어려운 것이 많았습니다.

이렇게 이해하기 어려운 재판 진행 끝에 결국 제 의뢰인은 추가공사대금을 포함하여 지급받지 못한 공사대금 전액을 인정받았던 반면, 상대방인 원청회사는 중간에 손해배상 청구액까지 증액하였으나 결국 청구한 하자보수에 갈음하는 손해배상청구액의 20% 정도만을 인정받는 판결문을 받아들게 되었습니다.

저는 예상보다 너무 오랫동안 사건이 진행됐을 뿐 아니라 고의로 재판을 지연하려고 했던 행태가 눈에 보였기 때문에 거의 제 의뢰인에게 상당히 유리하게 나온 판결을 보면서 속이 후련하기까지 했습니다. 제 의뢰인에게 전화를 하는 마음도 가벼웠고, 제 의뢰인 역시 판결 내용을 듣더니 목소리가 아주 밝아져서 저 역시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사건에서는 이렇게 속이 후련한 결과가 계속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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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과 미식의 대만여행 1

한동안 대만 여행 붐이 분 적이 있습니다. 동남아시아보다 가깝고, 일본보다 물가는 싸지만 온천 등 휴양지나 맛집도 많아 우리나라 여행객들의 선호도가 높아졌었기 때문일 겁니다. 저도 중국어 공부를 하면서 봤던 “말할 수 없는 비밀”이라는 영화의 배경이 타이베이 옆 단수이에 있는 담강고등학교였기 때문에 대만여행을 한번 가보고 싶었습니다. 마침 제 누나네 가족들이 시간이 맞아서 함께 대만으로 출발했습니다.

예약할 때 고급 숙소도 생각보다 저렴해서 저녁에 호텔에 도착했을 때부터 매우 만족스럽게 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도착한 다음날은 일단 다들 가는 용산사부터 들렀습니다. 용산사는우리와 달리 불교에 도교 및 유교까지 함께 모시는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는데, 향을 피우면서 소원을 비는 사람들로 사찰 안이 뿌옇게 연기로 차 있을 정도였습니다. 저도 향에 불을 붙여 간단하게 소원을 빌었는데, 가만히 보니 공물로 일본어가 잔뜩 적힌 롯O 과자들이 많이 놓여 있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와 대만은 모두 일본의 식민지 시절을 겪었지만, 일본의 식민지배 방식이나 상황이 서로 다른 부분이 많다보니 양국이 식민지에서 해방된 이후에 일본과의 관계나 국민들의 감정도 차이가 많이 나는 것 같았습니다.

용산사를 나와 시내로 이동해 딤섬으로 유명한 식당을 찾아갔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지점이 들어와 있는데 대만 본점과 우리나라 지점의 맛 차이에 대해 약간 논란이 있긴 했는데, 저는 사실 차이를 잘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냥 둘 다 맛있었습니다. ㅎㅎ 식사 후에는 주변 상점들을 돌면서 예쁜 상품들을 살펴봤는데, 나무로 만든 모빌이나 오르골 등 고급스러운 제품들이 많이 있어서 하나 사고 싶은 유혹을 느꼈습니다. 구경을 하다가 배가 좀 고파서 파인애플이 들어간 펑리수라는 간식을 사먹었습니다. 대만에 도착하자마자 마트에서 사먹었던 밀크티처럼 펑리수도 꼭 먹어봐야 하는 필수 코스처럼 되어 있었는데, 많이 달지 않아서 나쁘지는 않았지만 사실 좀 퍽퍽해서 제 취향은 아니었습니다.

시내를 돌면서 구경을 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많이 흘러 저녁이 되었습니다. 타이베이에서 가장 높은 타이베이 101 빌딩은 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최상층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야경이 멋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저녁이 되자 타이베이 101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전망대 티켓 가격이 생각보다 좀 비싸서 볼 것이 많은가 하는 기대를 하게 했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자 꽤 이동속도가 빨라서 귀도 좀 멍멍했습니다.

전망대에 도착해서 밖의 야경을 보다가 한 층 위로 올라가니 엄청나게 큰 철구가 천장에 매달려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이게 뭐지 하고 깜짝 놀랐는데, 설명을 보니 타이베이 101 빌딩이 워낙 높은 빌딩이라 태풍 등 센 바람이 불거나 지진 등 진동이 큰 경우 건물이 흔들리는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철구가 흔들리면서 빌딩이 무너지지 않도록 무게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초고층 빌딩들에도 그런 장치가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런 발상을 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전망대에서 야경까지 구경하고, 아래로 내려오니 산호나, 옥 등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귀한 재료로 만든 공예품들이 많이 있어 다 둘러보고 나오는데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하루 종일 돌아다녔더니 좀 피곤해서인지 호텔로 돌아온 후 곤히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에는 장개석 총통을 기념하는 중정기념관을 갔다가 노천 온천에 가기로 했습니다. 중정기념관은 학창시절 중국어 교과서 표지에도 그려져 있었던 건물인데, 실제로 보니 책에서 보던 것보다 더 웅장한 모습이었습니다. 특히 중국 전통 청기와가 하얀 벽과 어울렸는데, 올라가는 계단이 꽤 길어서 땀이 나고 숨이 좀 찰 정도였습니다. 건물 안에는 삼민주의를 강조하는 장개석 총통의 동상도 있었는데, 대만에서 수십년 동안 계엄령을 통한 독재로 종신 집권을 했던지라 다른 독재자들처럼 엄청나게 큰 동상을 남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중정기념관 내부를 둘러본 후 간단한 기념품도 사서 우리 일행은 노천 온천을 하러 길을 나섰습니다. 대만은 불의 고리라 불리는 환태평상 화산지대에 위치해서인지옛부터 유명한 온천이 많았다는데, 그 중 시민들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노천 온천이 있다고 해서 호기심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막상 도착해보니 거의 무료인 것은 맞는데, 탈의실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고 불편한 점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어찌어찌 수영복으로 얼른 갈아입고 사람들 틈을 비집고 온천탕에 들어가니 뜨거운 온천이 쌓여 있던 피로를 확 풀어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근데 생각보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제대로 온천을 즐기기에는 적당하지 않고, 한 번 정도 온천을 경험해보는 정도로는 괜찮아 보였습니다.

노천 온천을 하고 나니 배가 좀 고프기도 하고, 조카가 초밥이 먹고 싶다고 해서 회전 초밥집에 갔는데 생각보다 저렴하고 맛도 있어서 역시 대만은 미식 여행지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배를 채운 후 좀 어둑어둑해지자 먹거리와 볼거리로 유명한 스린 야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아직 우리나라에 프랜차이즈점이 들어오기 전이었던 대왕 카스테라도 사먹고, 큐브 스테이크도 먹으면서 구경을 하다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려서 호텔로 돌아가 간단히 맥주 한 잔을 마신 후 잠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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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입법 프로젝트 법제 자문

저는 얼마 전부터 공공기관의 입법 관련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컨설팅 업체에 법제 자문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해당 공공기관은 기존 업무 외에 새로운 사업영역으로 업무를 확장하려고 노력 중인데, 이러한 과정에서 기관의 존립 및 업무영역의 근거를 확실하고 명확하게 법률로 규정하고 싶은 것입니다.

이런 입법 관련 자문 업무는 변호사들이 통상적으로 담당하는 업무는 아닌데, 변호사들은 종래 송무라 불리는 소송사건을 맡거나, 기업이나 공공기관의 법적 문제에 대한 질의응답이나 예방적 대응 등 자문을 많이 맡아 왔습니다. 그래서 김OO, 광O, 태OO 같은 대형 법무법인들이나 이런 업무를 맡고는 하는데 마침 저희 법인이 부동산과 관련한 업무를 많이 하다보니 부동산 법제나 도시계획 등 관련 실무를 잘 아는 편이라 컨설팅 업체로부터 저희 법인이 업무를 맡아줄 수 있느냐는 제안을 받게 된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저희 법인 내에서도 이런 유형의 업무에 경험이 있는 변호사가 없어 제대로 업무 수행이 가능할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유사한 입법 관련 보고서를 작성해본 적이 있고, 관련 전공 교수님들로부터 조언을 받아서 진행하면 못 할 것도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제가 주관을 해서 업무를 진행하는 것으로 계약을 체결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업무를 진행하면서 느낀 것은 비록 이번에 담당하는 업무가 법률자문이기는 하지만, 경영자문과 비슷한 측면이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단지 법적인 내용만이 아니라 어떤 내용과 형식으로 법안을 만들고, 어떤 방법으로 법안을 통과시킬 것인지에 포괄적인 자문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공공기관의 경영전략 차원에서 장래 어떤 방향으로 사업을 이끌고 가고, 비전을 제시할 것인지 경영자문 컨설팅업체의 컨설턴트들과 함께 고민하기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저는 학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는데, 경영학의 많은 과목들 중 경영전략을 특히 좋아했고, 실제로 해당 과목의 성적 또한 좋았습니다. 그래서 만일 사법시험에 최종적으로 불합격하면 컨설턴트가 되고 싶은 생각도 있었는데, 지금 법률자문 측면이 주된 것이긴 하지만 마치 제가 컨설턴트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런 업무를 실무적으로는 처음 맡아 진행하는 것이고, 저희 법인에서 제가 주관이 되어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약간은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법학이나 법조실무처럼 거의 모든 것이 확고하게 정해진 상태에서 일부만 변경할 수 있는 여지가 있어 운신의 폭이 적은 업무만 하다가 뭔가 기초부터 설계하여 추진할 수 있는 업무를 하다보니 학부 시절이 생각나기도 하고 더 생기가 넘치는 느낌도 받습니다.

저에게 우연히 온 기회이지만, 또한 소중한 기회이기도 하기에 프로젝트가 그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충실하게 업무를 진행해서 좋은 결과를 이끌어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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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 가득한 몽골여행 6

홉스골에서의 마지막 아침은 일출을 보는 것으로 열고 싶었습니다. 전날 밤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다들 잠들어 있는 어슴프레한 시간 저는 먼저 일어나 숙소 뒷편의 동산에 올랐습니다. 호수에 비친 해를 보기에 딱 좋은 명당이란 얘기를 이미 들었기 때문입니다. 잠시 후면 다시 귀국길에 나서야 했기 때문에 혼자서 쌀쌀한 몽골의 아침 공기로 정신을 맑게 하고 지평선 끝에서 쑥 올라온 해가 내뿜는 은은한 아침햇살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몽골의 자연 속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고 있자니 한국에서 가지고 있었던 여러 고민들이 실은 별로 중요한 것들이 아니었다는 호연지기가 생기는 것도 같았습니다. 그렇게 홉스골과의 이별을 고하는 저만의 조용한 의식을 마무리하고 숙소로 돌아와서 짐을 꾸렸습니다. 저는 일행들 중 귀국하는 일부 사람들과 무릉으로 이동해 비행기를 타고 다시 울란바토르로 돌아갔는데, 막상 울란바토르에 가니 베이징에서 울란바토르에 가려고 3번이나 시도했던 생각이 나서 감개가 무량했습니다. 울란바토르에서 하루 머무는 동안 일행과 유명한 꼬치구이집에서 꼬치도 먹고, 국영백화점에서 몽골 특산품인 모피, 양털 제품과 칭기스칸이라는 브랜드의 40%짜리 증류주 쇼핑도 했습니다.

다음날 울란바토르에서 다른 일행들은 한국으로 가는 직항을 탔는데, 저는 베이징을 경유해 하루 묵을 예정이었기 때문에 일행들과는 한국에서의 뒷풀이 약속을 잡고 헤어졌습니다. 저는 울란바토르에서 비행기를 타고 베이징에 가는 길에 몽골에 갈 때와 같은 비행기를 탔는데, 그때서야 왜 비행기가 2번이나 회항했는지 진짜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울란바토르 칭기스칸 공항을 이륙했던 비행기가 베이징 공항에 거의 도착했을 때 일상적으로 했던 것처럼 뒤로 젖혀져 있던 좌석을 버튼을 눌러 원상복귀시키려는데 잘 돌아오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몇번 버튼을 누르다가 뒤를 돌아보니 제 뒤에 앉아 있던 승객이 저를 돕기 위해 좌석을 앞으로 밀었는데, 갑자기 뚝 하는 소리가 나면서 좌석이 부러지는 것이었습니다. 좀 당황스럽기도 하고, 비행기 좌석이 그렇게 쉽게 부러진다는 것이 황당하기도 했는데, 아마도 그 정도로 노후화된 기체로 해당 노선을 운항했기 때문에 조금만 기상 상황이 안 좋아져도 착륙을 하지 못하고 회항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덜렁거리는 좌석에 앉아서 그래도 다행히 베이징 공항에는 무사히 착륙할 수 있었습니다.

몽골로 오는 길에 예상치 못하게 베이징에서 하룻밤을 자긴 했지만, 한국으로 귀국하는 길에는 예정했던대로 베이징 도심의 뒷골목인 후통 숙소에 짐을 풀고 하루를 제대로 즐길 수 있었습니다. 먼저 중국의 현대사를 지켜본 천안문 광장에 들렀는데 사람들도 많고, 테러 위험이 있었는지 광장에 들어갈 때 여러 번 소지품검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천안문 광장에 걸린 마오쩌둥 주석 사진과 오성홍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데 어떤 중국인이 저에게 중국어로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을 하기도 해서 사진을 찍어준 다음 나는 중국인이 아니라고 말해줬습니다. 저는 돌아서면서 제가 중국인처럼 생겼나 하는 생각이 들어 속으로 웃기도 했습니다.

저는 천안문 광장만이 아니라 주변의 최고인민법원, 대검찰청과 공안부도 지나가면서 봤는데 관청의 위치가 그 지위를 알려준다는 말처럼 자금성을 면한 중심대로에는 공안부가 위치해 있고, 우리 대법원인 최고인민법원과 대검찰청인 최고 인민검찰청은 왕복 2차선이 있는 뒷골목에 있어 중국에서 사법부가 차지하는 위상이 어떤 것인지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제가 대법원 앞에서 사진을 한장 찍으려고 하자 정문 앞에서 경비를 서고 있던 공안이 제지를 하길래, 한국에서 온 변호사인데 기념으로 사진을 찍을 수 없냐고 설명을 했지만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고 해 할 수 없이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단 사진 촬영은 포기하고 그 옆에 있는 다른 법원들 건물들을 지나오는데 어떤 할머니 한 분이 계속 소리를 지르고 있어서 무슨 일인가 했더니 판결이 억울하다는 내용인 것 같아 우리나라처럼 중국에서도 저렇게 하는 사람들이 있구나 하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제가 관심이 있었던 관공서들을 둘러보고는 후통으로 버스를 타고 이동해서 뒷골목의 오래된 집들과 가게들을 구경하다가 마음에 드는 곳에서 식사도 하면서 혼자서 누구도 신경쓰지 않고 여유를 즐기다가 다음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오랫동안 여행하고 싶었던 몽골에 참 어렵게 갔지만, 그래도 그 정도 고생을 했기에 평생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게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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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당시 고이율 원리금과 청구이의의 소 승소

지난 주에는 의뢰인의 채무부존재를 주장하여 진행한 청구이의의 소에서 승소했습니다. IMF 이후 무너져내린 국가 경제로 어려움에 처한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제 의뢰인도 그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IMF로 경제 사정이 어려워지자 소액대출과 신용카드론으로 생활비를 충당했었는데 개인파산이나 회생을 신청하지 않고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했었습니다.

하지만 한번 가라앉기 시작한 배를 다시 띄우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대출만기가 되었지만 상환을 하지 못하고 연체를 하게 되었는데, IMF 이후 이자제한법이 폐지될 정도로 이자가 급등했었기 때문에 원금의 몇 배에 이르는 이자가 변제해야 할 원리금으로 쌓이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금융기관들은 제 의뢰인에게 그렇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원리금을 받기 위해 지급명령과 소액사건심판을 청구했는데 제 의뢰인은 막노동으로 생활비를 버느라 전국을 돌아다니고 있었기에 소장도 제대로 송달받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20여년 가까이 시간이 흘러 제 의뢰인은 자신의 채무가 어떻게 된 것인지 잊고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제 의뢰인에 대한 채권들은 채권추심업체들 사이를 돌고돌다가 마침내 자산관리공사가 제 의뢰인을 상대로 강제집행을 시도하면서 제 의뢰인이 상황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제 의뢰인은 2018년과 올해 청구이의의 소를 제기했는데, 이후 저를 찾아와 상담을 받았습니다.

상황을 보니 처음에는 기존에 판결과 지급명령도 받아 확정된 바 있고, 대출도 의뢰인이 빌린 것이 맞아 별로 가능성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래도 상담을 하면서 기존 진행 과정에 대해 의뢰인에게 묻다보니 지급명령과 소액사건심판으로 소멸시효가 완성된 것인지 약간 의문이 들었습니다. 일단 의뢰인에게 결과는 장담할 수 없지만 관련 소송기록을 다시 확인해보고 얘기해보자고 한 후 기존 사건 기록들과 판결문, 지급명령 등 내용을 보니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점들이 다수 있었습니다.

원래 제가 맡았던 사건은 올해 제 의뢰인이 소제기했던 사건인데, 사실상 동일한 채무에 대해 의뢰인이 이미 2018년 소를 제기했었고, 그 사건의 판결선고가 얼마 남이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그 사건에서 불리한 판결이 나면 제가 맡은 사건도 불리해질 수 있어서 제가 검토한 내용을 바탕으로 판결선고 일주일 전 참고서면을 제출했는데, 다행히도 다 합쳐 5천만원 정도에 해당하는 채무가 시효로 모두 소멸되었다는 전부 승소판결을 받았습니다.

상대방은 전부 패소했는데도 승산이 없다고 보았는지 항소를 하지 않았고, 저는 기존 판결문을 진행 중인 사건에 제출하면서 동일한 논리의 준비서면을 제출했습니다. 상대방은 여러 금융기관들에 사실조회를 신청했지만, 자신이 원하는 자료나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회신을 받지 못했고 마침내 지난 주 총 6천만원 정도에 해당하는 채권들이 모두 시효 소멸되었으므로 이런 채권들을 기초로 한 강제집행을 정지한다는 내용의 전부 승소 판결을 받았습니다.

승소판결을 받고 의뢰인에게 연락을 하니 의뢰인이 이제 조금만 더 노력하면 새출발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을 했습니다. IMF로 인한 고통이 20년이란 시간을 넘어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안타깝기도 했지만 이제 다시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울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판결문을 송달받으면 사무실로 오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으면서 제 얼굴에도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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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전트를 맡은 프로야구 선수의 방출

저는 작년 프로야구선수협회의 선수대리인 자격을 취득해 올해부터 프로야구 선수들의 에이전트 업무도 맡고 있습니다. 은퇴한 프로선수들과 함께 일반인과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대표님과 친분이 있어 얘기를 나누다가 프로스포츠 선수들이 어떤 환경에서 운동을 하는지 듣고 흥미도 생기고, 빛을 보지 못한 선수들을 찾아 성공하도록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입니다.

에이전트 업무를 시작한 초기에는 스포츠 업계와 직업적으로는 별 관계없이 살았던 터라 에이전트를 할 수 있는 선수들이 별로 없었는데, 다행히 몇몇 선수들과 인연이 닿아 에이전트 업무를 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올해 초 코로나가 닥치면서 갑자기 상황이 급변했습니다. 프로야구를 비롯한 프로스포츠 리그가 중단되기도 하고, 이후 경기가 재개되긴 했어도 무관중이나 제한적인 수의 관중만 입장할 수 있는 상태로 진행되어 스포츠 산업 전반이 침체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그래도 저는 에이전트를 맡고 있는 선수들의 후원을 위해 저와 친분이 있는 업체들을 통해 후원이나 선수들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주선해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수년간 프로야구의 인기가 점점 떨어진데다가 올해는 워낙 강력한 코로나 바이러스의 충격으로 선수들에게 경기용품을 후원해주는 업체를 찾는 것도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아는 인맥을 통해 후원 여부를 문의하고, 자료들을 보내고 만나기도 했지만 누구도 쉽게 후원에 나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런 와중에 프로야구 정규 시즌이 끝나고 제가 에이전트를 맡고 있는 선수들 중 일부가 구단에서 방출되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선수들이 방출됐다는 기사를 보고 연락을 해보니 어떤 선수는 다른 구단에서 접촉을 해오기는 했는데 실제 현역으로 뛰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는 생각에 지도자 과정을 준비하기도 하고, 또 다른 선수는 아직 포기하지 않고 집에서라도 운동을 계속 하겠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제 마음 같아서는 방출된 선수들을 다른 구단에 다시 입단시켜주고 싶지만, 현재 각 구단들이 다들 보유하고 있던 선수들을 방출하고 있는 상황이라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저와 통화를 하면서 방출된 선수들은 애써 태연한 척 했겠지만 많이 주눅이 들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선수들이 희망을 갖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격려하면서 시간을 내서 같이 식사와 술 한잔 약속을 하는 정도였습니다.

코로나로 인한 고난은 모든 사람들에게 다가왔지만, 그 고통의 크기는 모두에게 동등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맡고 있는 선수들이 다시 한번 힘을 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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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 가득한 몽골여행 5

홉스골은 몽골사람들도 선망하는 여행지답게 곳곳에 즐길 거리가 많았습니다. 숙소에서 여독을 풀면서 휴식을 취한 우리 일행은 본격적으로 계획했던 액티비티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 첫번째는 홉스골 호수를 보트를 타고 즐긴 후 호수 한 가운데 있는 섬을 둘러보는 것이었습니다. 보트를 타러 선착장으로 가는 길에 보이던 홉스골 호수는 참 맑다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곳곳에 핀 들꽃들도 예뻤는데, 그 꽃들만큼이나 말똥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는 것도 재밌는 일이었습니다. 몽골사람들이 자랑스러워하는 징기스칸의 그림도 식당이나 보트 선착장, 시장 등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 일행은 다같이 선착장에서 보트를 빌려 바람을 가르면서 홉스골 호수를 내달렸습니다. 좁은 푸르공 차안에 갇혀 일주일 가까이 이동만 하다가 탁 트인 호수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고 있으니 답답했던 가슴이 다 풀리는 것 같았습니다. 보트는 얼마간 수면을 가르며 달리다가 섬에 다다랐는데, 섬에 올라 살펴본 경치는 예상했던 것보다도 매우 평화롭고 아름다웠습니다. 호숫가에 늘어선 나무와 초승달 모양의 호반까지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안식처 같은 곳이었습니다.

보트를 타고 섬을 구경한 후에는 다시 호숫가로 돌아와 숙소로 이동했는데, 가는 길에 작은 늪 같기도 하고 나무가 늘어서 있기도 한 작은 숲 같은 곳을 지났습니다. 지나가면서 보니 들판 한쪽에는 말들이 풀을 뜯고 있었는데, 몸집이 경마에 출전하는 말들과 달리 제주도에서 봤던 조랑말들처럼 좀 작고 아담했습니다. 말 옆에는 남자아이들이 말을 돌보고 있었는데, 우리 일행이 말들 가까이 가니 게르에 앉아 있던 남성이 나와 얘기를 하는데 알고보니 그 말들은 우리 같은 여행자들을 태우고 투어를 하는 말들이었습니다.

실제 살펴보니 말들이 귀엽고 작은 편이라 우리 일행은 말을 타도 별로 무섭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음날 말을 타고 뒷산을 올라가는 투어를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날은 보트를 타고 돌아다녔더니 다들 좀 피곤했는지 좀 쉬다가 저녁 무렵에는 팀을 짜서 숙소 한쪽에 있는 배구장에서 내기 배구를 해서 식사 당번을 정하는 등 여유로운 시간을 즐겼습니다.

다음날 드디어 몽골에 온 목적 중 하나인 말을 타게 되었습니다. 다들 말을 타는 것은 처음이라 말을 어떻게 다루는지도 알지 못했는데, 일단 앞에서 안내하는 분이 말이 어느 방향으로 갈지 지시하는 방법과 말이 발을 멈추게 하는 방법을 알려줬습니다. 이어서 가이드가 말을 타고 인도해면 저를 비롯해 우리 일행이 탄 말들이 그 말을 따라가는 식으로 30분 정도 평지에서 연습을 했습니다. 그리고 좀 익숙해진 후에는 약간 속도를 내서 뛰어보기도 했는데, 말들이 힘이 드는지 잘 뛰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좀 말타기에 익숙해지자 슬슬 산쪽을 향해 말들을 타고 줄지어 가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습니다. 놀라서 돌아보니 뒤에서 오던 말 한마리가 자기보다 서열이 낮은 말이 먼저 걸어가자 그 말을 물려다가 그 말에 타고 있던 우리 일행 중 1명의 다리를 물었던 것입니다. 다행히 청바지를 입고 있어서 별로 다치지는 않았는데 나중에 보니 말이 문 이빨 자국이 있고 주위가 새파랗게 멍이 들어 있었습니다. 여행에서 돌아간 후 2달 지나 결혼식을 할 예정이라 혹시라도 다리에 든 멍 때문에 웨딩 드레스 입는데 문제가 있을까바 걱정이 좀 됐습니다.

우리 일행들이 좀 놀란 것 같자 가이드가 일단 말에서 내려서 좀 안정을 취하자고 해서 다들 말에서 내려왔습니다. 생전 처음 말을 타고 자세를 잡는 것도 쉽지는 않았고, 말들이 말을 잘 듣는 것도 아니라서 다리에 힘을 주느라 저도 좀 힘들었습니다. 말에서 내린 저는 가이드에게 옆에 있는 게르 위에 있는 하얀 것이 뭔가 물어봤는데 알고보니 무릉 시장에서 봤던 말젓으로 만든 치즈 말린 것이었습니다. 제가 쉬고 있는 말들 가까이 가서 좀 친해지려고 쓰다듬어 주려는 순간 갑자기 쉭 하는 소리가 나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소리인가 하고살펴보니 말 중 한 마리가 물을 버리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일행들이 이걸 보고 다들 웃다보니 긴장했던 마음들이 좀 풀리는 것 같았습니다.

상황이 좀 진정된 후 다시 산을 향해 말을 타고 가는데, 원래 가이드에게 듣던 것과 달리 말들은 고삐를 놓아 주건 다리에 힘을 주건 상관없이 자기가 가고 싶은대로 걸어갔습니다. ㅎㅎ 평소에 잘 밥을 잘 못먹는 건지 계속 길을 벗어나서 풀을 뜯어 먹으려고 했고, 특히 꽃이 보이면 특식이라고 생각하는지 남김없이 뜯어 먹었습니다. 가이드 아저씨가 그런 말들을 힘들게 인솔해서 오솔길을 따라 산 위로 올라가는데, 말들이 각자 식사를 즐기면서 길을 가다보니 생각보다 가는 속도가 느렸습니다.

산을 오르는 것이다 보니 경사가 좀 있는 곳에서는 말이 헐떡이는 것을 몸 전체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말을 타보면 말과 혼연일체가 되고, 말을 아끼게 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아마 그런 느낌이었던 것 같습니다. 말을 타고 가면서 옆에 펼쳐지는 풍경들을 보고 있자니 평화롭기도 하고, 저멀리에는 푸르른 숲과 호수, 하늘의 멋진 대비가 눈길을 사로잡기도 했습니다.

가이드 아저씨는 계속되는 오르막을 오르느라 가쁜 숨을 내쉬는 말들도 쉬게 하고, 멋진 풍경을 여유있게 사진으로 남길 수 있도록 휴식시간을 가졌습니다. 이제는 다들 말에 적응을 했는지, 말에게 다리를 물린 일행도 편안하게 대화를 하면서 열심히 사진을 찍었습니다. 말을 나무에 묶고 쉬게 한 후 저는 좀 더 전망이 좋은 위쪽으로 걸어가서 홉스골 호수와 숲을 바라보면서 바쁘게 살아왔던 한국에서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산을 내려온 후 밤에는 우리가 머물던 숙소에서 캠프파이어 등 행사가 있어서 우리 일행 뿐만 아니라 다른 여행객들과 함께 어울려 함께 술을 마시고, 춤도 추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홉스골에서의 마지막 밤이 화려한 불길과 함께 지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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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 가득한 몽골여행 4

우리 일행은 테르힝차강노르에서 은하수의 밤을 보낸 후 고요한 아침의 여유를 즐기다가 다시 차를 타고 다음 목적지인 무릉으로 출발했습니다. 무릉으로 가는 길에는 맑은 물이 흐르는 작은 시내들이 이어지는 초원과 푸른 숲이 우거진 언덕이 연이어 있는 고원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시냇가에서 소들이 풀을 뜯고, 언덕 위로는 푸르른 하늘 사이로 구름이 훌러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몽골에서는 사진을 찍기만 하면 그림 엽서가 된다는 말이 거짓말이 아니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무릉은 우리의 최종 목적지인 홉스골에 도착하기 전에 있는데 몽골에서는 나름 번화한 도시여서 홉스골에서 식사를 해먹을 식재료들과 필요한 물품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필수품인 술을 살 수 있는 적당한 장소였습니다. 그래서 일행들과 함께 무릉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쇼핑도 하고, 양젖을 말려 만든 치즈 등 맛있어 보이는 간식들도 사먹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고기를 파는 시장 한 쪽에는 독특하게도 몽골 전통 그림도 걸려 있어서 한참 보다가 다른 일행을 잠시 잃어버리는 일도 있었는데, 다행히 무릉 시내에서는 스마트폰 데이터를 이용할 수 있어서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 다시 만날 수 있었습니다.

무릉에 도착해 하룻밤을 잔 후 마침내 우리 일행의 목적지인 홉스골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홉스골은 면적이 제주도보다 큰 호수로, 러시아의 바이칼 호수와 지하로 연결되어 있다는 말까지 나오는 곳입니다. 차를 달려 홉스골에 점점 다가가자 저 멀리 보이는 푸르른 호수와 주변의 숲이 왜 몽골 사람들에게 홉스골이 성스러운 곳이자 휴양지로 인기가 높은지 알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마침내 홉스골 호수에 도착해 둘러보니 선착장이 있고, 옆에 정박한 배로 호수 가운데를 건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또 선착장 인근의 작은 상점들에서는 몽골에서 나는 특산품으로 만든 악세사리등을 팔고 있었습니다. 저는 여행하면서 기념품으로 이런 물건들을 사오곤 하는데, 몽골 여행을 상기시켜줄 사슴뿔을 발견한 후 신이 나서 뽀송뽀송한 털이 나 있는 작은 사슴뿔 2개를 사왔습니다. 귀국해서 때가 잔뜩 낀 사슴뿔들을 샴푸로 빨었더니 뭉쳐 있던 털들이 부드럽고 윤기가 흐르는 모습으로 변했습니다.

홉스골에서는 한 숙소에 오래 머물기로 했는데, 우리가 예약한 숙소까지는 다시 호숫가를 따라 차로 한참을 가야 했습니다. 마침내 숙소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푸르공 기사님과 가이드와 아쉬운 작별 인사를 한 후 각자 배정받은 방에 짐을 풀었습니다. 잠시 방에서 휴식을 취한 후 우리는 홉스골에서 제대로 여행을 즐기기 위해 숙소 주변을 돌아다니며 탐색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우리 숙소 주변에는 우리가 원래 예약하려고 했었던 다른 숙소도 있었는데, 더 깔끔하고 조용해 보이긴 했지만 원래 예상했던 곳보다 숙박비가 비싸서 가성비를 고려하면 실제로 묵기로 한 숙소가 더 낫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렇게 홉스골 호숫가를 걸어다니며 상점, 음식점, 모터보트 투어 여행사, 승마장 등 필요한 주변 지리를 익힌 후 어두워진 후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홉스골에서의 첫날 밤은 호수에 비친 달과 함께 기울어 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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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철, 변호사로 의미를 남기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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