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 매력이 넘치는 베트남 여행 2

옛 베트남 왕국의 수도였던 후에 여행을 마친 후 다시 다낭으로 돌아와 뒤늦게 출발한 일행을 만났습니다. 다낭은 과거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이 주둔했던 지역 부근으로 한국군의 휴양지였던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나트랑(나짱)이 미군의 휴양지로 유명했던 것과 대비되는 곳인데, 이러한 역사로 인해 다낭에는 이른바 ‘라이따이한’들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제는 다낭에 한국기업들이나 한국 자본이 많이 진출하여 몰려오는 한국인 관광객들을 상대로 하여 해변에 초고층 호텔과 식당 등 시설이 많이 들어서 있었습니다.

다낭에서의 첫날 아침은 해변을 따라 호텔에서 빌린 자전거를 타면서 주변 지리를 익히는 것으로 시작했는데, 관광객들을 상대로 한 시설들을 짓느라 그런지 여기저기 공사장이 많았습니다. 저와 일행은 자전거를 호텔에 다시 반환한 후 전날 의논한 것처럼 다낭 시내에서 멀지 않은 마블 마운틴으로도 불리는 오행산을 찾았습니다. 오전에 출발해서 그런지 다행히 관광객들이 생각보다 많지는 않았는데, 관람티켓을 사려고 했더니 매표소가 2곳이나 있어서 좀 헷갈렸는데 자세히 보니 입장을 위한 티켓을 파는 곳과 엘리베이터 티켓을 파는 곳이 구분되어 있어서 산에 온 김에 걸어 올라가기로 했습니다. 습도가 높아 약간 땀을 흘리며 오행산을 올라 정상에 서니 다낭 시내와 바다가 한 눈에 보였습니다.

오행산 정상에서 다시 내려가니 사찰이 하나 보였습니다. 사찰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사자 한쌍이 보였는데, 폐유리 타일로 장식이 되어 있어 가우디 작품인 스페인 구엘 공원에서 보았던 조각품들이 연상되었습니다. 옛부터 내려온 사원인지 아니면 최근에 지어진 것인지 확실히는 잘 모르겠지만 디자인이 현대적인 느낌이 들어서 베트남에 이런 곳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했습니다.

인상깊은 사원을 지나 오행산의 유명한 대리석 동굴로 들어갔습니다. 동굴 안에는 관음보살상과 부처상 등 불교 관련 유물들이 많이 있었는데 다채로운 빛의 조명을 받아 더욱 신비로운 분위기를 내고 있었습니다. 천장에서는 빛이 쏟아져 내려오고 있었는데, 어두운 동굴에서 머리 위 구멍을 통해 내리쬐는 빛을 보고 있자니 아마 예전에 불상들을 보러 왔던 신자들은 마치 하늘에서 영험한 기운이 내려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을 거라고 생각되기도 했습니다.

동굴을 나와 아래로 내려와 출구로 나와서 주변을 둘러보다보니 대리석산이라는 명칭에 어울리게 조각상을 만들어 파는 상점이 많이 보였습니다. 사자나 다른 동물 등 멋진 작품들이 보이기에 구경을 좀 하다보니 시간도 흐르고 햇빛이 강해서 덥기도 하여 식당에 들어갔습니다. 동남아시아에 가면 제가 많이 주문하는 음료수는 수박이나 망고로 만든 주스인데 날도 더워서 수박음료를 한잔 마시니 시원한 것이 아주 맛이 좋았습니다. 식사까지 마친 후 숙소로 돌아갔다가 선선해진 저녁에 야시장을 구경한 후 밤 늦게까지 여는 바에서 일행과 함께 칵테일을 마셨습니다.

다음날 아침에는 전날 마신 술 때문에 좀 피곤해서 천천히 일어났는데, 일행과 함께 다낭 근처에 있는 바나힐에 갔습니다. 바나힐은 베트남이 프랑스 식미지였을 당시 프랑스인들의 휴양지 명목으로 고지대에 건설된 리조트인데 최근에 시설들을 다시 리모델링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긴 케이블카를 설치한 곳이기도 합니다. 길이가 길어서 그런지 케이블카를 타고 한참을 올라간 후 주변 경치를 보니 기대했던 것보다 경치도 좋고 리조트의 놀이시설도 재밌는 것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바나힐에서 생전 처음 루지를 신나게 타보고, 기념품 가게에서 기념으로 손톱깎이도 하나 사면서 돌아다니다 보니 배가 좀 고파졌습니다. 그래서 함께 간 일행과 함께 식당에서 감자칩과 닭꼬치를 사먹고 광장 쪽으로 걸어가다보니 시원하게 물이 솟구치는 분수대 옆에서 예전에 스페인 라플라스 거리에서 본 것과 비슷하게 전신에 금분을 칠하고 화려한 복장을 한 채 관광객들과 사진을 찍어주는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관광객에 대한 홍보 차원에서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유럽 분위기가 물씬 나는 바나힐과 어울리는 느낌이었습니다.

베트남에서 예상치 않게 유럽여행을 온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다시 다낭으로 돌아간 우리 일행은 그날 저녁에 각자 오토바이 뒷좌석에 타고 해변으로 가서 비치 파티에 참여했습니다. 듣던 것보다 해변에 관광객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신나는 노랫소리에 맞춰 가볍게 몸을 흔드면서 손에 든 병맥주를 마시다보니 금새 자정이 지났습니다. 밤이 깊어가자 관광객들이 줄어들어서 우리 일행은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는데 너무 늦어서인지 교통편을 구할 수가 없어 좀 헤매다가 다행히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타고 숙소로 돌아와서 침대에 지친 몸을 던졌습니다. 그렇게 다낭에서의 일정은 끝을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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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의 국가배상청구 사건과 이중의 고난

얼마 전 저는 변호사로서 화가 치밀어 오르면서도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한편 부끄럽기도 한 판결을 받았습니다. 처음 의뢰인과 사건에 대해 상담을 했던 것이 2015년이니 무려 5년 이상 진행했던 사건에 대한 판결이었습니다. 간단히 요약하면 제 의뢰인은 외국인인데 술집에서 종업원의 허위 신고로 지구대에 갔다가 경찰관이 수갑을 채우면서 무리하게 팔을 꺾어서 어깨 관절을 수술해야 했기에 국가와 해당 경찰관을 상대로 배상을 청구한 것이었습니다.

1심에서는 신체감정 신청을 하고, 청구취지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2번이나 담당 재판부가 변경되면서 이리저리 사건이 토스되다가 제 의뢰인이 휴대폰으로 경찰관들을 촬영하고, 지구대에서 난동을 부렸다는 이유로 체포와 수갑을 채운 것이 위법하지 않다는 이해하기 어려운 결론이 났습니다. 제 의뢰인이 실제로 난동을 부렸는지는 오로지 제 의뢰인에게 수갑을 채운 경찰관들의 진술에만 의존한 것이었고, 제 의뢰인이 제출한 동영상은 무시되었을 뿐 아니라 경찰관들을 촬영한 것은 국가인권위원회 결정에 따르면 위법한 것이 아니었기에 그러한 판결을 받아들일 수는 없었습니다. 심지어 제 의뢰인이 부상을 입은 후 고통을 호소하면서 도움을 요청하는데도 경찰관들이 제대로 의료조치를 하지 않은 부분은 아예 판결문에 주장에 대한 판단 자체가 없었습니다.

이에 제 의뢰인과 저는 의논을 한 끝에 항소를 하기로 했는데 먼저 인권위원회 결정에 반하는 판결이유에 대해 반박했고, 경찰관들이 제 의뢰인을 체포할 당시 경찰청 내부 규정과 형사소송법, 유엔인권규약을 위반했다는 내용으로 다투기로 했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보다 더 엄밀하게 사실관계를 살펴보았고, 우리가 석명을 요청한 내용에 대해 피고인 대한민국 정부에게 자료 제출을 명하는 등 절차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1심보다 세심하게 사건을 다루었습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항소심 판결 내용은 역시나 1심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즉, 항소심에서 다투었던 많은 주장들과 증거들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판단을 생략한 채 단순히 부실했던 1심 판결을 인용하면서 오히려 국가배상청구가 단순히 법령 위반만이 아니라 보다 넓은 의미의 인권을 위법하게 침해한 경우에도 적용되지만 이 사건에서는 그러한 위법한 공권력 행사가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인권 침해를 언급한 부분은 항소심에서 우리가 제출한 서면과 자료들 때문에 추가한 것으로 보입니다.

막상 이러한 판결문을 받아보니 처음에는 제 안에서 화가 치밀어오르는 것을 참기 어려웠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주장했던 내용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하나씩 판단하지 않고 모호하게 답변을 회피하면서 단지 1심의 부실하고 오류로 점철된 판결을 그대로 인용할 수 있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특히 제 의뢰인도 계속 말했던 것이지만 설령 피의자라 하더라도 지구대에서 무리하게 강제력을 사용해 수갑을 채우는 과정에서 피의자의 관절이 상할 정도로 부상을 입혔을 뿐만 아니라 이후 아무런 의료조치를 하지 않은 것이 어떻게 위법하지 않다는 것인지, 법원이 알고 있는 위법성 개념이 어떤 것인지 법원에게 묻고 싶을 지경이었습니다.

이런 식의 판결문은 마치 난민불인정처분 취소사건에서 많은 주장을 하면서 증거를 제출했는데도 해당 주장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판단하지 않은 채 이미 마음속에 정해놓은 기각이라는 결론에 맞춰 여러 주장과 증거들만으로는 난민지위를 인정하지 않은 처분이 위법하지는 않다며 주장과 증거에 대한 명확한 판단을 회피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판결은 대법원에 상고를 하고자 하는 경우에도 항소심 판결 중 무엇이 잘못된 판단인지 구체적으로 다툴 수 없다는 점에서 문제가 많을 뿐 아니라 판결로만 말한다는 법원이 자신의 일을 제대로 하지 않고 법리적으로 반박받을 수 있는 내용을 아예 판단하지 않고 회피했다는 점에서도 비판받아 마땅한 것입니다.

국가배상청구사건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위법한 공권력행사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솔직히 법리적인 측면만이 아니라 정책적이거나 정치적인 측면까지 고려될 수 있어 인용되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더구나 제 의뢰인은 외국인이기에 대한민국 국민인 경찰관과 대한민국 정부의 잘못을 다투는 성격인 국가배상청구에서 이중의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것은 이미 충분히 각오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런 이유 때문에 처음에 의뢰인이 상담을 하러 왔을때부터 이러한 이중의 어려움이 있다는 점을 설명을 하였고, 실제 사건을 진행하면서도 직간접적으로 이런 무언의 압력을 느낀 바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이러한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이 사건을 계속 진행했던 것은 우리나라에서 15년 가까이 살았던 의뢰인이 경찰관의 위법한 행위로 부상을 입어 오른쪽 어깨에 평생 장애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데도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고 심지어 어깨 수술비까지 자신이 부담해야 한다는 것은 명백히 정의에 반하는 것이고, 제가 생업의 기반으로 삼고 있는 사법시스템의 근간인 법치주의에도 어긋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가 마주한 결론은 제 바람과는 너무나 거리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판결문을 받아들고 자신이 잘못을 한 것도 아닌데 종업원의 허위 신고로 경찰서에 갔다가 어깨에 부상을 입어 남은 삶을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의뢰인이 안타까웠습니다. 또한 이런 판결을 받기 위해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저와 함께 의논하고 증거자료를 준비하며, 서면 내용을 검토했던 의뢰인에게 참으로 부끄러움을 감추기 어려웠습니다.

우리나라에 법치주의가 살아 있기는 하는 것인지, 명색이 법치주의인 이런 사법시스템을 믿고 계속 일을 할 수 있을지 깊은 회의가 드는 것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특히나 항소심 판결문이 우리가 주장했던 경찰관의 위법한 행위들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구체적인 판단을 회피하면서도, 혹시라도 문제가 될까 저어했는지 인정해줄 의사도 없으면서 인권침해에 대해서도 국가배상의 근거가 된다고 추가한 것을 보면서 외국인의 기본권과 인권도 보호 영역으로 하는 우리 헌법에 대한 모욕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결국 의뢰인은 5년 넘는 기간 소송을 했는데도 요지부동인 법원의 태도로 인해 많이 지쳤는지 대법원에 대한 상고하는 것은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판단을 한 법원을 보면서 과연 무엇이 사법부가 지키고자 하는 정의이고, 사법부를 지탱하는 법치주의인지, 그것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 영화 대사에 나오는 것처럼 요즘 세상에 그런 달달한 것이 과연 존재하기는 하는 것인지 이 사건은 깊어가는 밤에 저를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하는 화두를 하나 던져줬습니다. 경찰관이 제 의뢰인의 팔을 꺾자 제 의뢰인이 고통스러워하며 도와달라고 소리를 지르며 호소하는 동영상 속 모습이 앞으로도 쉽게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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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 매력이 넘치는 베트남 여행 1

베트남은 다양한 매력이 숨겨진 여행지인 것 같습니다. 2009년에 가족들과 함께 하롱베이, 하노이여행을 한 적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구경할 것도 많고 음식도 입에 잘 맞아서 여행을 다시 가보고 싶었습니다. 특히 베트남 북부가 아닌 가보지 못한 중부 이남을 가보고 싶었는데 2017년 여름 마침 여유가 있어서 베트남 여행을 계획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일정이 맞는 친구가 없어서 여행카페에서 함께 여행갈 동료들을 찾아 비행기를 타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베트남 중부와 남부를 중심으로 여행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베트남 다낭으로 입국을 하였습니다. 다낭 공항에 도착한 후 바로 예전 베트남 왕국의 왕도였던 후에로 이동하기 위해 현지 여행사로 가서 예약을 했습니다. 예약을 한 후 약간 시간이 남아서 여행사가 있는 골목 한 구석에 천막을 치고 쌀국수를 파는 가게에서 간단히 요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돈으로 700원 정도 하는 쌀국수가 국물이 아주 진하면서 풍미가 있고, 서비스로 함께 준 바게트와도 생각보다 너무 잘 어울리는 것이었습니다.

기분좋게 배를 채운 후 베트남으로 여행 오길 참 잘했다고 혼잣말을 하면서 버스를 탔습니다. 후에에 도착해 예약한 호텔에 짐을 풀자 금새 저녁이 다 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일행과 간단히 저녁을 먹은 후 앞으로 어떻게 여행을 할지 여행가이드북을 읽으면서 계획을 짠 후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은 후에 왕궁과 왕궁 인근의 사원을 둘러보는 계획을 잡았기 때문에 서둘러 호텔을 나섰습니다. 후에 왕궁은 과거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지 중국풍에 베트남 고유 양식이 혼합된 느낌의 건물과 조형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한자가 적힌 문과 솥은 중국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유물들과 똑 닮아 있기도 했습니다. 또 후에 왕궁에는 현재 베트남어와 달리 한자가 많이 적혀 있었는데 마치 우리 조선시대처럼 과거 베트남에서도 지배층은 한자를 주로 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왕궁을 보다 보니 우리나라 창덕궁 후원의 꽃무늬 담장과 유사한 담도 보였습니다. 저는 우리나라 조선왕궁 중에서는 창덕궁 후원이 가장 마음에 드는데, 물론 창덕궁보다는 장식이 좀 더 화려하기는 하지만 비슷한 느낌이라 눈길이 많이 갔습니다. 그뿐 아니라 왕궁의 각 구역들을 잇는 붉은 색 담장도 길게 처져 있어 중국 같은 느낌도 났습니다.

왕궁을 다 둘러본 후에는 왕궁을 나와 부근에 있는 강변의 사원을 찾았습니다. 사원은 강변 높은 언덕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들어가는 길에 지나야 하는 문들도 많았고, 관광객들도 꽤 북적북적하는 정도였습니다. 안으로 들어가서 사원 내부를 둘러보다가 높이 솟은 탑을 보게 되었는데, 중국의 영향을 받았는지 벽돌을 쌓아 만든 육각형의 전탑 형식으로 곳곳에 탑의 각 층별로 지붕과 창문이 있고, 창살에는 만자나 꽃무늬 장식으로 되어 있는 아름다운 형상이었습니다.

사원까지 모두 구경을 마친 후 숙소로 돌아왔는데, 중간중간 비도 오고 많이 걸어다녀서 그런지 피로가 몰려왔습니다. 그래서 더 돌아다니지 않고 쉴 생각으로 숙소 주변 시장에 위치한 미용실에 가서 이발을 했는데, 두피 마사지를 포함해 이발 비용이 우리 돈으로 약 9천원 정도 줬습니다. 해외에서 이발을 하는 것은 처음이라 어떤 스타일로 할 것인지 좀 걱정도 됐는데 기대보다도 더 세련된 스타일로 이발을 한 후 비누 거품을 낸 상태에서 두피 마사지까지 해줘서 기분이 아주 좋아졌습니다.

이발을 한 후에는 시장에서 제가 좋아하는 망고스틴을 사서 호텔로 돌아와 마사지를 예약한 후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일단 먹은 것을 어느 정도 소화시킨 후에는 마사지를 받으러 갔는데 전에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 스웨디시 마사지를 받기로 했습니다. 스웨디시 마사지는 뜨거운 돌을 이용해 온 몸 곳곳에 올려놓아 몸의 근육과 긴장을 풀어주는 방식으로 마사지를 하는 것인데, 사실 누워있는데 뜨거운 돌을 몸에 올리길래 처음에는 좀 뜨거워 놀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뜨겁다고 마사지를 안 받겠다고 치워달라고 하기도 뭐해서 좀 참고 있으니 점점 식어서 그래도 참을 만했는데, 잠시 후 다시 뜨거운 돌로 바꿔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흑흑…

그렇게 마사지를 받으며 2시간 정도 뜨거운 시간을 보낸 후 제 방으로 돌아오니 생각보다 여기저기 뭉쳤던 곳이 많이 풀어진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좀 뜨겁기는 했지만 처음 경험했던 스웨디시 마사지도 다른 마사지들 못지 않게 나름의 효과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호텔방으로 돌아와서 시원한 에어컨을 틀어놓은 후 맥주 한 캔을 마시며 티비를 보다가 어느 순간 푹 숙면을 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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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법률지원변호사단과 난민법 개정안

며칠 전에는 제가 단장을 맡고 있는 난민법률지원변호사단 회의가 있었습니다. 난민법률지원변호사단은 기존에 2014년경 구성되어 2016년 정도까지 활동을 하다가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어 해산한 바 있는데, 당시 변호사단에 참여했던 제 경험을 살려 변호사단 구성을 위해 애를 썼습니다. 다행히 여러 여건이 허락해서 작년 말에 대한변호사협회 산하 단체로 난민법률지원변호사단이 출범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새로 출범한 난민법률지원변호사단은 기존에 난민 관련 사건을 진행하고 있던 단체들 및 변호사들과 협업하여 난민으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은 사건에 대한 지원을 시작했고, 이를 위한 통번역인풀도 구성해 단원들이 직접 사건을 수행하기 시작했습니다. 거의 1년 가까이 변호사단 구성 및 사업 진행을 위한 예산 확보, 목적 사업의 방향을 준비했던 터라 다행히 변호사단 출범 후 무난하게 사업들이 추진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변호사단의 사업을 진행하면서 지난 회의에서는 난민에 대한 법률조력이라는 변호사단의 목적과 가장 밀접한 난민법 개정안에 대한 의견 제시와 관련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법무부에서는 2019년 난민법 개정과 관련해 대한변호사협회에 의견을 요청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 기존 개정안을 일부 수정해서 다시 의견을 요청한 것입니다. 예전에 법무부에 대한변호사협회의 의견을 보낼 당시 제가 관여한 적이 있는데 이번 의견과 관련해서는 단원들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안건으로 올린 것이었습니다.

난민법 개정안에 대해 논의하다보니 난민과 관련해 전문성을 가진 단원들이 있어 다양한 논의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개정안은 많은 조항의 개정 내용을 다루고 있어 각 조항별로 의견이 갈리기도 하고, 법무부의 난민법 개정 이유나 비교법적 논의가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저 역시 난민업무를 담당한 법무부 실무자들을 직접 만나 회의를 한 적도 있어 난민업무와 관련한 여러 가지 고충이나 개정안을 발의한 이유에 대해서도 들은 바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법무부의 난민법 개정안이 나오게 된 취지에는 일부 이해가 가는 부분도 있지만, 그렇다고 법체계나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부분에 대해서 난민들에 대한 법률 조력을 하는 변호사들의 단체인 대한변호사협회가 눈을 감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결국 법무부는 자신들의 일을 하는 것이고, 대한변협이나 변호사들도 자신의 맡은 바 소임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과정에서 경우에 따라서는 상호 협조를 할 수도 있지만, 상호 견제가 필요한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민주주의나 법치주의는 이런 상호 견제와 협력을 통해 더욱 발전하고 완성되어 가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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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과 미식의 대만여행 2

우리 일행은 전날까지 타이베이 시내를 둘러봤으니 이제는 타이베이를 벗어나 타이베이 근교를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당시 타이베이 근교 여행은 예류지질공원, 스펀, 진과스, 지우펀을 묶어 예스진지 투어라고 해서 택시나 개인 투어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대만의 기차를 타보고 싶다는 일행의 의견을 따라 기차로 진과스와 지우펀만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오랜만의 기차여행이고, 더구나 대만에서 기차를 타는 것이니 다소 설레기도 했는데, 막상 기차를 타보니 우리 전철처럼 승객이 양쪽에 앉아 서로 쳐다볼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었습니다. 타이베이에서 지우펀까지는 거리가 상당히 되었는데 일단 자리가 있길래 얼른 앉아 철로 주변 경치를 구경하다보니 어느새 지우펀 근처 역에 도착했습니다.

지우펀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라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배경이 된 곳으로, 좁은 골목 곳곳에 다양한 먹을 거리와 상품들을 파는 재미있는 곳이었습니다. 물론 관광객이 너무 많다보니 좀 답답한 기분도 들고 높은 고지대에 위치해 있어 안개가 끼고 비도 자주 내려서 불편한 면도 있었지만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먹어보지 못한 간식들도 먹고, 기념품도 살 수 있어 좋았습니다. 저와 누나네 가족은 지우펀에서 각자의 띠를 상징하는 자그마한 형광 도자기 인형들을 샀습니다. 저는 앙증맞게 생긴 인형이 마음에 들어 제가 퇴근한 후에도 제 방을 지키라는 의미로 사무실 책상 위에 놓아두었는데 퇴근할 때 불을 끄면 형광빛이 나면서 지금도 제 방을 밝히곤 합니다.

지우펀에서 주변 경치도 둘러보고, 배도 채운 후에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왔다는 골목으로 향했습니다. 역시 유명세를 타서인지 골목길은 지나가기도 어려울 정도로 사람들이 가득했는데, 골목길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다보니 전망도, 분위기도 좋은 전통 카페가 있었습니다. 비가 오다말다 하면서 추위가 느껴졌기 때문에 차를 한잔 마시고 가자고 하여 안개 사이로 바다가 보이는 전망이 좋은 곳에서 따뜻한 차를 한잔 마시니 몸이 좀 풀리면서 피로도 좀 사라졌습니다.

지우펀을 둘러본 후 다시 버스를 타고 진과스로 향했습니다. 진과스는 과거 금광으로 유명했던 곳인데 일본이 광산을 운영했던 시절의 영향이 컸는지 상당수 건물이 일본풍의 건축양식이었습니다. 과거 실제 금광이 운영되던 시절 역사와 금덩어리들이 전시되어 있는 내부를 둘러보고 광산에서 캐낸 광석에서 사금을 채취하는 체험 코스에 참여했습니다. 바닥의 모래를 바구니에 넣고 잘 흔들고 돌려서 사금을 골라내는 것인데 생각보다 재미가 있어 일행들이 모두 집중해서 열심히 금을 찾아냈습니다.

골드러시 못지 않은 열기로 체험을 끝내고 나니 힘이 들었는지 배에서 꼬르륵 거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진과스에 오면 다들 한번씩 먹는다는 광부 도시락을 먹기 위해 식당을 찾아 출발했습니다. 식당에 가니 둥그런 스테인리스통에 든 광부도시락을 팔았는데, 겉은 정성스럽게 포장이 되어 있고 안의 도시락 구성도 고기와 채소가 푸짐하고 맛도 괜찮아서 만족스러웠습니다. 맛있는 도시락과 따뜻한 국수로 식사를 배부르게 하고 나니 계속 걸어다니느라 힘들었던 것도 잊고 얼굴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진과스에서 식사까지 마친 후에는 다시 기차를 타고 타이베이 외곽의 단수이로 향했습니다. 단수이 해안가에 위치한 위성도시로서 일몰로 유명한데 제가 중국어 학습 스터디를 하면서 공부했던 대만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에 나오는 담강고등학교가 위치한 곳이기도 했습니다. 단수이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지고 있었는데,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도 좋았습니다.

단수이는 바닷가답게 해산물 요리로도 유명했기 때문에 현지인들이 즐겨찾는다는 맛집을 찾아가 새우요리 등 저녁식사를 거하게 한 후 타이베이의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하루종일 추운 곳을 걸어다녔더니 호텔방에 들어가자 완전히 지쳐서 간단히 따뜻한 물로 샤워만 한 후 바로 꿀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다음날은 대만여행의 마지막 날이자 수천년 역사를 지닌 중국의 역대급 보물들을 감상한 날이었는데, 바로 고궁박물관을 찾은 것이었습니다. 국공내전에서 패배한 국민당정부가 대만으로 넘어올 당시 대륙의 박물관에서 중국 역사상 중요한 유물들만 엄선해 싣고 왔다고 하는데 그 보물들을 전시해 놓은 곳이 고궁박물관입니다. 베이징 자금성도 중국에서는 고궁이라고 부르는데 아마 자금성에서도 유물들을 가져왔기 때문에 명칭을 그렇게 지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우리나라 관광객들에게도 배추 형태의 옥인 취옥백채와 동파육 모양의 옥인 육형석이 잘 알려져 있는데 그 외에도 상아 투각 조각품이나 청명상하도 등 수십만 점이 넘는 보물들이 가득한 곳으로 작품들이 너무 많아 연 4회 작품들은 전면 교체한다고 합니다. 저는 박물관에서 작품들을 보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데, 워낙 명작들이 많다보니 나중에는 꼼꼼히 보는 것을 포기하고 눈길이 가는 작품들 위주로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했는데도 한 바퀴를 다 돌고 나오니 다리가 아파서 얼른 음식점으로 가서 앉아 식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박물관 옆에 있는 식당이라 그런지 전시품인 육형석을 닮은 동파육이 가장 유명한 메뉴라길래 시켜서 먹었는데 우리가 먹는 삼겹살 부위인 것 같은데 훨씬 부드럽게 조리를 해서 입에 넣으니 녹아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주렸던 배를 달랜 후 하얀 박물관 밖에서 사진을 한장 찍는 것으로 대만 여행을 마무리했습니다. 대만여행은 온천을 비롯해 즐길 거리도 많고, 맛있는 음식도 많은데 물가는 생각보다 낮은 편이라 아주 만족도가 높았습니다. 나중에 부모님을 모시고 다시 한번 가본다면 아주 좋은 선택지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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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운전과 역지사지

저는 원래 출퇴근이나 업무를 보면서 자가용 운전을 별로 하지 않았습니다. 서울 시내 등 가까운 곳은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했고, 천안 정도 이상 거리는 기차를 이용했기 때문에 어떤 해에는 자동차보험을 갱신하면서 기재하도록 되어 있는 연간 주행거리에 600km를 적은 적도 있었습니다. 아마 자동차보험회사에서는 제 연간 주행거리를 보고 잘못 적은 것이거나 뭐 하는 사람인가 하고 궁금해 했을 것도 같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안전을 위해서 대중교통보다는 자가용을 많이 이용하게 된데다가 수원이나 평택, 파주 등 대중교통으로는 자가용 이용시보다 2배 가까이 시간이 소요되는 지역에서 업무가 많아 드디어 연간 주행거리가 7,000km를넘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그 주행거리를 적으면서 이제 나도 자동차를 제대로 모는 사람이구나 하는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으니 역시 사람은 별 것 아닌 것에 기쁨을 느끼기도 하는가 봅니다.

이렇게 자가용 운전을 계속 하다보니 기존에 주로 보행자나 대중교통 승객 입장에서 느꼈던 것들과 다른 것들을 생각하게 되기도 합니다. 제가 버스를 타고 있을 때는 몰랐는데, 버스들이 도로에서 생각보다 거칠게 운행을 한다거나 보행자들이 위험한 차가 접근하는데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등 새로운 것들을 많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보행자였을 때는 차량들이 횡단보도 신호등이 주황색, 파란색 등으로 바뀌었는데도 마구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졌는데, 막상 운전을 해보니 주황색 등에서 갑자기 정지하면 뒤에서 따라오던 후행차가 추돌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상황들을 경험해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자신이 경험하지 못했던 입장에 서보는 것으로 많은 것을 깨닫게 되기도 하는데, 몇년 동안 운전을 하면서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 것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먼저 우리나라에서 판매되는 수입차들은 왜 깜빡이라고도 불리는 방향지시등이 옵션인 것인지 궁금합니다. 많은 수입차들은 차선 변경시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는데 아마도 방향지시등이 기본으로 장착된 것이 아니라 옵션이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가격도 국산차보다 꽤 나가는 것들일텐데, 방향지시등 정도는 옵션을 추가 장착하지 않은 이른바 깡통차에도 기본으로 장착되어 있어야 하지 않나 합니다.

그뿐 아니라 요새 유독 도로에서 더 많이 보이는 오토바이라고 불리는 이륜자동차나 원동기장치 자전거의 경우도 방향지시등이 없어서 많은 경우 비상등을 켜고 달리는 것을 수시로 보게 됩니다. 물론 차량들 사이를 전후좌우로 누비면서 도로를 가로지르거나 역주행도 해야 하니 스스로도 어떤 방향으로 갈지 몰라 방향지시등을 켜기 어려운 것도 이해가 가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방향지시등 장착을 옵션으로 설정하는 것은 문제라고 보입니다.

제가 5, 6년 전 교퉁사고를 당해 운전을 별로 하지 않다가 올해 코로나로 인해 다른 해보다 운전을 많이 하다보니 새롭게 느끼고 배우는 것도 많이 있지만, 도로에서는 모두 안전운전이 코로나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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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급 공사대금 사건과 후련한 승소 판결

며칠 전에는 3년이 넘게 걸린 공사대금사건의 판결 선고가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은 사건이었는데, 다행히 제 의뢰인이 원하던대로 결과가 나왔습니다. 제가 원래 이 사건을 수임했을 때는 미지급 공사대금을 지급받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갑자기 공사대금을 줘야 할 원청회사가 제 의뢰인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한 약간 황당한 사건이었습니다.

원청회사의 주장은 제 의뢰인 회사가 부실공사를 해서 하자가 많이 발생했고, 이러한 하자보수에 많은 비용이 들었기 때문에 하자에 갈음하는 손해를 배상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공사대금 중 상당액을 지급받지 못한 제 의뢰인 회사는 공사대금을 지급받아야 하자보수를 해줄 수 있다는 입장이라 수차례 조정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판결을 받게 된 것이었습니다.

소송의 전개는 일단 원청회사가 제 의뢰인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를 제기했고, 이에 제가 제 의뢰인 회사를 대리해서 하자 내용에 대해 다투면서 지급받지 못한 공사대금을 청구하는 반소를 제기하는 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런데 일반적인 공사대금 소송과 달리 이번 사건은 좀 특이한 점들이 있었습니다.

먼저 소송과정에서 상대방 원청회사는 재판을 계속 끌어야 공사대금을 늦게까지 안 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인지 자신이 원고로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해 놓고도 1년 반 가까이 자신의 손해를 입증하기 위한 증거자료를 제대로 제출하지 않았습니다. 일반적으로 공사를 하게 되면 공사대금의 최소한 3%에서 5% 정도에 해당하는 금액은 하자보수에 소요되기 때문에 저희도 이런 사정을 고려하고 있었는데 상대방 원청회사는 계속 시간을 끌면서 증거자료도 내지 않고, 하자감정도 신청하지 않다가 1년 반 정도 지나 변론 종결을 할 시점이 되어서야 부랴부랴 감정을 신청했던 것입니다.

다소 의아했던 것은 제가 맡고 있는 다른 성격의 사건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즉, 제 의뢰인이 저작물의 인세 일부를 받지 못해 미지급 인세의 지급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려고 준비 중이었는데 갑자기 상대방이 제 의뢰인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하더니 2년 동안 손해를 제대로 입증할 생각도 하지 않고 재판만 계속 끌었던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새 이렇게 채무자가 오히려 소를 제기해놓고 시간을 끄는 것이 유행이라도 하는 것인지 어처구니가 없기도 했습니다.

또한 원청회사에서 하도급을 받아 공사를 하다보면 추가 공사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 경우 원청회사는 추가 공사에 대해서 공사대금을 좀 낮춰서 주려고는 해도 하도급 업체가 추가 공사를 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서는 명백히 기존 계약 범위를 벗어나 공사를 한 것이 맞는데 원청회사는 제 의뢰인 회사에게 그런 추가공사를 하라고 지시한 적이 없다면서 추가공사대금을 지급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재판 진행 과정에서 원도급회사의 진술을 통해 원청회사가 원도급회사로부터 제 의뢰인이 시공한 추가공사에 대한 대금을 추가로 지급받고도 제 의뢰인 회사에게 추가 공사를 지시한 적이 없다고 허위 주장을 했다는 것이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결국 그렇게 진실이 명백히 드러날 것인데도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대놓고 법원을 속이려고 했던 것인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입니다.

마지막으로 원청회사는 재판이 불리해질 것 같자 스스로 하자보수를 했다면서 이런저런 증거들을 냈는데 많은 자료들이 일자나 내용이 모순되거나 관련이 없는 자료로 보이기도 했습니다. 더구나 이렇게 제출한 자료들의 신빙성에 대해 제가 반박을 하자 제대로 답변은 하지 못하면서 새로운 변호사를 추가로 선임해 하자감정을 신청했는데, 그 감정신청 내용 역시 믿기가 어려운 것이 많았습니다.

이렇게 이해하기 어려운 재판 진행 끝에 결국 제 의뢰인은 추가공사대금을 포함하여 지급받지 못한 공사대금 전액을 인정받았던 반면, 상대방인 원청회사는 중간에 손해배상 청구액까지 증액하였으나 결국 청구한 하자보수에 갈음하는 손해배상청구액의 20% 정도만을 인정받는 판결문을 받아들게 되었습니다.

저는 예상보다 너무 오랫동안 사건이 진행됐을 뿐 아니라 고의로 재판을 지연하려고 했던 행태가 눈에 보였기 때문에 거의 제 의뢰인에게 상당히 유리하게 나온 판결을 보면서 속이 후련하기까지 했습니다. 제 의뢰인에게 전화를 하는 마음도 가벼웠고, 제 의뢰인 역시 판결 내용을 듣더니 목소리가 아주 밝아져서 저 역시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사건에서는 이렇게 속이 후련한 결과가 계속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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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과 미식의 대만여행 1

한동안 대만 여행 붐이 분 적이 있습니다. 동남아시아보다 가깝고, 일본보다 물가는 싸지만 온천 등 휴양지나 맛집도 많아 우리나라 여행객들의 선호도가 높아졌었기 때문일 겁니다. 저도 중국어 공부를 하면서 봤던 “말할 수 없는 비밀”이라는 영화의 배경이 타이베이 옆 단수이에 있는 담강고등학교였기 때문에 대만여행을 한번 가보고 싶었습니다. 마침 제 누나네 가족들이 시간이 맞아서 함께 대만으로 출발했습니다.

예약할 때 고급 숙소도 생각보다 저렴해서 저녁에 호텔에 도착했을 때부터 매우 만족스럽게 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도착한 다음날은 일단 다들 가는 용산사부터 들렀습니다. 용산사는우리와 달리 불교에 도교 및 유교까지 함께 모시는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는데, 향을 피우면서 소원을 비는 사람들로 사찰 안이 뿌옇게 연기로 차 있을 정도였습니다. 저도 향에 불을 붙여 간단하게 소원을 빌었는데, 가만히 보니 공물로 일본어가 잔뜩 적힌 롯O 과자들이 많이 놓여 있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와 대만은 모두 일본의 식민지 시절을 겪었지만, 일본의 식민지배 방식이나 상황이 서로 다른 부분이 많다보니 양국이 식민지에서 해방된 이후에 일본과의 관계나 국민들의 감정도 차이가 많이 나는 것 같았습니다.

용산사를 나와 시내로 이동해 딤섬으로 유명한 식당을 찾아갔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지점이 들어와 있는데 대만 본점과 우리나라 지점의 맛 차이에 대해 약간 논란이 있긴 했는데, 저는 사실 차이를 잘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냥 둘 다 맛있었습니다. ㅎㅎ 식사 후에는 주변 상점들을 돌면서 예쁜 상품들을 살펴봤는데, 나무로 만든 모빌이나 오르골 등 고급스러운 제품들이 많이 있어서 하나 사고 싶은 유혹을 느꼈습니다. 구경을 하다가 배가 좀 고파서 파인애플이 들어간 펑리수라는 간식을 사먹었습니다. 대만에 도착하자마자 마트에서 사먹었던 밀크티처럼 펑리수도 꼭 먹어봐야 하는 필수 코스처럼 되어 있었는데, 많이 달지 않아서 나쁘지는 않았지만 사실 좀 퍽퍽해서 제 취향은 아니었습니다.

시내를 돌면서 구경을 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많이 흘러 저녁이 되었습니다. 타이베이에서 가장 높은 타이베이 101 빌딩은 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최상층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야경이 멋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저녁이 되자 타이베이 101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전망대 티켓 가격이 생각보다 좀 비싸서 볼 것이 많은가 하는 기대를 하게 했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자 꽤 이동속도가 빨라서 귀도 좀 멍멍했습니다.

전망대에 도착해서 밖의 야경을 보다가 한 층 위로 올라가니 엄청나게 큰 철구가 천장에 매달려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이게 뭐지 하고 깜짝 놀랐는데, 설명을 보니 타이베이 101 빌딩이 워낙 높은 빌딩이라 태풍 등 센 바람이 불거나 지진 등 진동이 큰 경우 건물이 흔들리는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철구가 흔들리면서 빌딩이 무너지지 않도록 무게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초고층 빌딩들에도 그런 장치가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런 발상을 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전망대에서 야경까지 구경하고, 아래로 내려오니 산호나, 옥 등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귀한 재료로 만든 공예품들이 많이 있어 다 둘러보고 나오는데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하루 종일 돌아다녔더니 좀 피곤해서인지 호텔로 돌아온 후 곤히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에는 장개석 총통을 기념하는 중정기념관을 갔다가 노천 온천에 가기로 했습니다. 중정기념관은 학창시절 중국어 교과서 표지에도 그려져 있었던 건물인데, 실제로 보니 책에서 보던 것보다 더 웅장한 모습이었습니다. 특히 중국 전통 청기와가 하얀 벽과 어울렸는데, 올라가는 계단이 꽤 길어서 땀이 나고 숨이 좀 찰 정도였습니다. 건물 안에는 삼민주의를 강조하는 장개석 총통의 동상도 있었는데, 대만에서 수십년 동안 계엄령을 통한 독재로 종신 집권을 했던지라 다른 독재자들처럼 엄청나게 큰 동상을 남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중정기념관 내부를 둘러본 후 간단한 기념품도 사서 우리 일행은 노천 온천을 하러 길을 나섰습니다. 대만은 불의 고리라 불리는 환태평상 화산지대에 위치해서인지옛부터 유명한 온천이 많았다는데, 그 중 시민들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노천 온천이 있다고 해서 호기심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막상 도착해보니 거의 무료인 것은 맞는데, 탈의실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고 불편한 점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어찌어찌 수영복으로 얼른 갈아입고 사람들 틈을 비집고 온천탕에 들어가니 뜨거운 온천이 쌓여 있던 피로를 확 풀어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근데 생각보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제대로 온천을 즐기기에는 적당하지 않고, 한 번 정도 온천을 경험해보는 정도로는 괜찮아 보였습니다.

노천 온천을 하고 나니 배가 좀 고프기도 하고, 조카가 초밥이 먹고 싶다고 해서 회전 초밥집에 갔는데 생각보다 저렴하고 맛도 있어서 역시 대만은 미식 여행지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배를 채운 후 좀 어둑어둑해지자 먹거리와 볼거리로 유명한 스린 야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아직 우리나라에 프랜차이즈점이 들어오기 전이었던 대왕 카스테라도 사먹고, 큐브 스테이크도 먹으면서 구경을 하다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려서 호텔로 돌아가 간단히 맥주 한 잔을 마신 후 잠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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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입법 프로젝트 법제 자문

저는 얼마 전부터 공공기관의 입법 관련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컨설팅 업체에 법제 자문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해당 공공기관은 기존 업무 외에 새로운 사업영역으로 업무를 확장하려고 노력 중인데, 이러한 과정에서 기관의 존립 및 업무영역의 근거를 확실하고 명확하게 법률로 규정하고 싶은 것입니다.

이런 입법 관련 자문 업무는 변호사들이 통상적으로 담당하는 업무는 아닌데, 변호사들은 종래 송무라 불리는 소송사건을 맡거나, 기업이나 공공기관의 법적 문제에 대한 질의응답이나 예방적 대응 등 자문을 많이 맡아 왔습니다. 그래서 김OO, 광O, 태OO 같은 대형 법무법인들이나 이런 업무를 맡고는 하는데 마침 저희 법인이 부동산과 관련한 업무를 많이 하다보니 부동산 법제나 도시계획 등 관련 실무를 잘 아는 편이라 컨설팅 업체로부터 저희 법인이 업무를 맡아줄 수 있느냐는 제안을 받게 된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저희 법인 내에서도 이런 유형의 업무에 경험이 있는 변호사가 없어 제대로 업무 수행이 가능할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유사한 입법 관련 보고서를 작성해본 적이 있고, 관련 전공 교수님들로부터 조언을 받아서 진행하면 못 할 것도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제가 주관을 해서 업무를 진행하는 것으로 계약을 체결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업무를 진행하면서 느낀 것은 비록 이번에 담당하는 업무가 법률자문이기는 하지만, 경영자문과 비슷한 측면이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단지 법적인 내용만이 아니라 어떤 내용과 형식으로 법안을 만들고, 어떤 방법으로 법안을 통과시킬 것인지에 포괄적인 자문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공공기관의 경영전략 차원에서 장래 어떤 방향으로 사업을 이끌고 가고, 비전을 제시할 것인지 경영자문 컨설팅업체의 컨설턴트들과 함께 고민하기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저는 학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는데, 경영학의 많은 과목들 중 경영전략을 특히 좋아했고, 실제로 해당 과목의 성적 또한 좋았습니다. 그래서 만일 사법시험에 최종적으로 불합격하면 컨설턴트가 되고 싶은 생각도 있었는데, 지금 법률자문 측면이 주된 것이긴 하지만 마치 제가 컨설턴트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런 업무를 실무적으로는 처음 맡아 진행하는 것이고, 저희 법인에서 제가 주관이 되어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약간은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법학이나 법조실무처럼 거의 모든 것이 확고하게 정해진 상태에서 일부만 변경할 수 있는 여지가 있어 운신의 폭이 적은 업무만 하다가 뭔가 기초부터 설계하여 추진할 수 있는 업무를 하다보니 학부 시절이 생각나기도 하고 더 생기가 넘치는 느낌도 받습니다.

저에게 우연히 온 기회이지만, 또한 소중한 기회이기도 하기에 프로젝트가 그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충실하게 업무를 진행해서 좋은 결과를 이끌어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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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 가득한 몽골여행 6

홉스골에서의 마지막 아침은 일출을 보는 것으로 열고 싶었습니다. 전날 밤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다들 잠들어 있는 어슴프레한 시간 저는 먼저 일어나 숙소 뒷편의 동산에 올랐습니다. 호수에 비친 해를 보기에 딱 좋은 명당이란 얘기를 이미 들었기 때문입니다. 잠시 후면 다시 귀국길에 나서야 했기 때문에 혼자서 쌀쌀한 몽골의 아침 공기로 정신을 맑게 하고 지평선 끝에서 쑥 올라온 해가 내뿜는 은은한 아침햇살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몽골의 자연 속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고 있자니 한국에서 가지고 있었던 여러 고민들이 실은 별로 중요한 것들이 아니었다는 호연지기가 생기는 것도 같았습니다. 그렇게 홉스골과의 이별을 고하는 저만의 조용한 의식을 마무리하고 숙소로 돌아와서 짐을 꾸렸습니다. 저는 일행들 중 귀국하는 일부 사람들과 무릉으로 이동해 비행기를 타고 다시 울란바토르로 돌아갔는데, 막상 울란바토르에 가니 베이징에서 울란바토르에 가려고 3번이나 시도했던 생각이 나서 감개가 무량했습니다. 울란바토르에서 하루 머무는 동안 일행과 유명한 꼬치구이집에서 꼬치도 먹고, 국영백화점에서 몽골 특산품인 모피, 양털 제품과 칭기스칸이라는 브랜드의 40%짜리 증류주 쇼핑도 했습니다.

다음날 울란바토르에서 다른 일행들은 한국으로 가는 직항을 탔는데, 저는 베이징을 경유해 하루 묵을 예정이었기 때문에 일행들과는 한국에서의 뒷풀이 약속을 잡고 헤어졌습니다. 저는 울란바토르에서 비행기를 타고 베이징에 가는 길에 몽골에 갈 때와 같은 비행기를 탔는데, 그때서야 왜 비행기가 2번이나 회항했는지 진짜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울란바토르 칭기스칸 공항을 이륙했던 비행기가 베이징 공항에 거의 도착했을 때 일상적으로 했던 것처럼 뒤로 젖혀져 있던 좌석을 버튼을 눌러 원상복귀시키려는데 잘 돌아오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몇번 버튼을 누르다가 뒤를 돌아보니 제 뒤에 앉아 있던 승객이 저를 돕기 위해 좌석을 앞으로 밀었는데, 갑자기 뚝 하는 소리가 나면서 좌석이 부러지는 것이었습니다. 좀 당황스럽기도 하고, 비행기 좌석이 그렇게 쉽게 부러진다는 것이 황당하기도 했는데, 아마도 그 정도로 노후화된 기체로 해당 노선을 운항했기 때문에 조금만 기상 상황이 안 좋아져도 착륙을 하지 못하고 회항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덜렁거리는 좌석에 앉아서 그래도 다행히 베이징 공항에는 무사히 착륙할 수 있었습니다.

몽골로 오는 길에 예상치 못하게 베이징에서 하룻밤을 자긴 했지만, 한국으로 귀국하는 길에는 예정했던대로 베이징 도심의 뒷골목인 후통 숙소에 짐을 풀고 하루를 제대로 즐길 수 있었습니다. 먼저 중국의 현대사를 지켜본 천안문 광장에 들렀는데 사람들도 많고, 테러 위험이 있었는지 광장에 들어갈 때 여러 번 소지품검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천안문 광장에 걸린 마오쩌둥 주석 사진과 오성홍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데 어떤 중국인이 저에게 중국어로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을 하기도 해서 사진을 찍어준 다음 나는 중국인이 아니라고 말해줬습니다. 저는 돌아서면서 제가 중국인처럼 생겼나 하는 생각이 들어 속으로 웃기도 했습니다.

저는 천안문 광장만이 아니라 주변의 최고인민법원, 대검찰청과 공안부도 지나가면서 봤는데 관청의 위치가 그 지위를 알려준다는 말처럼 자금성을 면한 중심대로에는 공안부가 위치해 있고, 우리 대법원인 최고인민법원과 대검찰청인 최고 인민검찰청은 왕복 2차선이 있는 뒷골목에 있어 중국에서 사법부가 차지하는 위상이 어떤 것인지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제가 대법원 앞에서 사진을 한장 찍으려고 하자 정문 앞에서 경비를 서고 있던 공안이 제지를 하길래, 한국에서 온 변호사인데 기념으로 사진을 찍을 수 없냐고 설명을 했지만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고 해 할 수 없이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단 사진 촬영은 포기하고 그 옆에 있는 다른 법원들 건물들을 지나오는데 어떤 할머니 한 분이 계속 소리를 지르고 있어서 무슨 일인가 했더니 판결이 억울하다는 내용인 것 같아 우리나라처럼 중국에서도 저렇게 하는 사람들이 있구나 하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제가 관심이 있었던 관공서들을 둘러보고는 후통으로 버스를 타고 이동해서 뒷골목의 오래된 집들과 가게들을 구경하다가 마음에 드는 곳에서 식사도 하면서 혼자서 누구도 신경쓰지 않고 여유를 즐기다가 다음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오랫동안 여행하고 싶었던 몽골에 참 어렵게 갔지만, 그래도 그 정도 고생을 했기에 평생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게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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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철, 변호사로 의미를 남기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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