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방스에서 인생의 새로운 화살표를 그리다 2

저와 아내는 아를을 벗어나 1시간 정도를 달려 우리에게 아비뇽 유수로 많이 알려져 있는 아비뇽에 도착했습니다. 교황청이 있었던 곳이자, 유서 깊은 구시가지가 남아 있는 아비뇽은 천주교 신자인 아내가 꼭 방문하고 싶어하던 도시였습니다. 저 역시 역사가 오래된 골목길과 문화유적을 좋아하니 서로 의견이 일치했던 셈입니다.

오래된 도시답게 아비뇽은 자동차에 매우 불친절한 편이었습니다. 일단 자동차가 들어갈 수 있는 지역이 제한되어 있고, 골목도 매우 좁아서 까딱하면 차량이 벽에 부딪히기 쉽게 생겼습니다. 골목에 숨어 있는 숙소를 찾는데 고생을 좀 하다가 호텔에 전화를 하니 주인이 직접 나와서 자동차를 다른 곳에 주차해야 한다고 알려줬습니다. 주인의 안내를 받아 골목 한켠에 주차해뒀던 차를 끌고 다시 주차장을 찾아 거리를 빙빙 돌아다니다가 마침내 지하 주차장에 주차할 수 있었습니다.

차를 주차한 후 저와 아내의 캐리어를 끌고 자갈로 포장된 길을 따라 숙소인 La Banasterie에 간신히 도착했습니다. 생각보다 거리가 있어서 이동하다가 제 캐리어 바퀴 하나가 부서지는 불상사가 발생했지만, 그래도 다행히 숙소에는 잘 도착했습니다. 저희가 묵은 호텔은 오래된 주택2채를 연결해 리모델링했는데, 짐을 들고 나르는 계단이 좁은 것을 제외하고는 옛 건물의 느낌을 잘 살리면서도 세련되게 꾸며져 있었습니다. 숙소를 찾고, 3층까지 짐을 옮기느라 다소 지친 저는 방을 배정받자 침대에 대(大)자로 누워 잠시 휴식을 취했습니다. ㅎㅎ

방에서 짐정리를 하고, 기운을 차린 후 호텔 사장님에게 아비뇽에서 방문할 만한 곳들을 문의했더니 교황청과 다리, 미술관들과 좋은 레스토랑들을 소개해줬습니다. 저와 아내는 일정을 확인한 후 첫날에는 아비뇽에서 가장 유명한 교황청부터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들어간 교황청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지만 내부를 둘러보면서 새로운 사실들을 많이 알게 됐습니다. 아비뇽 교황청이 상당히 오랫동안 계속 있었다는 것도 의외였습니다.

아비뇽 교황청이 만들어진 것이 프랑스왕의 영향력 때문이어서 그런지 교황청 안에도 프랑스 왕가와 관련된 상징물이나 조각상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젊은 나이에 요절한 부르봉 왕가의 루이 10세를 기념하는 조각상에서는 왕과 왕비가 중심에 있고, 교황은 그 옆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공간적 배치를 통해 아비뇽에 있었던 교황이 어떤 지위에 있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티칸의 베드로 성당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아비뇽 교황청도 곳곳이 정교한 장식과 웅장한 천장을 통해 교황의 권위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교황청 내부를 모두 돌아보고 나면 보통 그렇듯이 기념품 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른 곳과 달리 이 곳은 교황과 관련된 물건들을 중심으로 판매가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특히 아비뇽에 있던 교황이었던 요한 22세의 여름 별장이 있던 마을에서 재배한 포도로 빚은 와인을 팔고 있었습니다. 교황의 새로운 성이란 의미의 샤토네프 뒤 파프(Chateauneuf du Pape) 와인은 훌륭한 맛으로 유명한데, 특히 이 곳에서는 창고에서 오랜 시간 보관해 먼지가 쌓인 와인을 판매하고 있어서 더욱 기억에 남는 기념품이 되었습니다. 이번 여행의 추억으로 아비뇽 교황청 마그넷도 하나 샀습니다.

교황청을 둘러보고 나니 시간이 금방 가버려 배에서 식사 시간을 알리는 신호가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저희는 미리 예약해뒀던 Avenio라는 레스토랑으로 향했는데 코로나의 여파로 관광객들이 없었던 덕분인지, 이 레스토랑은 미슐랭 원스타 등급인데도 당일 점심에 예약이 가능할 정도였습니다. 이 레스토랑은 전채부터 메인 요리를 거쳐 디저트까지 합리적인 가격에 아름다운 플레이트와 프로방스의 풍성한 맛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아내는 양 어깨살 스테이크와 디저트에 만족했고, 저는 특히 프로방스에서 유명하다는 비둘기 요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아비뇽의 옛 이름이라는 Avenio에서 행복한 저녁을 마치고, 적당히 취한 한국인 부부가 밤거리를 어슬렁거렸습니다. 약간은 쌀쌀한 날씨였지만, 이렇게 여유있게 한적한 유럽의 밤거리를 걸을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았기에 밤하늘 아래 오래된 골목길들을 이리저리 유람했습니다. 자동차로 이동도 했고, 많이 걷기도 한데다 와인까지 한 잔한 터라 숙소에 돌아와서는 아내와 저 모두 푹~~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에는 분위기있는 숙소의 응접실에서 아침식사를 했습니다. 부부가 운영하는 호텔은 구도심에 있어 크지는 않았지만 최근에 리모델링을 했는지 실내 인테리어나 가구들이 모두 세련된 느낌이었습니다.

호텔 사장님이 직접 구운 빵과 차로 아침을 든든히 먹고, 프랑스에서 아주 유명하다는 민요에 나온다는 아비뇽 다리를 보러 갔습니다. 생 베네제교라 불리는 다리는 원래 12세기부터 론강을 건널 수 있는 다리였는데, 이제는 2/3 정도만 남아 있었습니다. 요금을 내면 다리 위로 올라가 구경을 할 수도 있다는데 아침이라 그런지 기온도 낮고, 요금도 생각보다 비싸서 그냥 옆에서 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습니다.

아비뇽 다리까지 본 후 드디어 본격적인 쇼핑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저희 부부가 아비뇽에서 사고 싶었던 것들이 몇 가지 있었는데, 바로 수제 초콜렛과 프랑스 전통 리큐르인 샤르트뢰즈(Chartreuse)였습니다. 아비뇽에는 백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수제 초콜렛 가게가 있어 선물도 하고 몇개 먹어보고 싶었고, 샤르트뢰즈는 연애할 때 바에서 우연히 함께 마시게 됐는데 그 맛이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프랑스에 가면 꼭 사서 마시자고 했었던 술이었습니다.

약간 시간이 일러서 수제 초콜렛 가게가 아직 문을 열지 않았던 탓에 먼저 주류점에 가서 샤르트뢰즈를 사기로 했습니다. 먼저 들렀던 와인 상점에서는 팔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상점을 찾아가다가 우연히 큰 길가에서 주류점을 발견했습니다. 가게에 들어가서 샤르트뢰즈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 술이 있냐고 물었더니 어떤 걸 원하냐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한편으로는 반가우면서도 샤르트뢰즈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기 때문에 뭐라고 대답을 할지 망설이고 있는데 사장님이 카운터 옆에 전시되어 있는 샤르트뢰즈들을 보여줬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자주 보이는 녹색과 노란색 뿐만 아니라 화려하게 디자인된 스페셜 에디션도 있엇습니다. 프랑스 현지에서는 훨씬 저렴했기 때문에 이왕이면 특별한 것을 사자는데 아내와 의견이 일치해서 Cuvee des Meilleurs Ouveriers de France Sommeliers라는 이름의 샤르트뢰즈를 샀습니다. 나중에 집에 와서 마신 이 술은 130종의 약초를 섞어 만든다는 비법 덕분인지 45%라는 알콜도수에도 불구하고 부드러운 목넘김에 다채로운 향과 달콤하면서도 크리미한 맛으로 우리를 사로잡았습니다.

원하던 술을 산 기쁨에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다시 초콜렛 가게로 향했습니다. 개장 시간이 된 초콜렛 가게에서 우리보다 먼저 온 일본 관광객들이 가게 이름이 적힌 쇼핑백을 들고 나오는 것을 본 우리는 서둘러 가게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상점 안에는 작은 크기의 다양한 초콜렛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가격표를 보니 오래된 역사와 명성이 가격에도 포함된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유명한 가게라고 하니 지인들을 위한 선물을 몇 개 구입한 후 우리가 먹을 것들도 골라서 챙겼습니다.

쇼핑에 정신이 팔린 사이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가서 막상 체크아웃을 하려고 하니 시간이 좀 빠듯했습니다. 서둘러 숙소로 돌아가서 새로 사온 물건들을 캐리어에 집어 넣은 후 다시 낑낑대며 짐을 아래층으로 옮겼습니다. 캐리어를 끌고 돌 바닥을 지나 멀리 주차장까지 이동하는 것은 너무 힘들 것 같아 아내가 숙소에서 짐을 지키고 있고, 제가 차를 몰고 숙소 근처로 오기로 했습니다. 저는 차량이 주차되어 있는 주차장으로 가다가 교황청 옆에 있는 아비뇽 대성당을 들렀습니다.

대성당은 전체적으로 화려하지는 않지만 순백의 깔끔한 인상을 주는 성당이었는데, 성당 내부의 기도하는 조각상 및 스테인드 글라스와 대성당 앞에 있는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상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아내가 나중에라도 보고 싶어할 것 같아 아비뇽 대성당 내부를 부지런히 사진 촬영한 후 아내가 오래 기다린다는 생각에 서둘러 주차장으로 갔습니다. 차에 시동을 건 후 골목골목을 돌아 호텔 앞에 세운 후 얼른 짐을 싣고 아내와 함께 다음 여행지인 고흐드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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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보헤미안 카페의 추억

저는 대학 때 풍물패에서 동아리 생활을 했습니다. 그 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그 중에는 교환학생으로 온 나이 많은 누나와 친하게 지냈던 추억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누나는 벨기에로 입양이 됐는데 런던 정경대학을 다니던 중 자신이 태어난 나라가 궁금해 교환학생으로 왔고, 우리나라의 전통 음악을 배우고 싶어 풍물패에 들어왔던 겁니다.

동아리방에서 만난 케이티 누나와 친해진 저는 함께 어울리면서 이야기도 많이 했는데, 저를 양동생이라 부르던 누나가 가끔 학교 근처의 카페에 데리고 갔습니다. 지하에 있는 카페였는데, 카페 이름이 ‘보헤미안’이었습니다. 체코의 한 지방인 보헤미아에 사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보헤미안은 집시처럼 자유로운 생활을 한다는 뜻으로 쓰이는데, 누나는 제게 커피가 맛있는 카페라고 소개했습니다.

커피를 즐기는 손님들 중에는 특히 외국인들이 많았는데, 누나와 평소 친분이 있는 사람들도 여럿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인테리어가 세련된 지하 공간은 진향 커피향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저는 커피를 즐기는 편이 아니지만 당시 아늑했던 카페의 분위기는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이후 누나가 영국으로 돌아간 후에도 몇 번 이메일과 엽서를 주고받았는데, 제가 군에 입대한 후 시간이 흘러 연락이 끊기고 말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제대 후 그 때 갔었던 보헤미안이란 카페를 찾아봤지만 이미 문을 닫았는지 운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오래된 기억 속에서 희미해졌던 보헤미안 카페에 대한 기사를 우연히 최근 보게 됐습니다. 알고 보니 강릉의 커피 붐을 이끌었던 분이 바로 그 보헤미안 카페의 사장님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세상이 참 좁다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듭니다. 케이티 누나도 졸업 후 한국으로 돌아온다고 했는데, 알 수는 없지만 앞으로 만날 날을 기약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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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뢰인의 난민지위 인정

얼마 전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가 한 통 걸려왔습니다. 제가 맡고 있던 난민신청 사건의 딸이었습니다. 난민신청을 한 아버지는 한국어를 잘 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건을 진행하면서 한국어에 익숙한 딸을 통해 통화를 하곤 했는데, 흥분한 목소리로 제게 말했습니다.

“변호사님, 오늘 오전에 아버지가 난민인정증명서를 받았대요.”

이의신청 단계에서 이례적으로 추가 면접을 한 사건이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전화로 실제 난민증명서를 받았다는 말을 들으니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제가 처음 사건을 맡은 후 2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는데 계속 결정이 나지 않아서 당사자도, 저도 모두 힘들었습니다. 이의신청 단계에서 추가 면접을 이후 추가로 자료를 요청받았는데, 이미 오랜 기다림과 절차들에 지친 의뢰인이 더 이상 줄 자료가 없다며 포기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메일과 전화로 계속 설득을 했는데, 다행히 딸이 아버지를 설득하는데 도움을 줬습니다. 어렵사리 딸의 협조로 추가 자료들을 구했고, 자료들을 제때 법무부 조사관에게 제출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제 의뢰인은 4년 가까운 시간이 흘러 길고 쓴 인내의 열매를 맛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현실을 고려하면 난민으로 인정받았더라도 한국에서의 정착이 쉽지만은 않겠지만 전화를 통해 들은 밝은 목소리에는 기쁨과 희망이 가득한 것 같았습니다. 의뢰인과 그 가족들의 행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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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국대기실’ 운영 관련 국회 토론회 발제

저는 지난 주 국회에서 열린 출입국항 출국대기실 운영 관련 토론회에 참석했습니다. 박주민 국회의원, 대한변호사협회, 난민인권네트워크 및 유엔난민기구가 공동으로 주최한 토론회였는데, 기존에 민간에서 운영하던 출국대기실의 운영을 국가가 담당하는 내용의 출입국관리법 개정에 대한 평가와 향후 과제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였습니다.

제가 난민과 이주외국인 관련 업무를 하면서 대한변협에서 관련 위원회 활동을 한 지도 8, 9년 정도 된 것 같은데, 과거 외국인 보호시설 조사를 기획하고 잘 마무리한 경험이 있어 출국대기실에 관한 발제를 맡게 되었습니다. 과거에 문제가 되었던 상황에 대해 간단히 언급을 하고, 최근 출국대기실 운영 주체가 항공사 운영위원회에서 국가로 변경되면서 어떤 점에서 개선이 되었는지 및 미흡한 점은 무엇인지에 대한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출입국관리법 개정 과정에서 법무부도 많은 고민을 한 것 같았고, 출국대기실 관련 법령 개정으로 분명 개선된 부분들이 있지만 아직도 다소 불분명한 부분이나 미흡한 부분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법무부 역시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 추가적인 법령 개정과 실무 지침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나가겠다는 인식을 갖고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한민국의 관문인 공항 등 출입국항에서 외국인들이 가급적 우리나라에 대한 좋은 인상을 갖고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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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방스에서 인생의 새로운 화살표를 그리다 1

2022년 3월은 제 인생의 새로운 막이 열리는 시점이었습니다. 앞으로 평생을 함께 할 동반자가 생긴 때이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인 기준으로는 제 결혼이 늦은 편이라 어떤 사람과 결혼을 할 것인지 가족들이나 주변 사람들이 궁금해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오랜 시간을 찾아헤맨 끝에 다행히 저와 잘 맞는 사람을 만나게 됐습니다.

그렇게 제 주변의 많은 친구들이 가정을 이룬 후 저도 마침내 든든한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게 됐습니다. 여자친구가 아내가 되는 다양한 절차와 노력을 거쳐 결혼식을 앞두게 되었는데, 이후에도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결혼식 3주 전 제가 코로나에 걸려 1주일을 집에서 격리하기도 했고, 결혼식 3일 전에는 오미크론 대확산이 절정에 이르러 하루에 코로나 확진자가 60만명씩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러다 정말 결혼식을 못 하는 건 아닌가… 하고 여자친구와 한 걱정을 했지만 그래도 결혼식은 어찌어찌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결혼을 앞두고 아내와 저는 결혼식보다는 오히려 신혼여행에 더 정성을 쏟았습니다. 사실 신혼여행을 준비하던 초기에는 입국 시 격리가 있던 터라 해외로 신혼여행을 가는 것이 가능할지 고민도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당시 분위기가 입국 시 격리가 해제될 것 같아서 일단 항공기와 숙소는 예약해두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역시나 결혼식을 1주일 앞두고 입국 시 격리가 해제되어 폭등하는 항공권 가격을 보면서 미리 예약해두길 잘했다고 가슴을 쓸어내리고는 훌쩍 비행기를 탈 수 있었습니다.

신혼여행을 어디로 갈 것인지 아내가 아직 여자친구일 때 많은 얘기를 한 끝에 프로방스 지방을 택했습니다. 이탈리아와 접해 있는 프랑스 남동부의 프로방스는 작은 도시와 마을들이 퍼져 있는 곳인데, 오랜 역사만큼이나 옛 모습을 잘 간직한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더구나 아내가 천주교 신자라 아비뇽에 가보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해서 저도 많이 이동하지 않고, 천천히 즐길 수 있는 프로방스에 찬성하게 됐습니다.

예식이 끝난 후 인사도 하고, 뒷정리를 한 후 비행기를 타느라 저녁 9시 좀 넘은 시간에 약간 빠듯하게 인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때문인지 공항에 이용객이나 공항직원들이 거의 없어서 고요할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한적한 공항을 보니 신기하면서도, 항공사나 여행사를 비롯해 그 직원들이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에 안타까운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희는 터키항공을 탔는데 오랜만에 먹는 기내식은 더 맛이 있었고, 피곤해서인지 술 한잔을 마시고 잠이 들었습니다.

이제 나이가 들어서인지 비행시간이 전보다 길게 느껴졌는데, 그래도 중간에 이스탄불에서 경유를 해서 걷기도 하고 라운지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피로를 좀 풀었습니다. 다시 마르세유행 비행기를 타고 총 15시간 이상 걸리는 머나먼 이동을 끝내고 나니 마르세유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저희는 미리 렌트카를 예약해뒀는데, 다행히 렌트카 업체가 공항 바로 앞에 있어서 별 고생하지 않고 차를 빌려 바로 숙소가 있는 아를로 출발할 수 있었습니다.

아를(Arles)은 마르세유에서 1시간여 거리에 있는 작은 마을로, 론강변에 위치해 있습니다. 론강은 주변이 와인산지로도 유명하지만 고흐의 그림 배경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첫번째 머물게 된 아를에서는 매번 식사에 와인을 곁들이고, 고흐가 남긴 유산을 찾아다니게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5시가 조금 안 되어 숙소인 오텔 쥘 세자르에 도착해 짐을 풀고 저녁을 먹으러 호텔을 나서는데, 호텔 앞에 조명이 멋지게 켜져 있었습니다.

예약할 때는 호텔 이름이 무슨 뜻인지 알듯 말듯 했는데, 현지에 와서 직접 스펠링을 보니 율리우스 카이사르 즉, 줄리어스 시저였습니다. 찾아봤더니 이 곳은 17세기에 카르멜회 수녀원이었는데, 최근 리모델링을 거쳐 호텔로 개장한 곳이었고, 호텔 방 내부도 오래된 가구들이 비치되어 있었습니다. 숙소에서 짐정리를 하고 나오느라 약간 시간이 지체되어 6시로 예약한 식당으로 서둘러 갔습니다. 프랑스에서의 첫 식사라 프로방스 가정식을 하는 곳을 골랐는데, 평일이라 그런지 저희가 갔을 때는 손님들도 많지 않고 밝은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프로방스에서 유명한 로제와인과 현지 채소와 치즈 등 유제품으로 만든 메뉴들로 건강식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배불리 식사를 마치고 아내와 함께 프랑스 작은 마을의 조용한 뒷골목을 걷노라니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물론, 비도 오고 여기저기 문을 닫은 상점들이 많았지만 그래도 주변을 둘러보면서 내일 어디에 갈지 살펴보기도 했습니다. 더구나 바깥공기는 시원해서 산책을 하기에는 참 좋았습니다. 산책을 마치고 들어가니 장거리 여행으로 인한 노독이 몰려왔는지 침대에 쓰러져 푹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은 아를 인근에 있는 님(Nimes)에 가기로 했습니다. 님은 로마의 판테온과 더불어 가장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는 메종 카레라는 로마시대 신전과 원형 경기장으로 유명한데, 원형 경기장은 아를에도 있어서 신전을 보러 간 것이었습니다. 아우구스투스의 아들들에게 봉헌된 메종 카레는 서기 4~7년에 건립되었는데, 지금으로부터 2천년 정도 된 건축물입니다. 님은 또 청바지의 원료인 데님(Denim)의 대표적 산지인데 원래 Serge de Nimes에서 유래된 명칭이라는 것입니다.

님에 도착해 신전에 가기 전 아내가 여기에 유명한 제과점이 있다면서 거기에 먼저 들르자고 했습니다. 그 말에 혹해서 Maison Villaret로 갔더니 아내 말대로 우리나라에서는 잘 보지 못한 빵들과 예술작품 같은 초콜렛들이 진열장에 가득 놓여 있었습니다. 날도 춥고 배도 고프던 차라 아침을 따뜻한 차, 초콜렛, 파이로 해결하기로 했습니다.

몸을 따뜻하게 덥힌 후 제과점을 나섰는데, 가까이에서 본 메종 카레는 최근에 새로 보수공사까지 해서 몇년 전에 지었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하얗고 깔끔했습니다. 님에 가게 된 것은 바로 이 로마신전을 구경하기 위해서였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이면 우리가 님에 간 날에 메종 카레에서 프랑스의 역사 드라마를 촬영하고 있어서 입장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메종 카레를 빙 둘러서 본 후 사진을 찍고 다시 아를로 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님과 아를은 차로 약 1시간 정도 걸리는데, 님에서 돌아오는 길에 고흐가 랑글루아교라는 도개교를 그린 장소에 들르기로 했습니다. 원래 있던 도개교는 너무 낡아서 철거하고 새로 설치했다고 하는데, 그래도 고흐 그림에 있는 도개교와 비슷한 모습이었습니다. 도개교보다도 더 마음에 들었던 것은 도개교 인근 강변의 풍경이었는데, 선선하게 부는 바람에 흔들리는 수풀… 참 목가적이고 평화로웠습니다. 아내가 사진도 찍어줘서 잠시 포즈도 취하고, 함께 강변을 잠시 걷다가 차를 몰고 아를 시내에 있는 공동묘지, 알리스캉으로 이동했습니다.

알리스캉(Alyscamps)은 로마시대부터 부유층들이 뭍혔던 공동묘지로, 고흐가 고갱을 초청해 함께 작품을 그렸던 포플러나무와 단풍나무가 길 양편에 우람한 기둥처럼 서있는 곳입니다. 전체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묘지들과 세밀한 조각이 새겨진 묘비들이 줄지어 있는 곳으로 단풍이 드는 가을에 왔으면 더 좋았을 뻔 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떨어지는 낙엽과 처연한 묘지가 서로 잘 어울릴 것 같아서입니다.

묘지를 나와 아를 시청 지하에 있는 터널을 둘러본 후 다시 아를 원형 경기장으로 향했습니다. 아를이 그다지 크지 않은 도시라 시청에서 원형 경기장까지 거리도 걸어서 얼마 안 걸렸는데, 계단을 한참 걸어 원형 경기장 위에 오르니 론강과 아를 시내 전경이 사방으로 훤히 보여 가슴이 시원하게 뻥 뚫리는 느낌이었습니다.

원형 경기장 위에서 부드러운 햇살과 바람을 즐기다 졸음이 몰려오는 듯 해서 몸을 일으켜 다시 계단을 내려왔습니다. 원형 경기장 아래에 기념품 가게에 들렀는데, 마르세유 공항에 내린 후 처음으로 한국인 커플을 보게 됐습니다. 우리 부부가 신혼여행을 갈 당시가 코로나 대확산기라 프랑스에서도 거의 한국인들을 볼 수 없었는데, 아마도 그 한국인들도 신혼여행을 온 것 같았습니다.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녔더니 배도 고프고, 피곤하기도 해서 와인과 안주거리를 사서 숙소에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인근 마트에 갔더니 이럴 수가~~ 프로방스 현지 생산 와인들이 엄청나게 저렴한 가격에 마트 진열대를 가득 메우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프로방스 지방이 분홍빛깔의 로제 와인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로제 와인들을 사기로 했는데, 워낙 종류가 많다보니 어떤 걸 살지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됐습니다. 이렇게 매의 눈으로 와인들을 고르고 있는 제가 신기했는지 아내가 쇼핑하는 제 모습을 찍기도 했습니다. 숙소에 돌아가서는 아내와 마트에에서 사온 와인과 안주들로 포식을 했습니다.

아를에서의 마지막 날은 고흐 미술관, 고흐의 그림 중 노란 테라스로 유명한 카페, 고흐가 머물렀던 정신병원을 감상할 계획이었습니다. 먼저 좁은 골목골목을 차를 몰고 힘들게 고흐 미술관을 찾아갔더니 웬걸~~ 주차장이 없다고 해서 다시 차를 끌고 좀 떨어져 있는 공영주차장에 차를 대야 했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걸어가기에 멀지는 않아 미술관에 갔더니, 고흐 미술관 직원이 설명하길 현재 미술관에는 고흐 작품이 1점만 전시되어 있고 나머지 작품들은 다른 곳에 전시하기 위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허탈해진 우리는 미술관 앞에서 기념 사진만 찍고 인근에 있는 카페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고흐의 그림 ‘아를의 포룸광장의 카페 테라스’로 유명한 카페는 아침이라 아직 영업을 하기 전이었습니다. 원래 그림에 있는 것과 거의 유사하게 다시 리모델링을 한 것이라는데 영업 시작 전이라 아쉽게도 차 한 잔도 마시지 못하고 떠나야 했습니다. 차는 마시지 못하지만 그래도 사진을 한 장 찍어야겠다는 생각에 카페를 배경으로 기념 사진을 한 장 남겼습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고흐가 머물렀던 정신병원인 에스파스 반 고흐(Espace van Gogh)를 찾았는데, 이제는 더 이상 정신병원으로 운영되지 않고 도서관과 전시관으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고흐가 화려한 그림으로 남겼던 정원에는 여전히 온갖 꽃들이 만발해 있어 이 곳을 찾는 방문객들을 기쁘게 해줬습니다. 화려한 색채를 뽐내는 아름다운 꽃들에 취해 있다가 한쪽을 보니 예쁜 기념품들을 파는 곳이 있어 어린왕자를 좋아하는 아내에게는 사막여우 스노우 볼을, 고흐를 좋아하는 어머니를 위해서는 고흐 머그컵을 각각 기념으로 샀습니다.

아를에서 고흐와 관련된 장소들을 어느 정도 둘러본 후 숙소로 돌아가는데, 우리 호텔 앞에 있는 성당이 예사롭지 않게 보였습니다. 성당의 외벽에 장식된 조각을 봐도 상당히 오래된 느낌이 들어 한번 안에 들어가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그랬더니 내부에는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되어 있고, 천장도 웅장하게 솟아 있었습니다.

이 성당은 생트로핌 아를 성당이었는데 특이한 것은 2개의 건물이 결합된 형태인데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양식이 혼합되어 있는 등 오랜 세월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성당의 정문 위에는 최후의 심판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고, 검은색 대리석 기둥 사이에는 성인들이 늘어서 있었습니다. 알고보니 나중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 성당에서 고흐가 해바라기를 그렸다고 하는데,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태양이 쏟아져 들어오는 듯한 강렬함에서 영감을 받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서정적이고 편안했던 아를에서 고흐의 흔적을 따라 다닌 우리는 프로방스와 첫 대면을 기분좋게 시작했습니다. 아를이 과거에는 화려하고 큰 도시였다는 알게 된 후 도시의 흥망성쇠처럼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하는 깨달음도 얻게 되었습니다. 이제 자동차의 시동을 걸고 프로방스에서 유명한 또 다른 도시 아비뇽을 향해 다시 출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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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철학하는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변호사가 된 후 업무와 관련된 활자로 된 자료와 서적들을 많이 읽다보니 퇴근 후에는 주로 책보다는 영상을 많이 보게 됐습니다. 책을 읽게 되더라도 법학 관련 내용이나 인공지능 등 평소 업무를 하면서 관심을 가지게 된 영역을 편식하게 되어 너무 정서가 메말라가는 것 아닌가 스스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평소 독서를 즐기는 아내가 재미있었다고 추천한 책이 있어 오랜만에 철학 서적을 펴보게 됐습니다.

이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는 심오한 내용의 철학책이라기보다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철학자들의 삶과 사상을 핵심만 정리해서 기차 여행이라는 틀에 맞춰 독자의 부담을 덜어주려고 애쓴 책입니다. 저자가 소개하는 철학자들 중에는 제가 아는 철학자도 있고, 생전 처음 듣는 철학자도 있는데 아마도 동양과 서양철학의 여러 부류들을 조금씩 건드리다 보니 생소한 철학자들도 포함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소개된 여러 철학자들 중 마음에 드는 철학자들도 몇몇 있었습니다. 로마 오현제 중 하나인 마르쿠스 아우엘리우스처럼 침대에서 일어나기 어려워하는 저로서는 왜 명상록을 지었는지 알 것 같았고, 루소처럼 걸으면서 생각에 잠기는 것도 좋아합니다. 제가 존경하는 간디처럼 싸우는 법도 인상 깊었으며, 처음 듣는 철학자인 에픽테토스의 입을 통해 다소 고루하다고 생각했던 스토아 철학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도 갖게 되었습니다.

전체적으로 다소 가볍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아마 이런 느낌은 저자 자신이 생각하는 책의 구성이 기차여행에 우리 삶의 순간순간을 버무려 글을 끌고 나가려고 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저자가 선호하는 철학 사조가 있는데, 그와 맞지 않는 철학자에 대해서는 다소 비판적이거나 때로는 이것이 그 철학자의 사상이 맞는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특히 공자의 사상은 너무 간략히 설명하고, 그것도 약간은 틀린 것이 아닌가 싶은데 아마도 저자가 동양철학은 서양철학만큼 관심이 깊지 않아서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철학책치고는 쉽게 읽히는 편이고, 책 소개에 나온 것처럼 빌 브라이슨의 유머처럼 매력적으로 쓰여졌습니다. 예전에 빌 브라이슨이 쓴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재밌게 읽었기 때문에 그와 비슷한 유머 코드가 저와 잘 맞았을 수도 있습니다. 오랜만에 철학책을 펼쳐 들고 느낀 것은 나이가 들면서 철학자들이 하는 말 자체보다는 그런 말을 왜 하게 됐는지 그 당시 철학자의 삶에 더 관심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철학이 하늘에서 뚝 떨어질 수 없는 만큼 철학자의 삶을 이해하면 사상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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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시율사협회 제2회 중국 국제서비스무역 법률포럼 참석

지난 주에는 북경시율사협회에서 공동으로 주최한 법률포럼에 서울지방변호사회의 대표로 참석했습니다. 제가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중국소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데, 8월 중순경 서울지방변호사회와 교류하는 북경시율사협회에서 법률포럼 참석 요청이 왔습니다. 중국에 입국하는 경우 장기간 격리를 해야 하는 관계로 온라인으로 참석해달라는 내용이었는데, 제가 중국소위원장이라 집행부에서 제게 참석을 권유한 것 같았습니다.

북경시율사협회는 참석자에게 여러 가지 요청사항이 있었는데, 그 중 자기소개서 내용의 경우 몇 번의 조율을 거치느라 애를 좀 먹었습니다. 중간에 여러 명을 거쳐 내용이 전달되는데다가 중국어, 영어를 사용하는 등 언어적인 부분에서 서로 정확하게 소통이 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제가 외국인이나 외국회사들 사건을 하면서 느꼈던 통역과 번역의 어려움이 협회의 업무를 하면서도 동일하게 반복되는 것을 절감하는 계기도 됐습니다. 그래도 몇 차례의 수정을 거쳐 마침내 최종안이 확정됐고, 토요일 오전에 포럼에 참석하게 됐습니다.

법률포럼의 전체적인 흐름은 중국 정부가 추진하는 일대일로 사업 과정에서 각 국가에서 발생하는 법적 분쟁 해결 방안과 중국이 내수시장만이 아니라 세계 각국에 투자해 상품과 서비스 무역을 하면서 발생하는 다양한 법적 문제에 대한 대처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번 포럼을 보면서 이제 중국도 세계 곳곳에서 투자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각종 규제와 자국 우선주의라는 현실에 맞닥뜨리게 된 것이라고 느꼈습니다.

포럼 후반부에 진행된 신재생에너지 프로젝트, 역외 공증 및 증거보전 등 여러 논의 주제 중 특히 제 관심을 끌었던 것은 사법적 보호와 데이터 규제 준수 관련 내용이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최근 개인정보보호와 데이터 활용의 균형을 어떻게 잡을 것인지 활발하게 논의가 되고 있지만, 중국은 자국 내 규제 정도가 다른 국가에 비해 강할 뿐 아니라 해외와 거래도 활발하기 때문에 서로 다른 규제 형식과 정도에 대해 해외에 있는 상대방에 대한 설명과 설득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개인정보 활용과 규제에 대한 찬반 논의가 중국에서는 다소 다른 지형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단순하게 접근할 수 없는 문제이면서도 동시에 시급하게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비록 국가별로 법제도 다르고, 처해 있는 현실도 다르긴 하지만 각국의 법조인들이 당면한 문제들은 유사하다는 생각을 하는데 포럼의 마무리 멘트가 들렸습니다. 포럼이 끝난 후에도 이런 문제들에 어떤 해결책이 있을지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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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8. 에너지경제신문 칼럼 기고 – 4차 산업혁명과 개인정보 보호

이번 칼럼은 개인정보보호 및 활용과 관련된 내용으로 작성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법제도는 주로 정보주체의 동의에 기초하고 있는데, 이러한 개별적인 동의는 개인정보를 보호하는데는 장점이지만, 정보를 활용하는데는 많은 제약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개인정보의 보호가 중요한 만큼이나 개인정보를 활용해 사회 전체의 편익을 늘리는데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언뜻 보기에 양자는 서로 대치되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생각해보면 개인의 사생활과 정보자기결정권 보호도 필요하고, 개인정보를 활용한 인공지능 개발이나 서비스 제공도 영업의 자유 등 경제적 기본권과 행복추구권 보장의 일환입니다.

결국 이런 다양한 가치들 사이에서 한쪽으로 편향되지 않고, 균형을 잡으면서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할 것입니다. 제가 자문이나 실무를 하면서 느꼈던 내용을 바탕으로 향후 정책이나 제도 정비를 제안한 것으로, 이번 칼럼에서 가장 강조하고 싶었던 내용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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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흐름과 청와대

얼마 전 주말에 대학 동문 모임에서 함께 청와대를 관람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예전에 청와대를 일부 개방하는 행사에 참여해서 청와대를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일부만 개방한 것이라 춘추관, 녹지원, 본관과 영빈관을 둘러봤었습니다. 그래서 상춘재, 대통령 관저나 그 뒤쪽의 산책로 주변을 볼 수 없었는데 이번에는 그런 건물들과 문화유적까지 볼 수 있다고 주말 아침 일찍 길을 나섰습니다.

예전과 차이라면 미니버스를 타고 춘추관을 통해 방문하는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도보로 청와대 사랑채 앞 문을 통해 입장하는 것으로 간단하게 변경되었습니다. 영빈관이나 본관은 이미 본 적이 있는데다 줄을 선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간단히 둘러본 후 원래 제가 보고 싶었던 관저 뒷편의 미남불을 보러 다소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확실히 이 곳은 널리 알려진 곳이 아니라 그런지 관람객도 별로 없어서 한적한 느낌도 들었는데, 그래도 본격적인 산책로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좀 있었습니다.

산책로를 따라 가다보니 특히나 제가 가장 보고 싶었던 미남불 앞에 관람객들이 여럿 서서 미남불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것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미남불은 원래 경주에 있었는데, 청와대로 옮겨왔다는 얘기부터 최근에 어떤 관람객이 훼손을 하려고 했었다는 얘기까지… 그래서 그런지 미남불 옆에는 청와대라 기재된 셔츠를 입은 불상 가이드인지 아니면 불상 가드인지가 의자까지 마련해놓고 관람객들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 명칭만큼이나 잘생긴 미남불을 감상한 후에는 다시 대통령 관저로 향했습니다. 막상 대통령 관저를 둘러보면서 놀란 것은 인테리어나 주변 시설이 생각보다 낡고, 옛날 스타일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청와대가 만들어진 지가 30년이 넘다 보니 아무래도 미적 감각이나 기술이 지금과 달랐을 수도 있겠습니다. 실내 인테리어나 내부 가구는 최근 TV에 나오는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일반 주택들보다도 못한 면이 있었습니다. 다만, 실외는 깔끔하게 관리가 잘 되어 있고, 무엇보다 빗물받이 홈통에서 빗물이 자연스럽게 흘러내려오도록 만든 장식물이 매우 아름답고 인상적이었습니다.

관저를 나와 아래쪽에 있는 상춘재로 향하니 침류각부터 제가 좋아하는 물길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상춘재가 있는 곳은 과거 경복궁을 지키던 수궁터인데, 상춘재 옆을 따라 물이 졸졸 흐르고, 그 물이 연못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특히 연못 위를 지나는 다리를 건너 관저로 연결되는 다른 길도 있어 조용히 이 길을 따라 산책하면 운치도 있었을 것 같았습니다. 상춘재는 큰 나무가 서있는 넓은 잔디밭인 녹지원을 앞에 두고 있는데, 나무결 자체를 드러내는 아름다운 한옥 양식이었습니다.

청와대 자리는 고려시대부터 별궁이 있던 곳으로 오랫동안 우리 역사의 중요한 사건들을 지켜본 곳입니다. 제가 몇 년 전에 찾았을 때와도 벌써 달라진 청와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앞으로 이 곳을 우리 역사의 현장으로 잘 보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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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제의 ‘카르멘’

요절한 프랑스의 천재 작곡가 비제. 저도 조르주 비제의 곡을 많이는 듣지 못했는데, ‘진주조개잡이’나 ‘카르멘’ 정도이고, ‘아를의 여인’이라는 관현악곡도 인기가 있다고 합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음반은 ‘카르멘’ 음반은 아그네스 발차가 집시 여인인 카르멘 역을 맡고, 3대 테너로 유명한 호세 카레라스가 돈 호세로 노래한 도이치 그라모폰의 1983년 하이라이트곡 음반입니다. 전체적으로 카라얀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의 연주가 가수들이 부르는 곡을 탄탄하게 뒷받침해주고 있습니다.

돈 호세를 유혹하는 카르멘의 ‘하바네라’, 투우사인 에스카미요의 ‘투우사의 노래’ 등 널리 알려진 노래들이 신나게 펼쳐집니다. 어떻게 보면 집시 여인을 사랑하는 군인이 질투로 살인에 이르는 비극적 스토리인데도, 전체적인 노래와 기악 연주곡은 이와 대조적으로 너무나 아름다운 선율로 흐릅니다.

작곡가인 비제는 프랑스에서 초연한 카르멘이 별다른 호응을 받지 못하자 해외 공연을 준비하다가 돌연 36살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맙니다. 비제 사후 해외 공연에서는 카르멘이 대성공을 거두었고, 현재에 이르러서는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춘희), 푸치니의 나비부인과 함께 3대 오페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비제의 짧은 생애가 더욱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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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철, 변호사로 의미를 남기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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