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난민신청인의 눈물

저는 며칠 전 이의신청 단계에 있는 난민신청인의 면접에 동석을 했습니다. 제가 단장을 맡고 있는 대한변호사협회 난민법률지원변호사단에서 분담해 수행하고 있는 사건인데, 최초 난민신청에서 난민으로 인정이 되지 않아 법무부에 이의신청을 한 단계였습니다. 다른 난민사건도 비슷하지만 최근 사건 처리가 너무 지체되어 많은 난민신청인들이 고통을 겪고 있는데, 의뢰인인 이 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난민신청인은 가족들과 함께 고국을 탈출해 우리나라에 입국한 후 이제 5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는데,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점점 성장하고, 아내는 병으로 고통을 겪고 있을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는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제가 처음 사건을 맡은 후로도 1년 반 가까이 시간이 흘렀고, 저 역시 신속한 심사를 촉구하는 내용을 포함해 의견서만 이미 3차례 정도 제출한 상황이었습니다.

제가 사건을 맡은 이후 최초 난민신청 당시 제출하지 못했던 자료들을 추가로 전달받아 정리해 제출했는데, 그 중에는 반정부 시위에서 어떤 활동을 했는지 알 수 있는 동영상들과 고국에서 궐석재판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판결문 등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저 역시 기존에 많은 난민 사건을 맡아 진행했었고, 난민이나 인도적 체류허가자로 인정받은 사건들이 있는데, 이렇게 판결문까지 제출할 수 있었던 사건은 극히 드물었습니다.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만난 난민신청인은 오랜 기다림 끝에 추가 면접을 하게 되서인지, 저와 했던 면접 때보다 다소 긴장한 듯 보였습니다.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자료들을 잔뜩 넣은 파일을 손에 들고 조사실로 올라간 후 조사관의 질문에 따라 조사관, 통역인에게 자신에게 있었던 일들에 대해 답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여러 차례 있었던 면접에서 이미 답변했던 내용에 대해 다시 동일한 질문을 한다며 불편한 기색을 보이기도 했지만, 조사관이나 제가 그런 질문을 하는 이유를 설명해주면 다시 차분하게 답변을 이어갔습니다.

그렇게 몇 시간에 걸쳐 질문과 답변이 이어지다가 조사관이 난민신청인에게 고국에서 여러 차례 체포되어 있었던 일들에 대해 설명해달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자 난민신청인은 시간이 많이 흘러 잘 기억이 나지 않고, 당시 일들은 자신도 너무 고통스러워 잊고 싶어하는 기억들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이에 조사관이 고통스러운 것은 이해하지만 조금만 더 구체적인 상황을 알려줬으면 좋겠다고 이해를 구했습니다.

그랬더니 난민신청인은 그런 일들을 기억하는 것이 너무 고통스럽다면서 자신이 난민지위를 신청한 것은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것인데, 그런 고통스러운 기억을 자꾸 되살려보라고 압박하면 차라리 난민신청을 철회하겠다는 답변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체포되어 어떻게 끌려갔고, 전기고문을 비롯해 차마 여성인 통역인 앞에서는 말할 수 없는 고문들을 당했다고 말하면서 고통스러워하는데, 옆에서 듣고 있던 저나 조사관 모두 그저 조용히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번도 아니고 여러 번에 걸쳐 체포되어 전기고문을 비롯한 고문을 당하면서 더 이상 정부에 반하는 주장을 하지 말라고 강요받는 상황… 생각해보면 우리의 근현대사에도 비슷한 사례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책이나 영화에서 봤던 우리 역사 속 이야기들과 유사한 상황을 겪은 50대의 난민신청인이 어렵게 입 밖으로 끄집어내는 이야기는 듣는 사람들까지도 그 고통이 전해져 마음이 먹먹해졌고, 그에게 인간적인 연민이 느껴졌습니다.

변호사가 되어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바로 이런 이들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랜 시간 고국에서 고통을 겪었던 이 난민신청인과 그 가족들이 이제 우리나라에서라도 평온한 삶을 누리길 간절히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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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선거법 위헌 결정과 2000년 총선시민연대

며칠 전 헌법재판소에서 선거기간 중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집회 및 시위를 금지하는 공직선거법 제103조제3항을 비롯해, 현수막 및 광고물 게시를 금지하는 제90조제1항제1호 및 제93조제1항에 대해 위헌으로 결정을 했습니다. 위 조항들은 오래 전부터 주권자인 국민들이 능동적으로 선거에 참여할 권리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독소조항이라는 이유로 끊임없이 비판을 받아 왔던 대상이었습니다.

제가 변호사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된 2000년 총선시민연대 활동도 위 법조항과 관련이 있습니다. 2000년 총선 당시 시민단체들이 연대하여 총선에 출마한 국회의원 후보자 중 부적합한 인사들에 대한 낙천 및 낙선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였습니다. 저는 당시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군입대를 앞둬 휴학 중이었는데, 입대 전 의미있는 일을 해보려고 총선시민연대 활동에 자원봉사자로 함께 하였습니다.

주로 거리에서 시민들을 상대로 홍보활동을 하는 역할이었는데 한창 젊은 나이일 때라서 그런지 지금 생각해보면 참 열심히 했던 것 같습니다. 당시 거리 홍보활동을 하던 도중 MBC 기자와 인터뷰를 했는데 9시 뉴스데스크에 첫머리 뉴스로 방송이 되어 제 주변 사람들로부터 잘 봤다고 연락을 받기도 했습니다. 투표 결과도 대대적인 시민운동의 영향으로 많은 낙선 대상자들이 고배를 마셨고, 저도 개표 당일 큰 보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런 벅찬 마음으로 개표 후 일주일 정도 지나 군에 입대를 했고, 2년여 군복무를 마친 후 제대를 했습니다.

그런데 제대 후 뉴스를 통해 2000년 총선시민연대 활동을 주도했던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공직선거법에서 선거운동기간 금지한 낙천, 낙선운동을 했다는 이유였습니다. 바로 이번에 위헌 결정을 받은 그 조항들입니다. 공정한 선거를 위해 부정한 돈은 막고, 입은 열겠다는 정치적 수사와는 달리, 형사처벌이라는 압박을 통해 정치에 참여하려는 유권자들인 국민들의 언로를 막는 불합리한 조항들이었습니다.

그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20년이 넘게 흘러 이제 와서야 위헌으로 결정되었다니 만시지탄이라고 해야 햘지, 한숨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래도 이렇게 우리 사회가 조금씩이라도 발전해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지난 번 집을 정리하다 발견한 2000년 총선시민연대 배지들을 보면서 오래 전 대학생 시절의 추억에 잠시 잠겨봅니다.

얼마 전 집 정리를 하다 발견한 2000년 총선시민연대 활동 당시 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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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월드에 남겨진 옛 추억

며칠 전 과거에 인기를 누리던 싸이월드가 다시 서비스를 시작한다는 기사를 접했습니다. 참 오랜만에 접속한 싸이월드에는 사법시험을 준비하던 시절 친구와 함께 한 여행 사진들이 있었습니다. 2003년에 소매물도에 갔을 때 사진들이니 거의 20년 전의 모습들이었는데, 삼겹살을 구워 먹을 때 옆에 와서 얻어 먹던 강아지 사진이나 술자리에서 우연히 만난 암벽등반 동호회 아저씨들과 함께 해벽을 탔던 일 등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습니다.

그 시절 함께 여행을 했던 친구와 저는 이제 40대의 아저씨들이 되었으니 시간이 화살과 같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하긴 앞으로 20년이 흐른 후 이 글을 보면서 다시 똑같은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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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함께 한 와인 ‘마데이라’

결혼을 한 이후 아내와 집에서 저녁식사를 함께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러 종류의 술을 즐기는 저는 혹시라도 술을 마시지 않는 아내를 만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고민도 있었는데, 다행히 제 아내는 맛있는 식사와 반주 한 잔 정도는 할 수 있는 풍류를 알아서 기쁩니다. 얼마 전에는 아내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한 후 갖고 있던 와인 중 마데이라를 꺼내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원래 대서양에 있는 마데이라 제도에서 생산되어 그 명칭을 얻은 마데이라는 주정강화 와인인 포트와인보다는 덜 알려져 있습니다. 원래 와인은 알콜 도수가 11도 내지 14도 정도인데, 이 정도 알콜 도수는 보관 중 변질되는 것을 막기 어렵습니다. 이런 와인에 다른 알콜 도수가 높은 브랜디나 주정을 넣어 알콜 도수를 높이면 장기 보관이 가능하기 때문에 장기간 항해에도 적합합니다. 이런 이유로 대서양을 지나는 선박들이 마데이라 제도에서 생산된 와인을 싣고 항해를 하게 된 겁니다.

마데이라는 일반적인 와인보다 알콜 도수가 높고, 달콤한 다보니 식사와 반주로 마시기보다는 식사 후 디저트와 함께 마시곤 합니다. 보통 디저트 와인으로는 귀부와인, 아이스와인, 천천히 수확해 농익은 포도로 만든 레이트 하비스트 와인, 포트와인, 셰리주로 알려진 헤레즈 와인 등을 마시는데, 이번에 만나게 된 마데이라는 처음 마시는 것이라 약간 기대가 됐습니다.

제가 마신 마데이라는 예상했던 것보다는 질감이 가볍게 느껴졌고, 달콤하고 약간 새콤한 맛이 났습니다. 또 건포도 향이 강하게 났는데, 견과류의 풍미도 약간은 났던 것 같습니다. 사실 이런 향이나 맛은 상당히 주관적이어서 같은 장소에서 와인을 마시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조금씩 달리 느껴지기 때문에 너무 와인 자체에 집중하기보다는 함께 마시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아내와 결혼하고 맛있는 음식과 술을 소중한 사람과 함께 마실 수 있다는 것이 큰 기쁨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제가 처음 마데이라 제도를 알게 된 것은 어린 시절 컴퓨터로 ‘대항해시대’라는 게임에서 전세계를 여행하면서였습니다. 이제 나이가 들어서 그 마데이라에서 생산된 술을 아내와 함께 마시는 날이 오게 되다니, 인생은 참 우연의 연속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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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도, 사람도 풍족한 중국 쓰촨성 여행 2

다음날 아침에는 모두 일찍부터 일어나 미리 예약했던 투어 버스를 타고 아미산 관광을 시작했는데, 그 첫 목적지인 러산대불로 이동했습니다. 아미산은 무협소설이나 무협영화에도 등장하는데 주변 풍광이 좋고, 볼 만한 유적지도 많은 중국의 불교 명산이자 영산이기도 합니다. 이동하다 보니 생각보다 숙소에서 거리가 좀 있었는데, 그래도 그렇게 큰 불상을 보기는 쉽지 않아 나름 기대가 됐습니다. 강가에 도착해 입장하기 위해 줄을 섰는데, 생각보다 강변에 안개가 많이 끼어 조짐이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입장 시간을 거의 1시간 정도를 기다린 끝에 러산대불이라고 새겨진 돌을 지나 입장을 시작했는데, 줄을 서있던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거북이처럼 천천히 움직이는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러산대불이 있는 곳까지 가는 길에는 이런저런 유적이나 유물들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그것들을 자세히 둘러보고 올 시간이 없어 아쉬웠습니다. 역시 중국에서 주말에 여행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어찌어찌 힘들게 대불이 있는 곳까지 도착하니 사찰의 문이 하나 있었고, 그 곳을 지나니 마침내 엄청난 크기의 불두가 보였습니다. 신기해서 더 가까이 가보니 불상 전체가 보였는데, 그 크기가 압도적이었습니다. 전체적으로 바위를 깎아서 만들었고, 어떤 곳은 벽돌을 쌓아 형태를 보완한 것 같았는데 사실 옆에서 봐서 그런지 조형미가 있다기보다는 우리나라의 민화에 나오는 인자하고 부드러운 표정의 불상이란 느낌이 더 들었습니다.

좀 아쉬웠던 것은 안개가 너무 많이 끼어서 강 건너편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는 겁니다. 안개가 만이 낀 탓에 유람선도 운항을 하지 않아 러산대불을 한 눈에 볼 기회도 없었습니다. 러산대불을 둘러보고 옆에 있는 사찰의 전각으로 다가가니 능운사라는 현판이 보여, 역시 평소에도 주변에 안개가 자욱한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사찰에는 달마화상 같은 후덕한 분도 계시고, 우리나라와 좀 달리 매우 화려하게 치장된 사천왕상도 있었는데, 역시 중국이라 그런지 표면에 개금을 많이 해서 번쩍번쩍 눈이 부셨습니다.

어느 정도 둘러본 후에는 다시 다음 목적지인 금정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안개가 잔뜩 끼고, 가랑비도 조금씩 내려서인지 입장권을 파는 곳에서 방수용 점퍼도 한 벌씩 대여해줬습니다. 산을 오르는 길에는 우리나라처럼 곳곳에 간식을 파는 점포들이 있는데, 그 중 제가 좋아하는 군옥수수를 파는 곳이 있어 일행들과 함께 옥수수를 사먹기도 했습니다. 여담으로 중국 옥수수는 우리나라 옥수수보다 더 아삭거리는 씹는 식감이 있어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데, 이 군옥수수는 숯불에 너무 구워서인지 1/3 가까이가 숯이 되버려서 아깝지만 일부는 버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산행길이 아주 길지는 않았지만 무거운 점퍼까지 입고 가려니 약간 숨이 가빠오는 찰나, 마침내 금정이라는 표지판이 서있었습니다. 근데 막상 금정 가까이 도착했는데, 반짝거리는 금정은 보이지 않고 온통 안개만 자욱했습니다. 심지어 안개에 향에서 나는 연기까지 더해서 탑이나 금정은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이럴거면 뭐하러 힘들게 여기를 올라왔나 하는 약간의 실망감이 몰려왔으나, 일단 우리 일행의 여행이 안전하게 끝나고 모두 건강하길 비는 뜻에서 향에 불을 붙여서 하나 올리기로 했습니다. 향을 올린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예물 덕인지 서서히 안개가 걷히면서 탑과 금정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금정은 글자 그대로 금으로 칠을 해뒀는데, 햇빛이 없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반짝거리지는 않았습니다. 여기저기 둘러본 후에는 다시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는데, 올라갈 때보다 안개가 자욱한 산의 모습이 아름답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몽환적인 분위기도 났습니다. 산의 이름도 아미산이라 그런지 저 쪽 안개 속에서 학을 탄 신선이라도 금방 나타날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산을 내려오니 벌써 저녁이 가까워졌는데, 아침에 아미산으로 가는 길보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은 차가 막혀서 시간이 훨씬 오래 걸렸습니다. 숙소에 돌아와서는 다들 지쳐서 호텔 가까운 곳에서 간단히 식사를 한 후 얼른 숙소로 돌아와 맥주 한 캔을 마신 후 잠을 청했습니다. 다음날 오전은 각자 여유있는 시간을 보내기로 한 터라 더욱 마음 편하게 숙면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저는 전날 피로가 심했는지 침대에서 뭉기적거리고 있는데, 어떤 일행분들은 일찍 일어나서 벌써 아침 식사까지 하고 있었습니다. 단체 카톡방에서 주고받는 대화를 슬쩍 보다 보니 저도 더 이상 침대에서 버티지 못하고, 인근 공원에서 차를 한잔 마시기로 했습니다. 공원은 숙소에서 도보로 약 15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너무 붐비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공원에 들어서는데 입구에 서있는 항일 전쟁 당시 전몰자 기념비와 그 밑에 있는 꽃다발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착검한 총만이 아니라 칼과 방패까지 등에 지고 있는데, 전에 봤던 ‘명장’이란 중국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방패를 들고 공성전을 하던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공원 안에서는 태극권을 하는 노인분들도 있고, 잔잔하게 물이 흐르는 물길도 있어서 산책하기가 참 좋았습니다. 또 공원 한켠에는 찻집도 있었는데, 쓰촨 지역에서 유명한 차들을 팔고 있어 한가로이 차 한잔을 마시는 여유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차를 마시다보니 돈을 받고 귀를 파주는 노인 한 분이 자꾸 와서 귀후비개를 들어보이는데, 안전한지 약간 걱정이 된 탓에 용감하게 제 귀를 내주지는 못했습니다. 나중에 찻집을 나오다 생각해보니 색다른 경험인데, 한번 해볼껄 하는 아쉬움이 들기는 했습니다.

다시 숙소에 돌아온 우리 일행은 두보초당을 방문하는 길에 그 앞에 있는 유명한 마파두부집에서 점심을 먹게 됐습니다. 진마파두부라는 간판이 붇어 있는데, 유명세만큼 손님들도 많았습니다. 마파두부 자체는 매우 부드러우면서도 약간 치즈 같은 식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소스 역시 보기보다는 많이 맵지 않고, 밥과 함께 먹으면 밥도둑 같은 느낌이 드는 국내 중국음식점에서는 맛보기 힘든 탁월함이 느껴졌습니다. 건두부는 다소 알싸한 향이 났는데, 마침 사간 중국의 명주 노주노교와 함께 마시니 그 맛이 더욱 훌륭했습니다.

든든하게 식사를 마치고 이제 두보 초당으로 이동을 했습니다. 중국에서 주당이었던 이백이 시선이라면 두보는 시성이라 불리는데, 안록산의 난을 피해 쓰촨성의 성도로 피신을 했다가 머문 곳이 바로 이 두보 초당이었습니다. 처음 입구에 있는 두보의 조각상을 보면 너무 마른 할아버지의 상이라 그만큼 고생이 심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초당을 둘러보다 보면 후대에 두보의 시를 사모한 권력자들이 너무 화려하게 꾸며 놓아서 그런지 ‘초당’이라는 단어가 무색하기는 하지만, 여러 건물들에 걸린 두보의 작품들과 후대 찬시까지 볼거리가 풍부했습니다.

곳곳에 여러 시대를 걸쳐 지어진 건물들과 제가 좋아하는 대나무들이 적절하게 어우러져 멋진 풍경을 만들고 있었고, 도서관이나 서점에서는 두보 관련 자료들이나 시집을 판매하기도 했습니다. 일생 동안 갖은 고생을 하긴 했지만, 이렇게 후손들이 자신을 기리는 것을 보면 두보도 이제 마음 편히 쉴 수 있겠다는 부러움이 순간적으로 가슴 한켠을 스치기도 했습니다.

두보 초당을 모두 둘러본 후에는 숙소로 돌아와 쉬다가 귀국 가방을 싸면서 여행을 마무리했습니다. 되돌아보면 이렇게 업무적으로 만나던 인연으로 함께 해외여행까지 하게 된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얼마 후 우리 모두의 삶을 강타한 코로나로 한동안 해외로 나갈 수 없었던 것을 생각하면 자유롭게 출입국이 가능했던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합니다. 코로나 이후 국내외적으로 서로 분열되고, 반목하는 일들이 많아지는 것이 좀 걱정되기도 하는데 앞으로 다시 이런 편안한 여행을 다시 계획할 날이 왔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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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세계 난민의 날 기념 간담회 참석

지난 달 20일에는 법무부가 주최하는 ‘세계 난민의 날’ 기념 간담회가 열렸습니다. 2000년 유엔총회 결의로 세계 난민의 날을 지정한 이후 20년이 넘었고, 우리나라가 독자적인 난민법을 제정한 것도 벌써 10년이 다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상에 비해 아직 난민 관련 정책이나 난민 인정률은 많이 부족한 것이 현실입니다.

법무부도 최근 난민과를 확대 개편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우리나라의 난민정책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번 간담회에 법조계의 한 축인 대한변호사협회를 대표해서 참석했는데, 저 이외에도 난민들을 조력하는 시민단체, 학계 등 다양한 부문에서 활동하는 분들이 참석해 각자의 입장과 의견을 교환했습니다. 인천 영종도에 있는 출입국, 외국인지원센터까지는 거리가 좀 되어 아침부터 마음이 좀 조급했지만, 그래도 한 자리에서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는 다양한 의견들을 들을 수 있어서 보람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법무부도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난민 심사 적체 및 지연에 대해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결국 이러한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것은 정부의 의지와 이에 따른 예산 및 인력의 보강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부분은 결국 장기적인 국가정책이 바탕이 되어야 하고, 단편적인 난민 수용 여부만이 아닌 국제사회에서의 우리 위치나 발전 전략을 세운 후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난민 수용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와 지원도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올해는 여러 분쟁이 겹쳐 역사적으로 가장 많은 난민이 존재하는 상황인데, 이런 상황에 대증 요법으로만 접근할 것이 아니라, 이주민정책이란 보다 큰 밑그림 위에 난민정책이 펼쳐질 수 있었으면 합니다. 우리나라도 더 이상 국제사회의 주변부에 머무는 위치가 아니므로 조금 더 먼 미래를 바라보면서 국가의 정책을 설계하는 안목을 가지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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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경제신문 칼럼 정기 기고 – 선박 자율운항 규율할 법제정 시급

변호사로 업무를 하다 보면 다양한 분야의 많은 분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 과정에서 제가 하는 업무와 관련된 대화를 하면 흥미가 있다거나, 아니면 몰랐던 부분이 있다면서 종종 강의나 기고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는 합니다. 이렇게 정기적으로 기고를 하게 된 경우가 몇 번 있는데 처음에는 별 부담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승낙을 하곤 했지만, 나중에는 왜 이리 마감이 빨리 돌아오는지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번에는 제가 출간한 책과 관련한 기사를 제가 속해 있는 단체 카톡방에 올렸더니 한 분이 제게 메시지를 보내오셨습니다. 자신이 에너지경제신문에 근무하는데, 제가 정기적으로 칼럼 기고를 해줄 수 있냐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사실 메시지를 읽고, 제가 에너지나 경제와 직접 관련된 실무를 많이 하는 것이 아닌데 해당 신문의 주제나 방향과 맞을지 알 수 없어 고민이 많이 됐습니다.

그래서 이런 내용을 말씀드렸더니, 에너지경제신문의 모든 기사가 에너지나 경제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면서 제가 관심이 많은 인공지능이나 부동산 등 업무 관련 내용도 괜찮다고 했습니다. 이런 말에 다소 안심이 되기도 하고, 또 원래 학부 때 제 전공이 경영학이기도 해서 기업 경영이나 경제 관련 기사들도 꾸준히 찾아보고 있으니 어느 정도는 글의 소재는 찾을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결국 필요한 사항에 대한 협의를 끝내고 이번 달부터 정기적으로 에너지경제신문의 칼럼인 이슈&인사이트에 기고를 하게 되었습니다. 첫번째 칼럼은 제가 관심이 많은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하고, 기존에 프로젝트 자문을 수행했었던 자율주행자동차법제와 유사한 자율운항선박 관련 내용으로 시작했습니다. 칼럼을 준비하면서 관련 분야에 대해 더 연구를 하게 되는 것도 부수적으로 얻는 즐거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에너지경제신문의 독자들이 기다리는 칼럼을 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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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 정비사업 보상금 증액청구 사건 종결

지난 달에는 1년 여 정도 진행했던 재개발조합과의 영업보상 사건이 끝났습니다. 수용재결이 있기 전부터 상담을 거쳐 수임을 하는 일반적인 경우와 달리 이 사건은 의뢰인들이 행정법원에서 1심이 끝난 후 항소 직전에 저를 찾아와 사건을 맡게 된 것이 좀 달랐습니다. 제가 전에 유사한 사건을 잘 마무리한 적이 있었는데, 1심 결과에 만족하지 못했던 의뢰인분들이 기존 의뢰인의 소개를 받아 오다보니 좀 늦게 사건을 담당하게 된 것입니다.

사건을 처음 수임한 후 1심 소송기록을 보면서 좀 안타까웠던 것은 한번에 적게는 수십명, 많게는 수백명에 이르는 토지, 지장물, 영업보상 등 손실보상 관련 사건들을 처리하다보니 소장이나 준비서면에 저를 찾아온 의뢰인들의 개별적인 사정들이 세심하게 반영되어 있지는 않았다는 점입니다. 물론 영업보상과 관련해 필수적인 사실조회 신청이나 감정 절차는 다 거쳤지만, 실제 보상금 산정 과정에는 조금 더 할 수 있었던 것들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 아쉬웠습니다.

일단 사건을 맡은 후에는 항소이유를 기재한 준비서면을 제출하기 위해 여러 차례 의뢰인들과 상담을 했고, 항소심에서 우리의 주장을 뒷받침하는데 필요한 자료들을 요청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의뢰인들이 상당한 분량의 자료를 정리해서 제게 전달해줬고, 해당 자료를 바탕으로 꽤나 두툼한 준비서면을 작성해 법원에 제출할 수 있었습니다.

법원에서 소송이 계속되던 중에도 의뢰인들과 저는 조합과 합의를 통해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했습니다. 제가 재개발이나 재건축 같은 도시정비사업 관련 사건들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기본적으로 해당 사업에 대한 법제가 사업시행자에 유리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사건의 경우는 소송을 통한 판결이라는 하나의 수단만을 고집하기보다는 재판상, 재판외 합의나 조정을 통해 다양한 측면을 고려한 해결 방안을 찾는 것도 필요합니다.

다행히 이번에 종결된 사건의 의뢰인들도 이러한 상황을 잘 이해하고 계셨고, 조합과의 합의 과정에서도 저와 계속적으로 상담을 해 끝까지 잘 마무리를 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의뢰인들이 처음 사건 상담 당시부터 소송 종결시까지 조언을 해주는 저를 굳게 믿어 주셔서 사건을 진행하는 입장에서도 든든하고, 고마웠습니다. 저 역시 앞으로도 이렇세 서로 믿고 사건을 처리할 수 있는 의뢰인들을 주로 만났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가져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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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도, 사람도 풍족한 중국 쓰촨성 여행 1

중국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삼국지를 한번 정도는 읽어 봤을 겁니다. 삼국지에서 제갈량이 유비에게 천하를 셋으로 나누어 통일을 도모하자는 제안을 하는 천하삼분지계와 관련해 나오는 지역이 익주인데, 현재 기준으로는 사천성, 중국어로는 쓰촨성입니다. 소설에서도 나온 것처럼 옛부터 쓰촨성은 물산이 풍부하고, 자연 경관이 수려해서 살기 좋은 곳으로 꼽히던 곳입니다. 이 때문에 중국에서 손꼽는 8대 명주 중 무려 3개에 해당하는 노주노교, 우량이에, 검남춘이 사천성에서 나기도 해서 맛있는 술을 즐기는 제가 가보고 싶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쓰촨성은 제가 예전에 여행을 했었던 윈난성과도 바로 붙어 있어 있는데, 윈난성 리장을 여행할 당시 만났던 다른 여행객들 중에는 윈난성의 옥룡설산과 호도협을 지나 쓰촨성으로 넘어가는 경로를 짜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리장에서 다시 남쪽으로 내려와 위안양의 계단식 논을 구경하려고 했기 때문에 쓰촨성으로 가지는 않았지만, 윈난성 못지 않게 쓰촨성도 좋은 곳이 많다고 들어서 나중에라도 한번 가볼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마음 속으로 쓰촨성 여행에 대한 기대를 품고 있던 어느 날, 제가 속해 있는 서울지방변호사회 중국소위원회 회의가 열렸습니다. 회의가 끝난 후 같이 식사를 하던 중 위원회에서 친하게 지내던 변호사분들과 함께 중국 여행을 가자고 의기투합을 하게 됐습니다. 다들 술을 한잔 해서인지 아니면 업무만이 아니라 현지에서 중국 문화를 느껴보자는 생각이었는지, 어쨌든 식사 겸 술자리가 끝날 때까지 5명의 변호사들이 중국으로 여행을 가기로 결의를 했습니다.

함께 여행을 가기로 한 사람들 중 한 변호사님이 중국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나와서 현지인 못지 않게 중국어를 했기 때문에, 주도적으로 여행계획을 짜게 되었습니다. 여행지를 어디로 할 것인지 이런저런 의견을 내다가 여행을 가는 멤버들이 기존에 여행을 가지 않았던 곳이면서 중국의 자연풍경과 문화를 잘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쓰촨성이 1등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저의 쓰촨성 여행은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고맙게도 중국어에 능통한 변호사님이 전체적인 여행계획을 준비해주셔서 저는 투어 여행을 가는 것처럼 편하게 여행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일단 첫날은 평일인 금요일 밤이라 밤늦게 도착하게 되어 숙소에서 짐을 풀고 쉬었는데, 중국 호텔답게 붉은 색과 황금색으로 인테리어가 된 로비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여유가 있었던 다른 일행과 달리 우리 여행을 준비했던 변호사님은 다음날부터 주변을 둘러볼 투어 상품을 예약하느라 바쁘게 돌아다녀서 한편으로는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같은 위원회 사람들이 함께 중국에 온 첫날이라 중국에서 유명한 마라탕 음식점에서 여행 기념 식사를 하게 됐습니다. 원래 마라탕은 쓰촨지역과 충칭지역에서 유래했는데, 다른 지역에서도 인기가 많아지면서 다양하게 변화를 준 특색을 갖는 마라탕 음식점들이 많아졌다고 합니다. 그래도 원조의 맛을 찾는 사람들은 전통의 마라탕 맛을 찾아 쓰촨지역으로 오는데, 그 중 우리 일행이 찾은 마루비엔비엔이라는 음식점은 너무 맵지 않으면서도, 전통적인 방식을 지키고 있답니다.

특히 여러 재료들을 스스로 골라들고 계산을 한 후 꼬챙이네 꽂아 익혀 먹는데, 처음에는 걱정했던 것보다 맵지 않아서 먹을 만 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점점 먹다보니 혀와 입술이 마비되는 느낌이 들었는데, 마라에 들어 있는 화자오가 마비시키는 성분이 있어서 그랬던 것 같았습니다. 많이 맵다고 느껴지면 달콤한 땅콩소스에 찍어먹으라고 하던데, 그렇게 해도 어느 순간부터는 술이나 꼬치의 맛이 느껴지지 않게 됐습니다. 다들 그렇게 술과 마라에 거나하게 취해서 숙소로 돌아왔는데, 저는 음식이 매운데다 알콜까지 많이 먹어서 그런지 화장실로 부리나케 달려가기도 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는 삼성퇴 박물관을 찾았습니다. 저도 쓰촨성 여행을 가기 전에는 삼성퇴에 대해 잘 알지 못했는데, 지금으로부터 약 5,000년전부터 3,000년전까지에 이르는 고촉문화 유적으로 매우 정교한 청동기 문명이었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중국 문화의 유물들과 상당히 다른데, 인물이나 동물의 형상이 어떻게 보면 중남미 지역의 마야나 올멕 문명과 비슷한 느낌이기도 하고, 더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 외계 문명이 남긴 유산 같기도 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역사에 기록된 문명보다 더 이전의 초고대 문명에 관심이 많은데, 삼성퇴 문명의 기원이 오래되기도 했을 뿐 아니라, 20세기에 들어서 유물들이 발굴되기 전까지는 아무런 기록도 없어서 완전히 잊혀진 문명이었다는 것에도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박물관 내부를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많은 유물들을 촬영했는데, 일부 청동기 표면에는 마야나 아즈텍 문명의 문자처럼 형이상학적인 상형문자 같은 것이 있어서 더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박물관을 한참 돌아본 후 밖에 있는 조각 공원을 산책하다 보니 목도 마르고 다리도 좀 아팠습니다. 그래서 일행들과 함께 공원 한쪽에 있는 테이블에서 시원한 맥주를 한캔 마시니 좀 살 것 같았습니다. 우리가 좀 쉬다가 다시 공원 주변을 걷다보니 어떤 사람들은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저쪽에서는 우리나라처럼 어린 학생들이 사생대회를 하는 것도 보였습니다. 아마도 주말이라서 가족들이나 학교에서 함께 나온 것 같았습니다.

다함께 삼성퇴를 본 후에는 다시 삼국시대 유비와 제갈량을 모시고 있는 무후사로 향했습니다. 삼국지나 삼국연의를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가보고 싶었을 곳인데, 삼국지에도 나오지만 원래 촉한의 황제였던 유비는 백제성에서 세상을 떠나지만, 이후 능은 수도였던 청두에 한소열묘를 조성했습니다. 황제였던 유비와 유비가 총애한 승상 제갈량이 함께 모셔져 있는 곳이라 더 특이하기도 했습니다.

무후사 안으로 들어가면 도원결의로 유명한 유비, 관우, 장비 삼형제와 제갈량을 비롯한 다른 신하들의 조각상이 좌우로 도열해 있었습니다. 기록을 바탕으로 나름 외모와 성격을 반영해 각자의 조각상을 만들어놓았는데, 문관들과 무관들의 얼굴이나 옷차림에는 개성이 잘 나타나 있었습니다. 아래까지 길게 늘어진 귀를 가진 유비나 가슴까지 수염을 늘어뜨린 관우, 단정하게 앉아 학익선을 들고 있는 제갈량 등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부분들을 잘 표현해 놓았습니다. 사당을 지나니 한소열지릉라는 편액과 비석이 있는 문이 있는데, 그 문 안쪽에는 유비의 능이 있었습니다.

무후사 안을 돌아다니다보니 붉은 칠을 한 벽과 녹색의 대나무가 잘 대비되는 길고 곧은 길이 있는데, 그 길에 들어가는 길에는 무지개 형태의 문지붕이 있어 더 예뻤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이 길이 마음에 들었는지 길을 감상하면서 천천히 걸어가기도 하고 길을 배경을 사진을 찍기도 했는데, 저 역시 이 곳을 배경으로 사진 한장을 부탁했습니다.

무후사를 둘러본 후에는 뭔가 기념할 것이 있을까 찾아보다가 기념품샾에서 도원결의 잔 세트를 발견했습니다. 무후사에 온 기념도 될 것 같고, 나중에 친한 사람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잔을 나눠가져도 재미있을 것 같아서 잔 세트를 사서 무후사를 나섰습니다. 무후사를 나설 때는 이미 저녁이 되어 곳곳에 조명을 밝혔는데, 조명 덕분인지 떠나는 우리 일행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제갈량의 모습이 더욱 화려해보였습니다.

무후사를 나와서는 그 앞에 있는 음식점에서 저녁을 해결습니다. 중국에서 많이 먹는 건두부를 비롯해 다양한 요리들이 유명한 곳이었는데, 음식점을 들어가기 전 샀던 중국 8대 명주 중 하나인 검남춘을 곁들이니 맛난 술과 음식에 혀가 행복해지고, 시간이 지나니 흥취가 저절로 나왔습니다. 일행들 모두 쓰촨성에서 생산되는 검남춘의 훌륭한 맛에 취하고, 매콤하게 조리된 쓰촨 요리의 조합에 감탄하면서 바삐 돌아다닌 하루의 피로를 풀고 숙소로 돌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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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외국인보호소 개방형 보호시설 현장 방문

지난 주에는 오랜만에 화성외국인보호소를 방문했습니다. 법무부에서 운영하는 화성외국인보호소는 국내 체류 외국인 중 강제퇴거 대상인 외국인이 머무는 곳인데, 제가 외국인과 난민 관련 사건들을 하면서 보호되어 있는 외국인들 면회를 하기 위해 종종 방문했던 곳입니다. 이번에는 지난 달 초 있었던 법무부와 대한변협 특위 간담회에서 새로 도입된 개방형 보호시설 운영 현황에 대한 질의응답 후 법무부의 제안으로 개방형 보호시설을 둘러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있는 외국인보호소는 원래 행정규제인 출입국 관련 법령을 위반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곳이지만, 그 태생부터 마치 형사처벌을 목적으로 하는 교도소나 구치소를 모델로 하고 있어 논란이 있어 왔습니다. 현행 화성외국인보호소도 처음에는 서울외국인수용소였고, 이후 명칭과 위치가 변경되어 현재 화성에 위치한 화성외국인보호소가 된 것입니다. 그 때문인지, 외국인들의 처우를 규정했던 외국인보호규칙 역시 교도소나 구치소의 규정과 매우 흡사했습니다.

하지만 형벌을 가하려는 목적으로 보호되어 있는 것이 아닌 외국인들을 이렇게 대우하는 것에 계속적인 문제 제기가 있어 왔고, 법무부나 사회적 인식도 점차 변화되어 이제는 보호되어 있는 외국인들에게 보다 많은 자유와 기본권을 보장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법무부에서는 이러한 변화에 발맞춰 법령 개정과 함께 화성외국인보호소에서부터 일부 시설을 개방형으로 개선하기 시작한 겁니다.

제가 부위원장으로 있는 대한변협 난민이주외국인 특별위원회는 지난 법무부와 간담회 이후 이렇게 개선된 외국인보호시설을 직접 눈으로 보고 확인하는 기회를 갖게 된 것입니다. 위원들이 여러 대의 차량에 나눠타고 도착한 외국인보호소에는 지난 간담회에서 봤던 법무부 사무관님이 마중을 나와 있었고, 안내를 받아 위층으로 이동해서 보호소장님을 비롯한 다른 책임자분들과 인사를 했습니다. 이후 간단한 브리핑이 끝나고, 최근 개방형으로 변경된 일부 보호시설들을 견학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2014년, 2018년 2회에 걸쳐 대한변협에서 추진한 외국인보호시설 방문조사에 참여했었는데, 이번에 변경된 시설은 기존에 문제로 지적되었던 부분들을 상당 부분 개선한 것이어서 약간 놀랍기도 했습니다. 특히 철창을 없애고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면서도 침실은 일정 부분 사생활을 보호해주고, 일정 장소를 지정해 휴대폰과 인터넷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한다거나 매일 운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법무부에서도 많은 노력을 한 것 같았습니다.

다만, 아직 이러한 개방형 보호시설이 안전과 질서 유지 문제로 여성 보호동 중 일부에만 적용되고 있었는데, 향후 운영 상황을 살펴보고 보완점을 찾아 남성 보호동을 포함한 나머지 시설에도 적용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앞으로 청주외국인보호소에 대해서도 비슷한 시설개선을 추진한다고 하니 시간은 좀 더 걸리겠지만 결국은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지 않을까 합니다.

법학계 뿐만 아닐 우리 법원과 헌법재판소도 일관되게 판시하고 있는 것처럼 외국인들도 인간으로서 갖는 기본권의 주체이고, 이제 대한민국도 선진국으로 발돋움한 이상 더 이상 과거처럼 외국인들에 대한 처우를 등한시하는 것을 양해받기도 어렵습니다. 더구나 외국인들이 자신의 본국으로 귀국하기 전 마지막으로 거치는 곳이 바로 외국인보호소인데, 이런 곳에서 대한민국에 대한 마지막 인상을 망치는 일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도 절대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특히 우리 역시 외국에 나가면 외국인으로서 여러 제약들이 생기는데, 원래 국제관계는 상호주의가 적용되는 측면이 강하므로 우리가 외국인들에 대한 처우를 개선하면 우리 역시 동일한 처우를 요구할 수 있는 근거가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면 현재 법무부의 제도 개선 방향은 타당할 뿐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적으로 유지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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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철, 변호사로 의미를 남기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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