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게 철학하는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변호사가 된 후 업무와 관련된 활자로 된 자료와 서적들을 많이 읽다보니 퇴근 후에는 주로 책보다는 영상을 많이 보게 됐습니다. 책을 읽게 되더라도 법학 관련 내용이나 인공지능 등 평소 업무를 하면서 관심을 가지게 된 영역을 편식하게 되어 너무 정서가 메말라가는 것 아닌가 스스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평소 독서를 즐기는 아내가 재미있었다고 추천한 책이 있어 오랜만에 철학 서적을 펴보게 됐습니다.

이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는 심오한 내용의 철학책이라기보다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철학자들의 삶과 사상을 핵심만 정리해서 기차 여행이라는 틀에 맞춰 독자의 부담을 덜어주려고 애쓴 책입니다. 저자가 소개하는 철학자들 중에는 제가 아는 철학자도 있고, 생전 처음 듣는 철학자도 있는데 아마도 동양과 서양철학의 여러 부류들을 조금씩 건드리다 보니 생소한 철학자들도 포함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소개된 여러 철학자들 중 마음에 드는 철학자들도 몇몇 있었습니다. 로마 오현제 중 하나인 마르쿠스 아우엘리우스처럼 침대에서 일어나기 어려워하는 저로서는 왜 명상록을 지었는지 알 것 같았고, 루소처럼 걸으면서 생각에 잠기는 것도 좋아합니다. 제가 존경하는 간디처럼 싸우는 법도 인상 깊었으며, 처음 듣는 철학자인 에픽테토스의 입을 통해 다소 고루하다고 생각했던 스토아 철학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도 갖게 되었습니다.

전체적으로 다소 가볍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아마 이런 느낌은 저자 자신이 생각하는 책의 구성이 기차여행에 우리 삶의 순간순간을 버무려 글을 끌고 나가려고 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저자가 선호하는 철학 사조가 있는데, 그와 맞지 않는 철학자에 대해서는 다소 비판적이거나 때로는 이것이 그 철학자의 사상이 맞는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특히 공자의 사상은 너무 간략히 설명하고, 그것도 약간은 틀린 것이 아닌가 싶은데 아마도 저자가 동양철학은 서양철학만큼 관심이 깊지 않아서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철학책치고는 쉽게 읽히는 편이고, 책 소개에 나온 것처럼 빌 브라이슨의 유머처럼 매력적으로 쓰여졌습니다. 예전에 빌 브라이슨이 쓴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재밌게 읽었기 때문에 그와 비슷한 유머 코드가 저와 잘 맞았을 수도 있습니다. 오랜만에 철학책을 펼쳐 들고 느낀 것은 나이가 들면서 철학자들이 하는 말 자체보다는 그런 말을 왜 하게 됐는지 그 당시 철학자의 삶에 더 관심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철학이 하늘에서 뚝 떨어질 수 없는 만큼 철학자의 삶을 이해하면 사상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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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시율사협회 제2회 중국 국제서비스무역 법률포럼 참석

지난 주에는 북경시율사협회에서 공동으로 주최한 법률포럼에 서울지방변호사회의 대표로 참석했습니다. 제가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중국소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데, 8월 중순경 서울지방변호사회와 교류하는 북경시율사협회에서 법률포럼 참석 요청이 왔습니다. 중국에 입국하는 경우 장기간 격리를 해야 하는 관계로 온라인으로 참석해달라는 내용이었는데, 제가 중국소위원장이라 집행부에서 제게 참석을 권유한 것 같았습니다.

북경시율사협회는 참석자에게 여러 가지 요청사항이 있었는데, 그 중 자기소개서 내용의 경우 몇 번의 조율을 거치느라 애를 좀 먹었습니다. 중간에 여러 명을 거쳐 내용이 전달되는데다가 중국어, 영어를 사용하는 등 언어적인 부분에서 서로 정확하게 소통이 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제가 외국인이나 외국회사들 사건을 하면서 느꼈던 통역과 번역의 어려움이 협회의 업무를 하면서도 동일하게 반복되는 것을 절감하는 계기도 됐습니다. 그래도 몇 차례의 수정을 거쳐 마침내 최종안이 확정됐고, 토요일 오전에 포럼에 참석하게 됐습니다.

법률포럼의 전체적인 흐름은 중국 정부가 추진하는 일대일로 사업 과정에서 각 국가에서 발생하는 법적 분쟁 해결 방안과 중국이 내수시장만이 아니라 세계 각국에 투자해 상품과 서비스 무역을 하면서 발생하는 다양한 법적 문제에 대한 대처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번 포럼을 보면서 이제 중국도 세계 곳곳에서 투자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각종 규제와 자국 우선주의라는 현실에 맞닥뜨리게 된 것이라고 느꼈습니다.

포럼 후반부에 진행된 신재생에너지 프로젝트, 역외 공증 및 증거보전 등 여러 논의 주제 중 특히 제 관심을 끌었던 것은 사법적 보호와 데이터 규제 준수 관련 내용이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최근 개인정보보호와 데이터 활용의 균형을 어떻게 잡을 것인지 활발하게 논의가 되고 있지만, 중국은 자국 내 규제 정도가 다른 국가에 비해 강할 뿐 아니라 해외와 거래도 활발하기 때문에 서로 다른 규제 형식과 정도에 대해 해외에 있는 상대방에 대한 설명과 설득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개인정보 활용과 규제에 대한 찬반 논의가 중국에서는 다소 다른 지형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단순하게 접근할 수 없는 문제이면서도 동시에 시급하게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비록 국가별로 법제도 다르고, 처해 있는 현실도 다르긴 하지만 각국의 법조인들이 당면한 문제들은 유사하다는 생각을 하는데 포럼의 마무리 멘트가 들렸습니다. 포럼이 끝난 후에도 이런 문제들에 어떤 해결책이 있을지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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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8. 에너지경제신문 칼럼 기고 – 4차 산업혁명과 개인정보 보호

이번 칼럼은 개인정보보호 및 활용과 관련된 내용으로 작성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법제도는 주로 정보주체의 동의에 기초하고 있는데, 이러한 개별적인 동의는 개인정보를 보호하는데는 장점이지만, 정보를 활용하는데는 많은 제약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개인정보의 보호가 중요한 만큼이나 개인정보를 활용해 사회 전체의 편익을 늘리는데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언뜻 보기에 양자는 서로 대치되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생각해보면 개인의 사생활과 정보자기결정권 보호도 필요하고, 개인정보를 활용한 인공지능 개발이나 서비스 제공도 영업의 자유 등 경제적 기본권과 행복추구권 보장의 일환입니다.

결국 이런 다양한 가치들 사이에서 한쪽으로 편향되지 않고, 균형을 잡으면서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할 것입니다. 제가 자문이나 실무를 하면서 느꼈던 내용을 바탕으로 향후 정책이나 제도 정비를 제안한 것으로, 이번 칼럼에서 가장 강조하고 싶었던 내용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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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흐름과 청와대

얼마 전 주말에 대학 동문 모임에서 함께 청와대를 관람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예전에 청와대를 일부 개방하는 행사에 참여해서 청와대를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일부만 개방한 것이라 춘추관, 녹지원, 본관과 영빈관을 둘러봤었습니다. 그래서 상춘재, 대통령 관저나 그 뒤쪽의 산책로 주변을 볼 수 없었는데 이번에는 그런 건물들과 문화유적까지 볼 수 있다고 주말 아침 일찍 길을 나섰습니다.

예전과 차이라면 미니버스를 타고 춘추관을 통해 방문하는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도보로 청와대 사랑채 앞 문을 통해 입장하는 것으로 간단하게 변경되었습니다. 영빈관이나 본관은 이미 본 적이 있는데다 줄을 선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간단히 둘러본 후 원래 제가 보고 싶었던 관저 뒷편의 미남불을 보러 다소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확실히 이 곳은 널리 알려진 곳이 아니라 그런지 관람객도 별로 없어서 한적한 느낌도 들었는데, 그래도 본격적인 산책로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좀 있었습니다.

산책로를 따라 가다보니 특히나 제가 가장 보고 싶었던 미남불 앞에 관람객들이 여럿 서서 미남불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것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미남불은 원래 경주에 있었는데, 청와대로 옮겨왔다는 얘기부터 최근에 어떤 관람객이 훼손을 하려고 했었다는 얘기까지… 그래서 그런지 미남불 옆에는 청와대라 기재된 셔츠를 입은 불상 가이드인지 아니면 불상 가드인지가 의자까지 마련해놓고 관람객들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 명칭만큼이나 잘생긴 미남불을 감상한 후에는 다시 대통령 관저로 향했습니다. 막상 대통령 관저를 둘러보면서 놀란 것은 인테리어나 주변 시설이 생각보다 낡고, 옛날 스타일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청와대가 만들어진 지가 30년이 넘다 보니 아무래도 미적 감각이나 기술이 지금과 달랐을 수도 있겠습니다. 실내 인테리어나 내부 가구는 최근 TV에 나오는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일반 주택들보다도 못한 면이 있었습니다. 다만, 실외는 깔끔하게 관리가 잘 되어 있고, 무엇보다 빗물받이 홈통에서 빗물이 자연스럽게 흘러내려오도록 만든 장식물이 매우 아름답고 인상적이었습니다.

관저를 나와 아래쪽에 있는 상춘재로 향하니 침류각부터 제가 좋아하는 물길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상춘재가 있는 곳은 과거 경복궁을 지키던 수궁터인데, 상춘재 옆을 따라 물이 졸졸 흐르고, 그 물이 연못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특히 연못 위를 지나는 다리를 건너 관저로 연결되는 다른 길도 있어 조용히 이 길을 따라 산책하면 운치도 있었을 것 같았습니다. 상춘재는 큰 나무가 서있는 넓은 잔디밭인 녹지원을 앞에 두고 있는데, 나무결 자체를 드러내는 아름다운 한옥 양식이었습니다.

청와대 자리는 고려시대부터 별궁이 있던 곳으로 오랫동안 우리 역사의 중요한 사건들을 지켜본 곳입니다. 제가 몇 년 전에 찾았을 때와도 벌써 달라진 청와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앞으로 이 곳을 우리 역사의 현장으로 잘 보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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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제의 ‘카르멘’

요절한 프랑스의 천재 작곡가 비제. 저도 조르주 비제의 곡을 많이는 듣지 못했는데, ‘진주조개잡이’나 ‘카르멘’ 정도이고, ‘아를의 여인’이라는 관현악곡도 인기가 있다고 합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음반은 ‘카르멘’ 음반은 아그네스 발차가 집시 여인인 카르멘 역을 맡고, 3대 테너로 유명한 호세 카레라스가 돈 호세로 노래한 도이치 그라모폰의 1983년 하이라이트곡 음반입니다. 전체적으로 카라얀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의 연주가 가수들이 부르는 곡을 탄탄하게 뒷받침해주고 있습니다.

돈 호세를 유혹하는 카르멘의 ‘하바네라’, 투우사인 에스카미요의 ‘투우사의 노래’ 등 널리 알려진 노래들이 신나게 펼쳐집니다. 어떻게 보면 집시 여인을 사랑하는 군인이 질투로 살인에 이르는 비극적 스토리인데도, 전체적인 노래와 기악 연주곡은 이와 대조적으로 너무나 아름다운 선율로 흐릅니다.

작곡가인 비제는 프랑스에서 초연한 카르멘이 별다른 호응을 받지 못하자 해외 공연을 준비하다가 돌연 36살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맙니다. 비제 사후 해외 공연에서는 카르멘이 대성공을 거두었고, 현재에 이르러서는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춘희), 푸치니의 나비부인과 함께 3대 오페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비제의 짧은 생애가 더욱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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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난민신청인의 눈물

저는 며칠 전 이의신청 단계에 있는 난민신청인의 면접에 동석을 했습니다. 제가 단장을 맡고 있는 대한변호사협회 난민법률지원변호사단에서 분담해 수행하고 있는 사건인데, 최초 난민신청에서 난민으로 인정이 되지 않아 법무부에 이의신청을 한 단계였습니다. 다른 난민사건도 비슷하지만 최근 사건 처리가 너무 지체되어 많은 난민신청인들이 고통을 겪고 있는데, 의뢰인인 이 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난민신청인은 가족들과 함께 고국을 탈출해 우리나라에 입국한 후 이제 5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는데,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점점 성장하고, 아내는 병으로 고통을 겪고 있을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는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제가 처음 사건을 맡은 후로도 1년 반 가까이 시간이 흘렀고, 저 역시 신속한 심사를 촉구하는 내용을 포함해 의견서만 이미 3차례 정도 제출한 상황이었습니다.

제가 사건을 맡은 이후 최초 난민신청 당시 제출하지 못했던 자료들을 추가로 전달받아 정리해 제출했는데, 그 중에는 반정부 시위에서 어떤 활동을 했는지 알 수 있는 동영상들과 고국에서 궐석재판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판결문 등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저 역시 기존에 많은 난민 사건을 맡아 진행했었고, 난민이나 인도적 체류허가자로 인정받은 사건들이 있는데, 이렇게 판결문까지 제출할 수 있었던 사건은 극히 드물었습니다.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만난 난민신청인은 오랜 기다림 끝에 추가 면접을 하게 되서인지, 저와 했던 면접 때보다 다소 긴장한 듯 보였습니다.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자료들을 잔뜩 넣은 파일을 손에 들고 조사실로 올라간 후 조사관의 질문에 따라 조사관, 통역인에게 자신에게 있었던 일들에 대해 답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여러 차례 있었던 면접에서 이미 답변했던 내용에 대해 다시 동일한 질문을 한다며 불편한 기색을 보이기도 했지만, 조사관이나 제가 그런 질문을 하는 이유를 설명해주면 다시 차분하게 답변을 이어갔습니다.

그렇게 몇 시간에 걸쳐 질문과 답변이 이어지다가 조사관이 난민신청인에게 고국에서 여러 차례 체포되어 있었던 일들에 대해 설명해달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자 난민신청인은 시간이 많이 흘러 잘 기억이 나지 않고, 당시 일들은 자신도 너무 고통스러워 잊고 싶어하는 기억들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이에 조사관이 고통스러운 것은 이해하지만 조금만 더 구체적인 상황을 알려줬으면 좋겠다고 이해를 구했습니다.

그랬더니 난민신청인은 그런 일들을 기억하는 것이 너무 고통스럽다면서 자신이 난민지위를 신청한 것은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것인데, 그런 고통스러운 기억을 자꾸 되살려보라고 압박하면 차라리 난민신청을 철회하겠다는 답변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체포되어 어떻게 끌려갔고, 전기고문을 비롯해 차마 여성인 통역인 앞에서는 말할 수 없는 고문들을 당했다고 말하면서 고통스러워하는데, 옆에서 듣고 있던 저나 조사관 모두 그저 조용히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번도 아니고 여러 번에 걸쳐 체포되어 전기고문을 비롯한 고문을 당하면서 더 이상 정부에 반하는 주장을 하지 말라고 강요받는 상황… 생각해보면 우리의 근현대사에도 비슷한 사례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책이나 영화에서 봤던 우리 역사 속 이야기들과 유사한 상황을 겪은 50대의 난민신청인이 어렵게 입 밖으로 끄집어내는 이야기는 듣는 사람들까지도 그 고통이 전해져 마음이 먹먹해졌고, 그에게 인간적인 연민이 느껴졌습니다.

변호사가 되어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바로 이런 이들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랜 시간 고국에서 고통을 겪었던 이 난민신청인과 그 가족들이 이제 우리나라에서라도 평온한 삶을 누리길 간절히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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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선거법 위헌 결정과 2000년 총선시민연대

며칠 전 헌법재판소에서 선거기간 중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집회 및 시위를 금지하는 공직선거법 제103조제3항을 비롯해, 현수막 및 광고물 게시를 금지하는 제90조제1항제1호 및 제93조제1항에 대해 위헌으로 결정을 했습니다. 위 조항들은 오래 전부터 주권자인 국민들이 능동적으로 선거에 참여할 권리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독소조항이라는 이유로 끊임없이 비판을 받아 왔던 대상이었습니다.

제가 변호사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된 2000년 총선시민연대 활동도 위 법조항과 관련이 있습니다. 2000년 총선 당시 시민단체들이 연대하여 총선에 출마한 국회의원 후보자 중 부적합한 인사들에 대한 낙천 및 낙선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였습니다. 저는 당시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군입대를 앞둬 휴학 중이었는데, 입대 전 의미있는 일을 해보려고 총선시민연대 활동에 자원봉사자로 함께 하였습니다.

주로 거리에서 시민들을 상대로 홍보활동을 하는 역할이었는데 한창 젊은 나이일 때라서 그런지 지금 생각해보면 참 열심히 했던 것 같습니다. 당시 거리 홍보활동을 하던 도중 MBC 기자와 인터뷰를 했는데 9시 뉴스데스크에 첫머리 뉴스로 방송이 되어 제 주변 사람들로부터 잘 봤다고 연락을 받기도 했습니다. 투표 결과도 대대적인 시민운동의 영향으로 많은 낙선 대상자들이 고배를 마셨고, 저도 개표 당일 큰 보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런 벅찬 마음으로 개표 후 일주일 정도 지나 군에 입대를 했고, 2년여 군복무를 마친 후 제대를 했습니다.

그런데 제대 후 뉴스를 통해 2000년 총선시민연대 활동을 주도했던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공직선거법에서 선거운동기간 금지한 낙천, 낙선운동을 했다는 이유였습니다. 바로 이번에 위헌 결정을 받은 그 조항들입니다. 공정한 선거를 위해 부정한 돈은 막고, 입은 열겠다는 정치적 수사와는 달리, 형사처벌이라는 압박을 통해 정치에 참여하려는 유권자들인 국민들의 언로를 막는 불합리한 조항들이었습니다.

그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20년이 넘게 흘러 이제 와서야 위헌으로 결정되었다니 만시지탄이라고 해야 햘지, 한숨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래도 이렇게 우리 사회가 조금씩이라도 발전해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지난 번 집을 정리하다 발견한 2000년 총선시민연대 배지들을 보면서 오래 전 대학생 시절의 추억에 잠시 잠겨봅니다.

얼마 전 집 정리를 하다 발견한 2000년 총선시민연대 활동 당시 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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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월드에 남겨진 옛 추억

며칠 전 과거에 인기를 누리던 싸이월드가 다시 서비스를 시작한다는 기사를 접했습니다. 참 오랜만에 접속한 싸이월드에는 사법시험을 준비하던 시절 친구와 함께 한 여행 사진들이 있었습니다. 2003년에 소매물도에 갔을 때 사진들이니 거의 20년 전의 모습들이었는데, 삼겹살을 구워 먹을 때 옆에 와서 얻어 먹던 강아지 사진이나 술자리에서 우연히 만난 암벽등반 동호회 아저씨들과 함께 해벽을 탔던 일 등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습니다.

그 시절 함께 여행을 했던 친구와 저는 이제 40대의 아저씨들이 되었으니 시간이 화살과 같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하긴 앞으로 20년이 흐른 후 이 글을 보면서 다시 똑같은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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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함께 한 와인 ‘마데이라’

결혼을 한 이후 아내와 집에서 저녁식사를 함께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러 종류의 술을 즐기는 저는 혹시라도 술을 마시지 않는 아내를 만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고민도 있었는데, 다행히 제 아내는 맛있는 식사와 반주 한 잔 정도는 할 수 있는 풍류를 알아서 기쁩니다. 얼마 전에는 아내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한 후 갖고 있던 와인 중 마데이라를 꺼내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원래 대서양에 있는 마데이라 제도에서 생산되어 그 명칭을 얻은 마데이라는 주정강화 와인인 포트와인보다는 덜 알려져 있습니다. 원래 와인은 알콜 도수가 11도 내지 14도 정도인데, 이 정도 알콜 도수는 보관 중 변질되는 것을 막기 어렵습니다. 이런 와인에 다른 알콜 도수가 높은 브랜디나 주정을 넣어 알콜 도수를 높이면 장기 보관이 가능하기 때문에 장기간 항해에도 적합합니다. 이런 이유로 대서양을 지나는 선박들이 마데이라 제도에서 생산된 와인을 싣고 항해를 하게 된 겁니다.

마데이라는 일반적인 와인보다 알콜 도수가 높고, 달콤한 다보니 식사와 반주로 마시기보다는 식사 후 디저트와 함께 마시곤 합니다. 보통 디저트 와인으로는 귀부와인, 아이스와인, 천천히 수확해 농익은 포도로 만든 레이트 하비스트 와인, 포트와인, 셰리주로 알려진 헤레즈 와인 등을 마시는데, 이번에 만나게 된 마데이라는 처음 마시는 것이라 약간 기대가 됐습니다.

제가 마신 마데이라는 예상했던 것보다는 질감이 가볍게 느껴졌고, 달콤하고 약간 새콤한 맛이 났습니다. 또 건포도 향이 강하게 났는데, 견과류의 풍미도 약간은 났던 것 같습니다. 사실 이런 향이나 맛은 상당히 주관적이어서 같은 장소에서 와인을 마시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조금씩 달리 느껴지기 때문에 너무 와인 자체에 집중하기보다는 함께 마시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아내와 결혼하고 맛있는 음식과 술을 소중한 사람과 함께 마실 수 있다는 것이 큰 기쁨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제가 처음 마데이라 제도를 알게 된 것은 어린 시절 컴퓨터로 ‘대항해시대’라는 게임에서 전세계를 여행하면서였습니다. 이제 나이가 들어서 그 마데이라에서 생산된 술을 아내와 함께 마시는 날이 오게 되다니, 인생은 참 우연의 연속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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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도, 사람도 풍족한 중국 쓰촨성 여행 2

다음날 아침에는 모두 일찍부터 일어나 미리 예약했던 투어 버스를 타고 아미산 관광을 시작했는데, 그 첫 목적지인 러산대불로 이동했습니다. 아미산은 무협소설이나 무협영화에도 등장하는데 주변 풍광이 좋고, 볼 만한 유적지도 많은 중국의 불교 명산이자 영산이기도 합니다. 이동하다 보니 생각보다 숙소에서 거리가 좀 있었는데, 그래도 그렇게 큰 불상을 보기는 쉽지 않아 나름 기대가 됐습니다. 강가에 도착해 입장하기 위해 줄을 섰는데, 생각보다 강변에 안개가 많이 끼어 조짐이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입장 시간을 거의 1시간 정도를 기다린 끝에 러산대불이라고 새겨진 돌을 지나 입장을 시작했는데, 줄을 서있던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거북이처럼 천천히 움직이는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러산대불이 있는 곳까지 가는 길에는 이런저런 유적이나 유물들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그것들을 자세히 둘러보고 올 시간이 없어 아쉬웠습니다. 역시 중국에서 주말에 여행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어찌어찌 힘들게 대불이 있는 곳까지 도착하니 사찰의 문이 하나 있었고, 그 곳을 지나니 마침내 엄청난 크기의 불두가 보였습니다. 신기해서 더 가까이 가보니 불상 전체가 보였는데, 그 크기가 압도적이었습니다. 전체적으로 바위를 깎아서 만들었고, 어떤 곳은 벽돌을 쌓아 형태를 보완한 것 같았는데 사실 옆에서 봐서 그런지 조형미가 있다기보다는 우리나라의 민화에 나오는 인자하고 부드러운 표정의 불상이란 느낌이 더 들었습니다.

좀 아쉬웠던 것은 안개가 너무 많이 끼어서 강 건너편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는 겁니다. 안개가 만이 낀 탓에 유람선도 운항을 하지 않아 러산대불을 한 눈에 볼 기회도 없었습니다. 러산대불을 둘러보고 옆에 있는 사찰의 전각으로 다가가니 능운사라는 현판이 보여, 역시 평소에도 주변에 안개가 자욱한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사찰에는 달마화상 같은 후덕한 분도 계시고, 우리나라와 좀 달리 매우 화려하게 치장된 사천왕상도 있었는데, 역시 중국이라 그런지 표면에 개금을 많이 해서 번쩍번쩍 눈이 부셨습니다.

어느 정도 둘러본 후에는 다시 다음 목적지인 금정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안개가 잔뜩 끼고, 가랑비도 조금씩 내려서인지 입장권을 파는 곳에서 방수용 점퍼도 한 벌씩 대여해줬습니다. 산을 오르는 길에는 우리나라처럼 곳곳에 간식을 파는 점포들이 있는데, 그 중 제가 좋아하는 군옥수수를 파는 곳이 있어 일행들과 함께 옥수수를 사먹기도 했습니다. 여담으로 중국 옥수수는 우리나라 옥수수보다 더 아삭거리는 씹는 식감이 있어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데, 이 군옥수수는 숯불에 너무 구워서인지 1/3 가까이가 숯이 되버려서 아깝지만 일부는 버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산행길이 아주 길지는 않았지만 무거운 점퍼까지 입고 가려니 약간 숨이 가빠오는 찰나, 마침내 금정이라는 표지판이 서있었습니다. 근데 막상 금정 가까이 도착했는데, 반짝거리는 금정은 보이지 않고 온통 안개만 자욱했습니다. 심지어 안개에 향에서 나는 연기까지 더해서 탑이나 금정은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이럴거면 뭐하러 힘들게 여기를 올라왔나 하는 약간의 실망감이 몰려왔으나, 일단 우리 일행의 여행이 안전하게 끝나고 모두 건강하길 비는 뜻에서 향에 불을 붙여서 하나 올리기로 했습니다. 향을 올린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예물 덕인지 서서히 안개가 걷히면서 탑과 금정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금정은 글자 그대로 금으로 칠을 해뒀는데, 햇빛이 없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반짝거리지는 않았습니다. 여기저기 둘러본 후에는 다시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는데, 올라갈 때보다 안개가 자욱한 산의 모습이 아름답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몽환적인 분위기도 났습니다. 산의 이름도 아미산이라 그런지 저 쪽 안개 속에서 학을 탄 신선이라도 금방 나타날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산을 내려오니 벌써 저녁이 가까워졌는데, 아침에 아미산으로 가는 길보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은 차가 막혀서 시간이 훨씬 오래 걸렸습니다. 숙소에 돌아와서는 다들 지쳐서 호텔 가까운 곳에서 간단히 식사를 한 후 얼른 숙소로 돌아와 맥주 한 캔을 마신 후 잠을 청했습니다. 다음날 오전은 각자 여유있는 시간을 보내기로 한 터라 더욱 마음 편하게 숙면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저는 전날 피로가 심했는지 침대에서 뭉기적거리고 있는데, 어떤 일행분들은 일찍 일어나서 벌써 아침 식사까지 하고 있었습니다. 단체 카톡방에서 주고받는 대화를 슬쩍 보다 보니 저도 더 이상 침대에서 버티지 못하고, 인근 공원에서 차를 한잔 마시기로 했습니다. 공원은 숙소에서 도보로 약 15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너무 붐비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공원에 들어서는데 입구에 서있는 항일 전쟁 당시 전몰자 기념비와 그 밑에 있는 꽃다발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착검한 총만이 아니라 칼과 방패까지 등에 지고 있는데, 전에 봤던 ‘명장’이란 중국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방패를 들고 공성전을 하던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공원 안에서는 태극권을 하는 노인분들도 있고, 잔잔하게 물이 흐르는 물길도 있어서 산책하기가 참 좋았습니다. 또 공원 한켠에는 찻집도 있었는데, 쓰촨 지역에서 유명한 차들을 팔고 있어 한가로이 차 한잔을 마시는 여유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차를 마시다보니 돈을 받고 귀를 파주는 노인 한 분이 자꾸 와서 귀후비개를 들어보이는데, 안전한지 약간 걱정이 된 탓에 용감하게 제 귀를 내주지는 못했습니다. 나중에 찻집을 나오다 생각해보니 색다른 경험인데, 한번 해볼껄 하는 아쉬움이 들기는 했습니다.

다시 숙소에 돌아온 우리 일행은 두보초당을 방문하는 길에 그 앞에 있는 유명한 마파두부집에서 점심을 먹게 됐습니다. 진마파두부라는 간판이 붇어 있는데, 유명세만큼 손님들도 많았습니다. 마파두부 자체는 매우 부드러우면서도 약간 치즈 같은 식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소스 역시 보기보다는 많이 맵지 않고, 밥과 함께 먹으면 밥도둑 같은 느낌이 드는 국내 중국음식점에서는 맛보기 힘든 탁월함이 느껴졌습니다. 건두부는 다소 알싸한 향이 났는데, 마침 사간 중국의 명주 노주노교와 함께 마시니 그 맛이 더욱 훌륭했습니다.

든든하게 식사를 마치고 이제 두보 초당으로 이동을 했습니다. 중국에서 주당이었던 이백이 시선이라면 두보는 시성이라 불리는데, 안록산의 난을 피해 쓰촨성의 성도로 피신을 했다가 머문 곳이 바로 이 두보 초당이었습니다. 처음 입구에 있는 두보의 조각상을 보면 너무 마른 할아버지의 상이라 그만큼 고생이 심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초당을 둘러보다 보면 후대에 두보의 시를 사모한 권력자들이 너무 화려하게 꾸며 놓아서 그런지 ‘초당’이라는 단어가 무색하기는 하지만, 여러 건물들에 걸린 두보의 작품들과 후대 찬시까지 볼거리가 풍부했습니다.

곳곳에 여러 시대를 걸쳐 지어진 건물들과 제가 좋아하는 대나무들이 적절하게 어우러져 멋진 풍경을 만들고 있었고, 도서관이나 서점에서는 두보 관련 자료들이나 시집을 판매하기도 했습니다. 일생 동안 갖은 고생을 하긴 했지만, 이렇게 후손들이 자신을 기리는 것을 보면 두보도 이제 마음 편히 쉴 수 있겠다는 부러움이 순간적으로 가슴 한켠을 스치기도 했습니다.

두보 초당을 모두 둘러본 후에는 숙소로 돌아와 쉬다가 귀국 가방을 싸면서 여행을 마무리했습니다. 되돌아보면 이렇게 업무적으로 만나던 인연으로 함께 해외여행까지 하게 된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얼마 후 우리 모두의 삶을 강타한 코로나로 한동안 해외로 나갈 수 없었던 것을 생각하면 자유롭게 출입국이 가능했던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합니다. 코로나 이후 국내외적으로 서로 분열되고, 반목하는 일들이 많아지는 것이 좀 걱정되기도 하는데 앞으로 다시 이런 편안한 여행을 다시 계획할 날이 왔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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