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는 참 기쁜 소식이 있었습니다. 제가 1심부터 변호인단으로 참여했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에서 피고인이 유죄로 인정됐던 1심과 달리 항소심에서 전부 무죄로 선고됐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은 문재인 정부 1호 국가보안법 사건으로 알려졌는데, 북한 출신 프로그래머들이 개발한 프로그램을 국내에서 유통한 것과 관련된 사건입니다.
기존에 여러 차례 언론에 보도된 사건인데, 뉴스나 스트레이트 등 시사고발 프로그램으로도 많이 알려진 사건입니다. 피고인은 중국에서 북한 개발인력을 활용해 뛰어난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국내에 납품하고, 세계 경진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후 정치적 상황이 변화됐고, 그에 따라 피고인의 사업도 위기를 맞았을 뿐 아니라 기업의 대표였던 피고인은 공포의 대상인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굴레를 쓰고 구속이 되었습니다.
1심이 진행되면서 국가보안법 사건에서는 이례적으로 피고인이 보석으로 석방되어 불구속으로 재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피고인의 행위가 과연 국가보안법이 처벌하려고 하는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정도인지, 피고인이 그런 행위라는 것을 인지했는지, 제출된 증거의 증거능력이 있는지 등 수많은 쟁점들이 3년 동안 공판정에서 다투어졌습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일부 내용에 대해서만 무죄를 인정하였을 뿐 대부분 혐의에 대해서 유죄로 보아 징역 4년을 선고하면서 피고인을 법정구속했습니다.
변호인단의 앞에서 피고인이 법정구속되는 상황이 발생하니, 피고인 본인뿐만 아니라 변호인단이었던 저 역시 당황스럽고, 힘이 쭉 빠지게 됐습니다. 한동안 변호인단도 힘을 내지 못하던 차에 새로 변호사분들이 참여하면서 다시 전열을 정비하여 법리적인 부분과 사실 인정에 대해 치밀하게 의견서를 제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공판이 장기간 진행되어 1년 반 가까이 흐르자 다시 피고인이 보석으로 석방된 상태에서 변론이 종결되었는데, 선고기일이 다가오자 떨리는 마음을 가눌 길이 없었습니다.
마침내 선고를 하는 날, 공판정에 들어가 30분 가까이 선고를 듣는데 처음에는 변호인단의 남북교류협력법 적용 주장을 배척하고, 일부 사실에 대해서만 혐의 인정을 배척하여 불안감을 누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점점 선고가 이어지면서 피고인의 범죄에 대한 주관적 인식이 없었다는 설명이 나오면서 저나 변호인단의 다른 변호사들 얼굴이 환해지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재판장님이 피고인을 일어서게 하고 ‘피고인은 무죄’라고 말하는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지면서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 오랜 시간 피고인이 겪어야 했던 고초와 피고인이 공을 들였던 사업이 모두 무너지게 된 데 대한 안타까움도 있었고, 그래도 우리 법원에서 정치적 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법리에 따른 판단을 하는 판사들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피고인에게 무죄가 선고되는 순간 수년간 피고인의 공판마다 오셔서 방청하시며 아들의 무죄를 호소하셨던 피고인의 아버님이 박수를 치고 일어서 눈물을 흘리며 감사하다고 외치는 모습을 보고 또 마음이 찡해지기도 했습니다.
‘北 안면인식 프로그램’ 국내 유통한 대북사업가, 2심서 무죄 | 중앙일보
북한이 개발한 안면 인식 프로그램을 국내에 유통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은 대북 사업가가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앞서 김씨는 2007년 북한 IT 조직과 접촉해 안면 인식 프로그램을 제공받고, 이를 자체 개발한 것처럼 속여 국내에 판매한 혐의를 받는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의 행위는 한반도 평화 통일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개인적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면서 ”명백한 위험성이 있고 협력적 목적 밖이라 국가보안법 적용 대상이 맞다”고 봤다.
1심에서부터 검찰에서는 이 사건이 정치적 사건이 아닌 경제적 목적의 사건이라는 것을 강조했는데, 생각해보면 중국을 경유한 삼각무역이나 남북경협사업을 이런 식으로 사후적으로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범죄로 처단하다 보면 향후 어떻게 남북간 민간의 경제적 교류가 가능할 것인지 참으로 암담합니다. 하지만 이번 판결처럼 우리 사회를 보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로 만들어 가는 노력이 쌓인다면 언젠가는 지금의 정치적 대립이 완화되고, 공존공영하는 미래가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선고 후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를 하는 피고인을 보면서 피고인과 그 가족들이 겪었던 어려움이 다시 한번 생각났습니다. 가정의 중심이었던 아버지가 구속되자 생활비와 학비 걱정을 해야 했던 가족들, 보석 기간에는 조금이라도 생활비를 벌어놓겠다며 하루도 쉬지 않고 공사 현장에서 나가 일을 하던 피고인을 보며 저녁에 가족들이 모여 따뜻한 식사를 할 수 있게 된 것이 참으로 기뻤습니다. 저는 쉽지 않은 사건이었지만, 그렇기에 보람도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변호인단과 헤어져 사무실로 향했습니다.
지난 월요일에는 국회가 그동안 밀려 있었던 과제들을 한번에 많이 끝냈습니다. 많은 관심이 집중됐던 보훈처를 보훈부로 격상하고, 재외동포청을 신설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이나 이동형 영상정보처리기기나 개인정보 전송 요구권 등을 도입하는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 등도 통과됐지만, 제가 이사로 있는 나눔과나눔에서 오랫동안 준비해왔던 장사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도 마침내 의결이 되었습니다.
‘무연고 사망자 장례 지원’ 국회 본회의 통과
[서울=뉴시스] 정성원 기자 = 지방자치단체가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를 지원하도록 한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무연고 사망자와 친분이 있거나 생전에 장례 주관자로 지정한 사람도 장례를 주관할 수 있게 된다.국회는 27일 본회의를 열고 홍석준 국민의힘 의원(대구 달서구갑)이 대표발의한 ‘장사 등에 관한 법률’(장사법) 개정안 대안을 의결했다.홍 의원이 지난해 2…
줄여서 장사법이라고도 하는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은 기존에 사망자의 장례를 주관할 수 있는 연고자 범위를 법률상 친족이나 사망 전 보호하던 행정기관이나 치료기관 등으로 한정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점차 개인화, 파편화되면서 이러한 친족이나 가족과 단절되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됐습니다. 결국 사망한 분이 가족들과는 연락을 하지 않았지만 사실혼, 동거를 하거나, 수십년 동안 친분이 있는 지인이 있는 경우도 생기게 됐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에도 장사법은 매우 한정된 범위에서만 장례를 치를 수 있는 연고자를 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연락을 하지 않던 가족들이 시신을 포기하면 무연고 사망자가 되어 동거를 했거나 지인이라도 장례를 치를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법조항은 과거 가족과 친척들이 한 곳에 집단으로 정주하던 농업 사회를 전제한 것으로 현재의 변화된 사회에는 적용되기 어려운 것입니다.
제가 예전에 나눔과나눔의 연구 프로젝트에서 작성해 국제심포지엄에서 발표했던 보고서에서도 이에 대해 언급한 바 있는데, 이제는 연고자의 범위를 확장해 보다 널리 사망자의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와 관련해 몇년 전 보건복지부의 가이드라인으로 해당 조항의 해석을 통해 이러한 범위의 확대가 이루어졌고,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로도 보완되고 있었지만 이제 법률의 명시적 조항으로 논란의 여지를 줄이게 되었습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연고자 범위 전체를 확장한 것은 아니고, 무연고 사망자에 한정하여 사망하기 전 장기적·지속적인 친분관계를 맺은 사람 또는 종교활동 및 사회적 연대활동 등을 함께 한 사람, 사망하기 전 본인이 서명한 문서 또는 「민법」의 유언에 관한 규정에 따른 유언의 방식으로 지정한 사람을 장례 주관자로 인정할 수 있도록 하여 제한적으로만 확대된 것입니다. 앞으로는 무연고 사망자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모든 사망자에 대해서 연고자 범위가 확대되어 돌아가신 분의 의사와 존엄성이 존중되는 ‘가족 대신 장례’, ‘내 뜻대로 장례’가 활성화되길 기대해 봅니다.
작년 말에 오픈AI에서 공개한 챗GPT로 전세계가 떠들썩합니다. 일론 머스크도 설립에 처음 참여했던 오픈AI의 성과인데 최근 투자를 많이 했던 MS로서는 회심의 반격이라고도 보입니다. 챗GPT가 관심의 초점이 되자 구글에서는 적색 경보를 울리면서 기존에 개발했던 인공지능 챗봇인 Bard를 공개하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챗GPT가 인기를 끌자 저도 질문을 해봤습니다. 전부터 실제 인공지능에게 트롤리 딜레마(Trolley Dilemma)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챗GPT를 사용한 다른 사람들처럼 저 역시 답변의 내용에 깜짝 놀랐습니다. 이러한 내용을 바탕으로 이번 칼럼을 작성해 기고했습니다.
[이슈&인사이트] 인공지능의 가치판단 허용되나
작년 말 오픈AI에서 공개한 챗(Chat)GPT-3.5가 사회 전체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기존 챗봇보다 훨씬 인간과 유사하게 대화한다는 평가를 받는데다 다음 모델인 GPT-…
이번 달 중순에는 제가 위원장으로 있는 서울지방변호사회 중국소위원회에서 한중법률용어집을 출간하는 기념식이 있었습니다. 중국소위원회 위원들 중 6분의 변호사분들이 1년 넘게 없는 시간을 쪼개 한국과 중국에서 많이 사용되는 상용계약서 12개를 중문과 한글로 서로 번역하고, 계약서에서 사용된 용어들을 설명하는 책을 발간했습니다.
이 작업은 원래 제가 중국소위원회의 위원장이 되기 바로 전 위원회에서 추진하려고 했던 것이었는데 당시 위원분들이 여력이 없어 미뤄졌던 것이었습니다. 당시 간사였던 제가 위원장이 되어 이번 임기에는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진행을 하여 마침내 임기를 며칠 안 남기고 법률용어집 출간과 그 기념회까지 열게 된 것입니다. 법률용어집 준비 TF의 위원장을 맡았던 분이 중국 북경대에서 법학을 전공했는데 책임감을 가지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끝까지 사업을 마무리해서 책이 출간될 수 있었습니다.
출간 기념회를 준비하면서 그동안 위원분들이 많은 애를 쓰셨고, 서울지방변호사회 명의로 출간되는 것이어서 관심이 있을 법한 분들을 최대한 많이 초청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서울지방변호사회 임원들 뿐 아니라 주한중국대사관, 대한변협과 사내변호사회 관계자, 학계와 한국에 있는 중국변호사 등 많은 분들을 초청해서 축하해주고, 널리 알리고자 했습니다. 다행히 예상보다도 많은 분들이 참석해서 열띤 분위기 속에서 출간 기념회가 진행됐습니다.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는 회장 직무대행으로 부회장님이 축사를 하셨고, 주한중국대사관에서는 팡쿤 공사님이 축하 영상을 보내주셨습니다. 이후 진행된 책 내용 소개 절차에서 저는 소위원장으로서 좌장을 맡고, 법률용어집 출간 사업에 가장 열심히 참여했던 위원분들이 사회와 발제를 하여 출간 기념회가 잘 마무리되었습니다. 원래 계획은 이번 상용계약서에 이어서 다른 분야의 용어들에 대해서도 시리즈로 용어집을 발간하는 것이었으므로, 다음 중국소위원회에서도 계속 동일한 사업을 발전시켜 나가면 좋겠습니다.
변호사들은 겨울의 절정기에 맞이하는 법원의 휴정기에 한숨 돌리며 휴식을 갖게 됩니다. 각자의 사정에 따라 여행을 하기도 하고, 독서나 다른 취미생활을 하기도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바쁜 업무로 밀린 서면들이나 집안일을 처리하기도 합니다. 저 역시 연말에 맞은 휴정기에 밀렸던 인터넷 교체나 등 수선 등 집안일을 처리하고, 아내와 주말을 껴서 겨울산과 바다를 보고 오기도 했습니다.
제가 이번 휴정기를 맞으면서 결심했던 것이 하나 있는데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업무시간에 활자를 많이 봐서 왠지 보기 싫다는 이유로 제 업무 이외의 책을 잘 읽지 않았지만 이번 휴정기에는 시간을 내서 책을 제대로 좀 읽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휴정기에 도서관에 가서 서가를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마음에 드는 책 몇 권을 빌려왔습니다. 그 책들 중 먼저 읽은 것이 ‘군주론’과 ‘전쟁의 기원’이라는 책입니다.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지은 ‘군주론’은 널리 알려진 책이라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입니다. 사실 제가 더 젊었을 때 이 책을 여러 번 집어 든 적이 있었는데, 지금보다 젊은 나이였을 때라 그런지, 인간의 본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책의 내용에 거부감이 들어선지 조금 보다가 내려놓았었습니다. 이제 그 때보다는 세상을 더 경험해서 마음이 열린 것인지,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더 알고 싶어선지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군주론을 제대로 읽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서관에 가보니 여러 버전의 군주론이 있었는데, 제가 고른 곽차섭 교수 번역본은 이탈리어 원전을 최대한 직역하고 마키아벨리의 생애를 보여주면서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쓰게 된 이유를 설명해줘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어떤 글을 쓴 배경을 알게 되면 글의 행간을 읽는데도 도움이 되고, 내용 자체도 더 이해가 쉽기 때문입니다. 제 생각대로 책 처음 부분에 마키아벨리의 삶과 당시 이탈리아의 정세, 군주론을 써서 당시 피렌체의 권력자에게 증정하려고 했었다는 내용을 알게 되니 군주론이 왜 그렇게 쓰여졌는지 명확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군주론은 어떻게 보면 난세를 사는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이기도 하고, 정치 지도자의 처세서이기도 하며, 수많은 도시국가로 찢어진 이탈리아의 슬픈 역사서이기도 합니다. 전에는 군주는 사자이자 여우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반감부터 생겼는데, 인간의 심성보다도 상황이 인간의 행동을 좌우하기도 한다는 것을 고려하면 그러한 주장도 일리는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군주론에 나온 것처럼 민주정이 아닌 군주정에서는 군주 자신의 생존이 곧 국가의 생존이기에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어려서부터 컴퓨터로 삼국지 게임을 즐기고, 손자병법이나 육도삼략, 열국지나 삼국지, 초한지, 대망은 흥미진진하게 읽었던 제가 유독 마키아벨리의 주장에만 거부감을 가졌던 것이 한편 이상하기도 합니다. 아마 그것은 제가 군주론이 있었던 사실을 기술하는 역사서나, 전쟁을 수단으로 하는 부국강병의 기술을 주장하는 병가의 측면이 아니라 일반적인 정치에서의 교활한 기술이나 무자비한 힘을 강조하는 것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번에 군주론을 읽으면서 그런 편견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군주론을 읽은 후에는 ‘전쟁의 기원’이라는 책으로 넘어갔습니다. 부제가 ‘석기 시대로부터 알렉산더 대왕의 시대까지’인데, 저자인 아더 훼릴은 원시 인류부터 전쟁이 존재해왔고, 전쟁이 인류의 주거 형태와 삶의 방식을 많이 결정해왔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특히 저자는 장갑보병으로 유명한 그리스와 로마의 전쟁 수행 능력이 과대평가되어 왔고, 소아시아 등 고대 근동 지역으로부터 우리 현대인은 전쟁과 관련된 훨씬 많은 유산을 물려받았다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전쟁의 기원 | 아더 훼릴
미국 워싱턴대학에서 고대 전쟁사를 강의하고 있는 아더 훼릴 교수의 저서인 제2판을 우리말로 옮겼다.
도시의 출현에 대해서도 독특한 견해를 제시하는데, 농경의 발전으로 도시가 발생한 것이 아니라, 집단적인 방어 목적으로 도시가 생긴 후 농경 등 식량의 축적이 시작됐다고 주장합니다. 농업혁명이라고도 불리는 농경의 등장이 인류 역사의 새 장을 열었다는 기존의 통설을 반박하며, 농경으로 인한 식량의 증산은 그다지 많지 않았음에도 이미 늘어난 인구수로 인해 인류 공동체가 기존 수렵 및 채집 경제로 돌아갈 수 없었다는 유발 하라리의 주장이 떠오르는 농경시대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합니다.
책 내용에서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전투에서 각 부대가 어떻게 전투를 벌였는지 그림을 통해 설명하는 것과 게임에서 많이 경험한 것처럼 각 부대들의 특성에 따라 서로 상성이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즉, 갑옷이 두꺼운 중장갑보병이라고 반드시 모든 상황에서 경보병보다 전투력이 우수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한,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 제국을 정복하고, 아시아 원정에서 계속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 그리스의 중장갑보병 전술과 페르시아 등 근동 지역의 경보병, 전술, 병참, 조직등 전쟁 기술을 효과적으로 결합시켰던 덕분이란 점도 놀라웠습니다.
결국 자신이 가진 것의 장점을 살리고, 타인의 것이거나 새로운 것이라고 무조건 배척하기보다는 그 장점을 잘 살펴 자신의 것으로 흡수한 것이 바로 최고의 결과를 이끌어 내는 비결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에서는 변방이라고 할 수 있는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과 그 아버지인 필립왕은 근본적인 혁신이 비주류인 변방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제대로 증명한 것이라는 생각을 듭니다.
작년 말에는 경기도에서 공동주택관리를 담당하는 시군 감사 담당 공무원들을 상대로 감사 업무에 필요한 법무 지식에 대한 강의를 하게 됐습니다. 제가 수년간 경기도청에서 공동주택관리 감사 위원을 맡아서 현장조사와 감사결과에 대한 심의를 담당했었는데, 작년에 공동주택 현장조사를 함께 나갔던 주무관님이 연말에 강의를 해줄 수 있냐는 요청을 받고 강의를 맡게 됐습니다.
저는 기존에 다양한 주제로 강의를 해봤기 때문에 강의 자체를 준비하면서 크게 어려움은 없었지만, 공동주택 감사를 담당하는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라고 하니 어떤 내용으로 강의를 해야 도움이 될지 약간 고민이 됐습니다. 그래서 전년도에 강의하셨던 분들의 강의자료를 참고해서 방향을 잡고, 담당 주무관님과 통화를 해서 실제 감사 담당 공무원들이 필요로 하는 법률 지식이 무엇인지 확인을 했습니다.
그렇게 강의안 준비는 큰 무리 없이 마무리가 됐는데, 이번 강의에서는 특이하게도 대본까지 필요하다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나 넓은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시군 공무원들을 한 장소로 모아서 강의를 하기 어려워서인지 강의를 온라인으로 하는데, 네이버 TV로 생중계를 하기 때문에 강의안의 각 페이지별로 카메라 기사가 화면을 전환해야 되서 다음 페이지로 언제 넘어가는지 알기 위해 대본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평소 강의를 하면서도 따로 대본을 작성해본 적은 없었기 때문에, 막상 대본을 쓰려고 하니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담당하시는 분과 전화 통화를 해서 어느 정도나 상세하게 대본을 작성해야 하는지 문의를 해서 어찌어찌 대본도 완성이 되었습니다. 마침 강의 전에 공동주택관리과 점심 회식이 있어서 과장님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강의 관련 내용도 얘기하면서 긴장을 풀 수도 있었습니다.
강의 시작 20분 전에 담당 주무관님과 경기도청에 있는 스튜디오로 이동해 강의 준비를 했는데, 의자 위치까지도 카메라 각도에 맞춰져 있어 의자에 몸을 맞추는 상황까지 연출됐습니다. 강의가 2시간 좀 안 되는 시간 동안 진행됐는데, 생방송이라 소음이 큰 온풍기를 끄고 방송을 할 수밖에 없어 나중에는 추위에 몸이 덜덜 떨렸습니다.
그것 외에는 별다른 문제 없이 강의를 잘 마쳤는데, 방송을 끝내고 나가니 담당 주무관님이 전에 강의를 좀 해보셨냐고 물어보는 것이었습니다. 웃으면서 이런저런 강의들 좀 해봤다고 답했더니, 확실히 강의를 해보셔서 다르다며 칭찬을 하기에 좀 민망하기는 했지만 강의를 들은 다른 분들도 잘 이해를 하셨을 것 같아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강의를 통해 관련 업무를 하는 공무원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복잡한 아비뇽의 구도심을 떠나 우리는 산 위의 아름다운 마을인 고흐드로 향했습니다. 아내가 들르고 싶어한 곳이기도 하고, 우리의 다음 목적지로 가는 길목에 있는 곳이기도 해서 점심식사를 하고 가기로 했습니다. 아비뇽에서 고흐드까지는 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 거리라 금방 도착했습니다. 마을로 들어가는 언덕길에서 반대쪽을 보니 아름다운 절벽과 그 위에 있는 집들이 보여 차를 세우기 싶었는데, 주차장을 찾느라 한참 헤맸습니다.
몇 곳을 지나친 후 다행히 빈 주차장을 찾아 차를 댔습니다. 마을의 전망대에서 열리는 전시회를 둘러본 후 아내가 예약한 L’Artegal에서 간단하게 가지볶음, 고기 필라프와 샐러드로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를 한 후 주변을 산책하는데, 라벤더 아이스크림을 판다는 광고판이 보였습니다. 프로방스가 라벤더로 유명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라벤더 아이스크림은 처음 봐서 한번 먹어보고 싶었습니다.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사서 한 입 떠먹는 순간, 라벤더의 강렬한 보라빛 향기와 실크처럼 부드럽게 녹는 식감이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감탄사를 쏟아내는 저를 지켜보던 아내도 커피를 테이블에 놓고 숟가락을 받아 떠먹더니 엄청난 맛이라며 찬사를 보냈습니다. 라벤더 아이스크림의 향을 맡으며 다시 골목길을 걷던 우리는 전망이 좋은 절벽 한쪽에서 고흐드에서의 멋진 순간를 기록했습니다.
고흐드에서 시간을 보내고 다시 오늘의 숙소가 기다리고 있는 무스띠에 셍-마리로 차를 몰았습니다. 고흐드에서 무스띠에 셍-마리까지는 시골길을 따라 2시간 이상 걸렸는데, 목적지로 다가갈수록 주변 풍광이 멋있어져서 어떤 풍경이 펼쳐질지 기대 또한 커져갔습니다. 2시간 정도 운전을 해서 좀 피곤했던 저는 숙소에 도착하기 전 잠시 차를 세우고 아내와 휴식을 취하면서 해가 지기 전에 무스띠에 셍-마리 마을 주변을 멀리서 카메라로 잡아봤습니다.
이윽고 어둑어둑해진 시간에 마침내 예약한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나무가 우거진 좁은 숲길을 따라 갔더니 나타난 숙소는 약간 시골 산장 같은 곳으로 오래된 목조 건물이었습니다. 차를 세운 후 캐리어를 끌고 숙소로 가는데, 숙소의 사장님 같은 할아버지 한 분이 나와서 인사를 하고 2층에 있는 우리 방까지 무거운 캐리어를 들어 주셨습니다. 2층 방에 들어가보니 영화에서 보던 옛날 저택처럼 방이 있고 그 옆에는 매우 넓은 화장실과 파우더룸이 있는 독특한 구조였습니다.
시골길을 따라 운전하느라 좀 지친 저는 짐을 풀고 잠시 쉬려고 침대에 누웠다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비뇽에 있는 호텔에서 서둘러 나오느라 호텔 방 금고 속에 넣어 놨던 신용카드와 현금 800유로를 놓고 나온 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앞으로 여행에 사용할 경비였던 현금과 신용카드였기 때문에 큰 일이라는 걱정과 함께 다시 가서 받아와야 하나, 아니면 다른 방법이 있을까 순간적으로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갔습니다.
그래서 일단 아내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아비뇽 호텔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아비뇽 호텔 전화벨이 울리는 동안 마음을 졸이며 기다리다 마침내 여성이 전화를 받았습니다. 호텔에 머물 때 인사를 나눴던 호텔 사장의 부인이었는데 제 얘기를 듣더니 금고의 비밀번호와 안에 든 물건이 무엇인지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설정한 비밀번호와 금고 속에 있는 현금 등에 대해 설명을 했고, 잠시 후 확인을 해보겠다고 하더니 물건들을 찾았다며 어떻게 보내줄까 묻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다시 아비뇽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안도하면서 구체적인 내용은 이메일이나 문자 메시지로 하자고 말했습니다. 이윽고 이메일을 서로 주고받았는데, 저는 우리가 프랑스에 마지막으로 묵게 될 마르세유의 호텔을 알려주고, 그 곳으로 보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랬더니 걱정말라면서 내일 아침에 우체국 택배로 보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메일로 정말 감사하다는 인사를 거듭한 후 아내와 생 마리 마을로 저녁 식사를 하러 차를 타고 나갔습니다.
10분 정도 운전을 한 후 주차장에 차를 댔는데, 이미 시간이 좀 늦어서인지 아니면 코로나인데다 관광 비수기라서 그런지 생 마리 마을은 거의 대부분의 식당과 상점들이 문을 닫은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아내와 매우 조용한 마을 곳곳을 둘러보다가 다시 차를 타고 숙소로 돌아와 전에 쇼핑을 했던 음식들로 저녁을 간단히 해결했습니다. 그날 밤은 운전을 길게 한 데다가, 아비뇽에 현금을 놓고 온 문제를 해결하느라 긴장했는데 잘 해결이 되어서 그런지 깊은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보니 바깥 기온이 상당히 쌀쌀했습니다. 준비를 하고 밖으로 나가서 숙소 주변을 한바퀴 돌았습니다. 숙소 사장님이 1층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것을 보다가 아내와 얘기해보니 마을 위쪽에 있는 예배당이 경치도 좋고, 분위기도 있을 것 같아서 일단 차를 몰고 그 곳으로 향하기로 했습니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아직 예배당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인적이 드물었습니다. 계단길을 따라 올라가는데, 예수님의 고난을 상징하는 조각상들이 길 옆에 서 있고, 뒤를 돌아보니 셍-마리 마을도 보였습니다. 고개를 더 높이 들어 보니, 절벽 사이로 무스띠에 셍-마리 마을의 명물인 별도 보였습니다. 이 마을이 유명해진 이유는 십자군 원정을 갔던 기사가 자신이 고향에 살아 돌아가면 신에게 감사의 의미로 별을 걸겠다고 기도를 했고, 무사히 돌아온 기사가 자신의 약속을 지켜 절벽 사이에 별을 매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예배당 올라가는 길이 좋았지만 특히나 예배당 바로 앞의 계단이 운치가 있고 아름다웠습니다.
저와 아내가 가뿐 숨을 내쉬며 계단을 올라가 예배당을 들어섰는데, 마침 예배당에서 종을 치는 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저희 부부의 새로운 시작을 기념하는 느낌이 들어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나무로 된 예배당 문에는 조각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었고, 처음 들어선 예배당 안은 빛이 잘 들어오지 않아 매우 어두웠습니다. 잠시 적응하고 나니 십자가와 예수님이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온 약한 빛줄기를 통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저희만 있는 고요한 예배당에서 알 수 없는 감동을 주는 십자가의 예수님을 한참 멍하니 보고 있었습니다. 아내가 이제 내려가자는 말을 해서 슬슬 예배당을 나왔습니다.
예배당을 내려와서 마을에 가보니 엄청 큰 다리와 폭포가 있었습니다. 가파른 산비탈에 마을을 만들다보니 그렇게 토목공사를 크게 했던 것 같습니다. 마을에서 올려다보니 절벽에 걸린 별이 마찬가지로 잘 보였습니다. 아침부터 등산을 해서인지 저나 아내나 둘다 배가 고파서 일찍 문을 연 식당을 찾아 나섰는데, 마침 평이 좋은 식당이 문을 연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쌀쌀한데 돌아다녀서 그런지 빵과 따뜻한 음료를 마시니 몸이 좀 녹았습니다.
마을에서 식사를 한 후 숙소로 짐을 챙기러 돌아왔습니다. 숙소 사장님에게 인사를 한 후 차를 몰아 아내가 가고 싶어했던 생트 크화 호수의 선착장으로 향했습니다. 아내는 보트를 탈지, 카약을 탈지 고민하면서 수영복을 미리 입어야 할지도 걱정을 했는데, 막상 선착장에 도착해보니… 띠로리~~ 이상하게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람만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요트나 카약도 호수에 떠있지를 않았습니다. 가만히 보니 초봄이라 비수기인데다 코로나 상황까지 겹쳐 운영을 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아쉬워하는 아내를 달래서 호수 주변 마트에서 들러 오렌지 주스와 천도복숭아 등 간식을 산 후 멋진 풍광으로 유명한 베흐동 협곡길을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정도 달려 베흐동 협곡으로 들어서는데, 나무들 사이로 멀리 터키석같이 아름다게 빛나는 생트 크화 호수가 보였습니다. 아내의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달래주려고 차를 세운 후 잠시 내려 호수를 구경한 후 다시 출발했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베흐동 협곡의 수백미터 절벽을 따라 난 왕복 2차로를 달리는데, 좁고 뱀처럼 구불구불한 길인데도 제한속도가 시속 80km나 됐습니다. 프랑스에서 운전을 하면서 많이 느낀 것인데, 프랑스 사람들이 한국사람들보다도 운전을 훨씬 거칠게 해서 깜짝 놀랐고, 베흐동 협곡같은 좁은 길에서도 제가 모는 차 후미에 차를 들이대고 빨리 가라고 재촉을 해대는 모습에 다시 한번 놀랐습니다. 저는 초행 길인데다 차도 익숙하지 않은데, 계속 이렇게 위협을 하니 자꾸 위축이 되고 마음이 많이 불안했습니다.
그래서 전망이 좋은 전망대가 있는 곳에서 잠시 내려 바람을 쐬면서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했습니다. 갓길에 차를 세우고 아내와 함께 전망대로 걸어갔는데, 아래를 내려다보니 세상에!! 위로는 병풍처럼 둘러친 높은 암봉들이 서 있고, 아찔한 낭떠러지 아래로는 푸른 계곡물이 흘러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구경하는 여행객들이 절벽 아래로 떨어질까봐 철제 난간까지 설치해둔 것을 보니, 이 곳이 인기있는 전망대는 맞는 것 같았습니다.
전망대에서 휴식을 취한 후 마음의 안정을 찾은 저는 다시 차를 몰고 협곡의 아래에 있는 길까지 달려내려갔습니다. 제가 이 길을 택한 이유는 저도 그렇지만 아내가 멋진 절벽과 바위가 있는 풍경을 좋아해서였는데, 막상 2시간 가까이 좁은 산악길을 달리다보니 아내가 멀미를 해서 바깥 경치를 볼 수도 없게 됐습니다. 그러다보니 나중에는 괜히 넓은 길을 두고 이 길로 왔나 하는 후회가 들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이미 들어선 길, 되돌아 갈 수도 없어 계속 아래로, 위로 달리다보니 마침내 샌드위치 같은 고원지대가 호쾌하게 펼쳐진 지형이 나타났습니다. 이제 이런 산길도 끝났다는 안도감에 아내와 함께 차에서 내려 고산지대의 상쾌한 바람을 맞은 후 기념 사진도 찍었습니다. 마구 불어대는 바람에 저와 아내의 머릿카락이 흩날리는데, 얼굴은 환하게 웃는 장면이 마치 큰 고난이라도 끝나 마음이 편해진 듯 합니다.
마치 큰 과제를 끝마친 것처럼 산길을 천천히 내려와서 들판을 따라 달리다 보니 길 양 옆으로 키가 작은 관목 같은 식물들이 저 멀리 지평선 끝까지 길게 줄을 서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이 식물들이 뭔지 알지 못했는데, 계속 식물들이 심어져 있어 마침내 그것이 라벤더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랬습니다. 바로 이 길은 향수로 유명한 그라스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이번 달에도 제 변호사 업무 경험을 기초로 에너지경제신문에 칼럼을 실었습니다. 한동안 공사가 중단되어 논란이 많았던 둔촌주공아파트 등 재개발과 재건축 정비사업에 대해 제가 오랫동안 서울시 등 지자체 및 국토부와 감사의 일종인 실태점검을 하면서 느꼈던 소회와 앞으로의 개선 방안에 대해 적어 봤습니다.
[이슈&인사이트] 외부법률감사로 정비사업 투명성 높여야
국내 최대 재건축 사업으로 주목받았던 둔촌주공아파트의 일반 분양 신청이 예상보다 저조한 청약 경쟁률로 마감됐다. 조합과 시공사들의 추가 공사비 인상 분쟁으로 촉발된 상황이 시공사들…
지금까지 40여개가 넘는 재개발, 재건축 조합들에 대한 실태점검을 하면서 조합에서 법률자문을 받는 변호사나 법무법인을 두고 있음에도 조합 행정이 법령을 제대로 준수하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물론 일부 법령의 경우에는 실무와 괴리가 있어 기준대로 따르는 것이 매우 힘든 것도 현실이긴 하지만 어떤 경우는 위법과 적법의 기준조차 모르거나, 감시의 눈이 없어 기준을 무시하려는 의도가 보이기도 합니다.
제가 조합 관련 소송사건들을 하면서도 느끼는 것이지만, 정확한 규정이 없어 지키지 않는 경우만이 아니라 규범을 지키는 것이 불리해서 지키지 않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이 경우 불이익을 입는 것이 때로는 조합원이고, 때로는 조합 임원인 경우도 있으며, 때로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등 사회 전체인 경우도 있습니다. 비록 정비사업보다 규모는 작을지언정 공동주택 관리와 관련하여 발생하는 비리 역시 구조는 비슷합니다.
결국 법령을 준수함으로써 발생하는 불이익보다 법령을 위반할 때 얻는 이익이 큰 경우 유혹을 뿌리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도 외부 법률감사가 시행된다는 것만으로 도깨비 방망이처럼 정비사업과 공동주택관리에 꽈리를 틀고 있는 부정과 부패를 일소해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마치 외부 회계감사에 대해서도 그 장단점에 대한 주장이 부딪히지만, 이를 통해 회계 투명성이 일정 부분 확보된 것은 사실이므로 외부 법률감사 역시 시도해볼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달에는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인공지능 로봇과 관련한 강의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제가 인공지능 로봇의 법적 지위와 관련한 논문과 책을 발간한 것을 알고 계신 변호사님이 내용이 흥미롭다고 추천을 해주셔서 국제거래 커뮤니티의 연수 교육으로 서울지방변호사회 회관에서 변호사 회원분들을 상대로 인공지능 로봇과 관련된 현재와 미래에 관해 강의를 하게 됐습니다.
제가 개업을 하고 담당하던 사건이 적은 편일 때는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개최하는 연수에 많이 참여를 했었는데, 점점 하는 일들이 많아지다보니 참여 횟수가 줄어들었습니다. 제가 강의를 하게 된 강의실에서도 몇번 강의를 들었던 기억이 있는데, 이번에는 제가 강사로 강의를 하게 되다니 그 사이 시간이 많이 흘렀다고 느꼈습니다.
줌이란 프로그램을 이용한 온라인 강의라, 강의를 시작하기 전 제가 미리 보냈던 강의 자료가 제대로 돌아가는지 한번 확인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제가 보낸 파일 포맷이 아니라 다른 파일 포맷으로 변경을 해둬서 제가 하려고 했던 언론 기사나 동영상을 볼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있었습니다. 다행히 제가 가져간 파일이 있어서 새로 파일을 복사해 시연을 했는데 프로그램이 링크를 통해 다른 페이지로 연결되는 부분을 보여주지 못해서 그때마다 새로 설정을 해야 하는 문제가 다시 생겼습니다.
그래도 퇴근 후, 더구나 저녁 식사시간에 제 강의를 들으시는 분들에게 원래 준비했던 내용을 다 전해드리고 싶어서, 강의를 하면서 계속 화면 전환을 하는데…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습니다. 한편으로는 최첨단 이슈인 인공지능과 관련된 강의를 하면서 막상 강의 과정에서는 상당히 아날로그적인 방법으로 강의가 진행되는 것을 보고 속으로는 약간 웃음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2시간 가까운 시간을 정신없이 말을 쏟아내면서 어찌어찌 강의를 끝냈는데, 다행히 채팅창에 화면 전환와 관련해 많은 불만이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협회 직원도 원래 계획과 달리 진행이 됐는데도 몇번 하고 나니 나중에는 큰 문제 없이 부드럽게 진행됐다는 말로 제 어깨를 좀 가볍게 해줬습니다. 다만, 강의 마지막 질의 및 응답 시간에 더 실무적인 내용을 얘기하기도 하는데, 이번 온라인 강의에서는 강의 내용에 대한 질문이 나오지 않아 시간이 모자라 강의에서 제외했던 인공지능 관련 개인정보 보호 관련 내용을 설명하지 못한 것이 좀 아쉬웠습니다.
지금까지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강의를 해봤는데, 확실히 온라인 강의는 오프라인 강의보다 시청자의 반응을 알기도 어렵고, PC로 계속 온라인 프로그램을 조작하느라 강의 진행이 직관적이지 않아 불편한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제가 계획했던 것과 달리 세팅이 되어 있어서 강의 진행에는 어려움이 좀 있었지만, 바쁜 시간을 내서 제 강의를 들어주셨던 서울지방변호사회의 변호사님들이 하나라도 의미있는 것을 얻어 가셨길 빕니다.
오늘 휴대폰으로 뉴스 기사 제목을 보다 눈이 번쩍 뜨이는 내용을 보았습니다. 임차인이 임대차계약을 체결한 후 전입신고를 하기 전까지 임대인이 미납한 세금을 확인할 수 있게 하는 국세징수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이전에 맡았던 사건의 의뢰인이 임대인의 체납 세금 때문에 살던 집이 공매가 되어 임대차보증금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가 공매에 참여해서 임차했던 집을 자신이 낙찰 받을 수밖에 없는 사정에 처했었기 때문입니다.
집주인의 밀린 세금, 동의 없이도 세입자가 볼 수 있다
내년부터 전세 세입자가 동의 없이도 집주인의 밀린 세금을 볼 수 있게 됩니다. 어제 국회를 통과한 ‘국세징수법 개정안‘에 따르면 임대차 계약을 한 세입자가 집에 들어가는 날까지, 집주인의 동의 없이도 미납한 국세를 볼 수 있습니다. 전세 사기 피해를 예방하도록 하자는 취지입니다. 최근 수백 명의 피해자를 낸 ‘빌라왕’ 전세 사기 사건에서도 세입자가 집주인
생각해보면 임대인이 말해주지 않았기에 자신의 잘못도 아니고, 자신이 알 수도 없었던 임대인의 세금 체납 때문에 임차인이 손해를 보는 어이 없는 상황에 저도 어이가 없고,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임대인이 체납한 세금이 얼마인지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법률 개정안은 여러 차례 국회에 발의된 적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임대인의 개인 금융정보이기도 하고 악용될 소지도 있어 쉽사리 개정이 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법개정이 이루어진 계기가 된 이른바 ‘빌라왕’ 전세 사기처럼 경제적 약자인 임차인들이 자신들에게는 책임이 없는데도 너무 큰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저 개인적으로는 법개정이 반드시 필요한 사안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이제라도 법개정을 통해 임차인들이 임대인의 세금 체납 정보를 확인할 수 있게 되어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줄어들었기에, 늦었지만 천만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국회의원들이 제 몫을 하면 어려운 국민들이 그만큼 피해를 덜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