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당시 고이율 원리금과 청구이의의 소 승소

지난 주에는 의뢰인의 채무부존재를 주장하여 진행한 청구이의의 소에서 승소했습니다. IMF 이후 무너져내린 국가 경제로 어려움에 처한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제 의뢰인도 그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IMF로 경제 사정이 어려워지자 소액대출과 신용카드론으로 생활비를 충당했었는데 개인파산이나 회생을 신청하지 않고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했었습니다.

하지만 한번 가라앉기 시작한 배를 다시 띄우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대출만기가 되었지만 상환을 하지 못하고 연체를 하게 되었는데, IMF 이후 이자제한법이 폐지될 정도로 이자가 급등했었기 때문에 원금의 몇 배에 이르는 이자가 변제해야 할 원리금으로 쌓이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금융기관들은 제 의뢰인에게 그렇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원리금을 받기 위해 지급명령과 소액사건심판을 청구했는데 제 의뢰인은 막노동으로 생활비를 버느라 전국을 돌아다니고 있었기에 소장도 제대로 송달받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20여년 가까이 시간이 흘러 제 의뢰인은 자신의 채무가 어떻게 된 것인지 잊고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제 의뢰인에 대한 채권들은 채권추심업체들 사이를 돌고돌다가 마침내 자산관리공사가 제 의뢰인을 상대로 강제집행을 시도하면서 제 의뢰인이 상황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제 의뢰인은 2018년과 올해 청구이의의 소를 제기했는데, 이후 저를 찾아와 상담을 받았습니다.

상황을 보니 처음에는 기존에 판결과 지급명령도 받아 확정된 바 있고, 대출도 의뢰인이 빌린 것이 맞아 별로 가능성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래도 상담을 하면서 기존 진행 과정에 대해 의뢰인에게 묻다보니 지급명령과 소액사건심판으로 소멸시효가 완성된 것인지 약간 의문이 들었습니다. 일단 의뢰인에게 결과는 장담할 수 없지만 관련 소송기록을 다시 확인해보고 얘기해보자고 한 후 기존 사건 기록들과 판결문, 지급명령 등 내용을 보니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점들이 다수 있었습니다.

원래 제가 맡았던 사건은 올해 제 의뢰인이 소제기했던 사건인데, 사실상 동일한 채무에 대해 의뢰인이 이미 2018년 소를 제기했었고, 그 사건의 판결선고가 얼마 남이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그 사건에서 불리한 판결이 나면 제가 맡은 사건도 불리해질 수 있어서 제가 검토한 내용을 바탕으로 판결선고 일주일 전 참고서면을 제출했는데, 다행히도 다 합쳐 5천만원 정도에 해당하는 채무가 시효로 모두 소멸되었다는 전부 승소판결을 받았습니다.

상대방은 전부 패소했는데도 승산이 없다고 보았는지 항소를 하지 않았고, 저는 기존 판결문을 진행 중인 사건에 제출하면서 동일한 논리의 준비서면을 제출했습니다. 상대방은 여러 금융기관들에 사실조회를 신청했지만, 자신이 원하는 자료나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회신을 받지 못했고 마침내 지난 주 총 6천만원 정도에 해당하는 채권들이 모두 시효 소멸되었으므로 이런 채권들을 기초로 한 강제집행을 정지한다는 내용의 전부 승소 판결을 받았습니다.

승소판결을 받고 의뢰인에게 연락을 하니 의뢰인이 이제 조금만 더 노력하면 새출발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을 했습니다. IMF로 인한 고통이 20년이란 시간을 넘어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안타깝기도 했지만 이제 다시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울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판결문을 송달받으면 사무실로 오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으면서 제 얼굴에도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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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전트를 맡은 프로야구 선수의 방출

저는 작년 프로야구선수협회의 선수대리인 자격을 취득해 올해부터 프로야구 선수들의 에이전트 업무도 맡고 있습니다. 은퇴한 프로선수들과 함께 일반인과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대표님과 친분이 있어 얘기를 나누다가 프로스포츠 선수들이 어떤 환경에서 운동을 하는지 듣고 흥미도 생기고, 빛을 보지 못한 선수들을 찾아 성공하도록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입니다.

에이전트 업무를 시작한 초기에는 스포츠 업계와 직업적으로는 별 관계없이 살았던 터라 에이전트를 할 수 있는 선수들이 별로 없었는데, 다행히 몇몇 선수들과 인연이 닿아 에이전트 업무를 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올해 초 코로나가 닥치면서 갑자기 상황이 급변했습니다. 프로야구를 비롯한 프로스포츠 리그가 중단되기도 하고, 이후 경기가 재개되긴 했어도 무관중이나 제한적인 수의 관중만 입장할 수 있는 상태로 진행되어 스포츠 산업 전반이 침체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그래도 저는 에이전트를 맡고 있는 선수들의 후원을 위해 저와 친분이 있는 업체들을 통해 후원이나 선수들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주선해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수년간 프로야구의 인기가 점점 떨어진데다가 올해는 워낙 강력한 코로나 바이러스의 충격으로 선수들에게 경기용품을 후원해주는 업체를 찾는 것도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아는 인맥을 통해 후원 여부를 문의하고, 자료들을 보내고 만나기도 했지만 누구도 쉽게 후원에 나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런 와중에 프로야구 정규 시즌이 끝나고 제가 에이전트를 맡고 있는 선수들 중 일부가 구단에서 방출되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선수들이 방출됐다는 기사를 보고 연락을 해보니 어떤 선수는 다른 구단에서 접촉을 해오기는 했는데 실제 현역으로 뛰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는 생각에 지도자 과정을 준비하기도 하고, 또 다른 선수는 아직 포기하지 않고 집에서라도 운동을 계속 하겠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제 마음 같아서는 방출된 선수들을 다른 구단에 다시 입단시켜주고 싶지만, 현재 각 구단들이 다들 보유하고 있던 선수들을 방출하고 있는 상황이라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저와 통화를 하면서 방출된 선수들은 애써 태연한 척 했겠지만 많이 주눅이 들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선수들이 희망을 갖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격려하면서 시간을 내서 같이 식사와 술 한잔 약속을 하는 정도였습니다.

코로나로 인한 고난은 모든 사람들에게 다가왔지만, 그 고통의 크기는 모두에게 동등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맡고 있는 선수들이 다시 한번 힘을 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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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 가득한 몽골여행 5

홉스골은 몽골사람들도 선망하는 여행지답게 곳곳에 즐길 거리가 많았습니다. 숙소에서 여독을 풀면서 휴식을 취한 우리 일행은 본격적으로 계획했던 액티비티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 첫번째는 홉스골 호수를 보트를 타고 즐긴 후 호수 한 가운데 있는 섬을 둘러보는 것이었습니다. 보트를 타러 선착장으로 가는 길에 보이던 홉스골 호수는 참 맑다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곳곳에 핀 들꽃들도 예뻤는데, 그 꽃들만큼이나 말똥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는 것도 재밌는 일이었습니다. 몽골사람들이 자랑스러워하는 징기스칸의 그림도 식당이나 보트 선착장, 시장 등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 일행은 다같이 선착장에서 보트를 빌려 바람을 가르면서 홉스골 호수를 내달렸습니다. 좁은 푸르공 차안에 갇혀 일주일 가까이 이동만 하다가 탁 트인 호수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고 있으니 답답했던 가슴이 다 풀리는 것 같았습니다. 보트는 얼마간 수면을 가르며 달리다가 섬에 다다랐는데, 섬에 올라 살펴본 경치는 예상했던 것보다도 매우 평화롭고 아름다웠습니다. 호숫가에 늘어선 나무와 초승달 모양의 호반까지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안식처 같은 곳이었습니다.

보트를 타고 섬을 구경한 후에는 다시 호숫가로 돌아와 숙소로 이동했는데, 가는 길에 작은 늪 같기도 하고 나무가 늘어서 있기도 한 작은 숲 같은 곳을 지났습니다. 지나가면서 보니 들판 한쪽에는 말들이 풀을 뜯고 있었는데, 몸집이 경마에 출전하는 말들과 달리 제주도에서 봤던 조랑말들처럼 좀 작고 아담했습니다. 말 옆에는 남자아이들이 말을 돌보고 있었는데, 우리 일행이 말들 가까이 가니 게르에 앉아 있던 남성이 나와 얘기를 하는데 알고보니 그 말들은 우리 같은 여행자들을 태우고 투어를 하는 말들이었습니다.

실제 살펴보니 말들이 귀엽고 작은 편이라 우리 일행은 말을 타도 별로 무섭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음날 말을 타고 뒷산을 올라가는 투어를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날은 보트를 타고 돌아다녔더니 다들 좀 피곤했는지 좀 쉬다가 저녁 무렵에는 팀을 짜서 숙소 한쪽에 있는 배구장에서 내기 배구를 해서 식사 당번을 정하는 등 여유로운 시간을 즐겼습니다.

다음날 드디어 몽골에 온 목적 중 하나인 말을 타게 되었습니다. 다들 말을 타는 것은 처음이라 말을 어떻게 다루는지도 알지 못했는데, 일단 앞에서 안내하는 분이 말이 어느 방향으로 갈지 지시하는 방법과 말이 발을 멈추게 하는 방법을 알려줬습니다. 이어서 가이드가 말을 타고 인도해면 저를 비롯해 우리 일행이 탄 말들이 그 말을 따라가는 식으로 30분 정도 평지에서 연습을 했습니다. 그리고 좀 익숙해진 후에는 약간 속도를 내서 뛰어보기도 했는데, 말들이 힘이 드는지 잘 뛰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좀 말타기에 익숙해지자 슬슬 산쪽을 향해 말들을 타고 줄지어 가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습니다. 놀라서 돌아보니 뒤에서 오던 말 한마리가 자기보다 서열이 낮은 말이 먼저 걸어가자 그 말을 물려다가 그 말에 타고 있던 우리 일행 중 1명의 다리를 물었던 것입니다. 다행히 청바지를 입고 있어서 별로 다치지는 않았는데 나중에 보니 말이 문 이빨 자국이 있고 주위가 새파랗게 멍이 들어 있었습니다. 여행에서 돌아간 후 2달 지나 결혼식을 할 예정이라 혹시라도 다리에 든 멍 때문에 웨딩 드레스 입는데 문제가 있을까바 걱정이 좀 됐습니다.

우리 일행들이 좀 놀란 것 같자 가이드가 일단 말에서 내려서 좀 안정을 취하자고 해서 다들 말에서 내려왔습니다. 생전 처음 말을 타고 자세를 잡는 것도 쉽지는 않았고, 말들이 말을 잘 듣는 것도 아니라서 다리에 힘을 주느라 저도 좀 힘들었습니다. 말에서 내린 저는 가이드에게 옆에 있는 게르 위에 있는 하얀 것이 뭔가 물어봤는데 알고보니 무릉 시장에서 봤던 말젓으로 만든 치즈 말린 것이었습니다. 제가 쉬고 있는 말들 가까이 가서 좀 친해지려고 쓰다듬어 주려는 순간 갑자기 쉭 하는 소리가 나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소리인가 하고살펴보니 말 중 한 마리가 물을 버리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일행들이 이걸 보고 다들 웃다보니 긴장했던 마음들이 좀 풀리는 것 같았습니다.

상황이 좀 진정된 후 다시 산을 향해 말을 타고 가는데, 원래 가이드에게 듣던 것과 달리 말들은 고삐를 놓아 주건 다리에 힘을 주건 상관없이 자기가 가고 싶은대로 걸어갔습니다. ㅎㅎ 평소에 잘 밥을 잘 못먹는 건지 계속 길을 벗어나서 풀을 뜯어 먹으려고 했고, 특히 꽃이 보이면 특식이라고 생각하는지 남김없이 뜯어 먹었습니다. 가이드 아저씨가 그런 말들을 힘들게 인솔해서 오솔길을 따라 산 위로 올라가는데, 말들이 각자 식사를 즐기면서 길을 가다보니 생각보다 가는 속도가 느렸습니다.

산을 오르는 것이다 보니 경사가 좀 있는 곳에서는 말이 헐떡이는 것을 몸 전체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말을 타보면 말과 혼연일체가 되고, 말을 아끼게 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아마 그런 느낌이었던 것 같습니다. 말을 타고 가면서 옆에 펼쳐지는 풍경들을 보고 있자니 평화롭기도 하고, 저멀리에는 푸르른 숲과 호수, 하늘의 멋진 대비가 눈길을 사로잡기도 했습니다.

가이드 아저씨는 계속되는 오르막을 오르느라 가쁜 숨을 내쉬는 말들도 쉬게 하고, 멋진 풍경을 여유있게 사진으로 남길 수 있도록 휴식시간을 가졌습니다. 이제는 다들 말에 적응을 했는지, 말에게 다리를 물린 일행도 편안하게 대화를 하면서 열심히 사진을 찍었습니다. 말을 나무에 묶고 쉬게 한 후 저는 좀 더 전망이 좋은 위쪽으로 걸어가서 홉스골 호수와 숲을 바라보면서 바쁘게 살아왔던 한국에서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산을 내려온 후 밤에는 우리가 머물던 숙소에서 캠프파이어 등 행사가 있어서 우리 일행 뿐만 아니라 다른 여행객들과 함께 어울려 함께 술을 마시고, 춤도 추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홉스골에서의 마지막 밤이 화려한 불길과 함께 지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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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 가득한 몽골여행 4

우리 일행은 테르힝차강노르에서 은하수의 밤을 보낸 후 고요한 아침의 여유를 즐기다가 다시 차를 타고 다음 목적지인 무릉으로 출발했습니다. 무릉으로 가는 길에는 맑은 물이 흐르는 작은 시내들이 이어지는 초원과 푸른 숲이 우거진 언덕이 연이어 있는 고원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시냇가에서 소들이 풀을 뜯고, 언덕 위로는 푸르른 하늘 사이로 구름이 훌러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몽골에서는 사진을 찍기만 하면 그림 엽서가 된다는 말이 거짓말이 아니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무릉은 우리의 최종 목적지인 홉스골에 도착하기 전에 있는데 몽골에서는 나름 번화한 도시여서 홉스골에서 식사를 해먹을 식재료들과 필요한 물품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필수품인 술을 살 수 있는 적당한 장소였습니다. 그래서 일행들과 함께 무릉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쇼핑도 하고, 양젖을 말려 만든 치즈 등 맛있어 보이는 간식들도 사먹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고기를 파는 시장 한 쪽에는 독특하게도 몽골 전통 그림도 걸려 있어서 한참 보다가 다른 일행을 잠시 잃어버리는 일도 있었는데, 다행히 무릉 시내에서는 스마트폰 데이터를 이용할 수 있어서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 다시 만날 수 있었습니다.

무릉에 도착해 하룻밤을 잔 후 마침내 우리 일행의 목적지인 홉스골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홉스골은 면적이 제주도보다 큰 호수로, 러시아의 바이칼 호수와 지하로 연결되어 있다는 말까지 나오는 곳입니다. 차를 달려 홉스골에 점점 다가가자 저 멀리 보이는 푸르른 호수와 주변의 숲이 왜 몽골 사람들에게 홉스골이 성스러운 곳이자 휴양지로 인기가 높은지 알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마침내 홉스골 호수에 도착해 둘러보니 선착장이 있고, 옆에 정박한 배로 호수 가운데를 건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또 선착장 인근의 작은 상점들에서는 몽골에서 나는 특산품으로 만든 악세사리등을 팔고 있었습니다. 저는 여행하면서 기념품으로 이런 물건들을 사오곤 하는데, 몽골 여행을 상기시켜줄 사슴뿔을 발견한 후 신이 나서 뽀송뽀송한 털이 나 있는 작은 사슴뿔 2개를 사왔습니다. 귀국해서 때가 잔뜩 낀 사슴뿔들을 샴푸로 빨었더니 뭉쳐 있던 털들이 부드럽고 윤기가 흐르는 모습으로 변했습니다.

홉스골에서는 한 숙소에 오래 머물기로 했는데, 우리가 예약한 숙소까지는 다시 호숫가를 따라 차로 한참을 가야 했습니다. 마침내 숙소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푸르공 기사님과 가이드와 아쉬운 작별 인사를 한 후 각자 배정받은 방에 짐을 풀었습니다. 잠시 방에서 휴식을 취한 후 우리는 홉스골에서 제대로 여행을 즐기기 위해 숙소 주변을 돌아다니며 탐색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우리 숙소 주변에는 우리가 원래 예약하려고 했었던 다른 숙소도 있었는데, 더 깔끔하고 조용해 보이긴 했지만 원래 예상했던 곳보다 숙박비가 비싸서 가성비를 고려하면 실제로 묵기로 한 숙소가 더 낫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렇게 홉스골 호숫가를 걸어다니며 상점, 음식점, 모터보트 투어 여행사, 승마장 등 필요한 주변 지리를 익힌 후 어두워진 후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홉스골에서의 첫날 밤은 호수에 비친 달과 함께 기울어 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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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 가득한 몽골여행 3

오르혼 계곡을 출발해 단어 그대로 길도 없는 광활한 초원을 푸르공 운전기사의 방향감각과 좌표에만 의지해 하루종일 달리니 마침내 노천온천이 있는 쳉헤르에 도착했습니다. 여행을 준비하면서부터 다들 했던 얘기가 일단 몽골에 가면 매일 씻고 샤워를 하는 것이 어렵다는 말이었습니다. 실제로 울란바토르를 출발한 후 샤워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고, 생수로 양치질과 고양이 세수를 하는 것이 다였습니다. 그런데 여행계획을 세우면서부터 쳉헤르에는 노천온천이 있어서 샤워도 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기에 다들 한낮에는 더위로 땀도 나고, 찝찝한 기분이기도 했기 때문에 쳉헤르에 얼른 가고 싶어했습니다.

운전기사가 약간 위치를 헷갈려 좀 헤매다가 오후 늦게 도착한 쳉헤르에는 게르들이 나란히 줄을 지어 서있었고, 게르에서 약간 떨어져 있는 먼 곳에서는 익히 들은대로 노천온천이 뜨거운 김을 토해내고 있었습니다. 자연 그대로인 노천온천에서 나온 뜨거운 열수가 내뿜는 연기와 게르 관리인이 게르 내부의 난로를 피워 나오는 연기가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숙박지 샤워시설과 온천욕장은 노천온천에서 열수를 끌어온 후 일정 온도까지 식혀 사용하고 있었는데, 저와 일행들은 오랜만에 따뜻한 온천수에 몸을 풀고, 며칠 감지 못해 떡진 머리도 감으면서 상쾌하게 기분전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일행들과 온천욕을 즐긴 후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뭐니뭐니 해도 가장 먼저 가보고 싶었던 곳은 역시 다시 말할 것도 없이 연기가 솟아나고 있는 노천온천의 수원지였습니다. 늪지 같은 물이 고인 곳들을 피해 펄쩍펄쩍 뛰어 연기가 곳는 곳으로 부지런히 가보니 역시나 약간 썩은 달걀냄새 같은 유황 냄새가 코를 찌르는 노천온천이 있었습니다. 몽골 사람들도 온천을 좋아하는지 몽골사람들도 많이 여행을 온 것 같아 보였습니다.

일행들과 다함께 온천욕까지 즐기면서 기분도 상쾌하고 더 친해져서인지, 쳉헤르에서의 밤은 다들 만취할 정도까지 술을 마신 후에야 마무리되었습니다. 저는 다음날 아침 다른 일행들이 실신해있는 동안 냄비와 달걀을 들고 노천온천 수원지에 갔습니다. 전날 밤 술을 마시면서 제가 터키 온천에서 달걀을 삶는 얘기를 했다가 아침식사 당번을 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온천수에 달걀을 넣고 약 10분 정도 기다리니 익은 것 같아서 시험삼아 하나 꺼낸 후 껍질을 깠더니… 마치 조미가 된 것처럼 약간 짭짤한 맛도 나면서 풍미가 있었습니다.

제 예상보다 더 잘 맛있게 조리가 되었기에 저는 신이 나서 익힌 달걀들을 들고 게르로 돌아왔습니다. 게르로 돌아오니, 어제 밤 치열했던 전장에서 전사했던 일행들 중 일부는 일어나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있고, 일부는 여전히 숙취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늘어져 있었습니다. 좀 정신을 차린 일행들과 함께 식사를 준비해서 아직도 비몽사몽인 사람들에게 밥을 먹인 후 짐을 정리해서 푸르공에 탔습니다. 저도 전날 밤에는 다른 날보다 좀 무리해서 달렸는지 다른 날보다 머리도 좀 아프고, 피곤하기도 했습니다.

다들 피곤해보였지만, 그래도 푸르공을 타고 초원을 달리면서 시원한 바람을 쐬니 다행히 좀 나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중간에 차를 세우고 초원을 보고 있으니 목축하는 소와 양들이 한가로이 풀을 뜨고 있는 모습에 마음이 상쾌해지고, 눈도 맑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한국에서 일을 하면서 이런저런 스트레스로 복잡했던 머리도 맑아져서 사람은 자연의 일부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말이 피부로 와 닿기도 했습니다.

이 날 저희 일행은 초원 한복판에서 분출했던 화산 분화구에 들러 테르힝차강노르라는 호수로 가는 일정이었습니다. 보통 산맥 속에 있는 화산들만 봐왔던 제게 초원 한 가운데 우뚝 솟아있는 허르허 터거라는 화산은 신기한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특히 화산 주변에 큰 숲이 있어서 그 풍경이 더욱 멋졌습니다. 몽골 사람들도 옛날부터 저와 같은 느낌을 받았는지, 화산을 오르는 길에는 신을 모시는 장소도 있었습니다. 또 등산 길에는 타조인 것도 같고 아니면 몽골에서 유명한 독수리인지 모를 새를 닮은 죽은 나무 줄기가 있어 한참 쳐다보기도 했습니다.

허르허 터거 화산 분화구를 본 후에는 다시 근처에 있는 테르힝차강노르로 향했습니다. 힘들게 도착한 호수에는 부드러운 바람에 잔잔한 물결이 일고 있어 평화로운 정취를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저녁 식사를 한 후 일행들과 술을 한잔 하다가 생리현상을 해결하려고 잠시 게르 밖으로 나왔는데, 순간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별들을 보고 잠시 넋을 잃고 말았습니다. 강원도에서 군복무를 하면서 보았던 별들보다도 훨씬 많은 별들 사이를 별똥별들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런 광경을 보고 유독 어렵게 몽골에 왔지만,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만 너무 어두운 곳이라 사진을 찍으려고 해도 제가 가진 휴대폰 사진기로는 제대로 그 모습을 담을 수 없었다는 점이 아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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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 사건 변호와 판결 경향

얼마 전 대법원 국선 사건으로 맡았던 준유사강간 사건이 있었는데 기록을 열람, 복사하기도 전에 피고인의 모친으로부터 잘 부탁한다는 전화가 왔었습니다. 복사한 사건 기록을 보다보니 20대의 대학생이 오랜 지인과 함께 술을 마신 후 술에 만취한 지인을 상대로 한 사건이었는데, 그 사건 이전까지만해도 모범적이고 바른 삶을 살아왔던 학생이어서 의아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제가 사건을 맡았던 시점은 대법원 상고심 단계라 이미 사실확정이나 법리 적용이 끝난 상태였고, 형사소송법이 정한 양형 부당을 이유로 한 상고 요건에도 해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피고인의 모친에게 그러한 사정을 설명하고, 대법원 판결이 선고되면 구치소에서 교도소로 이감될테니 피고인에게 미리 그러한 내용을 설명해두어 마음의 준비를 하도록 하는 것이 충격을 덜 받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안내했습니다. 만일 제가 피고인의 사건을 제1심이나 최소한 항소심에서부터 맡았더라면 법리적으로는 좀 다퉈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미 너무 늦은 상황이라 더 이상 손을 써볼 길이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성범죄 형사 사건의 경우 그 특성이 있어 사건을 진행하는데 어려운 부분들이 있는데, 제가 했었던 사건들 중 기억에 남는 사건들이 있습니다.

하나는 이른바 ‘기습추행’이라고 불리는 유형의 사건이었는데, 사실관계를 잘 살펴보면 실제로는 강제추행이 아니라 단순 폭행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사건으로, 제1심에서 유죄로 많은 액수의 벌금을 받아서 제가 항소심부터 수행했던 사건입니다. 사건을 수임하고 이러한 유형의 사건에 대한 논문들이나 외국법상 법리들을 정리한 후 사건 당시 피해자 이외 현장에 있었던 주변인들의 진술서와 증언을 근거로 강제추행 여부에 치열하게 다투면서 무죄를 주장했었습니다. 그런데 항소심에서 아쉽게도 무죄로 인정되지는 않았지만, 선고유예라는 좀 예외적인 형으로 감형이 되었습니다. 사실 저도 선고유예는 이론적으로는 알고 있어도, 실제 제가 맡았던 사건에서 선고유예를 받은 것은 처음이라 약간은 놀라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당시 재판부도 피고인이 진짜 강제추행을 한 것인지 확신이 들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1심 법원과 반대로 사실인정을 한 후 무죄를 선고할 만한 용기까지는 없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피고인은 선고유예형을 받아 일정 시간이 흐른 후 범죄경력이 소멸하게 되었고, 피고인이 이후 해외 입국비자를 발급받을 때 강제추행 등 성범죄 전력이 있으면 비자 발급이 거절되지만, 선고유예형이라는 이유로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어 큰 도움이 되었다고 고맙다는 인사를 듣기도 하였습니다.

또 다른 사건은 오랜시간 시험 준비를 하던 젊은 청년이 길 가던 피해자들을 따라간 후 주거에 침입하여 강제추행을 하였던 내용이었습니다. 피고인은 처음에는 자신의 범죄 행위가 얼마나 중한 것인지 잘 이해하지 못하면서 투정을 부리고, 불만을 터트리다가 나중에서야 정신을 차리고 실형만은 면했으면 하고 빌곤 했습니다. 저는 사건 수임 당시 뿐만 아니라 사건을 진행하면서 성폭력특별법 적용을 받는 중대한 사건이라 여러 피해자들 중 일부에게 사과의 말을 전하고, 합의를 하면서도 실형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피고인의 범행 당시 정황이 아주 질이 나쁜 것은 아니었던 탓인지, 몇 개월 동안 구치소에서 미결구금을 당하긴 했지만, 제1심 판결은 실형이 아닌 집행유예형이었습니다. 저는 판결 선고 당시 법정에 출석했었는데 집행유예를 받은 후 얼굴이 밝아진 피고인을 보고 있자니 기쁘기도 하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번에 이렇게 고생을 했으니 이제 정신차리고 이러한 범행을 다시 저지르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피고인의 경우는 자신이 강제추행한 직후 피해자를 쫓아가 사과를 하는 등 정신적 문제를 고려할 필요가 있었고, 죄질이 많이 나쁘지는 않은 등 참작할 여지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성폭력 사건의 경우 과거에는 너무 양형이 낮아 피해자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듣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실제 범행을 한 것인지 사실관계가 의문인 사건들도 피해자의 주장만으로 너무 쉽게 유죄로 인정을 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을 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비단 성폭력 사건만이 아니라 판결 일반에서도 피해자의 응보 심리 충족과 실체진실 발견이란 양 측면 사이에서 마치 시소처럼 특정 시점에는 하나의 측면이 강조되었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일부 부작용이 발견되면 다른 측면이 강조되어 장기적으로는 일정한 평형상태를 만드는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인간 대중은 신이나 성인이 아니다보니 항상 중용을 지키거나 모든 것을 고려해서 합리적이고, 공정한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피해자 보호 내지는 응보와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려는 절차 및 실체법적 보장이 상호 균형을 맞춰가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결국 불완전한 인간이 사건의 실체에 보다 가까이 접근하기 위해서는 적법한 절차를 통해 확보한 신뢰성있는 여러 자료들을 통해 사실관계를 확정하는 수밖에 없고, 이런 과정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피고인에 대한 비난가능성이 적법하게 긍정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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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 가득한 몽골여행 2

칭기즈칸 공항을 나오면서 베이징 호텔 룸메이트에게 숙소를 예약했는지 물어봤더니, 자신은 며칠간 예약을 해서 호텔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갈 예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제게도 예약을 안 했으면 같이 가자고 하길래 그럼 그렇게 하자고 말하고 공항 보안검색대를 지나 나오는 순간, 저 앞에 기존에 제가 전날 밤 예약을 했던 숙소 이름이 든 피켓을 든 가이드가 보였습니다. 저는 얼른 그 가이드에게 다가가서 혹시 어제 밤에 숙소 예약을 했다가 오늘 아침 푸르공을 타고 출발한 한국인 여행객들을 아느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한국인 여행객들이 종종 있는데, 어제 한국인 중 도착하지 않은 여행객이 있었다고 말하길래 그게 바로 저라고 말했습니다. 말이 좀 통하는 것 같아 그럼 다른 일행들은 이미 출발한 것인지 물어보니 자신은 그런 것은 잘 모르고, 정확한 것은 숙소에 가서 확인을 해봐야 알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베이징 호텔 룸메이트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몽골 가이드를 따라서 차를 타고 숙소로 향했습니다.

숙소에 가면서 가이드와 얘기를 해보니 일정대로라면 일행들은 이미 울란바토르에서 최소 400km 이상 떨어진 곳으로 간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이드에게 사정을 설명한 후 내가 내일 먼저 출발한 일행들을 쫓아가야 하는데, 당신이 나를 데려다 줄 수 있겠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가이드는 마침 내가 내일 비번이긴 한데, 나를 데려다 주려면 차가 필요하기 때문에 사무실에서 차를 빌려주면 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전 다행이라는 생각에 그럼 숙소 사무실에 가서 사장님과 한번 얘기를 해보자고 했습니다.

숙소에 도착해 사무실을 찾아가니 투어 담당자가 있길래 제가 처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내일 먼저 출발한 일행을 쫓아가기 위해 차를 빌려 가이드와 함께 갈 수 있는지 물어보니, 차량 렌트 비용과 유류비를 지급하면 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이드에게 일당을 포함한 총 비용을 알려달라고 하니, 300 US 달러라는 것이었습니다. 원래 6박 7일 동안 투어를 하는 비용 중 제가 부담할 비용이 270 US 달러였는데, 반나절 동안 그보다 더 많은 비용을 주고 일행을 찾아가야 한다니 좀 억울한 마음도 들었지만 그래도 일행에 대한 신의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눈을 딱 감고 그렇게 하자고 했습니다.

가이드는 예상 못한 추가 수입이 생겨 기분이 좋아졌는지, 저에게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하니 자신의 집에서 자라고 하면서 별도 숙박비는 받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일단 가이드의 집에 도착한 후 일행들이 있는 단체 카톡방에 비행기가 2번 회항을 했고, 이제야 겨우 울란바토르에 도착했다는 글을 올렸습니다. 처음에는 아무도 답변이 없다가 약간 시간이 지나자 자신들은 이미 출발을 했고, 오늘 엘센타사르하이에서 낙타를 탔다면서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반가운 마음에 연락이 되어서 다행이고, 내일 차를 수배해 일행들을 쫓아갈 예정인데 어디서 만날 수 있을지를 확인했습니다.

그랬더니 일행들은 다음날 옛 몽골제국의 수도였던 하르호린(카라코룸)으로 가는데 오후 2시 정도까지는 그 곳에 있을테니 그때까지 오면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저는 일단 최선을 다해 그 시간까지 가겠다고 글을 올린 후 불안한 마음을 누르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가이드와 함께 서둘러 차를 타고 몽골의 유일한 고속도로를 따라 울란바토르에서 하르호린까지 길을 떠났습니다. 고속도로라고는 하지만 왕복 2차선에 계절간 온도차와 일교차가 큰 탓인지 곳곳에 포트홀이 많이 도로 사정이 여의치 않았습니다. 그래도 가이드를 재촉해 아침 7시 좀 넘어서부터 계속 차를 달려 2시 조금 넘어 겨우 하르호린에 도착했습니다.

저는 일행들이 기다리기로 약속한 2시가 넘어서 다시 일행을 놓치는 것이 아닌가 너무 걱정이 되었는데, 하르호린에 도착해 주차장에서 일행을 찾다보니 저 멀리서 낯익은 얼굴들이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뛸 듯이 기뻐서 일행들에게 다가가니, 다행히 일행들도 원래 일정보다 좀 늦어져서 하르호린에 천천히 도착해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일행을 찾았다는 기쁨에 얼른 가이드에게 돌아와 드디어 일행을 찾았다고 고맙다는 인사를 한 후 비용을 지불했습니다. 그리고 차에 실었던 짐을 챙겨 일행이 있는 푸르공으로 갔습니다.

구소련 시대 소련군에서 사용하던 지프의 일종인 푸르공

푸르공은 제가 원래 생각했던 것보다는 공간이 넓은 편이었는데, 6명이 뒷좌석에서 앉아 가는 것도 나름 재미가 있었습니다. 일단 푸르공에 타서 일행들과 인사를 한 후 제가 어떻게 거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얘기를 해줬더니 다들 놀라면서 비행기가 2번 회항했다는 얘기는 처음 들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저도 그런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으니 놀랄 만한 일이긴 합니다. 그런데 저도 일행으로부터 얘기를 듣고 약간 당황한 것이 있었는데, 전날 일행들이 울란바토르 공항에서 저를 기다릴 때 제가 탄 비행기가 아예 베이징 공항에서 출발을 하지 않았다고 푸르공을 함께 타고 여행하던 투어 가이드가 설명을 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투어 가이드의 얘기를 듣고 일행들은 제가 왜 오지도 않을 거면서 공항에서 기다리게 했냐고 기분이 상해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엘센타사르하이에 도착해 숙박을 하는데 제가 단체 카톡방에 글을 올리니 진짜 울란바토르에 온 것이 맞는지 의심까지 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얘기를 듣고 투어 가이드가 뭔가 잘못 들은 것 같다고 말한 후, 속으로는 혹시 안 왔으면 일행들에게 배신자 내지는 거짓말쟁이가 될 뻔 했다는 생각에 힘들고 비용도 많이 들었지만 그래도 일행들을 쫓아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마침내 일행들을 찾아 함께 하르호린을 출발해 다음 목적지인 오르혼 계곡에 도착했습니다. 오르혼 계곡은 몽골에서도 물과 나무가 풍부한 곳이라 몽골 사람들에게 신성한 곳으로 여겨지는 곳이었습니다. 오르혼 계곡으로 가는 동안 일행들과 얘기를 하면서 더 친밀해진 저는 일행들과 함께 오르혼 계곡 곳곳을 돌아다녔는데, 편안해진 마음 탓인지 풍경들이 너무 멋져 사진을 많이 남겼습니다.

저는 오르혼 계곡 옆 숙소에 도착해 처음으로 게르에서 짐을 풀게 되었습니다. 게르는 작으면 3인이, 큰 경우는 6인이 같이 사용했는데, 남녀 따로 구분을 하지는 않고 각자 침대를 만들어 자는 것이 유스호스텔의 도미토리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게르에서 간단히 저녁식사를 하고, 물티슈로 세수를 한 후 주변을 돌아보니 보이는 곳마다 말 그대로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제가 지각을 하면서 투어 일정이 틀어지고, 투어 가이드가 전달한 잘못된 정보로 인해 약간은 서먹했던 일행들과의 첫 날 밤은 게르에서 다함께 술을 진하게 한 잔 하면서 다 풀렸습니다. 출발하기 전에도 이미 만난 적이 있지만, 다들 여행을 많이 다녀본 사람들이라 성격도 좋고 술도 잘 마시는 편이라 여행이 즐거울 것 같다는 은근한 기대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몽골 대자연 속에서 밤을 보낸 다음날 아침에는 푸른 하늘 아래 가축들을 방목하는 평원을 돌아다녔습니다.

오르혼 계곡은 몽골 전체에서도 드물게 수량이 풍부한 강이 흐르는 곳이라는데, 그 말대로 강을 따라 흐르는 물이 폭포가 되어 떨어지면서 무지개를 만드는 모습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습니다. 저는 너무나 평온하면서도 아름다운 강변과 계곡의 모습에 스마트폰으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오르혼 계곡이 신성한 곳이라는 설명은 투어 가이드로부터 들은 적이 있는데, 실제 계곡을 돌아다니다 보니 우리의 제사장 같은 샤먼이 성소 같은 곳에서 살고 있는 것을 보기도 했습니다. 성소에는 하얀 돌들이 놓여 있었는데, 마치 하얀 돌들이 몽골 지도를 그려놓은 것처럼 놓여 있어서 더 신성한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오르혼 계곡에서 상쾌한 아침을 맞고, 아침식사를 한 우리 일행은 다시 짐을 챙겨 푸르공에 올라타 노천 온천으로 유명한 쳉헤르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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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 가득한 몽골여행 1

몽골은 여행 매니아들 사이에서 비록 남미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다들 한 번은 가보고 싶어하는 여행지입니다. 넓은 국토, 여행할 수 있는 기간 제한, 혼자 여행하기가 어렵고 보통 4인 이상 팀으로 푸르공이라는 구소련제 지프와 운전기사 및 가이드까지 함께 구해서 여행을 가야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여행을 하는 도중에는 물로 씻기도 어렵고, 좁은 차안에서 최소한 일주일 이상을 함께 생활해야 하기 때문에 성격이 잘 맞지 않으면 여행이 아니라 고역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연수원에 있을 때부터 몽골여행을 한 번 가고 싶어서 몽골여행 동행자를 여행 카페에서 알아보고 있었는데, 마침 2015년 봄부터 동행자를 구하는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계획한 몽골여행은 최소한 열흘 이상이었기 때문에 여유있게 여행을 할 동행자들이 필요했는데 마침 2주 가까이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동행자들이 글을 올린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해당 글에 댓글을 달고 기다렸더니 몽골여행에 합류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추가로 댓글을 달아서 드디어 몽골여행 팀을 꾸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행 출발 전 오프라인으로 2회 정도 만나 여행 준비를 분담하고, 미리 숙소, 자동차 등 예약과 계약금 송금을 제가 맡게 되었습니다. 몽골 숙소와 여행사는 해외계좌 이체가 아니라 웨스턴 유니언을 통해 직접 송금을 해달라고 요청해서 처음으로 웨스턴 유니언을 이용해보기도 했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직업도 제각각인 몽골여행을 가고 싶은 사람들이 모이다보니 각자 일정도 다르고, 몽골에 도착할 수 있는 시간도 달랐습니다. 그래서 일단 각자 일정에 맞춰 몽골 울란바토르 숙소에 도착해 특정 시각에 자동차를 타고 여행을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재판 일정과 법인 설립 일정이 있어 여행 출발 전날까지 몽골 숙소에 도착해 다른 일행들과 몽골 울란바토르 구경을 하고 출발하기로 계획을 했습니다. 마침 중국 베이징을 거쳐 몽골로 가는 중국 K항공사가 있길래 베이징에 들러 하루 정도 베이징을 둘러보고 유명한 베이징덕도 먹어볼 기회라는 생각에 얼른 항공권을 끊었습니다. 그런데 이 선택이 이후 제게 생각지도 못한 고난을 가져올 것이라고는 당시 전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이리저리 바쁜 업무를 처리하면서도 몽골여행에 대한 기대로 밤잠을 설치던 시간이 흘러 마침내 항공기를 타고 출발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할 당시 비가 많이 오고 바람이 세게 불어 좀 걱정이 되긴 했지만 하늘로 날아오른 항공기는 별 문제없이 베이징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저는 베이징 공항에서 경유 수속을 밟은 후 시간이 좀 남아 라운지에서 식사를 하면서 배터리 충전을 하고, 책을 읽는 등 여유를 즐기다가 베이징에서 몽골로 출발하는 항공기를 타러 탑승구로 갔습니다.

베이징에서 울란바토르까지는 국제선이긴 하지만 거리가 짧아서인지 탑승구에서 기다리는 이동용 차량을 타고 도착한 곳에는 작은 항공기가 한 대 서 있었습니다. 항공기를 보고 중국과 몽골이 바로 옆 나라인데도 교류가 그리 많지 않은가 보다는 생각을 하면서 탔는데, 막상 항공기에는 서양인들이 상당수라 저처럼 몽골로 여행을 가는 여행객들이 대부분으로 보였습니다. 비행시간이 편도로 2시간 남짓이어서 몽골에 도착하면 숙소에서 마중나올 사람과 울란바토르의 명소에 대해 찾아보니 어느덧 울란바토르 칭기즈찬 공항이 보였습니다.

제가 탄 항공기가 서서히 고도를 낮추길래 이제 착륙을 하려나보다 생각을 하는데, 이상하게 활주로 가까이 갔다가 다시 고도를 높이는 것이었습니다. 이후 기장의 안내 방송이 나와서 울란바토르 공항의 기상 상태가 좋지 않아 착륙이 지연되고 있다면서 안전벨트를 잘 매고 대기하라고 하였습니다. 이윽고 항공기가 울란바토르 공항을 중심으로 30분 정도 4, 5바퀴 선회를 하더니 갑자기 울란바토르를 뒤로 하고 고도를 높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무슨 일인가 싶어서 어리둥절해 있는데, 잠시 후 안내 방송이 나오길 기상 상황이 호전되지를 않아서 착륙이 어렵기에 일단 베이징 공항으로 회항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원래 도착하는 날 저녁에 일행들을 만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회항을 하게 되면 일행들에게 어떻게 연락을 해야 하나 하는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베이징으로 돌아가면 공항이나 숙소에서 인터넷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후 연락을 하면 될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바람이 세기는 했지만 큰 문제없이 공항에 도착해서 공항에서 임시 입국증을 발급받아 항공사에서 배정해 준 공항 인근의 호텔로 이동을 했습니다. 항공사에서는 다음날 새벽에 다시 몽골로 가는 일정이 예약되었다고 안내를 해줘서 안심이 되었습니다.

저는 독일에서 온 여행객과 호텔방을 같이 쓰게 되었는데, 배도 고프고 베이징에서 어차피 하루 묵게 된 김에 근처 식당에 가서 훠궈를 먹기로 했습니다. 함께 간 독일인을 고려해 홍탕이 아닌 덜 매운 백탕을 선택했고, 청경채 볶음을 함께 먹었는데 생각보다 맵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예상치 않게 포식을 하고, 호텔로 돌아와 몽골에 이미 도착해 있던 일행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제가 단체 카톡방에서 기상 문제로 회항을 해서 베이징으로 돌아왔다고 하니 다음날 한국에서 몽골로 가는 일행들은 자신의 비행기도 연착할까 걱정하고, 이미 몽골에 있던 일행들은 제가 다음날 오후에 도착하는 것을 고려해 일정을 변경해 제가 공항에 도착하는 시간에 공항에 도착해서 저를 태워서 여행 일정을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 룸메이트와 함께 항공사가 제공한 셔틀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이동했습니다. 공항에서 수속을 하고 항공기를 타고 보니, 제 독일인 룸메이트 뿐만 아니라 상당수가 어제 항공기에 타고 있었던 승객들이라 반갑기도 했습니다. 다시 제가 탄 비행기가 이륙을 하고 시간이 흘러 울란바토르 칭기즈칸 공항이 보이자 이번에는 착륙을 하겠지 하면서 다소 숨을 죽이고 착륙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제가 탄 항공기 전에 다른 항공기가 공항에 착륙하는 것이 보여서 안심이 되기도 했습니다. 마침내 항공기가 머리를 숙여 하강하면서 칭기즈칸 공항 활주로를 향해 내려가 2, 3미터 고도에 다다르고 착륙할 것 같았는데, 웬일인지 갑자기 다시 고도를 높이기 시작했습니다.

상승한 항공기가 공항을 한 바퀴 도는가 싶더니 갑자기 다시 고도를 높여 왔던 길로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서 일어나 승무원에게 가서 왜 돌아가는 거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기상 상황이 안 좋아서 다시 돌아간다고 대답을 하길래, 다른 항공기들은 착륙을 하고 있는데 왜 이 항공기만 착륙을 못 하는 거냐고 물었습니다. 승무원은 제 질문에는 답을 하지 못하면서 계속 기상 상황이 안 좋아서 착륙을 하지 못한다는 얘기만 반복했습니다. 이에 제가 어제 비행기가 회항을 해서 지금 일행이 공항에 와서 나를 태워가려고 기다리고 있다고 항의를 했더니 여전히 기상 얘기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승무원에게 항의를 한 후 자리에 돌아와 앉았는데, 잠시 후 기장의 안내 방송이 나왔습니다. 비바람이 거세서 안전을 위해 다시 베이징 공항으로 회항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안내방송이 끝나자 항공기 안에서는 탄식 소리와 항의하는 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하지만 기장이 회항을 한다는데 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당시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을 일행에게 너무 미안했고, 일행이 울란바토르를 떠나면 몽골 대평원에서는 전화나 인터넷도 잘 안 되는데 어떻게 연락을 해야 할지 머리를 싸매야 했습니다.

베이징 공항으로 돌아온 후 항공사에서는 다음 비행시간이 언제 확정될지 모르니 공항에서 너무 멀리 가지 말고 대기하라고 공지를 했는데, 일부 승객들은 항공기로 가기 어려우면 기차나 자동차를 이용해 몽골에 가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저 역시 그 얘기를 듣고 정보를 찾아 보니 기차는 이미 오전에 출발을 해서 탈 수가 없었고, 자동차는 국경을 넘어 도착하는데 16시간 이상이 걸린다기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 룸메이트를 비롯한 일부 승객들은 매해 여름마다 몽골에서 열리는 승마 마라톤 경기에 참여할 목적으로 가는 것이라 마음이 더 급한 것 같았습니다.

저는 일단 일행에게 연락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공항 라운지에 가서 와이파이로 카톡방에 비행기가 다시 회항을 했다는 황당한 사정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이미 일행들은 울란바토르를 벗어났는지 아무도 읽는 사람이 없어 차라리 그냥 귀국을 할까 하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여행 계획을 다함께 짜면서 서로 믿고 준비를 했는데, 이제 제가 가지 않으면 그런 신뢰를 저버리는 셈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고, 또 만일 제가 가지 않으면 다른 일행들이 여행경비까지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라 어찌 되었든 몽골로 가서 일행들을 찾아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조바심을 낸다고 갑자기 해결할 방법이 생기는 것도 아니라 일단 라운지에서 식사를 하고, 휴대전화 배터리를 충전하면서 항공사에서 다시 출발할 시간을 공지하길 기다렸습니다.

몇 시간 후 항공사에서 다시 출발한다는 공지를 하기에 공항에서 대기하던 승객들이 다들 모여들었습니다. 저는 기상 상황도 문제지만 비행기가 너무 작고 낡아서 다른 항공기들은 착륙을 하는데도 우리만 다시 회항한 것이 아닌가 해서 이번에 갈 때는 더 큰 다른 항공기를 타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공항 게이트에서 셔틀을 타고 비행기에 도착하니 또 같은 비행기여서 3번째 회항을 하면 어쩌나 하고 걱정이 많이 되었습니다. 일단 항공기가 베이징 공항을 떠난 후 항공기 내부를 봤더니 거의 2/3 이상의 승객들이 이미 같은 항공기를 타고 울란바토르에 갔다가 함께 회항한 승객들이라 얼굴들이 눈에 익었습니다.

드디어 울란바토르 칭기즈칸 공항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자, 저를 포함한 승객들의 얼굴에는 긴장하는 기색이 완연했습니다. 기장의 안내 방송과 함께 비행기가 하강을 시작하자 입 안의 침이 마르는 느낌까지 들었습니다. 활주로가 보이고 항공기의 바퀴가 내려간 후 10미터, 5미터, 2미터 지상을 향해 항공기가 내려가다가 마침내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바퀴가 활주로에 닿았습니다. 이어서 항공기의 속도가 줄어들자, 항공기 내부는 박수를 치고 기쁨에 차 환호성을 지르는 승객들의 목소리로 가득 찼습니다. 이틀에 걸쳐 2번이나 회항한 끝에 마침내 울란바토르 칭기즈칸 공항에 도착하고 보니 저도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이제는 먼저 투어를 출발한 것으로 보이는 일행들을 어떻게 찾느냐 하는 막막한 과제가 저에게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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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의 휴양지, 인도네시아 발리 여행 2

전날 래프팅과 시내 관광으로 좀 피곤했는지, 다음날에는 가족들이 다들 편히 쉬기로 했습니다. 저도 오전에는 정원 한 구석 조용한 곳에서 책을 읽었는데, 점심때가 되니 점점 더워졌습니다. 그래서 객실로 돌아와 수영복을 챙겨들고 리조트의 야외 수영장으로 갔습니다. 야외 수영장에서는 바다가 잘 보였는데 수영장에 들어가서 바다에서 파도가 치고, 멀리 구름이 떠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 것 같았습니다.

수영장에서 나와 샤워를 한 후 객실로 가는 길에 보니 도마뱀 한 마리가 보행로 아래 물가에서 햇볕을 쬐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며칠 전에 봤던 도마뱀인가 해서 잠시 도마뱀을 보고 있는데, 슬슬 물속으로 들어가 헤엄을 치는 것이었습니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도마뱀이 기둥에 앉아 있는 새 한 마리 쪽으로 가는 것인가 싶었는데, 새도 같은 생각을 한 것인지 다른 곳을 보고 있다가 도마뱀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휴가를 왔지만, 여기 사는 새와 도마뱀에게는 순간순간 생존의 시간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렇게 가족들이 각자 여유있는 시간을 보낸 후 저녁에는 미리 예약을 한 리조트 내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음식이 전반적으로 좋긴 했는데,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이 태국의 유명한 게요리인 뿌빳뽕커리였습니다. 게와 커리로 만드는 이 음식은 보통 게살 뿐만 아니라 게 껍질 자체도 다 함께 씹어 먹습니다. 그래서 이 요리에 사용하는 게는 원래 껍질이 부드러운 소프트쉘 게를 사용해야 하는데,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레스토랑에서는 껍질이 딱딱한 일반 게를 사용한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래도 좀 씹어먹으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치아가 아프고 나중이 되니 잘못하면 치아가 다 부러질 거 같아서 결국 먹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왜 그랬는지 지금도 잘 이해가 가질 않는데, 막상 그 당시를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기도 합니다. 다들 뭔가 이상하다고 하면서도 어떻게든 열심히 그 게껍질을 붙들고 먹는 방법을 찾아보려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어렵게 식사를 마치고 나오다 보니 리조트 공연팀에서 공연을 한다고 의상을 입고 준비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가족들과 함께 잠시 산책를 하고 공연을 보러 가기로 했습니다. 공연은 횃불을 든 공연자가 횃불을 돌리면서 무대 주변을 도는 것으로 시작했고, 이후 입으로 불이 뿜거나 불이 붙은 후프 안을 통과하는 등 서커스와 비슷한 장면이 연출되었습니다. 이후에는 전통 의상을 입은 공연자들이 춤을 추기도 하고 노래도 부르면서 발리의 전통 문화를 보여줬습니다. 어두운 곳에서 1시간 정도 공연을 본 후 다들 피곤했는지 다들 일찍 객실로 돌아가서 발리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습니다.

발리에서 보낸 마지막 날이었던 다음날 오전은 날씨가 좋아 가족들이 모두 바다가 보이는 자리에 모여 앉아 얘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잠시 가족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 청솔모 한 마리가 테이블 위에 놓인 음식을 노리고 다가왔습니다. 코를 킁킁대면서 먹을 것을 찾는 모습이 우스워 지켜보고 있던 가족들이 함께 웃었습니다.

발리에서는 하얀 꽃잎에 노란 술이 보이는 꽃들이 달린 나무가 많았는데, 땅에 딸어진 꽃향을 맡아보면 달콤하면서도 부드럽고 은은한 향이 너무 매력적이었습니다. 그래서 꽃의 이름을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프란지파니’라는 꽃이었는데, 제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저는 길을 가다가 떨어진 프란지파니 꽃잎을 몇개 주워서 향을 맡아 보기도 하다가 기념품 가게에서 프란지파니 오일이 있길래 하나 골랐는데 프란지파니 오일은 인도네시아에서도 귀한지 생각보다 가격이 비쌌습니다. 그래도 안 샀다가 나중에 후회할까봐 사가지고 귀국해서 디퓨저로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마지막 날은 리조트에서 마시고 싶은 음료수들과 간식들을 챙겨 먹으면서 리조트 주변을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이번 여행은 부모님도 계시고, 업무로 지친 몸을 쉬고 싶었기에 휴식을 취하면서 편안한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습니다. 실제로 리조트 내에서 주로 시간을 많이 보내고, 그 동안 읽지 못한 책을 읽으면서 따로 계획을 하지 않고 지내는 것도 좋았습니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이런 방식으로 휴가를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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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홍보업체 상가임대차 분쟁 해결

얼마 전에는 우연찮게 온라인 홍보업체의 상가임대차 분쟁에 대해 자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 지인의 모임에서 인사를 했던 온라인 홍보업체 대표님이 몇 개월 후에 홍보를 위해 임차한 점포의 사용에 문제가 생겨 제게 연락을 했던 겁니다. 중국의 온라인 유명인사들인 이른바 ‘왕홍’을 활용해 화장품을 비롯한 면세품 등 홍보를 하고 판매를 하는 업체를 운영하는 분이었습니다.

국내의 많은 업체들의 경우가 그렇지만 이 업체의 경우도 상가임대차계약을 할 당시 계약서를 제대로 작성하지 않았습니다. 기존 임대차계약서를 조악하게 수정해 작성한 임대차계약서의 내용을 보니 중요한 계약조항이 누락되거나 해당 계약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조항들이 들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더욱 문제인 것은 보증금 액수와 지급시기가 불분명한데다가 매출액의 일부를 월세인 차임으로 지급하기로 하고도 그 비율의 산정 기준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임대인과 분쟁이 생겨 임대인이 비품들과 가구들을 모두 점포 한 구석에 모아두고, 보안요원들은 업체 대표와 직원들의 점포 출입을 막기에 이르렀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악화되자 업체 대표님이 제게 문제 해결을 요청하셨던 것입니다. 저는 연락을 받고 먼저 간단하게 조언을 한 후 임대인과 유선통화와 문자메시지로 합의를 시도했는데, 임대인이 생각보다 완고한 자세로 나와서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처럼 보였습니다.

결국 대표님이 제 사무실을 방문해 정식으로 상담을 받고, 내용증명을 보내 문제 해결을 시도하게 되었습니다. 임대인은 내용증명 내용에 대해서 반박을 하기는 했지만, 업체 대표님이 직접 찾아가자 서로 다른 해석을 해서 문제가 발생한 계약조건을 명확하게 수정하기로 합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저는 기존 임대차계약서의 내용을 수정 및 보완해서 전달했고, 마침내 수정된 내용으로 계약이 변경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임대차계약을 해지하고 보증금을 반환받고자 했던 업체 대표님도 예상 외로 큰 문제없이 분쟁이 잘 마무리되자 한 숨 돌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대표님이 고맙다면서 제게 저녁식사를 한번 사겠다고 했는데, 코로나 확산 탓인지 아직은 연락이 오지 않고 있습니다. 이 업체의 분쟁 역시 사전인 계약 당시 계약서를 제대로 작성했다면 별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었는데, 하마터면 많은 비용, 시간 및 노력을 들여 사후적인 문제해결책인 소송을 택해야 할 뻔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계약을 하더라도 미리 계약서를 잘 작성해두면 추후 법적 분쟁이 발생하는 비율을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드는 비용이나 노력은 분쟁이 생긴 후 해결하기 위해 드는 그것에 비하면 매우 작은 것이라 할 것입니다. 사업을 하면서 법적 분쟁이 생기는 것을 피할 수는 없지만, 그 비율을 줄일 수는 있습니다. 싸우지 않고 이겨야 상지상(上之上)이라 손자병법의 가르침처럼 미리 계약서를 잘 작성해두는 것이 싸우지 않고 이기는 길이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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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철, 변호사로 의미를 남기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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