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방스에서 인생의 새로운 화살표를 그리다 4

긴 시간을 달려 마침내 영화화되기도 한 소설 향수의 배경인 그라스에 힘들게 도착했습니다. 그라스는 언덕을 따라 구불구불한 길이 아래로 이어져 있었는데, 아내가 가고 싶어 하는 식당 앞으로 갔더니 일방통행 도로였습니다. 천천히 진입을 했는데, 갑자기 앞에 서 있던 경찰관들이 손을 흔들면서 차를 세우더니 뒤로 돌아가라고 손짓을 했습니다. 알고 봤더니 내비게이션에 표시된 것과 달리 보행자 전용 도로여서 차가 들어갈 수가 없었던 것이라 다시 아래로 차를 몰아 공영주차장에 주차했습니다.

언덕길을 올라 원래 가려고 했던 식당에 도착하니 시간이 많이 지나서인지 속이 출출했습니다. 식당에 들어가니 전체적으로 깔끔한 인테리어에 밝고 선명한 식물 도안으로 벽이 장식되어 있어서 인상적이었습니다. 음식 맛도 좋고, 식당 여사장님도 친절해서 즐겁게 식사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식사 후 옆에 있는 수제 사탕 가게와 향수 가게에 들러 아내의 조카들에게 줄 막대 사탕과 저희 누나에게 줄 선물을 샀습니다. 향수 가게는 그라스에서 유명한 프라고나르 향수 회사에서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바로 옆에는 프라고나르 향수 박물관도 함께 있었습니다. 저희 부부는 내친 김에 향수의 역사도 한번 보고 가자는데 의견이 일치해서 박물관에 들어갔는데, 고대부터 현대까지 향수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병에 담겼는지를 볼 수 있었습니다. 전시된 내용 중 아기자기한 약병들이 제일 마음에 들었습니다.

프라고나르 박물관 아래에도 향수 상점이 있었는데, 상품도 다양했지만 그 포장지의 문양과 색감이 참 화려하고 예뻐서 사진을 한장 남겼습니다.

이제 그라스를 떠나 숙소가 있는 앙티브로 향했습니다. 코트다쥐르 해변에 위치한 앙티브는 프랑스에서 휴양도시로 유명한데 주변에 있는 니스와 다른 도시들을 방문하기 좋았습니다. 앙티브에 도착해 숙소에 짐을 푼 후 저녁 식사를 하러 밖으로 나갔습니다. 아내가 가고 싶어 했던 압생트 바를 찾아 30분 가까이 밤거리를 걸어가면서 거리의 많은 식당들과 술집들이 문을 닫을 것을 보고 혹시 코로나의 영향으로 여기도 문을 닫은 것은 아닐까 약간 불안했습니다.

안타깝게도 구글지도를 보고 찾아간 압생트 바는 문을 닫은 상태였습니다. 고흐가 즐겨 마시던 압생트를 파는 곳인데 문 앞에 아무런 공지는 없었지만 코로나로 인해 문을 닫은 것 같았고, 아내와 기념으로 사진만 찍었습니다. 다음날 낮에 다른 곳을 가다가 문을 연 것을 보고 다시 찾은 압생트 바는 이제 술을 판매만 하고, 마실 수는 없는 곳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가게 사장님에게 들었습니다. 그래도 기념으로 녹색 악마의 술이라고 불렸던 압생트 미니 사이즈를 보니 귀여워서 하나 사들고 나왔습니다.

압생트 바에서 식사를 할 수 없어 옆에 있는 다른 음식점에서 식사를 했는데, 분위기나 맛이 그리 나쁘지 않았습니다. 지중해 연안이라 그런지 신선해보이는 채소와 해산물을 이용한 요리들이 잘 나왔습니다. 프랑스이니 당연히 와인도 한잔 곁들였습니다. 식사를 한 후에는 숙소로 돌아가 라운지 바에서 술을 한잔 주문했는데, 칵테일에 섞어 마시는 주스 종류를 물에 섞어 준 것이라 나중에 알고 나서 아내와 한참 웃었습니다.

다음날은 30분 정도 차를 몰고 가서 맑은 날씨의 니스를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군제대 후 유럽여행을 했었는데, 당시 파리를 떠나 야간기차를 타고 이른 아침 니스에 도착했었습니다. 마트에서 맛있는 천도복숭아를 사서 하나 먹은 다음 너무 졸려서 니스 해변가에 누워 2시간 정도 잠을 청했다가 다리가 화상을 입은 것처럼 붉게 익었습니다. 니스 바닷가에서 푸른 바닷물과 빛나는 모래를 보니 젊은 시절의 서툴었던 추억들이 떠올랐습니다.

해변을 본 후 우리는 니스 해변가에 있는 식당을 찾아 허기진 배를 채웠습니다. 식당 이름은 프랜친이었는데, 아내가 찾은 식당으로 랍스터, 뇨끼, 달팽이 요리가 유명했습니다. 저나 아내나 제대로 된 에스카르고 요리를 먹어 본 적이 없어서 이번 점심에는 에스카르고를 위주로 먹어 봤습니다. 시원한 레모네이드 한잔을 마신 후 다른 요리들을 함께 즐긴 후 기대했던 대로 맛이 좋아서 서로 나중에 다시 오자고 말하면서 식당을 나섰습니다.

식사 후에는 샤갈 미술관으로 갔는데, 주차를 하느라 좀 고생을 했습니다. 다행히 미술관 뒤쪽에 차를 댄 후 안으로 들어가 작품들을 살펴봤더니 노년의 샤갈이 활동했던 곳이라 그런지 우리가 평소에 알던 작품들보다는 종교적인 색채가 강한 작품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아내는 천주교 신자인데 종교와 관련된 주제의 작품들을 보고 더 감동을 받은 것 같았습니다.

샤갈 미술관이 문을 닫을 시간이 되어 서둘러 다음 목적지인 에즈로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해변을 따라 가는 길이 생각보다 좁고 구불구불해서 예상보다 늦게 에즈에 도착했고, 가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다보니 계단을 올라 에즈 가장 높은 곳에서 주변 경치를 볼 수 있는 식물원이 이미 문을 닫은 후였습니다. 아쉽지만 식물원 앞에서 사진 한장을 찍은 후 계단을 다시 내려와 앙티브로 돌아왔습니다.

앙티브에 오자 이미 밤이 깊어 배가 많이 고팠습니다. 오늘 저녁은 어제처럼 문 닫은 곳이 아니라 제대로 된 곳을 예약해서 가자는 생각이 있었기에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인 라주르를 가게 되었습니다. 아담하고, 지하 동굴처럼 생긴 내부 구조를 가진 아라주르는 깔끔한 인테리어만큼이나 요리의 맛과 플레이팅도 훌륭했습니다. 아내와 저는 요리를 먹으면서 지금까지 프로방스에서 먹어 본 음식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이 가격에 이런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에 연신 감탄했습니다.

사진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요리가 꽤나 만족스러워서 제 얼굴에도 미소가 가득했습니다. 식사를 끝낸 후 아내와 여기도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오자고 말하면서 조용한 골목길을 거닐다 숙소로 돌아가 바쁜 하루를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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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6. 14. 에너지경제신문 칼럼 기고 – ‘시장주의’ 지역주택조합의 역설

저는 얼마 전 서울시에서 지역주택조합에 대한 실태조사에 참여했습니다. 국토교통부에서 지역주택조합을 규율하고 있는 주택법을 개정할 계획을 갖고 있는데, 서울시에서 현황을 파악해 제도 개선에 반영하기 위한 목적으로 실태조사를 한 것입니다.

사실 2015년부터 서울시에서 도시정비법에 따른 재개발, 재건축 조합들에 대한 실태점검이란 명칭으로 감사를 실시하면서 초기에는 조합 행정, 계약, 회계 등 곳곳에서 많은 문제들을 목도했습니다. 그 후 현재까지 40여개의 조합들에 대한 실태점검을 하면서 시간이 갈수록 상황이 개선되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 배경에는 서울시가 조합의 행정, 계약 및 회계 기준을 보다 세밀하게 정한 규정들을 시행했고, 나아가 이런 내용을 반영한 도시정비법 개정까지 이뤄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지역주택조합에 대한 실태조사를 나가 보니, 제가 처음 실태점검을 나갔던 재개발 조합보다도 더 문제가 많아 보였습니다. 기준이 없는 조합 행정 업무, 계약 금액이나 성격과 무관하게 이루어지는 수의계약, 증빙자료 없이 지출되는 비용과 장부와 맞지 않는 회계처리까지 총체적인 혼란 그 자체였습니다.

국토교통부에서 며칠 전 이런 지역주택조합에 대한 관리, 감독 근거를 명확히 하겠다고 밝힌 것은 바람직해 보입니다. 다만, 주택법에 지역주택조합의 업무에 대한 규제 내용이 별로 없거나, 실효성이 없는 내용들이 많아 현행 조항만으로는 관리, 감독을 아무리 강화해도 문제를 막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차제에 민간사업으로 보아 시장의 자율에 맡기고 있는 지역주택조합 사업의 성격에 대해 재검토가 필요해 보입니다. 이를 위해 도시정비법처럼 주택법의 조항들을 세세하게 규정하거나, 아예 도시정비법을 개정해서 지역주택조합도 도시정비법으로 규율할 필요가 있습니다. 차선책으로 정 안되면 지역주택조합 사업의 추진위원회와 조합을 법제화하여, 지역주택조합의 정관 조항에 일정한 사항이 들어가도록 강제해야 합니다.

자재값 인상으로 공사비가 오르고, 이미 상승한 토지 가격까지 고려하면 부동산 경기가 어려운 상황이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사정이라면 지역주택조합의 사업성도 떨어질 수밖에 없어 지역주택조합에 가입한 서민들의 고통은 점점 심화될 것입니다. 최근 지역주택조합 관련 비리와 법적 분쟁 기사들이 나오는 것을 보면서 정부의 빠른 대처가 아쉽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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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킹스와 분열의 정치

최근 넷플릭스에서 바이킹스라는 드라마를 재밌게 봤습니다. 앵글로 색슨족이 영국을 지배하던 시기, 스칸디나비아반도의 바이킹들이 영국을 침략하고, 프랑스에서는 노르망디를 지배했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일부 상상을 가미한 역사 드라마입니다. 예전에 월터 스콧이 쓴 ‘아이반호’를 읽으면서 앵글로 색슨족과 바이킹이 시조인 노르만족의 갈등에 대해 알게 되기는 했지만, 그 이전에 바이킹들이 영국을 침략했던 것은 드라마를 보고 인터넷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살펴본 후 새롭게 알게 됐습니다.

바이킹스에서 주인공이었던 라그나르 로드브로크와 그 아들들의 인생과 모험 얘기도 흥미진진했지만, 그 후속작인 바이킹스-발할라는 단순히 재미를 떠나 제게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였습니다. 바이킹스의 이야기로부터 100년 정도가 흐른 후 크누트 대왕의 영국 점령을 배경으로 하는데, 영국에서 대왕으로 불리는 단 2명이 하나는 바이킹의 공격을 막아냈던 웨섹스의 알프레드 대왕과 그 이후 웨섹스를 비롯한 영국 전역을 점령한 바이킹 크누트 대왕이라는 사실도 흥미로웠습니다.

특히나 바이킹-발할라에는 크리스트교가 전래된 후 다수가 크리스트교로 개종하여 기존 오딘 등 전통신을 믿는 사람들과 분쟁이 발생하였습니다. 특히나 같은 민족으로서 영국을 침략해 점령하고자 하는 동일한 목표가 있지만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 반목하고, 죽이기까지 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말하는 소위 ‘뺄셈의 정치’, 서로 다른 것을 강조하면 분열과 전쟁의 시대가 바로 지척에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이킹스에서도 주인공 라그나르 로드브로크는 척박한 스칸디나비아를 벗어나 영국에서 기름진 농경지를 받아 농사를 짓고 싶어 하기도 하고, 다른 바이킹들은 평화롭게 살 새로운 경작지를 찾아 아이슬란드, 그린란드, 심지어 북아메리카 뉴펀들랜드 섬으로 이주하기도 합니다. 라그나르 로드브로크가 죽은 후 오랜 시간이 흘러 여러 다른 종교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공존할 수 있는 곳은 ‘카테가트’라는 항구도시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서로 조금이라도 다른 것을 강조하여 다른 것이 잘못된 것이라며 분열과 다툼의 시대를 재촉하는 세력이 있고, 상호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함께 공존하는 것이 평화와 번영의 길임을 강조하는 세력도 있습니다. 서로 다른 차이을 강조하는 정치를, 공존이 아닌 상대방을 절멸시키려는 정치로는 평화의 길이 요원합니다. 주변을 둘러싼 외부 환경이 위태로워질수록 우리 내부에서는 이러한 분열의 길을 벗어나 모두가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서양의 로마가 그랬고, 동양의 당나라가 그랬듯이 서로 다른 것을 용인하는 포용과 화합이 번영의 길이기도 합니다. 사실과 가상이 혼합된 역사 드라마만 봐도 알 수 있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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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4. 5. 에너지경제신문 칼럼 기고 – AI 시대에 걸맞은 새 제도 설계해야

주변을 살펴보면 인공지능을 활용해 새로운 사업을 하려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수익을 내는 기업만이 아니라 공공영역에서도 인공지능으로 기존에 제공하던 서비스를 혁신하거나, 새로운 서비스를 계획하기도 합니다.

문제는 최근 인공지능 발전 단계는 양질의 데이터를 이용해 보다 높은 성능의 인공지능을 만드는데 촛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능이 뛰어난 인공지능을 학습시키기 위해 필요한 양질의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인공지능 개발에 필요한 비용 중 75% 이상이 데이터를 처리하는데 들 정도로 데이터 처리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소중한 데이터를 확보했는데, 그 데이터에 개인정보나 저작권이 있는 정보가 있다면 그 데이터를 이용할 수가 없게 됩니다. 개인정보 보호나 지적재산권 침해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규제가 있지만, 사실 구체적 상황에서 맞닥뜨리는 수많은 문제들은 기존 규제에 대한 해석으로도 완전한 해결이 쉽지 않았습니다.

인공지능 학습에 데이터를 활용하는 시대에는 이런 난관을 넘어서기 위해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방안까지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주에는 이러한 내용을 중심으로 칼럼을 기고했습니다. 인간이 개인정보나 지적재산권 침해의 주체이던 시대에서 인공지능이 주체가 되는 새로운 시대가 오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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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로부터 버림받은 국가유공자와 가족들

며칠 전 제가 원고를 대리해 맡았던 사건에서 청구 기각 판결을 받았습니다. 법원에서 소송구조를 받았던 원고가 상담을 요청해서 상담을 한 후 담당했던 사건입니다. 제 할아버지도 한국전쟁 당시 부상을 입어 제대 후 힘겨운 삶을 살다 돌아가셨고, 최근에서야 아버지께서 대신 훈장을 받으셨던 일이 있어 어려운 사건이지만 원고를 도와드리고 싶었습니다.

원고의 부친은 한국전쟁 당시 박격포탄에 눈을 잃고,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제대 후 사망하셨습니다. 유복자였던 원고는 이후 모친이 재혼을 하면서 고아가 되었고, 어린 시절 할머니를 어머니로 알고 성장하다가 할머니도 돌아가시면서 친척집을 떠돌게 됐습니다. 당연히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했던 원고는 이후 사회에 나가서도 아무것도 없이 많은 고난을 묵묵히 견뎌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갖은 고생을 하다가 60여년이 흐른 후 원고는 국가를 상대로 자신의 부친이 국가유공자라는 것을 인정해달라는 소를 제기했습니다. 이런 원고의 청구에 대해 보훈청은 원고의 부친이 한국전쟁 당시 부상을 입었다는 증거를 대라고 반박했습니다. 물론, 아버지를 본 적도 없는 원고가 그런 증거를 가지고 있을 턱이 없었고, 그 증거는 사실 국가가 보관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원고가 기나긴 소송 과정에서 부친의 병적부와 육군병원에서의 치료 기록을 찾아냈고, 그 기록의 내용을 부인할 수 없었던 보훈청은 결국 원고의 부친을 가장 등급이 낮은 공상군경 7급으로 인정해줬습니다. 육군병원의 기록에 원고 부친의 양안 시력이 0.2, 0.1로 기록되어 있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하지만 원고 부친이 제대한 후 같은 마을 옆집에 살았던 사람들은 원고의 부친이 양 눈을 실명했고, 제대 후 치료를 받지 못하다가 1년 후 사망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원고는 이에 다시 7급은 너무 등급이 낮다며 등급 부여를 취소하고, 부친의 부상과 사망이란 희생을 반영할 수 있는 등급을 부여해달라며 소를 제기한 것이었습니다.

이번에도 보훈청에서는 기존처럼 원고의 부친이 양 눈을 실명하였다거나, 그로 인해 사망했다는 증거가 없다며 자신들의 7급 등급 부여도 여러 사정을 반영한 너그러운 성격의 처분이었다는 주장을 반복했습니다. 정황상 원고의 부친이 군 복무 중 부상을 입었을 때나 그 이후 제대했을 때도 국가는 제대로 치료를 해주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게 국가는 국가를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친 원고의 부친을 외면했고, 자신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런 부친의 명예를 회복하겠다며 소를 제기한 원고에게는 부친이 얼마나 부상을 입고, 왜 사망했는지 증거를 대라며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습니다. 최근 보훈청이 보훈부로 승격된 이유는 원고나 원고의 부친 같은 국가유공자들의 헌신을 제대로 기리고 대우하기 위한 것일테지만, 실제 현실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국가유공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시혜를 베푼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이나 영국 등 다른 선진국에서는 국가유공자 인정과 관련한 자료를 국가가 수집하도록 하고, 그 입증책임을 국가가 지도록 하거나 입증 정도를 완화하고 있습니다. 그런 자료들은 그 성격상 원래 국가가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고, 개인이 갖고 있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원고가 국가유공자로 인정될 사실과 증거를 모두 주장하고 제출해야 합니다. 법원도 법률이 그렇고, 대법원 판례가 그러니 어쩔 수 없다며 손을 놓고 있습니다.

국가가 증거를 갖고 있음에도 개인인 원고에게 그 증거를 제출하라고 하는 모순된 상황, 이런 증거의 편재 때문에 많은 국가유공자들이나 그 가족들은 국가를 상대로 여전히 승산없는 싸움을 계속 이어가고 있습니다. 국민이 국가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하고, 국가가 국민을 제대로 대우하는 것은 바로 국가라는 공동체를 위해 희생한 분들에게 합당한 대우와 예우를 갖추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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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항소 인용 ‘피고인은 무죄’

지난 주에는 참 기쁜 소식이 있었습니다. 제가 1심부터 변호인단으로 참여했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에서 피고인이 유죄로 인정됐던 1심과 달리 항소심에서 전부 무죄로 선고됐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은 문재인 정부 1호 국가보안법 사건으로 알려졌는데, 북한 출신 프로그래머들이 개발한 프로그램을 국내에서 유통한 것과 관련된 사건입니다.

기존에 여러 차례 언론에 보도된 사건인데, 뉴스나 스트레이트 등 시사고발 프로그램으로도 많이 알려진 사건입니다. 피고인은 중국에서 북한 개발인력을 활용해 뛰어난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국내에 납품하고, 세계 경진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후 정치적 상황이 변화됐고, 그에 따라 피고인의 사업도 위기를 맞았을 뿐 아니라 기업의 대표였던 피고인은 공포의 대상인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굴레를 쓰고 구속이 되었습니다.

1심이 진행되면서 국가보안법 사건에서는 이례적으로 피고인이 보석으로 석방되어 불구속으로 재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피고인의 행위가 과연 국가보안법이 처벌하려고 하는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정도인지, 피고인이 그런 행위라는 것을 인지했는지, 제출된 증거의 증거능력이 있는지 등 수많은 쟁점들이 3년 동안 공판정에서 다투어졌습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일부 내용에 대해서만 무죄를 인정하였을 뿐 대부분 혐의에 대해서 유죄로 보아 징역 4년을 선고하면서 피고인을 법정구속했습니다.

변호인단의 앞에서 피고인이 법정구속되는 상황이 발생하니, 피고인 본인뿐만 아니라 변호인단이었던 저 역시 당황스럽고, 힘이 쭉 빠지게 됐습니다. 한동안 변호인단도 힘을 내지 못하던 차에 새로 변호사분들이 참여하면서 다시 전열을 정비하여 법리적인 부분과 사실 인정에 대해 치밀하게 의견서를 제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공판이 장기간 진행되어 1년 반 가까이 흐르자 다시 피고인이 보석으로 석방된 상태에서 변론이 종결되었는데, 선고기일이 다가오자 떨리는 마음을 가눌 길이 없었습니다.

마침내 선고를 하는 날, 공판정에 들어가 30분 가까이 선고를 듣는데 처음에는 변호인단의 남북교류협력법 적용 주장을 배척하고, 일부 사실에 대해서만 혐의 인정을 배척하여 불안감을 누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점점 선고가 이어지면서 피고인의 범죄에 대한 주관적 인식이 없었다는 설명이 나오면서 저나 변호인단의 다른 변호사들 얼굴이 환해지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재판장님이 피고인을 일어서게 하고 ‘피고인은 무죄’라고 말하는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지면서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 오랜 시간 피고인이 겪어야 했던 고초와 피고인이 공을 들였던 사업이 모두 무너지게 된 데 대한 안타까움도 있었고, 그래도 우리 법원에서 정치적 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법리에 따른 판단을 하는 판사들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피고인에게 무죄가 선고되는 순간 수년간 피고인의 공판마다 오셔서 방청하시며 아들의 무죄를 호소하셨던 피고인의 아버님이 박수를 치고 일어서 눈물을 흘리며 감사하다고 외치는 모습을 보고 또 마음이 찡해지기도 했습니다.

1심에서부터 검찰에서는 이 사건이 정치적 사건이 아닌 경제적 목적의 사건이라는 것을 강조했는데, 생각해보면 중국을 경유한 삼각무역이나 남북경협사업을 이런 식으로 사후적으로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범죄로 처단하다 보면 향후 어떻게 남북간 민간의 경제적 교류가 가능할 것인지 참으로 암담합니다. 하지만 이번 판결처럼 우리 사회를 보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로 만들어 가는 노력이 쌓인다면 언젠가는 지금의 정치적 대립이 완화되고, 공존공영하는 미래가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선고 후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를 하는 피고인을 보면서 피고인과 그 가족들이 겪었던 어려움이 다시 한번 생각났습니다. 가정의 중심이었던 아버지가 구속되자 생활비와 학비 걱정을 해야 했던 가족들, 보석 기간에는 조금이라도 생활비를 벌어놓겠다며 하루도 쉬지 않고 공사 현장에서 나가 일을 하던 피고인을 보며 저녁에 가족들이 모여 따뜻한 식사를 할 수 있게 된 것이 참으로 기뻤습니다. 저는 쉽지 않은 사건이었지만, 그렇기에 보람도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변호인단과 헤어져 사무실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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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법 개정과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 주관자 범위 확대

지난 월요일에는 국회가 그동안 밀려 있었던 과제들을 한번에 많이 끝냈습니다. 많은 관심이 집중됐던 보훈처를 보훈부로 격상하고, 재외동포청을 신설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이나 이동형 영상정보처리기기나 개인정보 전송 요구권 등을 도입하는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 등도 통과됐지만, 제가 이사로 있는 나눔과나눔에서 오랫동안 준비해왔던 장사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도 마침내 의결이 되었습니다.

줄여서 장사법이라고도 하는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은 기존에 사망자의 장례를 주관할 수 있는 연고자 범위를 법률상 친족이나 사망 전 보호하던 행정기관이나 치료기관 등으로 한정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점차 개인화, 파편화되면서 이러한 친족이나 가족과 단절되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됐습니다. 결국 사망한 분이 가족들과는 연락을 하지 않았지만 사실혼, 동거를 하거나, 수십년 동안 친분이 있는 지인이 있는 경우도 생기게 됐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에도 장사법은 매우 한정된 범위에서만 장례를 치를 수 있는 연고자를 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연락을 하지 않던 가족들이 시신을 포기하면 무연고 사망자가 되어 동거를 했거나 지인이라도 장례를 치를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법조항은 과거 가족과 친척들이 한 곳에 집단으로 정주하던 농업 사회를 전제한 것으로 현재의 변화된 사회에는 적용되기 어려운 것입니다.

제가 예전에 나눔과나눔의 연구 프로젝트에서 작성해 국제심포지엄에서 발표했던 보고서에서도 이에 대해 언급한 바 있는데, 이제는 연고자의 범위를 확장해 보다 널리 사망자의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와 관련해 몇년 전 보건복지부의 가이드라인으로 해당 조항의 해석을 통해 이러한 범위의 확대가 이루어졌고,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로도 보완되고 있었지만 이제 법률의 명시적 조항으로 논란의 여지를 줄이게 되었습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연고자 범위 전체를 확장한 것은 아니고, 무연고 사망자에 한정하여 사망하기 전 장기적·지속적인 친분관계를 맺은 사람 또는 종교활동 및 사회적 연대활동 등을 함께 한 사람, 사망하기 전 본인이 서명한 문서 또는 「민법」의 유언에 관한 규정에 따른 유언의 방식으로 지정한 사람을 장례 주관자로 인정할 수 있도록 하여 제한적으로만 확대된 것입니다. 앞으로는 무연고 사망자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모든 사망자에 대해서 연고자 범위가 확대되어 돌아가신 분의 의사와 존엄성이 존중되는 ‘가족 대신 장례’, ‘내 뜻대로 장례’가 활성화되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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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2. 10. 에너지경제신문 칼럼 기고 – 인공지능(AI)의 가치판단이 허용될까

작년 말에 오픈AI에서 공개한 챗GPT로 전세계가 떠들썩합니다. 일론 머스크도 설립에 처음 참여했던 오픈AI의 성과인데 최근 투자를 많이 했던 MS로서는 회심의 반격이라고도 보입니다. 챗GPT가 관심의 초점이 되자 구글에서는 적색 경보를 울리면서 기존에 개발했던 인공지능 챗봇인 Bard를 공개하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챗GPT가 인기를 끌자 저도 질문을 해봤습니다. 전부터 실제 인공지능에게 트롤리 딜레마(Trolley Dilemma)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챗GPT를 사용한 다른 사람들처럼 저 역시 답변의 내용에 깜짝 놀랐습니다. 이러한 내용을 바탕으로 이번 칼럼을 작성해 기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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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법률용어집 출간 기념회

이번 달 중순에는 제가 위원장으로 있는 서울지방변호사회 중국소위원회에서 한중법률용어집을 출간하는 기념식이 있었습니다. 중국소위원회 위원들 중 6분의 변호사분들이 1년 넘게 없는 시간을 쪼개 한국과 중국에서 많이 사용되는 상용계약서 12개를 중문과 한글로 서로 번역하고, 계약서에서 사용된 용어들을 설명하는 책을 발간했습니다.

이 작업은 원래 제가 중국소위원회의 위원장이 되기 바로 전 위원회에서 추진하려고 했던 것이었는데 당시 위원분들이 여력이 없어 미뤄졌던 것이었습니다. 당시 간사였던 제가 위원장이 되어 이번 임기에는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진행을 하여 마침내 임기를 며칠 안 남기고 법률용어집 출간과 그 기념회까지 열게 된 것입니다. 법률용어집 준비 TF의 위원장을 맡았던 분이 중국 북경대에서 법학을 전공했는데 책임감을 가지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끝까지 사업을 마무리해서 책이 출간될 수 있었습니다.

출간 기념회를 준비하면서 그동안 위원분들이 많은 애를 쓰셨고, 서울지방변호사회 명의로 출간되는 것이어서 관심이 있을 법한 분들을 최대한 많이 초청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서울지방변호사회 임원들 뿐 아니라 주한중국대사관, 대한변협과 사내변호사회 관계자, 학계와 한국에 있는 중국변호사 등 많은 분들을 초청해서 축하해주고, 널리 알리고자 했습니다. 다행히 예상보다도 많은 분들이 참석해서 열띤 분위기 속에서 출간 기념회가 진행됐습니다.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는 회장 직무대행으로 부회장님이 축사를 하셨고, 주한중국대사관에서는 팡쿤 공사님이 축하 영상을 보내주셨습니다. 이후 진행된 책 내용 소개 절차에서 저는 소위원장으로서 좌장을 맡고, 법률용어집 출간 사업에 가장 열심히 참여했던 위원분들이 사회와 발제를 하여 출간 기념회가 잘 마무리되었습니다. 원래 계획은 이번 상용계약서에 이어서 다른 분야의 용어들에 대해서도 시리즈로 용어집을 발간하는 것이었으므로, 다음 중국소위원회에서도 계속 동일한 사업을 발전시켜 나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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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휴정 기간 독서 – 군주론, 전쟁의 기원

변호사들은 겨울의 절정기에 맞이하는 법원의 휴정기에 한숨 돌리며 휴식을 갖게 됩니다. 각자의 사정에 따라 여행을 하기도 하고, 독서나 다른 취미생활을 하기도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바쁜 업무로 밀린 서면들이나 집안일을 처리하기도 합니다. 저 역시 연말에 맞은 휴정기에 밀렸던 인터넷 교체나 등 수선 등 집안일을 처리하고, 아내와 주말을 껴서 겨울산과 바다를 보고 오기도 했습니다.

제가 이번 휴정기를 맞으면서 결심했던 것이 하나 있는데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업무시간에 활자를 많이 봐서 왠지 보기 싫다는 이유로 제 업무 이외의 책을 잘 읽지 않았지만 이번 휴정기에는 시간을 내서 책을 제대로 좀 읽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휴정기에 도서관에 가서 서가를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마음에 드는 책 몇 권을 빌려왔습니다. 그 책들 중 먼저 읽은 것이 ‘군주론’과 ‘전쟁의 기원’이라는 책입니다.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지은 ‘군주론’은 널리 알려진 책이라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입니다. 사실 제가 더 젊었을 때 이 책을 여러 번 집어 든 적이 있었는데, 지금보다 젊은 나이였을 때라 그런지, 인간의 본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책의 내용에 거부감이 들어선지 조금 보다가 내려놓았었습니다. 이제 그 때보다는 세상을 더 경험해서 마음이 열린 것인지,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더 알고 싶어선지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군주론을 제대로 읽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서관에 가보니 여러 버전의 군주론이 있었는데, 제가 고른 곽차섭 교수 번역본은 이탈리어 원전을 최대한 직역하고 마키아벨리의 생애를 보여주면서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쓰게 된 이유를 설명해줘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어떤 글을 쓴 배경을 알게 되면 글의 행간을 읽는데도 도움이 되고, 내용 자체도 더 이해가 쉽기 때문입니다. 제 생각대로 책 처음 부분에 마키아벨리의 삶과 당시 이탈리아의 정세, 군주론을 써서 당시 피렌체의 권력자에게 증정하려고 했었다는 내용을 알게 되니 군주론이 왜 그렇게 쓰여졌는지 명확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군주론은 어떻게 보면 난세를 사는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이기도 하고, 정치 지도자의 처세서이기도 하며, 수많은 도시국가로 찢어진 이탈리아의 슬픈 역사서이기도 합니다. 전에는 군주는 사자이자 여우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반감부터 생겼는데, 인간의 심성보다도 상황이 인간의 행동을 좌우하기도 한다는 것을 고려하면 그러한 주장도 일리는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군주론에 나온 것처럼 민주정이 아닌 군주정에서는 군주 자신의 생존이 곧 국가의 생존이기에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어려서부터 컴퓨터로 삼국지 게임을 즐기고, 손자병법이나 육도삼략, 열국지나 삼국지, 초한지, 대망은 흥미진진하게 읽었던 제가 유독 마키아벨리의 주장에만 거부감을 가졌던 것이 한편 이상하기도 합니다. 아마 그것은 제가 군주론이 있었던 사실을 기술하는 역사서나, 전쟁을 수단으로 하는 부국강병의 기술을 주장하는 병가의 측면이 아니라 일반적인 정치에서의 교활한 기술이나 무자비한 힘을 강조하는 것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번에 군주론을 읽으면서 그런 편견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군주론을 읽은 후에는 ‘전쟁의 기원’이라는 책으로 넘어갔습니다. 부제가 ‘석기 시대로부터 알렉산더 대왕의 시대까지’인데, 저자인 아더 훼릴은 원시 인류부터 전쟁이 존재해왔고, 전쟁이 인류의 주거 형태와 삶의 방식을 많이 결정해왔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특히 저자는 장갑보병으로 유명한 그리스와 로마의 전쟁 수행 능력이 과대평가되어 왔고, 소아시아 등 고대 근동 지역으로부터 우리 현대인은 전쟁과 관련된 훨씬 많은 유산을 물려받았다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도시의 출현에 대해서도 독특한 견해를 제시하는데, 농경의 발전으로 도시가 발생한 것이 아니라, 집단적인 방어 목적으로 도시가 생긴 후 농경 등 식량의 축적이 시작됐다고 주장합니다. 농업혁명이라고도 불리는 농경의 등장이 인류 역사의 새 장을 열었다는 기존의 통설을 반박하며, 농경으로 인한 식량의 증산은 그다지 많지 않았음에도 이미 늘어난 인구수로 인해 인류 공동체가 기존 수렵 및 채집 경제로 돌아갈 수 없었다는 유발 하라리의 주장이 떠오르는 농경시대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합니다.

책 내용에서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전투에서 각 부대가 어떻게 전투를 벌였는지 그림을 통해 설명하는 것과 게임에서 많이 경험한 것처럼 각 부대들의 특성에 따라 서로 상성이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즉, 갑옷이 두꺼운 중장갑보병이라고 반드시 모든 상황에서 경보병보다 전투력이 우수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한,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 제국을 정복하고, 아시아 원정에서 계속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 그리스의 중장갑보병 전술과 페르시아 등 근동 지역의 경보병, 전술, 병참, 조직등 전쟁 기술을 효과적으로 결합시켰던 덕분이란 점도 놀라웠습니다.

결국 자신이 가진 것의 장점을 살리고, 타인의 것이거나 새로운 것이라고 무조건 배척하기보다는 그 장점을 잘 살펴 자신의 것으로 흡수한 것이 바로 최고의 결과를 이끌어 내는 비결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에서는 변방이라고 할 수 있는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과 그 아버지인 필립왕은 근본적인 혁신이 비주류인 변방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제대로 증명한 것이라는 생각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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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철, 변호사로 의미를 남기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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